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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달라진 세상 (35/75)

5. 달라진 세상

길리 포바즈는 깨어난 니아 프레슬리를 두고 온 방 안을 서성거리는 중이었다. 그는 초조하게 이마를 짚다가 연신 이건 아니라는 말을 되뇌었다.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세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니아 프레슬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길리 포바즈는 다급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딱 열두 밤 전에 도련님이 널 데려오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요?”

니아는 분명 사람들이 오지 못할 만큼 동떨어진 곳에 홀로 있었다. 게다가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였고.

배를 만져 보니 지금은 상처가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라…… 니아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니아 프레슬리는 지금쯤 산에서 깨어났어야 했다. 공작가가 아닌 산에서.

“몇 번을 말해! 도련님이 새벽에 널 안고 돌아오셨다니까.”

“말이 안 돼요.”

단호한 니아 프레슬리의 음성에 길리 포바즈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도련님의 망토에 네가 싸여서 왔다니까.”

“망토요?”

“그래! 망토! 난 처음에 짐승을 잡아 오신 줄 알았어. 망토로 온몸을 덮고 있길래.”

“하지만…….”

그럼 그가 니아 프레슬리를 다 봤다는 것이 아닌가? 니아 프레슬리의 상처가 아무는 것을…….

“왜 망토로 절 가리고 오셨을까요?”

모르는 척 물었다. 그러나 니아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다 알면서도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애써 되물은 것이다.

니아 프레슬리의 온몸을 망토로 감싸서 올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지 않기 위해서…….

그것은 필릭스 쿠아란이 니아 프레슬리의 정체를 다 알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몸이 순식간에 아물고, 죽지도 않는 괴이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근데 어떻게…….’

그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한 걸음 한 걸음이 실은 그가 진실로 다가오도록 이끈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른다니까! 너 내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거야? 지금 중요한 게 그거냐고!”

언제나 침착해 보였던 길리 포바즈는 흥분한 채 니아를 닦달했다. 그러나 원망 섞인 그 목소리는 도무지 니아에게 가 닿지 않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에 있어요?”

니아 프레슬리가 정체를, 비밀을 다 들키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니아는 멍하니 답했다.

“망토에 피가 범벅이었다고!!”

“아, 그건…….”

니아는 자신의 피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몸을 가지고서 그런 말을 해 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해서도 안 되니까.

니아는 피딱지 하나 없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옷도 깔끔한 새 옷이었다. 그 말은, 누군가 니아의 피를 닦아 주고 옷을 입혔다는 뜻이었다.

필릭스 쿠아란일까? 그가 정말 다 알고서 그런 것일까?

막상 제일 두려워하던 상황이 닥치니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아직까지 너무 멍하기만 했다.

“괜찮아요. 그 피는 아마 동물의 것이었을 거예요.”

니아는 멍한 표정으로 침착함을 가장했다. 그러자 길리 포바즈는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렸다.

“너 정말…… 내 말을 듣지 않고 있구나. 네가 아무리 오랜 시간 정신을 잃고 있었다고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뭐가요?”

“넌 상처 하나 없잖아!!”

평온하기만 해 보이는 니아 프레슬리를 보며 길리 포바즈가 가슴을 쳤다.

“상처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니아는 그녀에겐 너무나 당연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다음으로 길리가 한 말은 정말이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 피는 도련님의 피였다고! 도련님의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 몇 번을 말해!”

“……네?”

니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든데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짐승의 이빨인지 뭔지, 어깨가 완전히 망가져서 돌아오셨어. 게다가!”

“게다가…… 뭐요?”

“산에서부터 널 안고 오시는 바람에 이제 팔이…….”

“팔이?”

니아는 몽롱하게 그의 말을 따라 했다. 그의 팔이 어쨌다는 말이지?

“한쪽 팔을 못 쓰시게 되었다.”

니아는 여전히 몽롱했다. 아니, 아득하다고 해야 하나.

“……언제까지요?”

“영원히.”

그러나 이번에 니아는 길리 포바즈의 말을 따라 할 수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필릭스 쿠아란이 한쪽 팔을 못 쓰게 되었다고? 영원히? 말이 되지 않았다.

