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 가짜 생일 파티 (29/75)

14. 가짜 생일 파티

생일 파티.

니아는 더 이상 그 말이 신나지 않았다.

‘그냥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카레나 비비고르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의 설렘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들로만 채워진 후였다.

니아 프레슬리의 생일은 그랬다. 왜냐? 가짜 생일이자 가짜 생일 파티였으니까.

솔직하게, 지금 이 상황이 꿈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다 없던 일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필릭스 쿠아란은 생일 파티를 취소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취소해’ 주지 않았다.

공작가의 명예를 걸고 한 맹세의 무게를 네가 아느냐고 말했을 때 니아는 할 말을 잃어버렸고, 오히려 그의 맹세를 깨는 일이 더 힘겨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생일 파티 준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 니아 프레슬리는 어땠냐면…….

“자, 중급 천문학 다섯 권 세트야. 심심한 축하의 말을 전하며, 내가 고급 천문학 세트를 이미 완독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생일날에 공작가 근처에는 발도 들이지 않을 거라 단언한 시저 카르만이 건넨 선물도.

“니아, 생일 파티를 연다고 들었는데…… 나도 가도 될까? 정식으로 초대장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처음으로 니아에게 말을 걸어 오는 아카데미생도.

“예산안을 다시 짜야겠어. 길리 포바즈! 내가 반드시, 차는 시눅스 제국에서 들여오라고 했잖아?”

그의 자산 관리인의 할 일을 빼앗는 동시에, 집사인 길리 포바즈를 갈구는 데 열중한 필릭스 쿠아란도.

모두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벌써 두 시간째 서류만 들여다보고 계신데요, 도련님. 공작가의 자산 관리인이자 투자 대리인이신 아르곤 헬리오즈 씨가 세 번이나, 본인이 해고되었냐고 물으셨다는 걸 아셔야 할 듯합니다.”

“해고는 기각하지. 하지만 한 번만 더 내게 묻는다면, 그만큼 간절한 것으로 알고 그 의견 받아들이겠다고 전해.”

“들으셨죠, 헬리오즈 씨? 한 번 더 물으시면 해고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이 예산안은 공작가의 티파티에 할당된 비용을 훨씬 넘어선…….”

공작가의 자산 관리인 아르곤 헬리오즈가 개미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축 내려간 어깨가 그의 입장을 대신 드러내 주었다.

“해고된 아르곤 헬리오즈 씨에게 전해. 부족하면 내게 상속된 재산에서 까라고!”

“헉! 아니요, 그게 아니고 전…….”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헬리오즈를 길리 포바즈가 천천히 구석진 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필릭스 쿠아란에게서 충분히 멀어진 후에,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헬리오즈 씨. 말은 저렇게 하셔도 정말 해고할 생각은 없으실 테니까 말이에요.”

“저, 정말요?”

아르곤 헬리오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이 뒷감당해야 할 일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다시 울상을 지었다.

길리 포바즈가 축 처진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언제나 그의 도련님이 벌인 일에, 뒷수습은 그의 몫임을 떠올리며.

“네. 아마 다음 달…… 첫째 날이 지나서 오시면 완벽하게 복귀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예산안을 어디서 메꿀지 미리 생각해 두시는 것도 좋겠네요.”

“하지만 도련님께서 너무 과한 예산을 측정…….”

“본인에게 상속될 재산에서 까라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최근에 외조부님께 재산을 조금 상속받으신 바 있으시죠. 거기서 까시면 되겠네요.”

길리 포바즈의 말처럼, 필릭스는 심각하게 서재에 틀어박혀 예산안을 짜 댔다. 그가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이미 아카데미 조기 졸업 내지는 석사 학위 정도는 가볍게 땄을 수준이었다.

“……니아. 오늘도 뭐 마려운 강아지 꼴이군.”

겨우 헬리오즈를 안심시키는 데 성공한 길리 포바즈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니아에게 다가갔다. 복도의 코너에 치맛자락이 살짝 튀어나온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들켰다는 것을 깨달은 니아가 길리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달음박질했다. 그러나 도망친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필릭스 쿠아란의 서재였다.

‘또 몇 시간째 나오고 계시지를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이 커졌기에, 니아는 주인을 따라다니는 애완동물처럼 필릭스 쿠아란 주위를 맴도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다 용기를 낸 니아가 필릭스에게 다가가면, 그는 산처럼 쌓여 있는 서류를 집어 던지고는 니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마치 지금처럼.

“니아, 공부한다더니.”

그렇게 보고 싶었냐고 장난스레 덧붙이는 필릭스 쿠아란을 향해 니아는 고개를 젓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 니아보다 훨씬 더 즐거워 보였고, 살맛 나 보였다.

“밖으로 나가자.”

“…….”

“맛있는 걸 좀 먹을까?”

다음 달이 가까워 올수록 마음이 텁텁해져 가는 그녀와는 정반대인 그의 모습에 니아는 울고 싶어졌다. 마치 어떤 공식이 존재하는 양, 그의 기분이 고조될수록 니아의 기분은 반비례 그래프처럼 저조해져 갔다.

“최대한 소박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만 좀 제 양심을 건드리시는 건 어떤가요? 슬쩍 물어보면…….

