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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거짓말 (28/75)

13. 거짓말

다시 자리로 돌아온 카레나 비비고르는 무척 말끔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고,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했다. 하인에게 바닥을 모두 치울 것을 명하고, 몇몇의 빈 접시를 보며 케이크를 권하는 모습까지 전부.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갈 때는 둘이 가 놓고 올 때는 홀로 돌아온 그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모른 척하기에는 에이미 블레이즈의 자리가 너무 텅 비어 있었다.

“니아, 에이미는 돌아갔어. 그녀를 대신해 내가 사과할게. 용서해 줄래?”

카레나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니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에이미 블레이즈를 용서하는 것은 니아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쉬운 편에 속했다. 그녀는 니아에게 상처 주지 못했으므로.

“참 철이 없는 아이야.”

카레나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그녀는 동의를 구하듯 주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듣게 말했으니 부디 마음 풀어. 지금 누구보다 부끄러운 건 에이미일 테니. 뺨의 상처는 괜찮아? 의원을 불러 줄까?”

뺨의 상처는 괜찮았다. 마음의 상처도 괜찮았다. 그렇기에 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카레나의 얼굴이 갈 때와는 달리 너무도 온화해 그것이 신경 쓰였다. 니아를 걱정하는 그 얼굴에 죄책감이 보였다.

생일은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 날인데.

“죄송합니다, 카레나 아가씨.”

니아가 고개를 숙였다.

“니아, 잊어버려. 에이미가 생각이 어려서 그래. 아카데미에 다니지 못한 걸 자기 인생 최대의 오점으로 생각하는 애라니까?”

할로나 허니가 손사래를 치며 위로를 건넸다.

“그래, 걔도 한 번쯤은 깨달아야 했어. 그건 그렇고, 너 참 멋있더라. 잘했어.”

니아의 편을 들어 줄 거라 예상치 못했던 영애가 할로나에 이어 조곤조곤 말을 건넸다.

니아의 볼이 순식간에 다시 붉어졌다. 맞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생기 넘치는 모양새로. 낯선 이의 선의는 처음 맛본 사탕처럼 놀랍도록 달았고, 부끄러웠다.

“고맙습니다. 불편하셨을 텐데도, 이렇게 저를 위로해 주시다니요.”

자그맣게 중얼거린 니아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미소를 보였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미소였다.

니아는 오늘 하루 동안 많은 미소를 지었지만, 이번 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랑스럽고, 몽글거리는 미소의 한 조각.

잠시 테이블 위로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에도 침묵을 깬 것은 카레나 비비고르였다. 나름대로 그녀는, 니아 프레슬리가 가끔 짓곤 하는 이런 미소에 면역이 있었기에. 하지만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눈빛을 지우지는 못한 채로, 달게 웃으며 니아에게 물었다.

“웃으니 좋다. 아,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니아…….”

“네, 말씀하세요.”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으니, 나도 네 생일을 축하해 줘야지. 네 생일은 언제야?”

일순간 니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마치 환상처럼.

그 빠른 변화에 니아를 바라보고 있던 영애들은 당황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들이 니아의 얼굴에서 좀 전의 잔상을 쫓고 있을 때, 니아는 겨우 건조한 미소를 띠었다.

“전…….”

“내가 꼭 챙겨 주고 싶어. 내가 아까 말했던가? 네가 선물로 준 망원경, 내가 진짜 갖고 싶었던 거라고 말이야.”

“그치만 전…….”

초라함을 피하고 싶은 니아의 심리가 솔직한 대답을 가로막았다. 자꾸만 말꼬리를 흐리게 되었다.

“니아, 나도 갈게. 혹시 생일 파티를 연다면! 아니면 우리가 자그맣게 열어 줘도 괜찮을까?”

할로나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녀는 답을 하지 못하는 니아를 보다 홀로 고민에 빠졌는지 또 중얼거렸다.

“벌써 지났으면 어떡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잖아.”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 없었다. 니아의 생일은 내년까지 기다려도, 몇 년을 기다려도, 절대 오지 않을 테니까.

“아직 니아가 답하지 않았어, 할로나. 일단 니아의 말을 듣고 생각하자. 그래서 니아, 네 생일은 언제라고?”

모두가 니아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니아는 숨도 쉬지 않은 채 답했다.