니아는 꿈에서 본 그의 상처를 떠올렸다. 분명 그는 꿈에서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꿈이니까, 꿈이니까 어깨의 상처를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니아는 정말로 그가 다쳤을 줄은 몰랐다.

이것도 꿈은 아닐까? 필릭스 쿠아란이 니아 프레슬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가 다친 것도 전부.

니아는 차라리 이것이 세 번째 꿈이었으면 싶었다. 차가운 공기가 현실을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악몽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 구멍이 나 있었어요?”

“오른팔에, 커다랗게.”

니아는 눈을 끔뻑였다. 너무 빠르게 끔뻑이는 바람에 눈이 다 뻑뻑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도련님은…….”

“…….”

“오른손잡이잖아요.”

그는 오른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기사였다. 그런데 오른팔을 영영 못 쓰게 되었다고?

“널 구하다가 그런 게 맞지?”

길리 포바즈가 니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니아는 흔들렸다. 몸이, 마음이, 심장이…….

“몰라요…….”

“네가 왜 몰라! 널 데리고 오시느라 저 꼴이 됐는데! 널 안고 오지만 않으셨어도, 치료만 제때 받으셨어도 그렇게 되지는…….”

니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니아 때문에, 필릭스 쿠아란이 다친다?

“난 모른단 말이에요…….”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서 직접 그의 상처를 확인하고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녀를 괴물이라고 불러도 좋으니 우선은 그의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다…….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눈빛을 해도, 속았다고 계약을 파기하고 작위를 빼앗고 모든 걸 가져간 채 니아를 쫓아낸다고 해도, 지금 그녀에겐 그와의 대화가 더 간절했다.

정말 그녀를 구하려다가 다친 걸까?

그렇다면 너무나…… 너무나…….

“도련님을 만나야겠어요. 만나게 해 주세요. 혹시 절…… 안 보고 싶다고 하시던가요? 그래도 집사님, 도련님을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시면…….”

길리 포바즈는 질색하는 얼굴로 니아에게서 떨어졌다.

“너 정말이지…….”

“…….”

“내 말은 듣고 있지를 않구나.”

그의 말 하나하나가 니아의 귀에 박히고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지긋지긋하다는 그의 눈빛을 보니, 이번엔 또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올까 두려웠다.

“또…… 무슨 일이 있어요?”

니아는 저려 오는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 뱉었다.

그러자 길리 포바즈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도련님은, 전쟁터로 떠나셨다.”

“……네?”

“영영 못 쓰게 된 팔을 가지고, 그라나다 전투로 향하셨다고.”

“전쟁터라니요?”

이번에야말로 니아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라나다 전투. 갈리아 제국과의 전쟁터를 향해 떠나셨다고.”

“하지만…… 다쳤다면서요. 왜 전쟁터에 나가요? 혹시 제국에 전쟁이 터졌나요?”

길리 포바즈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제국은 언제나 크고 작은 전쟁을 해 왔어. 그라나다 전투는 삼 년 전부터 국경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다.”

“그럼 왜 다친 사람이 떠난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니아는 소리를 쳤다.

방금까지 넋이 나간 얼굴이더니 이제는 따지듯 소리를 치는 니아 프레슬리를 보고 길리 포바즈는 잡아먹을 듯 눈을 치켜세웠다.

“묻고 싶은 건 이쪽이야. 내게 설명을 해 줘야 할 건 다름 아닌 너, 니아 프레슬리다.”

니아는 무엇 하나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의 말도 겨우겨우 받아들이고 있는 니아에게 그는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했다.

“정말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난 그때 이후에 도련님을 본 적이 없어요…….”

“그때라니?”

니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길리 포바즈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건…….”

그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등을 보인 게 마지막이었다. 니아는 자신을 버리는 거냐고 묻던 필릭스 쿠아란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던 니아 프레슬리도.

정말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니.

“……사냥 대회가 시작할 즈음이요.”

니아는 더듬더듬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빈틈이 많은 설명이었다.