“황실의 권위를 넘본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조절할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대답에도 니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양심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니아는 필릭스가 건네주는 크림을 빵에 덧바르다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저는, 실은 조금, 아니 사실 많이…… 부담스러워요. 이런 생일 파티 말이에요. 초대받은 사람들도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 같고…….”

그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니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필릭스의 표정을 살폈다.

“알아.”

그런데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후작가에서 니아를 데리고 나올 때 지었던 것처럼.

필릭스는 드르륵, 의자를 끌고 일어나 니아의 곁으로 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놀란 니아가 꼼지락거리며 손을 빼내려고 할 때, 그는 니아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니아에게 그의 무게감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네가 피곤한 일은 없게 할 테니까. 걱정 말고.”

“…….”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니아는 그의 말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필릭스 쿠아란은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니아의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는지 터득한 것 같았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는데, 거기다가 더 할 말이 뭐가 있을까. 그저 가만히 눈을 감는 것 말고는.

드디어 생일 파티 당일이었다.

공작가 저택 전체에 활기찬 기색이 떠돌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단장을 하던 니아는 창을 통해서 햇살이 분해되듯 내려앉자 양해를 구하고 단장을 멈췄다. 그리고 발코니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카레나 아가씨의 생일 파티 때 말한 사치는 사치도 아니었구나.’

공작가의 정원에 준비된 니아 프레슬리의 생일 파티는 마치 거대한 연회 같았다. 제대로 된 연회에 참석한 적이 없는 니아도 카레나 비비고르의 생일 파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 무심결에 바라보니, 연회복을 입은 악단이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의 합을 맞춰 보고 있었다.

‘저게…… 몇 명이야.’

연주자들의 수는 니아의 손가락과 발가락의 합으로는 댈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이게 내 생일 파티라고?’

하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아침을 연 공작가는 이제 하나둘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오후가 되니 기다렸다는 듯 손님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북적거리는 공작가, 화려한 사람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니아 프레슬리.

니아는 지금 멈추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할 때까지 이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 같아 애써 몸을 돌렸다.

“주인공은…… 오늘 같은 날 어떻게 해?”

니아는 다시 그녀의 머리를 열심히 만져 주는 에보니에게 물었다.

에보니는 니아의 머리를 촘촘히 모아 정성스럽게 땋아 올렸고, 남은 머리칼을 열심히 빗질하는 중이었다.

“이걸 할까, 아니면 저걸…….”

한껏 집중한 에보니는 듣지 못했는지 머리 장신구 두 가지를 놓고 중얼거렸다.

머리 장식 외에도 화장대 위에는 에보니 레인즈의 고민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녀는 선택하지 못한 아이들을 애처로이 바라보았다.

그녀가 장신구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을 무렵, 참지 못한 니아가 다시 물었다.

“에보니? 내 말 들었어?”

니아는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그녀가 빨리 답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티파티가 아니라 연회 수준이었으니까.

“에보니 넌 공작가에서 열리는 파티를 매년 봐 왔잖아. 난…… 몸이 좋지 않아 파티를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이럴 때 도련님께서는 보통 어떻게 행동하셨어?”

한참을 대답하지 않던 에보니는 자신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니아에게서 멀어지며 입을 열었다.

“음, 글쎄. 공작가에서 파티를 하는 날이면 왠지 도련님은 하인들에게 더 관심이 많아지셨던 것 같아.”

“응?”

예상치 못한 답에 니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인들보다는 손님들에게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찌나 하인들이 있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시는지. 누굴 찾느냐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시고.”

“난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닌데…….”

“그럼?”

“조금이라도 따라 해 볼까 했어. 생일 파티의 주인공이 되는 건 처음이니까. 특히나 이런 큰 파티.”

직접 뱉은 주인공이라는 단어가 어색했다. 니아가 잡념을 털어 내려는 듯 고개를 돌리자, 에보니는 조금의 움직임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다시 니아에게로 가까이 온 그녀는 아프도록 강하게 힘을 주어 고정핀을 추가했다.

“움, 직, 이, 지, 마.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중이잖아.”

입을 합 하고 다문 니아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다, 경악에 물든 에보니의 눈을 보고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이런, 또 움직이고 말았구나!

“미안해!”

반사적으로 사과의 말이 나갔다. 평소엔 순하디순한 에보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엄격하고 진지해졌으니까.

“자, 다 됐어. 이제 내려가 보자고, 생일 파티의 주인공님!”

눈을 한번 흘기고, 공예 조각을 다듬듯 섬세한 손길로 마무리를 한 에보니 레인즈가 손뼉을 짝 쳤다.

낯설게만 보이는 거울 속의 스스로를 바라보며, 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다시 다짐하며.

‘오늘을 잘 넘겨야 해.’

니아는 발에 꼭 들어맞는 구두를 신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움직일 때마다 청록색 드레스의 끝자락에서 사부작 소리가 났다.

“내 정신 좀 봐.”

그러나 곧 니아는 ‘이걸 까먹었네!’ 하는 에보니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에보니, 항상 마무리가 어설프다니까.’

그러나 그녀가 빠트린 것이 무엇인지 눈치챘을 때, 니아는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니아! 이 말을 까먹을 뻔했어.”

“…….”

“여태껏 축하해 주지 못한 거 미안하고. 오늘이 네 생일인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매번 축하해 줄 거야. 행복한 하루 보내길 바라!”

