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팠던 건, 좋았던 건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때가 그에게도 있었다. 아직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을 무렵이었다.
“또 아프잖아!”
니아를 만난 지 삼 년이 넘게 지났을 즈음. 그때는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다. 알 수 없는 병이 그를 자꾸만 아프게 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쓰러지곤 했다. 가슴이 턱턱 막히고, 열이 오르고, 내일쯤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생각이 들 만큼 심장이 아팠다.
그 누구도 병명을 밝히지 못했다. 다만 자꾸만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고……. 그것을 반복했다.
몇 달은 세상 그 누구보다 건강하게 훨훨 날아다니다, 또 몇 달은 세상에서 가장 병약해졌던 그는 아픔이 지겨웠다. 이제 완벽하게 나았다 생각하면, 그런 그를 비웃듯 다시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약에 익숙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련님께 딱 맞는 치료제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아프다고, 아프다고……! 아프다고 말했잖아! 난 죽을 것처럼 아픈데 넌 맨날 앵무새처럼 중얼거리지! 걱정하지 말라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쓰고, 머리에는 차가운 물수건을 달고 있는 열세 살의 필릭스 쿠아란이 모르트 독테에게 소리쳤다. 딱 맞는 치료제가 니아 프레슬리를 칭함은 꿈에도 모른 채.
필릭스는 니아 프레슬리의 심장을 성공적으로 이식받았지만, 성장기인 그의 몸이 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었다.
“도련님은 죽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이렇게 종종 아픈 것도 사라질 겁니다. 치료제에 몸이 완전히 익숙해질 테니……. 곧이겠지요.”
태평스레 말하는 모르트 독테에게 짜증이 치민 필릭스 쿠아란은 젖 먹던 힘을 짜내어 옆의 무언가를 던졌다. 그 무언가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유리로 된 조각상 내지는 유리잔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파서 예민한 도련님이었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모르는 소년이었다.
“꺼져! 꺼지라고……!”
파편이 반짝거리며 벽에서 흘러내릴 때, 모르트 독테의 눈도 날카롭게 번뜩였다.
“……도련님.”
“…….”
열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필릭스 쿠아란을 향해, 모르트 독테가 다가왔다.
“이 약을 드시지요. 도련님께도 이 약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는 필릭스의 입안으로 파란색 약을 집어넣었다.
필릭스는 반항스러운 눈빛으로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더 이상 말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쉬십시오. 전 가 보겠습니다…….”
어떤 약이라는 설명도 없이 모르트 독테는 천천히 방을 떠났다.
약이라면 어렸을 적부터 신물 나도록 먹어 왔던 필릭스이기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정신을 멍하게 만들어 육체의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든다는 점에서 선호하기도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약을 달라고 요구할 만큼.
하지만 지금 모르트 독테가 준 약은 어쩐지 다른 약들보다 더 빠르고, 더 불쾌한 몽롱함을 몰고 왔다.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졸려…….’
의원이 건네준 약을 먹은 후, 며칠 동안 필릭스 쿠아란은 사나운 불 속을 뛰어다니는 악몽을 꾸었다. 번져 가는 불길을 피해 도망쳤지만, 불은 그의 온몸을 감싼 채 새빨갛게 타오르기만 했다. 빠른 그의 다리도 불길에는 소용이 없었다.
“허, 허억!”
겨우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 필릭스 쿠아란은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불에 타들어 가기라도 한 듯 목에서는 탁한 쇳소리가 났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지금도 여전히 온몸이 불에 타는 듯 뜨거웠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듯 목이 말랐다.
“더워, 더워…….”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물, 물이 필요해.
맨발로 물이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제발 물…….’
뛰어 내려간 아래층은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저택 전체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필릭스 쿠아란은 개의치 않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간절히 두리번거렸다. 욕실, 아니 더 가까운 주방이라도…….
그가 응접실 건너 주방으로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커다란 응접실 창문 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아주 반갑고, 청량한…….
필릭스 쿠아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
굵은 빗줄기가 정신없이 내리고 있었다. 투둑, 투툭. 거칠게 창문을 두드렸다.
쏟아져 내리는 비는 가문 그의 마음을 자극했다.
