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빛나는 마정석
니아는 다 나은 것이 분명한 어깨 부근을 매만지며 빠르게 걸었다. 아직까지도 칼날의 느낌이 선연했다.
‘누구 때문에 제일 아팠는데. 도련님이 지켜 준다는 말이 내게 어떻게 들리는지를 안다면…….’
니아는 그가 아무것도 몰랐던 지난 십 년을 또다시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이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그를.
‘바보 니아 프레슬리.’
동시에, 그에게 화를 내고 밖으로 나와 버린 스스로를 반성했다.
‘나 정말 왜 이러지.’
이런 그녀가 필릭스는 얼마나 황당할까.
니아 프레슬리는 또다시 악역이 되어 버린 자신이 싫어졌다. 어른스럽게 굴지 못하는 스스로도.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필릭스의 아픈 웃음도.
니아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신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채 그냥 앞으로 씩씩 걸었다.
“니아 프레슬리?”
단단한 목소리가 니아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 댁스터 교수님?”
딕시 댁스터였다. 그녀를 교실이 아닌 밖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네, 수업 중 아닌가? 왜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거지?”
딕시 댁스터가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물어 왔다.
그녀는 발목까지 오는 긴 겉옷을 입고, 목에는 고글을 끼고 있었다. 역시나 깔끔한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자기주장이 강했다. 니아는 늘 그렇듯 딕시 댁스터의 옷이 마음에 들었다.
“검술 연습 때문에…….”
“지금은 어디 가는 중이지?”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요…….”
니아의 대답에 딕시 댁스터는 미련 없이 화제를 돌렸다.
“요즘 생명술이 많이 는 것 같던데.”
갑작스러운 칭찬에 니아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무려 딕시 댁스터 교수의 칭찬이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도 멋지세요. 제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니아가 수줍게 중얼거렸다.
“실없는 소리를 다 하는군.”
그녀 나름대로 아첨한다고 한 것인데, 딕시 댁스터는 전혀 감흥이 없는 듯 보였다. 아리갈리 버도네 교수였다면 칭찬 한마디에 그의 조상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을 텐데. 참 같은 교수인데도 사람이 달랐다.
“니아 프레슬리, 잠시 내 연구실로 따라오겠나?”
기대도 하지 않았던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니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내가 부탁할 게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순간 번쩍하고 빛났다.
딕시 댁스터는 정말로 니아를 본인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니아는 얼떨떨했지만, 사담은 하지 않기로 유명하고, 학생과의 친목질은 더더욱 하지 않는 딕시 댁스터 교수를 따로 본다는 사실에 두근거리기도 했다.
뻑뻑한 사무실의 문을 딕시 댁스터가 발힘으로 세게 밀어 열었다.
그녀의 사무실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여러 색의 잉크 자국이 잔뜩 묻어 있는 카펫이 지나치게 삐뚤어진 채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비싸 보이는 마정석, 보석들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난장판이었다.
사무실을 둘러보던 니아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 모습은, 분명했다. 니아는 떨리는 눈빛으로 딕시 댁스터를 바라보았다.
“저, 교수님……!”
“뭔가?”
“도, 도둑이 든 것 같은데요?”
교수 사무실씩이나 되는 공간이 이렇게 보안이 약하다니……. 이럴 수가.
“빨리, 그, 신고를…….”
“어제 청소한 그대로인데?”
“…….”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딕시 댁스터의 말에 니아는 순간 합죽이가 되어 다시 사무실을 둘러봤다.
‘……그래. 도둑이 들었다면 보석이나 마정석을 가져가지 않을 리가 없겠지.’
겨우 수긍한 니아는 발 디딜 곳을 찾아 점프했다. 완벽해 보이는 딕시 댁스터에게도 조금쯤 인간적인 면이 (과연 인간적인가?) 있다고 생각하며…….
딕시 댁스터가 책장 뒤편에 연결된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의 연구실로 보이는 작은 방이 드러났다.
“여긴 내 연구실이네. 보통 생명술에 관해 연구하지만 뭐, 다른 마법도 종종 연구하지.”
