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작은 오해
선물을 사기 위해 방문한 장터는 무척 소란스러웠다.
특히나 중앙 광장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피리를 부는 사내나, 영웅담을 떠드는 이야기꾼들이 눈길을 끌었다. 한 줄로 늘어선 노점상들이나 갓 구운 빵을 파는 아낙네, 직접 만든 팔찌를 파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람의 열기로 채워 가는 공간이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니아는 이렇게 아카데미복을 입고 장터를 활보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옅은 한숨을 조용히 내쉰 그녀는 수갈색의 망토 주머니에 손을 꼭 집어넣은 채 주위를 살폈다.
‘나만 느끼는 건가?’
필릭스 쿠아란은 익숙한 건지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건지,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를 우뚝 세운 채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을 뿐.
니아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필릭스의 곁에 꼭 붙들린 채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 보니 조금은 조용한 골목에 들어섰고, 니아는 필릭스에게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없으세요?”
장터로 오는 내내 필릭스가 그렇겐 궁금해하던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는 니아 곁에 딱 붙어 걷고 있으면서도 말이 없었다.
‘아직도 화가 났나……?’
니아는 혹시 그가 약속 취소 이유가 너무 사소하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그래서 기분이 상해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는 뒤끝이 긴 편이었으니까.
그가 그녀의 말을 무시하는 건 아닐까 우려되는 찰나, 필릭스 쿠아란이 기다렸다는 듯 다다다 말을 쏘아 댔다.
“하루 종일 너의 이상행동에 관해 머릿속에서 온갖 추리쇼를 펼쳤는데, 이 모든 것이 웬 여자아이의 생일 파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이가 없어 말을 잃고 있었다.”
그는 전혀 말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폭풍처럼 쏟아지는 그의 말 때문에 말문이 막힌 것은 니아 쪽이었다.
게다가 필릭스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 덧붙이기까지 했다.
“초대를 승낙한 걸로도 모자라 그 여자애의 선물을 사기 위해 장터를 돌고 있는 모습이라니. 내가 말을 잃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무엇이 당연한지 니아는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에게 한 번 더 상황설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련님은 귀족이시니 저보다 카레나 아가씨의 선물을 잘 고르실 거라 생각했어요. 도련님의 도움을 좀 받을까 했죠.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이니 겸사겸사…….”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복잡한 골목 속으로 들어가느라 힘겨운 와중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소싯적 웅변 수업을 열심히 받은 듯, 발음과 어투,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었다.
“물론 너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즐거운 일이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겨우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걸로 그렇게 긴장했다니 좀 많이 귀엽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슬쩍 봤는데, 네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도 무척 황당하더군……. 끔찍하게 귀여웠지.”
니아는 혹시 그가 ‘귀엽다’는 말의 의미를 자체적으로 색다르게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나 의심스러웠다. 아니면 혹시 그녀가 모르는 ‘귀엽다’의 다른 뜻이 있든지.
그러나 그녀의 쓸데없는 고민이 무색하게 곧 진지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하지만 니아 프레슬리.”
필릭스가 니아 곁을 지나는 짐꾼을 한 손으로 막았다. 그는 좁은 골목 안에서 부드럽게 니아와 자신의 위치를 바꾸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짐과 부딪혀 넘어지거나, 적어도 비틀거렸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니아는 더 놀랐다. 심지어 필릭스는 본인이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필릭스 쿠아란은 계속해서 본인의 말에 집중한 채 사람, 혹은 물건이 니아에게 닿지 않게 반사적으로 쳐 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그녀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말은, 귀족 여자의 말이라고 네가 꼭 따라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거야.”
“네?”
“그런 것 하나 얘기하지 못해서 어떡하냐고.”
“…….”
“그것 봐, 넌 거절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정말 답답해 미치겠군.”
니아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서 있는데, 필릭스 쿠아란은 기다렸다는 듯 어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조그만 머릿속으로 그냥 꼼짝없이 후작가에 가야겠다고 다짐한 거 아니야. 밉보이지 않기 위해 선물까지 사 가면서.”
장터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오해는 저기 안드로메다까지 향할 모양이었다.
“네가 교우관계 뭐 그런 걸 생각해서 꽤나 애쓰고 있다는 건 알아. 귀족이란 신분이 어려울 것도 안다. 하지만 후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잘 처리할 테니.”
“…….”
“내키지는 않지만, 네가 그렇게 걱정된다면 공작가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 놓으라고 말해 두지. 그랬는데도 너에게 함부로 군다면, 그건 공작가를 향한 공격으로 간주하겠어.”
