15. 리바론 기사단
“부단장, 단장의 기분이 퍽 나빠 보이지 않아?”
리바론 기사단의 사이먼 캐치가 슬쩍 필릭스 쿠아란의 눈치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단장이 아니라 공작님이시다.”
“누가 그걸 몰라. 하지만 몇 년을 단장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와서 공작님이라 부르기도 낯부끄러운 일이라고.”
사이먼은 툴툴거리며 손을 말아 포말라드 웨이의 어깨를 쳤다.
몇 년간 전장에서 훌쩍 자란 사이먼 캐치의 주먹은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해머에 가까웠다. 그것은 확실히 포말라드의 어깨에 닿았으나, 포말라드는 미동도 없이 하던 일에 집중했다.
“네가 다른 놈들과 주먹질하는 횟수만 줄여도 공작님의 기분이 나아지실 거다.”
“단장은 내 주먹질에는 관심도 없어. 그나저나 제국 사람들도 다 단장을 좋아하는데……. 왜 몇 시간째 얼굴을 찌푸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느냔 말이야.”
검을 갈무리하던 포말라드 웨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언제 공작님이 기분 좋았던 적이 있었나.”
“누가 그걸 몰라? 유독 더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이지.”
“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 더 말수가 없어지긴 하셨다마는. 공작님께서 아무 말씀 없으시면 큰일은 아닌 거다. 우리는 우리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전쟁도 없는 이 평화로운 도시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 부단장?”
“단련.”
포말라드는 단호하게 답했다.
“지긋지긋한 단련!”
사이먼 캐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내밀더니 그의 또래인 아이몬드 무리에게로 달려갔다.
최근 무섭게 성장한 사이먼 캐치는 포말라드와 키는 비슷해졌으나 아직 소년티를 벗지는 못했다. 그 철딱서니 없는 모습에 포말라드는 잠시 혀를 쯧 찼다.
‘우울해 보이시기는 하는군.’
요즘따라 더 들떠 보이는 사이먼 캐치에게 무심히 답하기는 했으나, 그의 말이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포말라드 웨이는 슬쩍 필릭스 쿠아란을 바라보았다. 리바론 기사단의 단원들이 모두 모여 단련 내지는 수다를 떨고 있는 와중에 그는 홀로 구석진 곳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그를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그때에 비하면야.’
낮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은 포말라드 웨이는 천천히 걸어가 필릭스 쿠아란 옆에 털썩 앉았다. 그는 시선도 주지 않았으나 포말라드는 괘념치 않고 말을 걸었다.
“공작님,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니.”
“그럼 혹시 또 어깨가 아프신 건 아닙니까? 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무척 힘들어하셨잖아요.”
“…….”
“제게는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필릭스 쿠아란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 포말라드는 오히려 걱정스러워졌다.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리바론 기사단의 단장이자 공작인 그는 힘들 때 외려 말이 없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에도 그러시더니.’
지난번에도 그랬다. 비를 잔뜩 맞고 돌아온 필릭스 쿠아란은 그날 열병을 앓았다.
다른 단원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았으나 포말라드 웨이만은 목격했다. 들끓는 열을 참으며 오른쪽 어깨를 고통스레 쥐던 모습을.
아버지인 쿠렐 쿠아란 공작이 돌아가신 스트레스 때문에 더 급격하게 악화된 건지는 몰라도, 그는 분명 지금까지도 괴로워하고 있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망가진 어깨의 관절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픈 듯했다.
“부단장님, 저와 얘기를 좀 하시겠어요?”
입을 꾹 다문 필릭스 쿠아란의 등 뒤로 공작가의 집사 길리 포바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길리 집사님.”
포말라드 웨이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길리의 눈치를 살폈다. 공작가의 실세로 보이는 그는 리바론 기사단을 그닥 반기지 않는 듯했으니까.
포말라드는 또 어떤 말이 나올까 초조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길리 포바즈가 삐딱한 시선으로 기사 단원들을 쭉 훑어보더니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기사단의 재정 문제에 대해 좀 상의를 드리고자 하는데요. 공작님께서는 공작가의 재정엔 전혀 관심이 없으셔서. 제가 이번 주 내내 말씀을 드렸지만 말입니다. 예산이 과하게 초과되고 있거든요.”
“혹시 저희 아이들 중 누가 사고라도 친 겁니까? 제가 얌전히들 있으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는데요.”