돌아본 그곳에는, 마음이란 것이 오후의 햇살보다 따듯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 응접실을 건넌 뒤 후원 쪽을 향해 전진한 니아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까 확인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공작가의 정원을 채우고 있었다. 지난달 몇 번이고 상상했지만, 그녀의 상상을 뛰어넘는 많은 수였다.

‘이게 나를 위한 거라고?’

너무 많은 사람이 온 탓인지, 얼굴을 아는 사람들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을 준비한 필릭스 쿠아란도 보이지가 않았으니 눈이 갈 곳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 단장하는 내내 코빼기도.’

공작가 가득 들어찬 사람들 가운데, 정지된 사람은 니아 프레슬리밖에 없었다. 오늘이 그녀의 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도 니아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서로 탐색하기 바빴다.

니아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섞여들어 가지 못한 채로.

귀족과 귀족은 서로 몇 번이고 우아한 몸짓으로 술잔을 기울였고, 귀족이 아닌 자들은 누구보다 바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아다녔다. 서로 서로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듯이.

‘이건 뭔가…….’

니아는 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필릭스는 정말로, 저 많은 사람들이 니아의 생일을 축하해 줄 거라 생각해 초대한 걸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홀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정신 차려.’

니아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들, 땅으로 꺼질 것인가, 하늘로 날아갈 것인가.

니아는 긴장을 모두 끄집어내겠다는 듯 깊게 숨을 토해 내고, 다시 걸음을 떼었다.

‘할 수 있어. 어떻게든.’

그렇게 홀로 정지된 그림이었던 니아는 수채화의 물감이 서로 섞이듯 사람들 사이로 흘러들어 갔다. 낮은 바람이 자유롭게 빈 공간에 스며드는 것처럼, 아주 부드러운 흐름이었다.

“실례할게요, 아주머니.”

니아는 공작가의 하녀인 릴리 포비가 들고 있는 샴페인 잔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웃고 있는 무리를 향해 갔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셋의 무리였다.

‘고위 귀족은 아니야. 하급 귀족, 혹은 상인…….’

그들은 정갈한 차림새긴 했지만, 많은 귀족들을 만나 본 니아에게는 얼추 그들의 신분이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기는 했으나, 첫인사를 하기에 만만한 상대들이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

한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니아를 위아래로 훑었다.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을 얻은 듯 표정이 밝아졌다.

“아! 오늘의 주인공이시군요. 소문으로만 들었지, 뵙는 건 처음이라 실례를 했습니다. 니아 프레슬리 양?”

낯선 이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조금은 당황스러웠으나, 니아는 티 내지 않고 가볍게 목례하고는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남자가 그녀를 다급히 붙잡았다. 니아가 들고 있던 샴페인 잔에 물결이 일었다.

“말씀을 좀 더 나누시죠.”

남자의 말에 니아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인사치레야 어떻게든 한다지만, 길게 이야기했을 때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좋습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말은 가볍게 나갔다. 그것도 꽤나 안정적인 톤으로. 그러나 스스로 대견함을 느낄 새도 없이,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감사합니다, 레이디. 우선 저희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희는 이번에 무역 상단을…….”

“레이디…….”

니아가 지나치게 느끼한 호칭을 중얼거렸다. 눈을 깜빡이던 남자는 이내 흐뭇하게 속삭였다.

“레이디시죠.”

니아는 어색함을 참으며 계속 말해 보라는 듯 살포시 웃었다. 그녀의 작은 반응에도 남자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저희 무역상단은 여러 물품을 다룹니다. 고위 귀족의 관심을 끌 물품부터 평민들의 필수품까지, 아주 다양하죠. 혹자는 한 계층에게만 집중하라고 말하지만…….”

처음에는 니아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중간중간 ‘대단하시네요’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그러나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 시야가 가로막힌 채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점차 지루해져 갔다. 더 이상 반응하기도 어려워졌고. 결국 그녀의 눈길은 빈틈을 향해 돌아갔다.

그렇게 몰래 다른 곳으로 향한 니아의 시선은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저 멀리 익숙한 한 남자가 보였다. 찾을 때는 그토록 보이지 않던 사람이.

‘저기 있었네.’

잘 차려입은 채로 머리를 올린 모습에 니아는 순간 감탄을 토해 냈다. 탄탄한 몸에 딱 들어맞는 정장을 입고서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짓는 그가 새삼 달라 보였다.

‘눈에 띈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필릭스 쿠아란이 귀족들과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상태였다.

필릭스 쿠아란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다가, 가끔은 진중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가 다시 웃고는, 악수를 나눈 뒤 다른 무리에게로 향했다.

니아는 눈으로 계속 그를 쫓았다. 한참을 그렇게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는데, 점점 눈썹이 찌푸려졌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아는 이 기분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골몰하다가 필릭스 쿠아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떠올렸다.

‘너무 사교적이야.’

사교적. 바로 그것이 이 껄끄러운 감정의 정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필릭스가 사회성 있는 미소를 짓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어찌나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있는지, 그는 능숙하다 못해 사교술의 전문가처럼 보였다.

‘뭐야, 사교계가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건 뭐, 사교계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잖아.’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필릭스 쿠아란은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을 만큼.

‘또 웃잖아. 또.’