후환, 공격? 그가 하는 말 중 어느 것 하나 생일 파티와 어울리는 단어가 없었다. 니아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색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도련님. 제 생각에 도련님께서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듯한데…….”
“아니, 전혀. 오히려 상황을 완벽하게 간파했다.”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사람? 아니, 그보다 카레나 아가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필릭스의 찌푸린 미간과 불쾌함이 감도는 눈동자로 예상하건대, 그의 머릿속에서 무척이나 과장된 상상이 진행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니아 프레슬리를 무릎 꿇린 카레나 비비고르와, 그 앞에서 비 맞은 생쥐처럼 벌벌 떨고 있는 니아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분노할 일이냐고.’
니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홀로 진지하기만 한 그를 지켜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그리고 잠시만 더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조금은 못된 심리가 찾아왔다.
“그런 이상한 자리에 갈 필요 없어, 니아. 게다가 티파티라며. 귀족 여자애들이 모여 이 세상 가장 쓸모없는 이야기를 떠드는 자리가 바로 티파티다.”
그의 오해와는 별개로 필릭스는 정말 티파티를 싫어하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니아의 장난기 어린 눈빛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정말 끔찍한 귀족 문화지. 온갖 가식과 날조가 판을 치는 곳이야. 내가 사교계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놈의 소문.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은 대개 다 사교계에서 퍼지는 거라고.”
“…….”
“감히 그런 자리에 널 초대해? 가만두지 않을 거다.”
속이 상해 가슴을 탕탕 치는 그의 주먹을 보며, 니아는 대답 없이 나직한 미소를 띠었다. 그가 아무 말 않는 니아를 바라보며 의문을 느낄 때까지.
수많은 사람이 스치는 가운데, 오로지 니아와 필릭스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니아는 입을 열었다.
“저기, 도련님?”
니아는 필릭스 쿠아란을 딱, 하고 멈춰 세웠다.
이쯤 하면 충분했다. 이젠 그의 오해를 풀어 줘야 할 때였다. 그래야 적당한 선물도 같이 고르고, 그에게 이런저런 조언도 들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제 말 잘 들어 주세요.”
“무슨 말.”
니아는 심호흡을 한번 내쉬었다.
“저는 너무너무 가고 싶어요.”
“……어?”
“생일 파티에 처음 초대받아 봤어요. 그리고 티파티에도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가고 싶다고요.”
니아의 조심스러운 말에 필릭스의 행동이 일순 멈추었다.
“그래서 기뻤어요. 제가 너무 긴장을 해서 도련님께서 이런 오해를 하셨는지는 몰라도……. 생일이란 건 축하받아 마땅한 날이잖아요. 싫어하는 사람한테서 축하를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천천히 타이르듯 그에게 말을 하는데, 니아는 문득 그 말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말을 하다 보니 다시 한번 니아를 초대할 때의 반짝거리던 카레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 번을 생각해도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 니아 프레슬리를 초대하기 위해 애를 쓰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니아 프레슬리를. 아마도 이런 감정이 벅차오름일 것이다.
“그런데도 카레나 아가씨가 절 초대했다는 건, 절 조금은 좋아해 주신다는 뜻이니까요. 제게 축하를 받고 싶어 하신다면, 저는 얼마든지 축하해 드리고 싶어요. 그 의미로 선물도 준비하고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필릭스는 니아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살짝 멍했는데, 이번에는 니아가 그의 손을 끌었다. 뒤에서 골목길을 꽉 채우는 짐수레가 빠른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아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점차 커지는 바퀴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을 텐데, 그는 마지막까지 미동이 없었다.
“뒤에 조심…….”
필릭스는 아무런 저항 없이, 니아의 힘에 이끌려 왔다. 두 사람이 벽면 가까이 붙었다. 균열이 깨지듯, 갑작스레 필릭스의 입에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기쁘다고?”
필릭스가 물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니아는 고민하다 천천히 답했다.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내뱉는 언어 자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도련님 말씀을 들으니 저도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전 사교계라는 건 전혀 모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카레나 아가씨에게 다른 의도는 없어요. 먼저 제게 마음을 보여 주신 것뿐.”
“…….”
“저는 이런 게 처음이라 조금 부끄럽고 서툴지만, 거기에 응답하고 있는 거예요.”
필릭스 쿠아란이 고개를 돌려 니아 프레슬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 더 더운 숨과 함께 필릭스 쿠아란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귀엽다.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태어난 걸 축하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그렇죠?”
니아 프레슬리가 사람을 직시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단단한 기운이 그녀의 눈동자 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꿈을 꾸는 소녀 같다고 생각했다. 그와는 다르게.
