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협박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들은 백색으로 멀어져 갔다. 시계가 없는 가게였으나(물론 가게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다면) 어쨌든 니아는 초침 소리를 들었다.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낼 이유는 없다. 니아는 본론부터 물었다.
“무슨 용건이에요.”
모르트 독테는 사납게 묻는 니아 프레슬리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가 이를 갈았다. 쇠와 쇠가 만나 부딪치는 소음을 들은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혹시라도 발견하지 못하면 직접 찾아가려고 했는데……. 아주 멍청하지는 않구나.”
“용건을 말하라고 했잖아요. 그딴 질 나쁜 짓을 저지른 이유가 뭐냐고.”
며칠 동안 니아의 집으로 와 문패를 비스듬히 기울여 놓고, 문패 뒷면에 칼집을 내놓고, 심지어 문에 구멍을 뚫어 엿보기까지. 차라리 대놓고 니아를 찾아와 협박을 할 것이지. 그의 방법은 살갗이 오그라들 만큼 소름 끼쳤다.
순간 모르트 독테가 눈을 희번득 뒤집으며 니아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공작이 죽었으니까……!”
반사적으로 니아는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울이면서 겨우 단검을 손에서 놓았다.
“공작이 죽었는데 그게 어째서. 왜 이제 와서 나한테…….”
“누가 날 죽이려 들더군……. 쫓기고 있어…….”
“쫓기고 있다고?”
니아는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안 봐도 뻔했다. 도덕성이 의심된다는 말조차도 과분할 만큼 그는 긴 시간 폭력성에 찌든 자였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또 어디선가 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래.”
“상관없어. 왜 날 협박했는지나 말해.”
“…….”
“말하라고!”
격앙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니아가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시끌벅적한 내부였다. 아무도 이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쿠렐 쿠아란이 죽었으니까. 더 이상 네 비밀을 지켜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공작이 죽었으니 더 이상 니아 프레슬리의 정체를 숨겨 줄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그는 공작에게서 대가를 받고 입을 다물고 있던 자였다.
니아는 하, 한숨을 내뱉었다. 공작이 죽자마자 모르트 독테가 이렇게 나올 걸 예상했어야 했는데. 모래를 삼킨 듯 입안이 썼다.
흥분을 거두기 위해 앞에 놓인 탁한 유리잔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거칠게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내 정체를 알리겠다고? 날 공작가로 데려온 건 당신이잖아. 공범이라고.”
“공범……?”
“그래, 공범. 당신이 내 심장을 파냈잖아.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입 다물고 있던 건 당신도 마찬가지야. 십 년을! 그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건데?”
스스로 말한 단어였으나 공범이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이 싫었다. 공범이라기엔 그들 사이,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경계가 너무도 명확했다.
모르트 독테는 꼽추처럼 굽은 등을 천천히 펴더니 또 킬킬댔다. 니아 프레슬리의 날 선 태도가 놀라우면서도 우습다는 듯이.
“시켜서 한 일인 것을……. 큭큭크……. 누가 괴물 따위의 말을 믿어 줄까……. 난 피해자야…….”
피해자?
니아의 눈이 빠르게 경멸로 물들었다.
모르트 독테는 습관처럼 그녀를 학대했다. 심장을 빼 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화풀이용 인형처럼 대했다. 괴물이라고 욕하고, 욕하고, 욕하다 못해 니아를 괴물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벌벌 떠는 바보 천치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의 정체를 까발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피해자라고?
“이 괴물…….”
“……닥쳐.”
“괴물!!”
“닥쳐!”
일그러진 눈은 모르트 독테의 창백한 입가에 닿았다.
니아는 더 이상 괴물이라는 말에 모든 것을 내주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늘진 골목에서 온몸을 말고 죽음을 바라다, 우연히 내밀어진 손길 하나를 구원이라 여기는 천치가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이제는 더 이상.
“크크큭……. 큭큭…….”
기분 나쁜 목소리가 고막을 뚫고 들어와 니아의 머리 전체를 지배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숨을 거세게 내쉬었다. 차분해져야 했고, 이성을 유지해야 했다.
순간 니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모르트 독테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혈색이 없었다. 해골처럼 비쩍 말라 광대가 다 튀어나온 얼굴, 깊숙이 파인 볼, 그리고 앙상해진 몸.
눈가에 짙게 파인 주름과 새빨갛게 혈관이 터진 눈은 그가 정상이 아님을 말해 주었다. 가래가 섞인 거친 호흡도 그 증거였다. 순간순간 그는 발작하듯 몸을 부르르 떨었고 산만했다.
마약 중독?
애초에 오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긴장한 나머지 첫눈에 알아채지 못했을 뿐.