오늘따라 웃음이 왜 이렇게 헤픈 걸까, 니아가 입을 비죽이려던 찰나였다. 아주 조그만 틈 사이로 주고 있던 시선이 그에게 사로잡혔다. 필릭스와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이 수많은 사람 사이를 가르고 통한 순간, 그의 미소는 끝이 났다. 마치 지금껏 보인 모든 행동이 잘 짜인 연기였다는 듯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당황한 듯 눈을 커다랗게 뜬 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저기, 레이디?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허공에서 이어진 시선을 잘라 낸 것은 눈앞에 있는 남자였다. 니아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어서. 잠시 생각을 하느라요.”

“아, 그러셨군요. 얼마든지 다시 설명을 해 드리죠, 레이디.”

“음……. 그, 가문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시던 것, 그쯤…….”

대충 아무 말이나 뱉는 니아를 향해 남자는 오히려 가문에 대한 질문이 마음에 든다는 듯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곧장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저희 가문이, 사실 가문이라 하기도 뭐합니다만…….”

“뭐하다니요. 상단을 운영하실 정도면 훌륭하죠.”

“아휴, 부끄럽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대단치도 못하죠. 물론 프레슬리 양께서 저희 상단을 이용만 해 주신다면…….”

니아가 애매한 눈빛을 한 순간, 서늘한 음성이 남자의 뒤에서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문이 열리듯 필릭스 쿠아란이 니아를 둘러싼 남자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니아의 곁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필릭스 쿠아란은 한 걸음 더 가까이 걸어 들어와 니아의 시야를 완벽히 차단했다. 이제 니아에게 보이는 것은 그의 가슴팍, 그리고 들리는 것은 그의 목소리뿐이었다. 마치 이 열기 가득한 공간에 그와 니아밖에 없는 것처럼.

“도련님, 저는, 그러니까…….”

제 생일 파티니까요.

그 당연한 답이, 정말이지 너무 당연해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니아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필릭스는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길리 이 자식.”

그는 작게 중얼거렸지만, 옆에 있는 니아 프레슬리에게 선명하게 닿았다. 또 한 번 그가 순차적으로 토해 낸 더운 숨이 그녀에게 닿았고, 니아는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 공자님! 안 그래도 말씀 나누고 싶었는데, 아까부터 너무 바빠 보이셔서 인사조차 하지를 못했네요. 저는 동쪽 무역 상단의…….”

“니아.”

아까의 사교성 있는 모습은 어디에 갖다 버렸는지 남자의 말을 완벽히 무시한 필릭스가 낮게 읊조렸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들어가.”

“네?”

“아직은 아니니까 들어가 있어. 곧 따라갈게.”

필릭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니아에게서 샴페인 잔을 빼앗아 들었다.

먹을 생각도 없었고, 그저 허전한 손을 채우기 위해 들고 있었던 것뿐이었지만 니아는 그의 행동이 조금 서러웠다.

그는 니아의 등을 돌려세워 놓고, 좀 전에 보았던 그 사회성 넘치는 미소를 장착한 채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

“아직 생일 파티의 주인공이 등장할 때가 아닌데, 손님들이 무척 궁금했나 보군. 무례를 용서하게.”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으나, 양해를 구하는 그가 새삼 놀라웠다.

“아, 굉장히 사랑스러운 분이시군요. 참지 못하고 나오셨다니. 뭐,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시 들어가셨다 나오셔도 얼마든지 처음 본 척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못다 한 얘기는 나랑 나누자고.”

어느새 다시 니아를 향해 돌아섰는지,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정수리 위에 얹혔다.

“가.”

그 짧은 말과 함께 니아는 필릭스의 부드러운 힘에 떠밀렸다. 자연스럽게 몸이 앞으로 나아가졌다. 그렇게 한 걸음 가기 시작하니 두 걸음 걷는 것은 금방이었다.

니아는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러자 곧 그 순간이 찾아왔다.

정지.

정지하게 되는 순간.

용기를 내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던 니아는 다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홀로 동떨어지게 되고 만 것이다.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가만히 방 안에 앉아 있으라고? 그래도 내 생일인데. 내 생일 파티인데.

서러운 생각이 온몸과 마음에 점철되려는 때, 니아는 손으로 메마른 얼굴을 쓸었다. 우스웠던 것이다.

‘서러워? 왜?’

거짓 생일 파티였다. 서러움조차 사치인.

니아는 그렇게 계속해서 건조한 얼굴을 쓸다가 눈을 감았다. 눈가가 저릿저릿했다. 벌써 지쳐 버린 것 같았다.

‘정신 차려.’

니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쳤을 리가. 하루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지치기엔 이곳은, 아직 너무나 한낮이었다.

공작가에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뒷공간이 있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 더더욱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

정원사가 애초에 포기했을 만큼 단단한 담쟁이덩굴이 벽을 온통 에워싸고 있었고, 뒤엉킨 줄기는 사악하리만큼 끈끈했다. 언제 놓였는지 모르겠는 고장 난 가구들은 벌써 그 줄기에 둘러싸인 지 오래였다.

‘봐, 얼마나 사람들이 오지 않았으면 십 년째 의자가 같은 자리에 있겠냐고.’

털썩. 니아는 곰팡이가 푸르게 핀 의자에 앉아 그보다 더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리가 저절로 쭉, 길게 펴졌다. 자신의 마음도 이처럼 평온하게, 주름 없이 펴졌으면 했다.

‘넌 언제 어두워질 거니?’