“아니요. 몇몇 분들이 어제 도자기 석 점을 깨뜨린 것 외에는 큰 문제 없습니다.”
포말라드가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다. 큰 문제인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그 도자기란 거 아주 비싼 것이겠죠?”
“이번 달 기사단의 식대에 비하면 소소한 수준입니다.”
“아, 식대요.”
길리 포바즈는 검게 그을린 포말라드 웨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두꺼운 종이를 덥석 내밀었다.
“그간의 노고를 생각해 계속된 연회 수준의 식대 값은 참아 드렸습니다마는, 더 이상은 곤란합니다. 혈혈단신으로 떠나신 공작님께서 기존 공작가 기사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규모의 기사단을 이끌고 돌아오신 까닭이죠.”
단장인 필릭스 쿠아란이 공작이니, 리바론 기사단은 공작가의 기사단이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나라의 영웅들이니 갈채를 보내야 마땅하나 길리 포바즈만은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적어도 길리 포바즈에게만큼은 영웅이 아닌 식충이들이었다.
“그, 저희 아이들에게 살을 좀 뺄 생각은 없냐고 권유해 보겠습니다.”
길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민망한 낯빛으로 종이를 넘기는 포말라드 웨이에게서 다시 종이를 빼앗아 들었다.
“장정들이 얼마나 많이 먹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국의 영웅들에게 부족하게 대접할 생각은 없으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다만, 술만 좀 줄여 주시면 됩니다. 줄어든 술값과 술에 취해 부수는 침대나 문, 그리고 도자기와 조각상 값만 제하게 된다 해도 꽤 넉넉해질 겁니다.”
길리 포바즈는 더불어 연무장의 확대 공사와 숙소 유지비에 대해서도 꼼꼼히 언급했다.
평생 검만 써서 숫자에 약한 포말라드 웨이는 그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대충 더 이상 사고 치지 말라는 이야기인 것은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길리 포바즈는 흥, 하고는 뒤로 돌아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휴, 저 천방지축들.”
포말라드 웨이는 서로 엎치락뒤치락 장난을 치고 있는 장정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 년 만에 전쟁터를 떠나 다시 제국으로 돌아온 기사단의 단원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은 그 흥분이 좀 가라앉은 상태였으나,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가족들을 만나고, 기름진 음식과 단잠을 맛본 단원들은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
게다가 예상은 했으나, 그들을 반기는 백성들의 환호가 생각보다 더 열렬해 매우 만족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종합하자면, 중간에서 고생이 많은 포말라드 웨이 부단장이었다.
“공작님, 애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주 잘 타이르겠습니다.”
길리 포바즈가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포말라드 웨이는 필릭스 쿠아란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필릭스 쿠아란은 어느새 기척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또 어딜 가신 거야.”
최근 단장은 소리 소문도 없이 종종 이런 식으로 사라지곤 했다.
소진된 마정석을 종류별로 구분해 폐기 처리하는 일을 빠르게 마치고, 중간중간 딕시 댁스터의 아주 미세했으나 흐뭇한 미소를 받고, 니아는 강의를 위해 아베쎄 아카데미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집보다도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 길에 이물질이 있었다.
아카데미 문양이 일정한 간격으로 총총 박혀 있는 거대한 담벼락 사이로, 굳이 정가운데를 차지한 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저 책, 본인이 쓴 거라는 데 한 달 월급을 건다.’
그는 몇 년째 학생 평가 꼴찌를 도맡고 있으나, 스스로는 결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현실 도피에 도가 튼 교수이자, 이 년 전 결국 소원하던 아카데미 이사진 자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었다.
더 힌트를 주자면, 니아 프레슬리가 아카데미생이던 시절 그녀를 가르치기도 했다.
니아 프레슬리는 둥글게 주먹을 말아 이마를 콩 쳤다.
“으휴, 돌아서 갈걸.”
중얼거리며 비관했으나, 곧 언제 그랬나 싶을 만큼 능숙하게 눈을 접었다. 조교 이 년 차, 이 정도야 능숙했ᅌᅳ니까.
“어머, 버도네 교수님!”
그리고 누가 들어도 윤기 가득한 목소리로 아리갈리 버도네 교수를 불렀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성 장착이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니아를 향해 입을 벌렸다.
“아니, 니아 프레슬리 학생, 아니 조교! 아직까지도 호칭이 헷갈리는군.”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되죠. 그럼 안녕히, 가던 길 지나가세요. 비켜 드리겠습니다. 저는 바빠서 이……!”