머리가 천천히, 그러다가 점차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도 분명 공작에게서 많은 돈을 얻어 냈을 텐데, 그 돈을 다 탕진한 것이다. 분명 마약 때문에.
쫓기고 있는 이유는, 혹시나 사채 때문인가?
니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돈 때문이지. 돈이 필요한 거지?”
한심해 미치겠다는 말투였으나 모르트 독테는 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개처럼 헥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었다.
“네년이 얼마를 받았는지 알고 있어……. 다 내놓는다면……. 그럼 비밀은 보장해 주…… 컥.”
길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듯 모르트 독테는 여러 번 헐떡거렸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을까.
모르트 독테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겨우 이런 사람 주제에, 이따위 결말을 맞이할 거면서 그녀의 십 년을 그렇게 삼켜 버렸다고?
니아는 그의 협박이 두렵지 않았다.
왼쪽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그에게는 조금의 돈도 아까웠으나, 지금의 그에게 돈은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돈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될 수도 있다. 희망을 빙자한 절망.
“빨리 내놔…….”
마약을 살 만한 돈이 생기면 그는 오늘 순순히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또 돈이 떨어진 그가 니아를 찾아와 몇 번 이런 일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그는 곧 파멸에 이를 것이 분명해 보였다. 비밀을 말하겠다 협박하는 입도 자연히 자멸할 것이다.
물론 그를 쫓고 있다는 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래. 겨우 몇 달……. 몇 달 정도면 끝날 거야.’
그러나 니아가 주머니에서 달리온 몇 개를 꺼내려던 순간, 그가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마치 골목에서 니아를 덮치던 커다란 개처럼. 니아 또한 그 순간처럼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네가 내 말에 응하지 않으면……! 당장 필릭스 쿠아란……에게 가서…….”
“…….”
“그를 협박할 거다……!”
격렬히 말을 내지른 모르트 독테는 혓바닥을 내민 채 숨을 들이쉬었다. 끼익끼익, 오래된 바닥이 밟힌 듯 기묘한 숨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뭐라고?”
모르트 독테가 웃었다.
“협박하겠다고……!”
승리를 예감하는 그 표정 앞에서, 니아는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뭘로?”
승리를 예감하는 그 표정 앞에서, 니아는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뭘로?”
“필릭스 쿠아란한테…… 모든 비밀을 까발리고……. 케엑!”
그는 저주가 풀린 지 오래였으니 목숨을 담보로 협박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필릭스 쿠아란이 협박당할 건덕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니아는 왼쪽 주머니에서 손을 완전히 뺐다.
“안쓰럽군.”
솔직한 심정이 툭 하고 튀어 나갔다.
“협박해 봐. 내 정체를 알리겠다고?”
“…….”
“그 사람도 다 알아.”
탐욕에 찌든 눈빛을 한 채로 헥헥거리던 모르트 독테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니아를 바라보았다. 니아는 한심하다는 듯 덧붙였다.
“그러니까 넌, 그걸로 아무도 협박 못 해.”
“…….”
“도련님한테도, 다른 누구한테도 내 비밀을 말하겠다는 협박은 통하지 않아.”
그러나 말이 끝나자마자 모르트 독테는 또다시 쇳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니아가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미간을 찌푸리는 동안, 그의 웃음소리는 그들이 마주 앉은 작은 테이블 위를 무겁게 떠다녔다.
“역시나…… 넌 멍청해. 괴물의 피가, 어디 갈까.”
중얼거린 모르트 독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한순간에…… 필릭스 쿠아란을, 컥, 망가뜨릴 수, 있다…….”
“무슨 말이야.”
진심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나운 기색이 약해지는 것도 모르고 니아는 그에게 물었다. 실은 멱살을 잡고 흔들며 수작 부리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공작을 협박하던 것과…… 같은 것으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도련님의 저주는 끝났어. 목숨을 담보로 협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야. 지금 당신은 제정신도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 그냥 이 돈 받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지만 점차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는 저 역겨운 미소가 불안했다.
모르트 독테는 다시 입을 열었다. 쩍하고 크게 벌어진 모양이 꼭 오늘의 달 모양 같았다. 지나치게 꽉 들어찬 채 집어삼키려는 모습이.
“지금 영웅으로 추앙받는 자가…… 컥, 괴물의 심장을…… 받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떨까.”
“…….”
“둘 다 괴물.”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내용에 니아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이런 식으로 쿠렐 쿠아란 공작도 협박해 온 걸까? 처음에는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그다음은 그의 아들의 몰락을 담보로?
괴물의 심장이라니.
니아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가 니아의 심장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도 괴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줄은.
“내게서 돈을 받아 내지 못하면 도련님한테 가서, 쿠아란 공작에게 했던 것처럼 협박을 하겠다는 말이지. 괴물의 심장을 받았다는 것으로. 참 비열하고도 끔찍한 발상이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목소리 끝이 떨렸다.