무척이나…….

“곧이요.”

일시적인 충동이었다.

“곧 제 생일이 돌아온답니다.”

과거에 사랑스러운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녀의 어미의 품에서, 보드라운 살결을 가지고.

눈동자 색은 어미를 빼다 박았고, 머리칼은 아비를 닮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낳은 아이는 울지 않았다. 혹시라도 벙어리가 아닐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어미는 걱정스러웠다.

그러다 아이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려는 듯 크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탄생의 증명이었다.

순식간에 안도감이 퍼졌다.

그러나…….

어미의 눈에선 온갖 슬픔이 흘렀다. 그 애처로운 눈빛이 아이의 몸을 다 적실 때쯤, 아이는 밝게 웃었다. 다 안다는 듯이.

그 미소는 어미의 마음을 더욱 애타고, 속절없는 슬픔에 빠져들게 했다.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가야. 넌 아무것도 모른단다.

‘영영 나의 품에 숨겨 놓고 싶다.’

어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은 네가 살아갈 만한 세상이 아니구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신께 맹세했다.

평생을 배신자라 불리어도 좋다. 아이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지킬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니아, 니아 프레슬리. 내 아가야.”

막 세상의 공기를 맡은 아이를 향해, 그녀는 그 아름답고 아픈 이름을 불러 보였다.

또다시 아이는, 다 안다는 눈빛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곧이요.”

일시적인 충동이었다.

“곧 제 생일이 돌아온답니다.”

“그래?”

뱉자마자 니아는 후회했다. 거짓말을 해 버렸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곧장 든 순간, 카레나와 할로나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가 싶더니 모두에게 들리게 외쳤다.

“잘됐다! 정말 잘됐어!”

정작 니아에게 잘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후회감만 막심할 뿐인데 그들은 좋아했다. 니아의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겠다면서. 귀족의 품위는 잊은 채 아이처럼 까르르 웃고 설레발을 쳤다.

그들의 반응이, 진심으로 니아를 위하는 모습이 방금의 거짓을 곧바로 고백할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었다.

“정확히 언젠데?”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 법이다. 이제 니아는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음 거짓말을 준비해야 했다.

“다음 달…… 해가 가장 밝은 날이요.”

“다음 달 1일을 말하는 거로구나!”

에슬란 제국은 달이 바뀌는 첫날, 가장 밝은 해가 떴다.

“1일에 태어나다니, 무척이나 축복받은 아이구나.”

니아는 애써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카레나를 바라보는 일이 힘에 부쳐 결국 테이블로 시선을 떨궜다.

‘죄송해요. 거짓말이에요.’

니아 프레슬리는 태어난 날짜를 몰랐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실은 사람의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어느 순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생일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니 축하해 줄 필요도 없었다.

“생일 파티는 어디서 할 거야?”

할로나가 물어 왔다.

“네? 아, 생일 파티는 하지 않…….”

“한다면 공작가에서 하지 않을까?”

“글쎄, 엘리자베스. 그럴지도 모르지만, 공작가에서 니아의 생일 파티를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도 몰라. 아카데미에서 우리가 축하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아카데미에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 나오는 순간, 니아는 정말이지 그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해졌다.

아카데미생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가짜 생일을 축하받는 모습이라니. 붉게 떠오른 해가 니아를 비출 때, 니아는 그녀의 양심과 함께 녹아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공작가의 하인들과 함께 축하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어.’

“아, 그게 공작가에서 같은 하인들과…….”

“공작가에서 파티를 연다고?”

‘제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라는 외침을 애써 참으며 니아는 천천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정말? 공작님께서 널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계시다니. 괜한 걱정을 했구나.”

필릭스건 공작이건 아무도 니아의 가짜 생일 파티를 열어 줄 생각 따위는 안 하고 있는데…….

“네, 공작님도 필릭스 도련님도 무척 인자한 분들이시죠. 하지만…….”

니아는 계속 시도했다. 점점 더 커져 가는 거짓말을 붙잡기 위해서.

“그렇지? 정말 자애로운 집안이야! 아까 네가 한 말이 다 맞아, 니아. 공작가는 훌륭한 인재라면 후원을 아끼지 않을 만큼 철저하고, 또 그 피후견인의 생일을 크게 축하해 줄 만큼 따듯하니 말이야.”