‘이만’이라는 말을 뱉기도 전에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출렁거리는 뱃살이 어느새 니아의 코앞에 와 있었다.
“바빠도 차 마실 시간 정도는 있겠지.”
“아…….”
니아는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딕시 댁스터를 제외한 다른 교수들 전용으로 연구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특히, 특히나 아리갈리 버도네에게 맞춰 더욱 특화된 표정이기도 했다.
“너무 죄송스러워서 어쩌죠……. 제가 지금 아베쎄 아카데미에 수업이 있어서요. 그 열 몇 살 남짓한 아이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누구보다 가르침에 진지한 교수님이시라면 이해하시겠죠?”
“흠, 흠흠. 그럼, 이해하고말고. 아주 고생이 많아.”
“그럼 이만…….”
“그래도 잠깐 이야기할 시간은 있겠지.”
“아, 교수님 정말 시간이…….”
“잠깐, 잠깐이면 돼. 여기서 얘기할 거라니까. 흠, 흠.”
니아는 짓고 있던 표정을 싹 지우고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인간, 배려라곤 눈곱만치도 모르는군.
“버도네 교수님? 안타깝지만 정말 시간이 없는 관계로 용건만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말투가 딱딱하게 변했건만 그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듯했다. 아마 대답이 긍정이기만 하면 되는 모양이었다.
“실은 자네한테 부탁이 있어.”
“무슨 부탁이죠?”
니아는 일부러 손목을 탁탁 쳤다. 손목시계도 없는 빈 손목이었으나, 그가 간단히 끝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기 할 말을 뱉었다.
“이번에 열리는 특별 강연에 초대를 하고자 하는데.”
“어떤 분을요?”
“필릭스 쿠아란. 내 애제자 말일세.”
“그걸 왜 저한테…….”
순간 너무 티 나게 미간을 구기자 아리갈리 버도네가 재빨리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공작가 출신이지 않은가. 어떻게 부탁 좀 해 볼 수 있지 않겠어. 어! 자네라면 할 수 있어. 암, 암!”
간절하게 뻗어 오는 손을 무시하고 니아는 뒷짐을 짚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공작가를 나온 지 사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교수님. 인맥보다는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요청서를 보내는 게 어떨는지요. 그럼 죄송스럽지만 불가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저는 이만 가던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사람 참! 어찌 그리 댁스터 교수를 닮아 가! 아잇!”
“그러니까 정식 요청서를…….”
“벌써 여러 번 연락을 넣었지! 번번이 거절만 돌아오는데 이걸 어쩔 거야! 아니, 사람이 변한 건가. 전쟁터에 가면 다 그렇게 냉정해지는 거야? 아니면 나라의 영웅이 되었으니 이런 자리는 소소하다 이거야?”
“제가 그분 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교수님…….”
“이봐, 프레슬리 조교. 자네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아카데미를 다닐 때 필릭스 쿠아란, 그 녀석이 내게 얼마나 깍듯했는지.”
깍듯? 기억 조작이었다.
“어! 내가 어! 웬만해선 이런 부탁 하지 않아! 전쟁 영웅이라니, 우리 아카데미의 최고 아웃풋 아닌가.”
“…….”
“돌연 깨달음을 얻었는지 전쟁터로 떠난 아카데미생, 영웅으로 돌아오다! 심지어 한쪽 팔까지 없는 슬픔을 떠안고 말이야. 그 전쟁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면 좀 좋냐고. 지금 아카데미생들에게 얼마나 본보기가 되겠어. 그리고 내 제자였던 이야기도 함께 해 준다면…….”
이야기가 너무 지루한 나머지 마지막 말을 놓쳐 버린 니아는 아리갈리 버도네의 진짜 속셈이 뭔지 깨닫지 못했다. 내 제자였다는 것이 포인트였으나, 대충 전공을 세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리바론 기사단과 함께 돌아오셨다고 들었는데요. 가장 최근에 나온 특집 기사만 해도, 함께 전쟁터를 누빈 분들이 여럿…….”
니아는 특집 기사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던 이름들을 떠올렸다. 생각나는 사람들은 모두 필릭스 쿠아란 곁에서 공을 세운 기사단의 단원들이었다. 니아는 그중 적당한 사람을 골랐다.
“기사단의 부단장님이 포말라드 웨이 경이셨나요? 꽤 유명하시던데요. 정 전쟁터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그분들한테도 연락을…….”