“저는, 사냥 대회에서 도련님과 헤어지고 나서, 비를 맞으면서…….”

“…….”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눈을 떴는데, 거기엔, 어…… 피르가 있었고…….”

“피르?”

길리 포바즈가 생소한 단어에 반응했다.

“주로 땅속에 사는 동물이에요. 커다란 뿔이 달려 있고, 물을 좋아하고, 또 성질이 나쁘고, 또…….”

“됐으니까 계속 설명해. 그 짐승 얘긴 그만하고.”

“그 동물을 만나고, 기절했어요…….”

니아는 비밀을 들키지 않는 선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을 했다.

“계속 기절해 있었던 거야? 도련님이 다치시고, 널 안고 온 건 전혀 기억에 없고?”

“네.”

짧게 답한 니아는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꿈에서의 일만 생각날 뿐 그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럼 아마도…… 기절한 널 지키려고 피르와 싸우다 그렇게 되신 것 같은데.”

“전쟁터에 왜 가셨는지는…….”

니아는 제일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그에게 물었다. 길리 포바즈는 그런 니아를 천치 보듯 답답해했다.

“분명 나도 모른다고 했을 텐데? 만신창이가 된 팔로 왜 전투에 가셨는지 나도 모른다고 분명히 말했어!”

“많이 위험하신 거 아니에요? 전쟁터니까, 또 다칠 수도…….”

“정말이지 오늘 넌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군. 넌 지금 멍청한 질문들만 내게 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건 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처럼 모든 계획이 무너져 내린 적은 없었다. 니아가 예상했던 최악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으스러지고 있었다.

“전쟁터니까 당연히 위험해. 그리고 도련님께서는 오른팔을 못 쓰게 되셨으니 더욱 위험하시겠지.”

“어, 언제 돌아오신대요?”

“말씀하지 않으셨다.”

“…….”

“잠시 나도 일단 진정이란 걸 하자.”

길리 포바즈는 방 안을 또 한 번 정신없이 돌더니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최근에 갈리아 제국이 그라나다 전투에 지원군을 많이 투입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 에슬란 제국에서도 급히 지원군들을 모집했지.”

“…….”

“어제가 그 마지막 날이었고, 도련님은 붕대 하나 매고서 군에 지원을 하셨다. 바로 차출되어 떠나셨고.”

“…….”

“난 네가 깨어나면 모든 실마리가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야 더 알 수가 없군.”

니아도 그가 왜 떠났는지, 왜 전쟁터로 가야 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것들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다친 팔을 이끌고 전쟁터에 가야 할 이유는 정말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니아를 쫓아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괴물과 한집에서 살 수는 없다고 매섭게 발로 차도 이보다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괴물인 줄도 모르고 구하려다 팔을 잃었다고 원망에 원망을 보태도 이해했을 것이다…….

왜 니아가 아닌 그가 이 집을 떠난 것일까?

“제게…… 남기신 말 같은 건 없나요? 아니, 전쟁터에서 꼭 돌아오겠다는 말 같은 거라도…….”

“아, 그러고 보니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했군. 나도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야.”

필릭스 쿠아란이 니아에게 남긴 말이 있는 듯했다. 니아는 메마른 목구멍을 침으로 축였다.

“어떤…….”

“걱정 말라고 하시더구나.”

“…….”

“자기 팔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여자한테 말이지. 뭐, 여기에 무슨 실마리라도 있나?”

길리 포바즈는 이제 니아 프레슬리에게서 무언가를 얻는 것은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필릭스 쿠아란이 남긴 말도 그저 안부 인사 같은 간단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걱정 말라고.’

반면, 니아 프레슬리는 그 말을 해석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 말의 뜻이, 숨은 의미가 니아에게는 너무도 절실했다.

설령 정말 안부 인사에 지나지 않는 작디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니아는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창백한 얼굴로 길리 포바즈에게 명령했다.

“당장 나가세요. 생각이란 걸 좀 해야겠으니.”

이곳은 공작가, 필릭스 쿠아란의 방이었다.

바야흐로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계절과 계절 사이, 그 이질적인 바람의 향을 맡고 있는 사람은 니아 프레슬리였다.