필릭스 쿠아란은 홀린 듯이 발걸음을 돌려 현관 쪽으로 향했다. 맨발이었고, 잠옷 차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있는 힘껏 문을 열었다. 커다란 문이 벌컥, 순식간에 양쪽으로 벌어졌다. 그러자 그의 귀에 한층 더 제대로 된 빗소리가 들려왔다.
쏴아.
필릭스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순식간에 비가 그를 적시기 시작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옷 사이로 빗물이 몸의 선을 따라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더없이 시원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간간이 입을 벌려 비를 맛봤고, 코로 비를 공기처럼 들이마셨다.
‘좀 살겠다.’
그의 화기가 모두 진정된 찰나였다.
“거, 거기 누구예요?”
팔을 벌리고 비를 맞던 필릭스는 멀리서 들려오는 조그만 목소리에 눈을 떴다.
“누, 누구냐고요. 누군데 비를…….”
확인 사살하듯 한 번 더 목소리가 들려오자 필릭스의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생쥐처럼 비를 쫄딱 맞은,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상황에 몇 달 만에 그 아이를 만난 것이다.
그 아이, 니아 프레슬리. 밤마다 생각나던……. 그것도 이 새벽에, 비가 오는 바깥에서…….
니아가 건물 모퉁이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필릭스는 그를 피해 다니는 니아 프레슬리 덕분에 뒤통수만으로도 그녀를 알아차리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필릭스는 몸에 축 달라붙은 옷과 맨발을 절망스럽게 바라보다 결국 기둥 뒤로 숨었다.
“그, 그러는 너는, 뭔데…….”
너무 당황해 말을 더듬거리고 말았다. 자신을 향해 욕을 지껄일 시간도 없이 니아가 툭 답을 던졌다.
“저는 하녀인데요?”
“나, 나도 하인이야. 그…… 새로 온.”
혹시라도 정체를 들킬세라 필릭스는 빠르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완전히 맛이 가 버려 다행이었다. 그 스스로가 듣기에도, 열세 살의 앳된 목소리는 아니었다. 필릭스는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지 않고 물었다.
“비도 오는데…… 뭐 하는 거야.”
“저는 그냥 갑갑해서. 빗소리가 들리기에…….”
필릭스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에 잠시 숨을 멈췄다.
별다른 말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열세 살의 필릭스 쿠아란에게는 마치 자신처럼 아파 몇 달간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던 니아가, 빗소리를 듣고 갑갑함을 참지 못해 겨우겨우 몸을 이끌고 나왔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몇 달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던 필릭스 쿠아란이었기에, 병을 앓고 있다는 니아 프레슬리의 모습이 더욱 애처로웠다.
“그, 그쪽은요?”
니아의 질문에 필릭스는 쓰게 미소 지었다. 나도 너와 같은 이유야,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조금 순화했다.
“감기에 걸려서야.”
응? 니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동문서답이었다.
“저, 아저씨…….”
“……?”
갑자기 달라진 호칭에 필릭스가 거세게 반발하려는 찰나, 니아가 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제 쪽으로…… 가까이 오지 말아 주실래요.”
열세 살의 필릭스 쿠아란은 그 말에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의 병을 옮길까 봐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린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조그만 머리통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속이 상할 정도로 마음이 예뻤다.
’일단은 감기 옮으면 안 되니까. 윽, 감기는 사절이야.‘
니아의 진짜 속마음은 차라리 모르는 게 그에게 약이기는 했다.
“그래. 알겠어.”
“고맙습니다, 아저씨.”
사실 니아는 곧 필릭스 쿠아란의 생일이라 마음이 심란했던 차였다. 또다시 그 극한의 고통을 겪어야 하다니. 지금은 이렇게나 건강한 니아지만…….
게다가 이 새로 온 아저씨에게 한 말도 사실이었다. 요새 아프다며 매일 저택에 틀어박혀 있는 도련님 때문에 방 바깥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혹시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 낭패니.
그래서 모두 잠든 새벽에 이 심란함과 갑갑함을 달래고자 나왔는데, 마침 비도 내려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도 했다.
무려 낯선 남자를 걱정하는 질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감기에 심하게 걸렸어요?”
니아가 멀찍이 떨어진 채 물었다.
“……응.”
“음, 그런데 밖에는 왜……. 얼른 들어가세요.”