“어허! 그 사람은 우리 아카데미생이 아니잖아! 난 아카데미의 이사로서…….”
그는 과장되게 손짓하다 심드렁한 니아를 보더니 흥, 하고 다가와 조그맣게 속삭였다.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올해의 조교상, 자네한테 가도록 내 어찌저찌 잘 조절해 보지.”
“예?”
순간 불끈, 니아의 주먹이 울었다. 어차피 올해의 조교상을 받을 사람은 단언하건대 그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니아는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는 듯 버도네를 향해 으르렁댔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아리갈리 버도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은밀하게 속삭였다.
“필릭스 쿠아란이 자네를 좋아했다는 건 교수들도 알 만큼 유명했잖은가.”
“…….”
“첫사랑은 죽어서도 영원하다고. 첫사랑을 잊는 남자는 없어.”
“…….”
“첫사랑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은 남자도 없고!”
니아가 도끼눈을 뜬 채 아리갈리 버도네를 바라보자 그가 한참 뒤 입술을 뒤룩거렸다. 실은 비쭉거렸다는 표현이 맞겠으나, 입술마저 살이 통통하게 찐 나머지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 내가 뭐 실수했나?”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가벼워 니아의 속에서 차가운 불꽃이 들끓었다.
“첫사랑이라고요?”
“마, 맞잖아. 첫사랑. 그렇게 알고 있는데. 흠흠.”
그래, 니아 프레슬리는 필릭스 쿠아란의 첫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다시 보지 말자고 하시더군요.”
순간 아리갈리 버도네가 입을 다물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도 눈곱만 한 눈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 그, 둘이 안 좋게 끝난 거였나? 그렇다면 미안하게 된…….”
“시작한 적도 없어요.”
니아는 허허거리는 아리갈리 버도네를 잠시 쳐다보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그날 저녁, 니아는 50키오네를 주고 아몬드 케이크를 샀다. 정성을 넣어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볼까 고민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단 하나, 니아 프레슬리는 요리에 재능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 토하면 어떡해.”
레오 아리데오가 니아 프레슬리의 음식을 먹고 그날 저녁 속을 모두 게워 낸 것은 충격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당시 일찍 집으로 돌아온 니아 프레슬리는 큰마음 먹고 요리를 뚝딱뚝딱 시작했고, 레오 아리데오는 그 주위를 강아지처럼 맴돌았으나 니아는 음식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했다. 그녀 혼자 요리를 완성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니아 프레슬리는 한입 먹고 얼굴을 구기는 정도였으나, 자리에 앉을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던 레오 아리데오는 한입을 맛보고 두 번째 숟가락을 뜨는 순간부터 팔다리를 초조하게 떨기 시작했다.
차마 맛있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던 그는 결국 그날을 넘기지 못한 채 화장실로 직행했다.
‘내가 널 독살하려고 한 거야. 그렇지?’
비참한 표정을 지은 니아는 레오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레오는 그날따라 속이 좋지 않았다고 겨우겨우 답했으나 니아에겐 전혀 소용이 없었다. 창백한 그의 얼굴은 거의 시체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그리하여 니아는 오늘 완성된 케이크를 구입했다. 향긋한 아몬드 가루의 향이 올라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의 축하 파티를 위해 일부러 일찍 퇴근했다. 물론 정시를 훌쩍 넘긴 퇴근이었으나, 그가 황궁 기사단에서 돌아오기 전 시간이었다. 니아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케이크를 꺼내 옮겨 담고, 익숙한 발걸음을 기다렸다. 레오가 도착할 시간이 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불을 붙였다.
“기사단 첫 출근 축하해!”
니아는 멋쩍게 웃는 레오 아리데오 앞에 케이크를 내밀었다. 꽂아 놓은 초는 번쩍번쩍 불빛을 내었다.
“뭐 이런 걸…….”
“퍼시와 안나가 얼마나 기뻐했겠어? 무려 황궁 기사단의 단원이 되었는데!”
“견습 기사일 뿐인걸.”
겸손하게 말했지만 미소를 감추지 못한 레오 아리데오가 촛불을 불었다. 순식간에 연기가 집 안 곳곳으로 흩어졌다.
니아는 웃는 낯으로 케이크를 식탁에 내려놓고 박수를 보냈다. 소박한 축하 파티였으나, 두 사람에게는 충분히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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