니아는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그녀의 정체를 알면 어떻게 대할지는 수도 없이 생각했으나, 니아의 심장을 가진 필릭스 쿠아란은 어떤 대접을 받을지.
그는 영웅인데, 괴물의 심장을 가졌다는 것이 그렇게나 큰 문제일까?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사람도 아닌데…….
그러다 니아는 문득 자신이 손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르트 독테가 그것을 깨닫고 더욱 자신만만해하는 것도.
“필릭스 쿠아란이…… 이미 비밀을 알고…… 있다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컥, 커억…… 일이 더 쉽겠군…….”
니아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등 뒤에서는 조용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필릭스 쿠아란이 그녀와 함께 단상 위의 먹잇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돈을…… 내놔!!”
모르트 독테가 갑작스럽게 발작했다.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진 것처럼.
그 외침에 니아는 외려 눈을 감았다.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결코 그에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다.
헐떡거리는 개의 소리를 멀리하고, 마음의 소리에 집중했다.
‘어차피 아쉬운 건 모르트 독테야. 저 사람은 마약이 필요해.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게다가 쫓기고 있어. 하지만 내가 아니라도 도련님한테 가서 어떻게든 돈을 받아 낼 텐데……. 잠깐만.’
왜 그는 필릭스 쿠아란이 아니라 니아 프레슬리에게 먼저 왔지?
“돈, 돈…….”
다시 눈을 뜨니, 눈동자를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자신의 손등을 미친 듯이 긁는 모르트 독테가 보였다. 그의 손등에 순식간에 작은 핏물들이 맺혔다. 극도로 불안하다는 뜻이었다.
니아는 손을 떨지언정 저 늙은 남자 앞에서 눈알을 뒤집어 까거나 자해를 하지 않는다. 그게 지금 두 사람의 차이였다.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결국 아쉬운 것은 모르트 독테, 이 버러지다.
“돈?”
니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기다렸다는 듯 모르트 독테가 생채기가 난 손을 내밀었다. 마치 주인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개처럼.
니아는 왼쪽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그래, 줄게.”
욕망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동자를 향해 니아는 에오스 한 닢을 던졌다. 공작가 사용인들의 몇 달 월급에 준하는 금액이었으나 그의 눈에는 차지 않을 게 뻔했다. 이 정도 돈을 받자고 니아를 협박한 것은 아니었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그가 짐승처럼 이를 드러냈다. 그를 무시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으르렁댔다.
“싫어?”
주었던 동전을 다시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자 피 묻은 그의 손이 재빨리 저지했다.
“컥, 컥…… 더. 더 많이…….”
니아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저었다.
“한 달에 한 번.”
한 번씩, 에오스 한 닢. 그 이상은 안 돼.
니아는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단번에 입 모양을 읽은 모르트 독테는 분개했다.
“감히……! 누구를 협박하려 들어……!”
그는 알아듣기 힘든 음성으로, 가래와 쇳소리를 섞어 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게 될 거야. 십사 년 동안 공작의 피를 빨아먹은 나야. 겨우 너 따위 계집애는 내 상대가 아니야……. 마지막 말은 너 따위 괴물은 죽인 채 필릭스 쿠아란에게 가겠다는.
“죽여 버릴 거라고, 네년을…….”
니아 프레슬리는 웃는 낯짝으로 몸을 굽힌 채 속삭였다.
바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죽여? 어떻게 죽여?”
순간 끊임없이 이어지던 협박의 언사가 멈추었다. 스스로의 실수를 알아챈 것이다.
“난 안 죽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여 봤으니 알 거 아니야.”
니아는 그의 당황한 표정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그러다 돌처럼 굳은 그의 어깨를 돈을 던진 왼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모르트 독테의 얼굴이, 눈알 여기저기 터진 핏줄과 비슷한 색채로 붉어졌다.
“당장…… 이 자리에서……! 네 정체를…….”
“정체를 뭐, 다 말한다고?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마약쟁이의 헛소리 따위.”
니아는 씩 웃었다. 그러자 모르트 독테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눈알을 돌리다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물잔이 흔들렸다. 그러나 니아 프레슬리를 흔들지는 못했다.
“상처를 내서, 컼!”
그가 니아 프레슬리에게 상흔을 내어 정체를 까발리겠다는 협박을 했다.
“칼로 찌르기라도 하게?”
니아는 모르트 독테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품 안으로 손을 뻗는 모르트 독테의 행동은 무척 굼떴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행동들은 모두 정신 사나웠으나, 정작 제대로 된 몸짓은 둔탁하다 못해 어설펐다.