니아는 말을 할수록 상황이 꼬이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 한마디 더 할수록 자기 발등을 찍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공작가에서의 파티라니, 기대된다 니아! 에이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굴이 붉어져서 뛰쳐나갔을 텐데. 이미 가고 없다니, 정말 아쉽구나.”

평민들은 레몬파이 하나에 불을 붙이고 생일 파티를 한다고 말해 줘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전개였다.

“죄송하지만 아가씨…….”

마음에 다급함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 순간이었다.

“그래, 다음 달. 공작가로 모두를 초대하지.”

니아는 또 스스로 거짓말을 뱉었다고 꼼짝없이 믿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올려다본 곳에, 사교계가 싫다며 요 며칠 사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남자가 서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 남자는 이상하게도 여자들의 티파티에 나타나 니아의 대답을 대신 하고 있었다. 아주 매끄러운 음성으로,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공작가의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

“…….”

“니아 프레슬리의 생일 파티는 공작가에서 열릴 거야. 그것도 아주 성대하게.”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이 허깨비인가 의심스러웠지만, 모두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기에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짜 살아 있는 필릭스 쿠아란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증명하듯, 고개를 숙여 니아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니아, 드디어 네가 날 이용할 줄 알게 되었구나.”

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에이미 블레이즈가 눈물을 훔치며 후작가를 도망치듯 나오던 때였다.

“가만 안 둘 거야!!”

울음과 분노가 섞인 앙칼진 목소리가 후작가의 정문 앞에 울려 퍼졌다.

“그 하녀 계집애! 가만 안 둔다고!! 겨우 아카데미에 다니는 걸로 날 이렇게!”

에이미 블레이즈는 땅바닥만 보며 치맛단의 레이스를 찢어 버릴 듯 당겼다.

“감히 귀족을 건드린 죄를 물을 거야. 벌을 내리고, 그다음엔…… 망가뜨리겠어.”

그 목소리는 걱정스레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던 필릭스 쿠아란 귀에 정확히 때려 박혔다.

귀족, 죄, 벌, 망가뜨린다.

어느 것 하나 필릭스의 마음에 드는 단어가 없었다.

그가 그곳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후작가를 나오는 니아 프레슬리를 보기 위해서. 그래야 그의 하루도 온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작가에서 공작가로 돌아오는 내내 홀로 마음을 다독이고, 필릭스 앞에서는 즐거웠다며 거짓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쁜 니아의 모습을 봐야 했다.

“내가 알기로 저 안에 초대받은 하녀는 한 명뿐인데.”

느긋했으나 신경이 곤두선 듯한 목소리가 에이미 블레이즈를 막아섰다. 씩씩대며 후작가에서 나온 그녀의 걸음이 그렇게 멈춰졌다.

익숙지 않은 음성에 에이미 블레이즈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에……?”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눈앞에 공작가의 필릭스 쿠아란이 삐딱한 자세를 하고 서 있었다. 미간이 어찌나 깊게 파여 있는지, 조각상에 칼집을 내놓은 줄로만 알았다.

“조금 전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아, 그건, 그건 그러니까…….”

에이미 블레이즈는 더듬더듬 니아 프레슬리의 오만방자함을 이야기했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필릭스 쿠아란의 얼굴은 굳어 갔다. 뺨을 때린 이야기는 일부러 꺼내지 않았는데도.

인내심을 갖고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은 필릭스 쿠아란은 자조했다.

“내가 안일했군.”

에이미의 귓가에는 그것이 그녀를 향한 경고로 들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진짜 경고가 에이미에게 돌아왔다.

“누가 벌을 받고, 망가지는지 보자고.”

‘신이시여, 맙소사.’

그렇게 에이미 블레이즈는 니아 프레슬리, 카레나 비비고르를 지나 세 번째 시련을 맞았다. 3연타의 공격은 지난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너무 쓴맛이 강했다.

공작가를 적으로 돌렸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녀의 몸속에서는 수치의 수치의 수치가 맴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희미하게 조각달이 떠 있었다.