아직도 새파랗기만 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인가?

“아! 사람이 있었군요. 잘됐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니아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후미진 구석까지 누가 온 거야?’

“길을 잃은 줄 알았는데.”

멀끔하게 생긴 신사가 민망한 듯 웃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세련된 옷차림을 보아하니 귀족이 맞는 것 같았다.

니아는 허리를 곧게 펴 의자에서 일어섰다. 드레스에 달라붙은 덩굴을 두 손으로 착, 착, 소리가 나게 떼어 내며 그에게 답했다.

“길을 잃으신 게…… 맞는데요.”

“네?”

“여긴 파티를 연 후원과는 아예 동떨어진 곳이에요. 어지간한 길치가 아니고서야 여기까지 오는 건 힘들 겁니다.”

멋쩍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 남자는 탄식하듯 말했다.

“제가 그 어지간한 길치라서요. 하하.”

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니아 프레슬리도 내로라할 만한 길치이니. 어쩌면 동지를 만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니아는 왠지 아닐 것 같았다.

“그러시군요. 그럼 제가 나가는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에게 나를 따라온 거냐고 따져 봤자 무얼 할까 싶었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남자는 니아의 호의적인 태도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가를 잘 아시는 걸 보니, 아 알겠다. 생일 파티의 주인공이시군요!”

따라온 게 맞구나.

그의 목소리가 꽤나 과장되게 흘러나온 순간, 그 사이의 미묘한 떨림을 눈치챈 니아는 확신했다.

“맞습니다, 제가 그 생일 파티의 주인공이랍니다.”

그러나 니아는 얼굴을 찡그리는 대신 싱긋 웃었다. 자신을 쫓아왔다는 사실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별다른 감정이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생각을 할 뿐.

‘나에게서는 아무것도 얻어 갈 것이 없을 텐데.’

니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남자는 그녀의 미소에 답변하듯 똑같이 눈을 가로로 길게 접었다.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남자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니아는 지난번 카레나가 했던 것처럼 무릎을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입에 발린 말이 나왔다.

“정말 우아한 분이시군요.”

귀족들이란! 니아는 속으로 혀를 차며 그를 지나쳤다. 앞에서 걸으며 남자를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자, 안내해 드릴 테니 절 따라오세요.”

남자가 그녀 뒤에 바싹 붙었다. 니아는 그게 조금 불편했는데, 곧 그는 그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익숙지 않아 귀에 거슬리는 호칭으로 그녀를 불렀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프레슬리 아가씨.”

아가씨? 니아는 표정을 구겼다. 그러고 보니 아까 니아에게 레이디라고 했던 남자도 있었다. 호칭이 이상했다.

니아는 걸음을 멈춘 채 그를 뚫어져라 직시했다. 그러자 남자는 조금 당황한 듯 자신의 귀를 매만졌다.

계속 그의 고동빛 눈동자를 살폈지만 별다른 걸 찾지 못하자 결국 니아는 직접 물었다.

“제가, 아가씨요? 옷차림 때문에 착각하신 듯합니다. 저는 귀족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평민입니다.”

그제야 남자의 눈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니아는 그가 자신의 신분을 착각했다고 확신한 채로 덧붙였다.

“저는 공작가의 하녀입니다. 파티에 초대되어 오실 정도면, 그 정도는 아셔야 하지 않나요?”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놀라서 물은 것이었는데, 말을 뱉고 나니 남자에게 참 민망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뱉은 말을 취소할 수도 없었기에 니아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귀족인 줄 알아서 따라왔구나. 그래, 그럴 테지.’

니아 프레슬리를 몰래 따라올 만큼의 열정은 가지고 있으면서, 그녀가 평민이라는 것도 모르다니. 참 실속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 찰나였다.

“아, 제가 조금 섣불렀나요.”

들뜬 기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주 보고 있는 표정 또한 무척이나 밝았다.

“네?”

“곧 작위를 받으실 거라 들어서……. 물론 아직 받으신 건 아니지만요.”

“작위를 받는다니요? 누가요?”

니아는 애써 띄워 두었던 미소마저 지운 채 물었다.

“설마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는 도리어 이상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니아 프레슬리, 양께서 곧 작위를 받는다는 사실을요.”

그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일부러 이름 뒤에 한 박자 쉬고 말했다. 하지만 니아는 지금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그렇지만 조금 이상하군요. 어떻게 본인이 모를 수가 있습니까?”

아마도 그는 잘못 안 것이 분명했다. 니아는 작위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도 없고, 받고 싶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으니까.

“외람되지만 경께서 무언가…….”

“이 파티에 온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프레슬리 양께서 곧 작위를 받는다는 건?”

그의 말을 막으려고 움직이던 니아의 입술이 멈췄다.

‘파티에 온 모두?’

그는 굳은 니아의 얼굴을 살피더니, 실수했다고 생각한 듯 재빨리 수습했다.

“제가 눈치가 없었나 보군요. 당사자가 모를 리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아마도 작위를 받는 날까지 조심스러우신 모양입니다. 제가 실언을 했다 생각하시고…….”

“죄송합니다. 잠시 실례할게요.”

니아는 그를 내버려 둔 채 달렸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위라고? 내게?’

니아는 아예 치마를 두 손으로 들고 달렸다. 발에 꼭 맞는 구두는, 달리기 시작하니 발꿈치를 더 강렬히 조여 왔다. 마치 숨통을 조여 오는 이 기시감처럼.