‘전갈……?’
딕시 댁스터가 전갈을 연구하고 가져왔다는 게 사실이었는지, 정말로 유리통 안에서 전갈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전갈의 다리 한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니아는 전갈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왠지 딕스 댁스터 교수라면 전갈을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정석.”
딕시 댁스터는 서랍을 뒤적여 마정석 하나를 꺼내 가볍게 돌렸다. 그녀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마정석이 유달리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정석은 경이로운 존재지.”
“…….”
“인간에게 마법의 힘을 가져다주지 않나.”
갑자기 마정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 앞에서, 니아는 적당히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마정석이 없다면, 인간은 참 무력할 거야…….”
“…….”
“마정석 하나로 여러 개의 마정석을 만들 수가 있지. 하나의 마정석이 그 배로, 그 배의 배로 불어날 수 있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럼, 태초의 마정석은 누가 만들었을까?”
니아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초대 에슬란 황제 폐하께서 벅 프릴리를 처단하신 후,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얻어 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잘 외웠군.”
딕시 댁스터가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분명 그녀는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개인적인 공간에 니아를 불러서. 하지만 니아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의 말이 어쩐지…….
‘왜 이렇게 무섭게 들리지.’
딕시 댁스터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니아에게로 녹색 마정석 하나를 던졌다.
“저길 좀 보게. 안트로포펜이야. 어떤 식물인지는 알고 있겠지?”
그녀 말대로 구석진 곳에 안트로포펜이 있었다. 이 식물은 점성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잘 자란 안트로포펜은 에슬란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중 하나로 손꼽혔다.
하지만 햇빛 없이, 특히나 저런 구석에서 자란다면 어느 순간 식인 꽃으로 변해 사람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생명체였다.
“압니다. 하지만 저렇게 두었다가는…….”
“그래서 자네를 불렀지 않나. 저 꽃을 피워, 내 연구실을 좀 밝혀 주게. 내가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녀가 니아에게 던져 준 마정석을 향해 고갯짓했다. 그 마정석으로 안트로포펜을 키워 내라는 의미였다.
‘이걸 하라고 나를 데리고 왔다고?’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생명술을, 굳이 니아를 이곳까지 데려와서 부탁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명술 교수가 안트로포펜 하나 살려 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님…….”
“싫다면 강요하지 않겠네. 하지만 자네가 그걸 성공한다면…….”
“…….”
성공한다면? 딕시 댁스터는 뭘 어찌할 셈이지?
니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자넬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겠지.”
딕시 댁스터가 시원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유심히 살펴본다는 건…….’
“그 말씀은 제가…… 교수님께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내게 특별해진다는 의미일세.”
‘특별’이라는 단어는 무언가 힘이 있었다. 이상하다, 특이하다, 괴상하다와 한 끗 차이인 단어인데 그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니아에게 특별하다고 말해 준 사람은 여태껏 안나와 퍼시 아리데오, 이 둘뿐이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고.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니아는 단어 하나로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단순하다고 말해도 좋았다. 니아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결코 실망시키고 싶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딕시 댁스터가 니아의 태도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꽃을 향해 몸을 돌린 채, 한참을 공들이던 니아가 슬며시 눈을 떴다.
화려한 검붉은 색의 꽃이 피어나 있었다. 니아는 겨우 숨을 내쉬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그리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다 했습니다, 교수님! 전부 잘 피어났어요!”
“……수고했네. 가 보게.”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딕시 댁스터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녀가 아리갈리 버도네와 같은 휘황찬란한 칭찬을 늘어놓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잘했다는 말 정도는 해 줄 줄 알았다. 니아는 당황하여 멀뚱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꽃이 더 크게 자라나기를 기대하셨나…….’
“저, 마정석은 여기 두고 갈게요. 가 보겠습니다.”
어쩐지 냉정해 보이는 딕시 댁스터 교수의 등 뒤로, 니아가 책상 한구석에 마정석을 놓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문 닫히는 소리가 난 후, 딕시 댁스터는 니아가 놓고 간 마정석을 바라봤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마정석이 번쩍하고 빛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