그리고 니아 프레슬리는 열두 밤이 지나 깨어난 상태였고,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침 햇살처럼 포근한 재질의 옷은 비와 피에 젖은 더러운 것이 아닌 새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차마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어 니아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왜?

필릭스 쿠아란은 니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상처를 덮어 주고, 다른 사람들 몰래 옷을 갈아입혀 준 걸로 봐서는 확실했다.

그렇다면 필릭스 쿠아란은 이것도 알게 되었을까? 십 년간 니아가 그의 저주를 풀어 주었다는 것.

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를 거야. 말해 줄 사람이 여기 없잖아.”

공작은 이곳에 없다. 그리고 그의 심복인 모르트 독테 또한 감히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내가 괴물인 것만 알게 되고,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야? 십 년간의 비밀 전부를.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그렇게…….”

십 년간 니아가 그를 위해 저주를 열심히 풀었다는 것은 모르고, 괴물인 것만 알고, 그런 니아 프레슬리를 구하기 위해 다치고, 산에서 데려오기 위해 팔을 잃었다는 말이었다.

니아가 그에게 해 준 것은 까맣게 모르고서, 마음도 몸도 모두 다쳐서 전쟁터로 향했다는 것이었다.

죄책감이 숨통을 조여 왔다.

“기사잖아. 천재라고 불리는 기사잖아. 내가 망친 거야.”

다들 그를 검의 천재라고 불렀고, 니아도 그것을 직접 목도했다. 한 손으로 검을 들고 춤추듯 가볍게 검술을 선보이는 그가 얼마나 빛나 보였던가. 검을 쓰지 않는 니아조차 그 모습을 보고 허탈함을 느꼈을 정도로 필릭스는 뛰어났다.

‘나 때문에…….’

니아는 일그러진 눈을 애써 감았다. 머리로부터 시작된 뭉근한 고통이 온몸에 퍼져 나갔다.

니아와는 달리 그의 상처는 되돌릴 수 없다. 그 사실이 뇌리에 박혔다.

‘보고 싶어. 만나서 말을 하고 싶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괜찮으니까…….’

니아는 차갑게만 느껴지는 공기를 막아 내려는 듯 두 팔로 스스로를 감쌌다. 그러나 그런 작은 행동으로는 싸늘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떠난 거야. 걱정 말라는 말만 남기고…….”

혼란스러운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걱정하지 말라는 건, 팔을 걱정하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전쟁터로 떠나는 걸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둘 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날 구하다 다친 사람인데.’

어쩌면 니아 프레슬리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에게 니아 프레슬리가 괴물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는 의미일지도.

‘아니면 설마…….’

입술을 쓸던 니아 프레슬리의 손길이 멈췄다.

혹시라도 필릭스가 말한 뜻이, 혹시라도…….

‘널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걱정 마.’

완성된 문장을 떠올리니 그야말로 숨이 벅차올랐다.

앓던 이, 늘상 그녀를 괴롭히던 악몽, 불안, 불편, 눈엣가시……. 그 가정 한 번으로 그 모든 걱정들이 증발하는 것 같았다.

해방감, 그리고 떨리는 심장.

만약 필릭스 쿠아란이 니아를 괴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비밀을 다 알고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나 금세 다시 떠올랐다.

‘도련님은, 전쟁터로 떠나셨다.’

그는 갔다.

잠시 맛본 상상 속 행복은 망치질을 당한 유리창처럼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걱정 말라는 그 말은, 니아의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니아 프레슬리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의 팔을 영원히 망가뜨린 니아 프레슬리를 이제는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화를 해야 해. 만나야 해. 보고 싶어. 봐야 해.’

그의 남긴 말은 너무 모호했다. 그 모호함이 니아 프레슬리에게는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워 숨이 막혔다. 그의 말은 절망도 희망도 품고 있기에 놓을 수조차 없었다.

뚜렷한 것은 오직 단 하나.

그의 행동이었다.

전쟁. 그는 전쟁을 찾아 떠났다.

여기, 니아의 마음속에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남겨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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