필릭스는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막으려고 손목으로 입을 가렸다. 젖은 머리칼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런 게 바로 행복인가 싶었다.
며칠간 얼마나 아팠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삼 일을 내리 아팠는데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고통을 잊었다. 이미 몸속의 불은 꺼진 지 오래고, 다른 의미로 볼 부근이 발그스름해질 뿐이었다.
“너도 아프면서. 나 걱정하지 말고 먼저 들어가.”
“……네.”
“…….”
“그럼 아저씨도 빨리 들어가세요. 쾌, 쾌차하시고요.”
내밀고 있던 얼굴이 사라지고, 도도도도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필릭스는 순간 무척 아쉬운 기분에, 갈라진 목소리로 다시 니아를 불렀다. 반쯤은 충동적이고, 또 반쯤은 의도적으로.
“저기!”
필릭스는 몸을 가리고 있던 기둥에서 벗어나 니아가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부름에도 대답이 없고, 보이지도 않아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했는데, 조금 뒤 니아가 다시 조심스레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필릭스는 또 재빨리 기둥 뒤로 숨었다.
“왜, 왜요……?”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서.’
말을 꿀꺽 삼키고, 필릭스는 아무 얘기나 꺼내기 시작했다.
“감기 걸려 본 적 있어?”
“…….”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니아가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세라 필릭스는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지금 나처럼 감기에 걸렸거나, 더 심한 감기에 걸리거나, 그보다 더 더 심한 감기에 걸리는 거야. 열이 나는데, 심장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퍼지는 불같은 느낌이 드는.”
“열감기……?”
“한동안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건강하고, 아픈 곳도 없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헛것을 보기도 하고. 그런 거 말이야…….”
필릭스의 말에 니아가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기둥 뒤에 있는 필릭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저씨는 그렇게나 아파요?”
하지만 목소리에서 걱정이 묻어 나와, 필릭스는 순간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응. 그렇게나 아프곤 해.”
“나도 아플 때가 있는데요…….”
답이 없던 니아가 뜸을 들이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 주면 더 아파요. 나는 더 늦게 낫더라도 약 같은 거 말고, 많이 아프구나, 얼마나 힘들었어, 그런 말이 듣고 싶던데…….”
“…….”
“많이 힘들었죠?”
“…….”
“너무 오래 아파서 마음이 더 아픈 게 뭔지 난 알아요.”
“…….”
“내가 아플 때마다 나한테 들려주던 노래가 있는데…….”
니아 프레슬리는 안나가 불러 주던 노래를 떠올렸다.
하룻밤 사이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안나를 생각하니 또다시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리는 이 비도 마치 안나와 퍼시의 무덤 앞에 있던 그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래? 어떤 노랜데?”
니아가 망설이다가 돌아섰다.
‘왜 대답이 없지……?’
슬쩍 내다보니 내밀고 있던 고개가 없었다. 설마 사라진 건가 불안해진 찰나였다.
“들려줄까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벽 뒤에 있는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난…….”
“…….”
“아주 고마울 것 같군.”
꾸며내던 말투도 어느새 사라지고, 귀족 도련님 같은 말투로 돌아와 있었지만 니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목소리와 빗소리 덕분이었다.
“누가 날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까 빨리 불러 주고 갈게요. 노래가 끝나면 나는 갈 거예요. 알겠죠……?”
“그래.”
빗소리를 반주 삼아, 니아 프레슬리가 음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꿈속 깊이 잠든
사랑스러운 내 아가
그곳에 어두운 밤이 찾아와
너를 괴롭힌대도
아스라이 짙은 안개가
여린 살결을 휘감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 포근한 품으로
돌아오게 나는 기도한단다
빛을 따라
따스한 작은 집으로
돌아오면 된단다
헤매지 않길
나는 기도한단다
아픔이 사라지길
나는 기도한단다
나의 아가야…….
박자도, 음정도 알 수 없는 엉망진창인 노래였지만…….
“…….”
“간 줄 알았죠? 안 갔어요. 히히……. 아프지 마요, 아저씨!”
“…….”
“진짜 안녕!”
니아가 싱긋 웃는 얼굴을 보이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필릭스 쿠아란은 기둥에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행복해질 수가 있구나.’
아픔은 잊히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매일 그 얼굴을 보며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그런 때가 그에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