‘참, 선한 사람의 사고는 따라가기 어렵다니까.’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필릭스 쿠아란은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방금까지 열을 내며 사교 파티의 부조리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사람과는 딴판인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니아 프레슬리는 멈칫거렸다.
‘어, 웃는 모습이…….’
문득 그의 입꼬리에 낭만이 서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평소와 같은 미소였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가 그다음에 한 말이 니아 프레슬리의 마음에 꽤나 들었기 때문일지도.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리고 넌 충분히 누군가를 축하할 자격이 있지. 멋져, 아주 멋져.”
그는 니아 프레슬리를 멋있다고 말했다.
그 뒤로 필릭스는 군말 없이 니아를 따랐다. 자신의 오해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카레나가 결코 좋은 의도로 니아를 초대했을 리 없다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서 줄줄이 설명했다. 변명하듯 말하는 모습이 반쯤은 우습고 반쯤은 귀여워 니아는 중간중간 조금씩 웃었다.
“보통 그런 자리에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검보다 날카로운 혀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해.”
긴 설명 끝에 필릭스가 당부한 것은 그런 내용이었다. 마치 짐승의 본능이 그러하듯, 약한 자를 물고 뜯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필릭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오해가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니아는 웃었지만, 골목을 빠져나가는 걸음걸음마다 조금씩 발걸음이 묵직해짐을 깨달았다.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일개 하녀를 개인 저택에서 열리는 티파티에 초대하는 법은 없었다. 그건 귀족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했다. 그들 세계를 굳건히 지키는 방법의 하나로서.
“그러니까 결국엔, 제가 걱정된다는 말씀이군요?”
니아는 그녀의 발걸음과는 달리 간단히 정리했다.
“그래. 걱정돼.”
“…….”
“하지만 네가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네가 가지 않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
그는 작게 투덜거렸다.
어차피 그 스스로도 정답을 알고 있기에 니아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카레나 아가씨가 초대한 생일 파티인걸요.”
“그러니까 네 생각과는 다를 수가 있다니까.”
그가 겁을 주면 니아는 주는 대로 다 받아먹는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저는 사실…….”
니아 프레슬리는 자신이 하녀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어떤 일도 다 괜찮다고 말하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괜찮다는 말은, 정말로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걱정하는 상황은 아마 하녀인 그녀가 무시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는 상황일 게 분명했다.
‘고개를 숙이고 숙이고 또 숙이다 보면 상황이 끝나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자존심을 죽이고 시키는 대로 행동하면 모든 것은 괜찮아진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더불어 니아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는 말도.
“사실 뭐?”
“사실 제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다고요.”
“……네가?”
“네. 제가요.”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눈빛을 무시하며 니아는 앞으로 묵묵히 걸어갔다.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 것이 분명한 시간들이 지나고,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2달리온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다른 데에선 이 정도 물건을 이 정도 가격에 꿈도 못 꾸죠.”
니아는 무려 2달리온을 투자하여 산 박사용 망원경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무려 에스카피아의 운석 구멍까지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망원경이었다.
‘맘에 들어.’
이는 니아와 필릭스의 합작품이었다. 니아는 카레나가 천문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필릭스는 고급 망원경을 파는 곳을 알고 있었다. 선물을 사기 안성맞춤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심지어 필릭스는 어디서 배운 기술인지, 잘난 얼굴과 험악한 목소리로 뻔뻔하게 가격을 반으로 후려쳤다. 누구라도 놀랄 만한 엄청난 재능의 발견이었다.
‘덕분에 아주 훌륭한 구매를 했다니까.’
어찌 되었건 카레나의 생일 선물을 구입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가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가 낸 거라니까요?”
필릭스 쿠아란이 못내 신경 쓰이는지, 자꾸만 니아에게 달리온 두 개를 손에 쥐여 주려고 했다.
그러나 니아는 확실히 못을 박았다. 카레나의 초대를 받은 것은 니아이니, 선물을 사는 것도 그녀가 해야 했다. 그건 당연한 이치였다.
만약 카레나의 선물을 사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만족스럽지 않은 선물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면 스스로가 무척이나 보잘것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돈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니아는 여태껏 돈이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그녀는 그동안 돈으로는 채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들을 잃어 왔기 때문이었다.
실체가 있지만, 결코 니아의 텅 빈 영혼을 위로해 주지 못했던 돈은 이제야 쓸모가 있었다.
니아는 긴 시간을 견디며 얻은 돈이 이번만큼은 참 고마웠다. 남들보다 한참이나 가진 것 없는 그녀에게 단 하나의 방패막이 되어 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