그래도 니아는 달렸다.

공작가 내부에 들어가, 미술품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오랜 서적에 대한 가치를 논하고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후원이 제일 잘 보이는 필릭스 쿠아란의 방으로 갔다.

니아는 양팔을 벌려 발코니의 문을 있는 힘껏 쳤다. 펑! 소리를 내며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불과 몇 분 전보다 덜 푸르러 보이는 하늘, 그리고 연주 소리, 지글지글 아래서부터 끓고 올라오는 소음, 그리고 아직도 저물지 않은 태양.

그리고 그 아래의, 사람들.

니아는 거센 숨을 들이쉬며 후원을 내려다보았다.

빈틈없는 화려함 속에서도 너무나 당연한 듯 필릭스 쿠아란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찾으려는 노력도 없이 그는 그저 보였고,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에 담은 후에서야 차례로 그 옆의 사람들이 눈에 담겼다.

웃는, 웃는, 웃는, 얼굴의, 얼굴들.

‘도대체…… 방금 내가 들은 말이 다 뭐지?’

작위.

니아 프레슬리가 귀족이 된다고?

저 아래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고?

도대체 니아 몰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니아의 거짓말로 시작된 이 연회는,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내려다보면 내려다볼수록 거대한 가짜들의 향연 같았다.

“꿈이 아니라면, 이게 다 뭐야.”

마치 커다란 모순 속에 갇힌 듯, 미로 안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어디 있나 한참 찾았어.”

하늘의 색이 변덕을 부렸다. 해가 땅으로 떨어졌다는 의미였다.

가만히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니아는 이제 방 안에 내려앉은 정적과 함께 쪼그려 있을 뿐이었다. 벽의 구석에 기대어.

“여긴 너무 어두운데. 생일의 주인공인 너와는 어울리지 않아.”

필릭스 쿠아란이 그녀에게로 걸어왔다.

“왜 내 방에 있었어? 당연히 에보니 레인즈와 같이 있을 줄…… 아, 사람들을 내려다보기 위해서였군.”

필릭스는 여태 열려 있는 발코니의 문을 보고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작게 웃으며 창문을 닫았다.

“그래, 네 생일 파티니까 많이 궁금했겠지. 그래도 아까는 정말 놀랐어. 쓸데없는 말이 오가는 자리고, 네가 굳이 있을 만한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피곤하잖아.”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다들 풀어진 상태니 괜찮아. 술을 진탕 마셨거든. 너는 대충 인사만 하고 들어오면 돼. 굳이 네게 달라붙는 사람도 없을 테고.”

“도련님은 술에 취하신 것 같지 않은데요.”

“난 안 마셨으니까.”

술에 취한 자들을 비웃는 듯 그가 입술을 비틀었다. 하루 종일 그들과 같이 있었으면서.

니아와 단둘이 있는 그는 더 이상 사교적이지도, 사회성이 있지도 않았다.

“아, 맞다. 잠시만 기다려.”

혼잣말을 하던 그는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다. 니아는 그가 떠난 자리를 무심코 바라보았다.

실은 그가 한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작위를 받는다고.’

오로지 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뿐이었다.

“생일 축하해, 니아.”

그가 커다란 레몬파이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금가루가 반짝거리는 레몬파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초가 하나,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내려가면 모두 너에게 적어도 한마디씩은 생일을 축하한다고 할 텐데, 그보다 내가 먼저 해 주고 싶었어.”

그는 의자 위에 파이를 내려놓고 초에 불을 붙였다. 어두웠던 방 안이 금세 밝아졌다.

“이것도 쓰자. 생일 파티용 모자야. 내가 파티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보통은 이런 걸 쓴다고 하더라고.”

그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모자를 니아의 머리 위에 올린 뒤 끈을 잡았다. 리본을 매는 긴 손가락이 니아의 목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렇게 우스운 모양새일 줄은 미처 몰랐지. 그런데 네가 쓰니까 왜 다들 이걸 쓰는지 알겠어. 평소보다 다섯 배 정도 귀여워지는 효과가 있군.”

그는 혼자 말하며 가볍게 키득댔다.

“자, 다 됐어. 이제 촛불만 불면 돼, 니아 프레슬리.”

초에 붙은 불빛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니아가 꺼뜨려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생일 축하해.”

필릭스는 한 번 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지그시 맞춰 왔다.

니아는 초의 불빛 때문에 붉은색으로 물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마 니아도 같은 색을 띠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도 닮지 않았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

니아는 거짓을 말했고, 필릭스는 사실을 숨겼다.

같았으나, 다른 것이었다.

불을 끄는 대신, 니아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요.”

“응? 무슨 소리를?”

니아가 조금 망설이자, 필릭스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또 누가 너에게 함부로 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 문제였다.

니아는 다시 입술을 떼었다.

“제가 작위를 받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

“헛소문이겠죠?”

그러나 방증하듯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한테서 들었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에게는 중요한 모양이었다. 곧 화가 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길리인가. 길리 포바즈가 아니면 말할 사람이 없는데. 아니면 아까 잠깐 나온 그 시간에…… 그래, 누군가를 만난 거로군. 입이 가벼운 누군가를. ”

필릭스는 신경질이 난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피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니아가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듯이.

