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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반짝반짝 (24/75)

9. 반짝반짝

‘요즘 사람들이 정말 이상해.’

니아는 마법으로 나뭇가지의 방향을 조종하며 생각했다. 휙, 휙, 그녀의 의도대로 가는 나뭇가지가 돌아갔다.

요즘따라 아카데미에서도 그렇고, 특히나 공작가에서 하인들의 태도가 너무도 달라졌다.

‘자꾸 먹을 걸 챙겨 주고, 말을 걸고, 심지어 계속 필릭스 얘기를 꺼내고…….’

니아는 틈이 날 때마다 하인들에게 붙잡혀 필릭스의 일대기를 들어야 했다. 그의 어렸을 적부터 최근 황궁 검술 대회 우승까지.

영웅 신화 얘기하듯 부풀리는 그들의 말은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늘 먹을 것을 주며 말을 걸어 음식에 약한 니아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니아 프레슬리, 너…….”

시저가 놀라 니아를 향해 중얼거렸다. 니아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그 목소리에 번뜩 앞을 바라봤다.

“…….”

지금 그녀 스스로 보고 있는 것이 실제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어디까지 자라게 한 거지?’

니아는 책상에서 창문 밖까지 쭉 자라난 자신의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오늘의 수업 내용은, 원하는 방향으로 나무의 가지를 자라나게 하는 것이었다. 니아는 가지가 창문 너머로까지 길게 자라나는 상상을 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니아가 키워 낸 나무를 쳐다본 아카데미생들 모두 말을 멈추었던 것이다.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창문 밖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나무.

“너……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 보면, 식물 친화성이 굉장히 높은가 보군.”

시저가 당황을 감추지 못한 채 니아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는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식물 친화성?”

니아가 되물었다.

“성장의 최대치를 빠르게 이끌어 내는 것보다, 식물의 다른 모습까지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생명술의 재능이라 듣긴 했는데. 그걸 니아 프레슬리가 하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순수한 놀라움이 담긴 시저의 말에 니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지?”

“공작가 피후견인이잖아. 저 정도의 재능을 가졌으니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었겠지.”

“난 요새 필릭스 하는 거 보고 그냥 아카데미에 꽂아 준 줄 알았지.”

“재능이 무섭구나…….”

“대단하다. 부러워.”

여기저기서 조그만 소리들이 들려왔다.

니아 스스로도 놀라 멈춰 있었는데, 그제야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들 그녀를 공작가의 피후견인답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니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칭찬받는 것, 인정받는 것. 니아는 왜 그 감정들이 울컥할 만큼 좋은지를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니아 프레슬리라는 평범하지 않은 존재를 온전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

수업이 끝난 후, 니아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단상에서 내려갔다. 스스로 미소를 짓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나온 미소였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미소는 태양보다 환했다.

사람을 색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지금의 니아 프레슬리는 노란색이었다. 아주 싱그러운 노란색. 니아 프레슬리 하나로 온 교실이 환해졌다.

그리고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쟤가 저렇게 예뻤나.’

그런 생각이 아카데미생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사랑스러워. 그렇지?”

할로나와 카레나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옆에서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카데미생들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쩐지 고통스러워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그는 아카데미 사람들 중, 니아 프레슬리를 바라보며 유일하게 편히 웃지 못하고 있는 단 한 명이었다.

“네 눈에도 쟤가 빛나 보이겠지?”

필릭스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앨버트 브라이트를 향해 물었다. 왠지 기운이 없는 목소리였다.

앨버트 브라이트는 검술 대회에서 다친 상처 때문에 오늘에서야 다시 아카데미에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보다 훨씬 더 맥이 빠져 있는 것 같은 필릭스 쿠아란을 보며 앨버트는 혀를 찼다.

“쯧, 니아 프레슬리 말인가?”

“저렇게 반짝거리는데, 내 눈에만 예뻐 보일 리가 없잖아.”

물론 방금의 니아 프레슬리는 누가 봐도 사랑스럽게 웃고 있기는 했지만…….

앨버트는 홀로 사약이라도 마신 듯 괴로워하는 필릭스 쿠아란에게 장단을 맞춰 줘야 할지, 아니면 내 눈에는 저 아이가 오크처럼 보이니 안심하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음, 웃는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는 생각했네만, 글쎄 난 그닥…….”

‘자네처럼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게.’

앨버트 브라이트는 뒷말을 삼켰다. 맞장구를 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저 이번에도 니아 프레슬리 전용, 이십사 시간 가동 콩깍지가 작용했다고 생각하면서. 굳이 공을 들여 멱살을 잡힐 이유는 없었다.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싶어.”

“그래, 아카데미생들의 눈을 다 파 버리면 끝날 일이지. 참 좋은 방법이지 않은…….”

그러나 장난치듯 대꾸한 앨버트 브라이트가 필릭스 쿠아란에게로 고개를 돌렸을 때, 습관처럼 짓고 있던 미소가 그의 입가에서 사라졌다.

“자네, 눈빛이…….”

필릭스는 전에 없이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서리 내린 나뭇가지처럼.

“어떻게 하면 저 애를 완전히 가질 수 있지?”

시린 얼굴을 하고 내뱉는 목소리가 더없이 진지했다. 막 사랑에 빠졌던 소년의 것도 아니었고,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소년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런 필릭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앨버트 브라이트는 한참 후에야 필릭스 쿠아란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가지려고 한다면, 가질 수 있지.”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필릭스 쿠아란이 겨우 하녀 하나 갖자고 먼 길을 헤맬 이유는 없으니까.

사실 필릭스 쿠아란은 저 하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한마디 명이면 충분했다.

“쓸데없는 소리.”

필릭스 쿠아란이 한 손으로 가볍게 앨버트 브라이트의 고개를 밀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귓가에 닿자마자 앨버트의 고개가 순순히 돌아갔다. 그러나 오뚝이처럼 그는 다시 필릭스 쿠아란에게로 향했다.

“사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저런 평민 계집애를 갖는 방법 같은 건…….”

앨버트는 진심 어린 조언을 속삭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갖고 싶은 건…….”

필릭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다람쥐같이 빠르기도 하지.

유리창을 통해 니아 프레슬리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그의 목울대가 함께 울렁거렸다.

“저 애의 마음이야.”

필릭스는 니아가 계단을 끝까지 내려간 후 그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제야 차가운 불꽃 같던 눈빛이 풀렸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울리는 감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나는 그대로인데. 너는 참 빠르군.’

니아 프레슬리가 티 없이 반짝였으면 하는 마음과 남들이 그녀를 탐을 낼까 두려운 마음이 충돌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과연 언제까지 기다림이 지속될 것인가.

지금은 앨버트 브라이트의 조언을 무시했지만 언젠가 권력이라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고 있던 무언의 형태를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니아 프레슬리가 빛날 때, 필릭스 쿠아란은 이제 더 이상 쉬이 웃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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