그는 그렇게, 아마 비장의 무기로 가져왔을 칼 하나 꺼내지 못했다. 니아가 그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당신만 협박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니아가 그의 손을 턱 하고 잡아 테이블에 고정시켰다.
물론 모르트 독테의 악력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곤 하나 니아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니아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니, 충분한 힘이 있었다.
니아는 오른손의 단도를 그의 손목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사람은 여길 가르면 죽는다던데. 나와는 달리.”
니아는 허공에서 싹, 하고 그의 손목 위를 날카롭게 갈라 보였다. 니아의 손끝 아래 있는 모르트 독테의 손목에서 맥박이 팍팍 튀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모르트 독테는 턱으로 침을 질질 흘리다가 악에 받쳐 입을 쩍 하니 벌렸다. 아까처럼. 아마도 니아 프레슬리가 괴물이라며 떠들기라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것도 소용없어.”
“…….”
“한마디라도 말했다간, 그게 목구멍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식도를 단숨에 통과해 네 위장을 헤집을 거고, 발끝까지 파먹은 다음에서야 멈출 거야. 그렇게 네가 죽을 거야.”
그게 너란 인간의 끝일 거야.
모르트 독테가 숨을 가누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코로 숨 쉬는 모양새는 보는 이도 힘들게 만들었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처럼. 그러나 역시나 입술을 벌리지 못했다.
니아 프레슬리의 작은 장난 탓으로.
아까 전, 니아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작은 씨앗 하나를 모르트 독테의 옷깃에 떨어뜨렸다. 지금 그것은 뱀처럼 스멀스멀 피어나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입가에서 울렁거리고 있었다.
민간인에게 함부로 마법을 써서는 안 되지만, 그 법령은 마정석 없이도 마법이 가능한 니아를 묶어 둘 수는 없었다. 마법의 사용을 증명할 길이 없으니. 특히나 이런 열악한 곳에서의 이런 못된 마법은.
니아는 단검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어차피 그는 움직일 수 없음을 알고 있ᅌᅳ니까.
무릎을 두어 번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음습한 공간의 매캐한 공기는 이제 사양이었고, 눈앞의 인간쓰레기는 더더욱 사양이었다.
“넌 앞으로도 영원히, 아무도 협박하지 못해. 나 대신 필릭스 도련님한테 가겠다고? 웃기지 마.”
“…….”
“넌 나밖에 없으니까 날 찾아온 거야. 애초에 나보다 도련님이 더 돈이 많고 줄 수 있는 것도 많지. 근데도 나였어.”
“…….”
“모르트 독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한 거야. 니아 프레슬리는 협박이 통할 사람, 필릭스 쿠아란은 협박이 통하지 않을 사람.”
“윽……!”
“다른 말로 해 볼까? 난 당신을 못 죽일 사람, 필릭스 쿠아란은 단숨에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 너 같은 인간 하나 죽이는 거 일도 아닌. 그게 무서웠던 거면서. 아니, 어쩌면 쫓고 있는 사람이 필릭스 쿠아란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
니아는 덧붙였다. 확신은 없었으나 모르트 독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니아는 검지로 모르트 독테 앞에 놓인 에오스 한 닢을 톡톡 두드렸다.
“마법은 조금 있으면 풀릴 거야. 굳이 풀려고 애썼다간 마법이 저항을 일으킬지도 모르지. 그럼 어쩔 수 없이 죽게 될지도 모르고.”
니아는 학생을 가르치듯 하나하나 천천히 일러 주었다. 그럴수록 모르트 독테의 눈빛이 거칠어졌다.
“이 돈으로 오늘 술도 사 먹고, 마약도 사 먹고, 모쪼록 즐겁게 보내. 그리고 우린 한 달 뒤에 보자고.”
니아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머릿속에서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자꾸만 입이 움직였다.
그를 더 자극해서 좋을 것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번 생각하니 다른 결론에 다다랐다.
나쁠 건 또 뭐지?
그래서 니아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약속 장소는 다음 달 해가 가장 밝게 뜨는 날, 황궁 앞.”
“으으……!”
모르트 독테는 몸을 흔들었다. 니아는 피어난 줄기를 그의 코와 입가에 더욱 가까이 집어넣었다. 그에겐 애석한 일이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올 수 있나 보자고.”
쫓기고 있는 자, 불법인 마약을 복용한 자. 누가 봐도 더 불안한 처지는 모르트 독테였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웅얼거림을 밖으로 뱉었다. 불분명한 발음이었으나 니아는 정확히 들었다.
“괴물…….”
니아는 기다렸다는 듯 아주 해맑게 웃었다. 그의 손길이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보다 더 환하게.
“그렇게 부르지 마. 다음 달에 돈 주기 싫어질지도 모르잖아? 잘 보여야지, 착하게.”
이제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타인의 말은 상처로 다가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