“상관없어. 어차피 너도 알게 될 사실이었으니까. 선수를 뺏긴 건 아쉬워도, 니아 네가 작위를 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거겠지.”

그렇게 그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니아의 마음속에는 전쟁을 일으켜 놓고는.

“그게 정말이란 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가능, 아니 그보다 왜요?”

니아의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함과 동시에 촛농이 녹기 시작했다. 조금도 기다려 줄 여유가 없다는 듯이, 말을 멈추고 그냥 초를 불어 버리라는 듯이.

그러나 니아 또한 촛농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바닥난 후였다.

“제가 언제 그런 걸 바란 적이 있던가요? 저는, 이 생일 파티조차, 실은 너무 버겁고 버거워서…….”

스스로의 가슴을 치는 니아 프레슬리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필릭스가 소리를 내었다. 눈빛과는 달리 단호함이 깃든 소리를.

“지금의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이야.”

“하지만 어떻게…….”

“공작가를 너무 쉽게 여기는구나, 니아. 황실만큼은 아니라도 꽤나 힘이 있는 집안이라고.”

“…….”

“공작가 같은 고위 귀족의 가문들은 작위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지. 그중 하나를 충신에게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가 속삭이듯 설명을 계속했다.

“내가 너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다.”

“…….”

“넌 그냥 웃으면서 받기만 하면 돼.”

순간 니아의 머릿속에 한 문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작위를 받는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공작가의 사람. 계약이 끝나더라도 공작가를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공작가의 작위를 받은, 즉 공작가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니까.

“공작님은 알고 계시나요?”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 쿠아란 공작은 그가 괴물이라 부르는 여자에게 그의 아들이 작위를 선물하려는 것을 알까?

“모르고 계신다. 그런데 왜 그렇게 떨지? 설마 내가 아버지께 혼이라도 날까 봐? 그럴 나이는 지난 지 오래야.”

하긴, 그는 공작 몰래 니아를 아카데미에 다니게까지 한 사람이었다. 이번 일도 공작은 알 리가 없었다.

니아의 불안을 멈춰 주려는 듯, 필릭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까지 덧붙였다.

“아버지는 요양이 끝날 때까지 공작가의 모든 권력을 내게 위임하셨다. 요양하는 동안은 그 어떤 일도 관여하지 않으실 거고, 또 듣고 싶지도 않다고 하시더군. 어지간히도 지치신 모양이야.”

필릭스 쿠아란이 다가와 니아의 모자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여. 다 녹아 없어지게 생긴 이 촛불도 좀 끄고.”

마음이 다 녹아 없어질 것만 같은데, 그 촛농이, 촛불이, 레몬파이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니아는 있는 힘껏 고개를 내저었다.

“이 파티로는 부족하셨어요?”

“…….”

“저는, 도련님. 이런 것, 분수에 넘치는 것 바라지 않아요.”

“…….”

“물러 주세요. 아직 작위를 받은 게 아니잖아요. 없던 일로 만들어 주실 수 있잖아요. 그렇죠?”

필릭스는 긍정하지 않았다. 대신 니아에게 더 두렵게 들리는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최소한의 방어막이라고 말했지.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에게 매달리기라도 하려던 니아의 몸이 떨림을 멈추고, 그에게 빌기라도 하려던 입술이 멍하니 굳었다.

그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필릭스는 어디까지 갈 생각일까. 니아 프레슬리를 어디까지 데려가려고. 분수에 넘치는 것을 받고, 받고, 받다, 니아가 부푼 풍선처럼 터져 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몸통 전체가 거인의 손에 잡힌 듯 갑갑해졌다. 막연해졌다. 막막해졌다.

“그냥…… 이대로는 안 되는 거예요?”

“안 돼.”

평온한 얼굴에서는 여전히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려는 니아의 얼굴을 살피던 그는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껍질이 벗겨지듯, 그렇게 그의 본연의 감정이 드러났다. 필릭스는 낮게 말했다.

“내가, 많이 참고 있다. 니아 프레슬리.”

“…….”

“후작가에서 일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제 생일에 대해서, 카레나 아가씨께서 물어보셔서 대답하고, 도련님이 그걸 듣고 제게 파티를 열어 주셨…….”

니아는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그것이 정답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거 말고.”

“…….”

“네 입으로 말해 봐.”

결국 그는 니아로 하여금 실토하게 만들었다.

“……모욕을 당하고, 뺨을 맞았어요.”

그 사실을 말하는 니아의 목소리는 작고 초라했다.

“거기에 있던 모두를 부숴 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어. 네가 싫어할 테니까.”

천천히 물이 끓다 종국에는 부글부글 넘쳐나는 것처럼 그는 이제야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생일 파티를 준비하면서, 작위를 줄 계획을 하면서 내내 그랬을까? 니아의 앞에서는 웃고, 속으로는 분노를 참아 냈을까?

“그러니까 내게, 너한테 작위를 주는 일마저 하지 말라고 하지는 마.”

“…….”

“아무도 너를 무시해서는 안 돼. 그렇지?”

“…….”

“뺨을 때려서도, 함부로 말을 뱉어서도 안 돼. 그렇지?”

“…….”

“대답해, 니아 프레슬리.”

니아는 차마 아니라는 말은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작위라는 감투가, 조만간은 널 지켜 주겠지. 표면적으로나마.”