푸른 하늘에도 달이 뜬다 싶었다. 그러나 곧 날은 점차 어둠에 먹혀들어 갔고, 세상은 고요함으로 물들어 갔다. 이지러진 달 옆에서, 수억만 년을 그 자리에 있었을 별들이 반짝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니아 프레슬리와 필릭스 쿠아란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다. 고요한 밤만큼이나 두 사람 사이에도 고요함이 흘렀다.

니아는 그가 고마운 동시에 미웠다.

“왜 그러셨어요?”

니아가 그를 쳐다보지 않고 물었다.

사실 무엇을 묻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잘 몰랐다. 묻고 난 다음에야 구체적인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에는 결코 물을 수 없는 질문도 있었다.

어째서 후작가에 왔어요?

왜 생일 파티를 열어 주겠다고 했어요?

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어요?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아요?

거짓말의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는 것도 모르죠?

“전…….”

도련님만 아니었더라면 난 거기서 멈출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니아는 필릭스가 파티를 열어 주겠다고 했을 때, 불안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마음만은 자신만의 비밀로 묻기로 했다.

“생일 파티는 열어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니아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그에게 가짜 생일 파티를 열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필릭스가 계속되는 그녀의 말에도 답을 않자, 마음과는 달리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왜 맹세한다고……. 그런 말은 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았어요.”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무거워져 가는 니아의 마음처럼.

무릇 사람들이 그러하듯,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이 훨씬 더 니아의 뇌리에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후회라는 감정을 타고서.

그제야 필릭스 쿠아란이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도 널 무시하지 않았으면 했어.”

“…….”

“생일 파티는 열면 돼. 그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

“왜요?”

“내가 해 주고 싶으니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니까.”

그가 덧붙였다.

“오늘처럼 그렇게 해. 네가 사고를 치면 내가 수습하는 거지. 넌 날 믿고 막 던지는 거야. 재밌겠다, 그렇지?”

그러면서 키득거렸다.

돌연 필릭스가 발걸음을 멈추고 니아에게 양손을 뻗어 왔다. 무엇을 하려는지 몰라 가만히 있던 니아는 이내 눈썹을 팔자로 내렸다. 그가 양쪽 손으로 그녀의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웃어 봐.”

니아에게도 세상에도 땅거미가 졌는데, 필릭스 홀로 곧 해가 떠오를 새벽녘같이 가벼웠다.

그의 장난에도 니아의 처진 눈썹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자, 필릭스는 민망한 듯 손을 떼어 냈다.

“네가 웃었으면 했는데.”

동시에 니아의 입꼬리도 눈썹과 같은 모양새로, 깊숙한 아래로 향했다.

필릭스가 그녀의 거짓말에 속은 줄도 모르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싫었다. 무거웠다. 힘들었다.

‘니아, 드디어 네가 날 이용할 줄 알게 되었구나.’

남은 시간 거절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불편해진다.

필릭스 쿠아란의 배려에는 죄가 없다. 그러나 그 배려가 니아 프레슬리에게로 올 때, 그의 친절함은 두려움의 양식이 되어 니아를 누른다.

무언가를 속이고 있는 사람에게, 들키는 것 다음으로 두려운 것은 양심의 가책이 늘어 가는 일이었다.

“걱정 마.”

“이미 걱정하고 있어요.”

“아무런 걱정 하지 않게 해 준대도.”

“제게…… 무언가를 해 주지 마세요, 도련님.”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갔다. 무거운 마음을 넘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은, 친절함이 독이 되는 사람도 있어요.”

진지한 고백이었다. 그러나 필릭스 쿠아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니아를 바라보며 답했다.

“친절?”

그는 사탕을 굴리듯 그 단어를 입으로 뱉은 다음 작게 웃었다.

“난 친절한 사람이 아니야.”

“…….”

“오히려 그 반대일걸.”

그가 지금 니아에게 보이는 입꼬리와, 그가 웃을 때마다 살짝씩 보이는 가지런한 치열과, 그러다가 종국에 보이는 소년 같은 해맑음이 서서히 니아에게로 다가왔다. 중력의 크기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가벼웠다.

덧붙이는 말에도.

“단지, 내가 널 위해 무언가 해 줄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 기쁠 뿐이야. 이렇게 소리 내 웃을 만큼.”

터무니없이 가벼웠다. 니아 프레슬리와는 달리.

“그러니까 너도 웃어.”

그렇게 그는 해가 뜨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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