말을 마치며, 그는 인내하듯 숨을 뱉었다.

“그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소문을 낸 건…….”

“사람이 더 많을수록 좋아. 욕망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좋아. 이 파티로 인해 소문은 더 크게 부풀려질 테니까.”

“…….”

“너처럼 되고 싶은 사람들이 너에게 얼마나 알랑댈지가 상상되는군.”

“……그런 거였군요. 그런 마음이셨군요. 처음부터.”

그에게 이 화려하고도 거짓된 생일 파티의 목적은 오직 니아 프레슬리 하나였다.

공작가에서 작위를 받은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은 니아 프레슬리다. 그 사실이 온 세상 사람들 사이를 떠돌기를 바란 것이다.

“그다음은요? 제가 작위를 받는다면…… 그다음은 제게 뭘 주실 건가요?”

니아는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물었다. 차마 감정을 실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더 높은 작위를 받도록 계획하겠지.”

“그다음은요?”

“더 높은 작위, 명예, 돈, 무엇이든.”

“그다음은요?”

“글쎄. 그다음으로 너한테 뭘 줄 수 있을까…….”

“…….”

“너는 뭘 더 갖고 싶지, 니아 프레슬리?”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눈에서, 니아는 과거를 보았다. 옛날, 계약을 맺을 때 그가 니아 프레슬리에게 했던 말이 지금의 그와 겹쳐졌다.

‘니아 프레슬리, 왜 더 큰 꿈을 꾸지 않지?’

그 말에 그토록 심장이 뛰었는데.

미래를 선택할 수 있고, 달라질 수 있고, 기회는 두 번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매혹적인 충동을 이겨 내지 못했다. 그렇게 아카데미에 다녔다. 후회한 적도 있고, 원래의 계획대로 공작가를 나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래도 결국엔 만족스러웠다. 아카데미에서의 생활도, 달라진 니아 자신의 모습도.

어떤 사람이 넓어지는 세계를 거부할 수 있을까. 감히, 그 매혹적이고 중독적인 일을, 어떻게 감히.

그러나 지금 그의 말은 매혹적이기보다, 중독적이기보다, 그리고 달콤하기보다 외려 두려움을 자극했다. 기약 없는 이야기였기에.

그의 계획은 겨우 일 년짜리 계약 같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의 다음…….’

자꾸 그에게서 받다 보면 그를 떠날 수 없게 된다. 하나를 받으면 그다음 받는 것은 더욱 쉬워지고, 그렇게 받다 보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그에게 가 있을지 모른다.

니아는 사람이었다. 괴물이라 불리고, 정말 괴물일지 몰라도 마음만은 사람이었다.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마음인데, 니아라고 흔들리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미움이 전부 사라졌는데, 또 어느 순간에 그가 좋아지는 일이라고 없을까.

그것은 봄볕이 내리면 눈이 녹는 일처럼 빠르고, 속절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니아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도련님, 저는 작위를 받을 수 없어요.”

충동에 지지 않고, 당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싶었지만. 불꽃인 줄 알면서도 그를 향해 달려가는 나비처럼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앞으로 주시려는 모든 것도 받지 못해요.”

그 결과가 어떨지 알기 때문이었다.

니아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는 그녀를 버리게 될 거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고, 모르트 독테가 그랬듯이. 니아를 공작가로 이끈 그 사람들이 그랬듯이.

니아는 사랑을 담은 그의 눈동자가 혐오감으로 물드는 것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 두려움이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막았다. 아주 착실히 역할을 해, 니아의 마음이 온전히 그녀의 것이도록 붙들어 주었다.

“왜?”

니아가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챈 필릭스의 눈빛이 짙어졌다.

“저는 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날 떠나는 게 그런 거야?”

“맞아요.”

“그럴 수 없을 거야.”

필릭스는 반쯤은 강압적이고, 반쯤은 애원하는 목소리로 니아에게 말했다.

“내 곁에서 너로 살아.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의 곁에서는 항상 숨기고, 거짓말을 하며, 두려워해야만 하는 가짜가 되어 버리는데. 어떻게 그의 곁에서 니아 프레슬리로 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상처를 머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사랑하지 않아서?”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니아 프레슬리의 전부를 알지 못하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는 그저 주고 싶을 뿐인데, 그렇게 해서 지켜 주고, 곁에 두고 싶을 뿐인데.

그런 마음을 그저 어여삐 여기고 싶다가도, 니아는 생각했다. 잠깐의 행복을 누리다 그의 입에서 괴물이라는 말을 듣는 날이 오게 되느니, 몇 번이고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니아는 애달픈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를 항상 극단까지 몰고 가는구나.’

지난날들과 오늘을 떠올리니 그랬다.

언제나 필릭스 쿠아란은 니아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계약을 하던 날도, 처음으로 화를 내던 날도, 가짜 생일 파티를 연 지금도.

그는 니아 프레슬리 본연의 욕망을 자꾸만 자극했다. 스스로조차 몰랐던 본연의 욕망, 본연의 분노, 본연의 초라함.

지금의 그를 멈추기 위해선, 니아는 결국 이 말을 해야만 했다.

“다 거짓말이에요.”

니아 프레슬리의 초라함을 재물로 삼은 채, 그에게 배신감을 선물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이었어요. 오늘은 제 생일이 아니에요.”

숨기고 싶어 했던 비밀 하나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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