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레오 아리데오
필릭스 쿠아란은 승리의 검을 높게 들고, 니아 프레슬리를 바라봤다.
그가 그렇게 원하던 대회의 우승이 그의 품으로 왔다. 검술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그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니아 프레슬리에게 직접 보여 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가 공작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라는 사람이 최고라는 것을.
그는 니아를 향해 환하게 웃음 지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해 짓는 승리의 미소였다.
“레오……?”
니아는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릭스의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니아 프레슬리, 나를 향해 웃어 줘. 네 미소가 간절하게 보고 싶어. 너무 오래 기다렸잖아.’
필릭스는 니아의 눈빛을 기다렸다. 그 넋이 나갈 만큼 황홀한 미소를 기다렸다. 그녀가 자신만을 바라보길, 누구도 아닌 필릭스 쿠아란만을 바라보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니아의 시선이, 기묘하게 자신을 비껴가고 있었다.
‘……뭘 보는 거야, 니아. 난 여기 있잖아.’
니아의 시선이 다른 곳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자, 필릭스는 점차 미소를 거두었다. 자신을 향한 이 뜨거운 함성 속에서, 홀로 얼음 속에 갇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니아의 시선은 자신이 쓰러뜨린, 그의 검을 맞고 넘어진 패배자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레오야. 레오가 확실해. 레오가 분명해!’
니아는 관중석에서 벗어나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확인해야 했다. 레오가 맞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를 직접 봐야만 했다. 반드시, 반드시…….
“저, 방금 다친 그 사람. 그 남자…… 어디에 있어요?”
니아는 음식을 옮기고 있는 시녀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그 바람에 과일을 떨어뜨리게 된 시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니아가 가장 비싼 관중석에서 내려온 사람임을 알고는 방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구 말씀입니까, 아가씨?”
“방금 그 사람! 마지막으로…… 필릭스 도련님과 결투를 한 사람이요. 팔을 다쳐서, 쓰러졌는데…….”
“경기 참가자 말씀이신가요?”
시녀가 계속 미소를 유지하며 물었다.
“네, 맞아요. 그 빨간 머리에……. 다쳤는데, 많이 다쳤는데 정신을 차리니까 없어져서…… 어딜 갔는지 몰라서…… 봐야 하는데…….”
니아가 더듬거리는 말을 시녀가 겨우 알아들었다는 듯, 손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다쳤다면 아마 저곳에 있을 겁니다. 다친 참가자들은 모두 저곳에서 치료를 받게 되어 있거든요.”
멀리 흰 막사가 보였다. 니아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레오, 사라지지 말아 줘! 살아 있어 줘, 제발…….’
정신없이 뛰어 목적지에 도착한 니아는 망설임 없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다친 환자들이 즐비했다. 이곳저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눈에 레오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니아는 누워 있는 환자 한 명 한 명을 확인하며 미친 듯이 막사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개가 쉼 없이 돌아갔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환자들이 있는 공간에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의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니아를 말렸다. 그는 그녀를 잡더니 힘을 주어 끌어내기 시작했다.
“안 돼요, 아직 못 찾았는데…… 이대로 갈 수가 없어요. 꼭 만나야 되는 사람이 있어요. 살았나 확인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니아가 끌려가며 애원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잘 정돈되어 있었던 머리칼도 정신없이 엉켜 있었다.
“아니, 여기서 이러시면……. 혹시 경기 참가자를 찾고 계신 겁니까?”
니아가 자신에게 매달리며 간절하게 애원하자 의원이 물었다.
“네, 맞아요. 찾고 있어요. 레오 아리데오……. 빨간 머리에, 마지막에 경기한 사람이에요. 다쳤어요. 많이 다쳤어요…….”
니아의 말에 의원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 사람. 팔을 다친 사람 말이죠? 치료는 됐다면서 나갔습니다.”
“살아 있는 거죠? 어디로, 어디로 갔어요? 왜 치료를 안 해 줬어요? 피가 나는데 왜 치료를 안 해 줬어요!”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어 보이는 니아였다. 의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붙든 그녀의 손을 털어 냈다.
“아니, 본인이 치료를 거부…… 됐습니다. 저기 저, 왼쪽으로 갔으니 따라가 보시든가요.”
의원의 말을 듣자마자 니아는 그가 말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레오, 제발 사라지지 말아 줘. 제발, 나한테 붙잡혀 줘……!’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그녀는 맨발로 미친 듯이 황궁 안을 달렸다.
경기장으로 사람들이 몰려, 황궁 안쪽에는 쥐새끼 하나 없었다. 아무리 달려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안 돼, 레오…….’
숨이 쉬어지지도 않을 만큼 달리고 달렸을 때, 드디어 저 멀리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찾았어, 찾았어!’
갈색 모자를 쓴 남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치 환영인 듯, 그는 순식간에 황궁의 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니아는 가쁜 숨을 내쉬며 그가 들어간 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탑 안에는 끝없는 원형 계단이 있었다. 남자는 이곳을 올라간 것이 분명했다.
니아는 맨발로 뛰느라 생긴 상처와 모래가 범벅이 된 발로 차가운 돌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레오, 레오. 레오 아리데오. 나의 소중한 레오.’
니아는 속으로 레오가 맞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며 계단을 밟았다.
끝이 없었던 기다림, 식을 줄 모르던 그리움.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아무리 길고 높은 계단이라도 끝은, 꼭대기는 존재했다. 니아는 그것만으로 족해서, 지칠 줄 모르고 탑의 정상을 향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얼마나 가쁜 숨을 참고 올랐을까. 탑의 끝에 도착했을 때, 니아는 한 남자의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높은 곳에서 등을 보인 채 저 멀리 바라보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등을 바라보는 니아.
탑의 꼭대기 위에서, 강하게 부는 바람에 니아의 머리카락과 옷이 제멋대로 휘날렸다.
‘맞을 거야. 맞아야 해. 아니면…… 또 나보고 어떻게 살아가라고…….’
니아는 이미 나아 버린 상처들과, 또 새롭게 생긴 상처들로 가득한 발로 한 걸음 내디뎠다.
천년의 시간과도 같은 발걸음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니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어 그의 모자를 잡았다. 하지만 터질 듯한 심장에,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심장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레오가 아닐까 봐 두려워서……. 자신이 착각한 것일까 봐, 그래서 다시 절망을 맛봐야 할까 봐 무서워서 모자를 벗길 수가 없었다.
‘네가 아니면, 안 돼…….’
반면, 남자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누군가 그의 모자를 잡았다. 공격하려는 건가? 누가 미행한 거지?
남자는 뒤에서 자신을 덮치려는 누군가를 제압하기 위해 재빨리 몸을 돌려 손을 뻗었다. 한 방에 급소를 노려 죽일 생각이었다.
남자가 몸을 돌리자, 거센 바람에 그의 모자가 날아갔다. 타오르듯 붉은 그의 머리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의 손이, 자신을 노린 자의 목에 완전히 닿지 못하고 멈췄다.
감히, 자신이 손을 댈 수 없는 존재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대신 맞아 죽을지언정, 상처 하나 입히고 싶지 않았던 존재가 눈앞에 보였다.
환영인가. 꿈인가. 드디어 내가 죽은 것인가.
평생을 아파하고, 평생을 그리워했던 존재가 서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니아?”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니아의 귀에 닿았다. 거센 바람을 타고 날아와, 그녀의 귀에 맺혔다.
닮은 사람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일 수가 없었다. 니아를 알아봤으니까. 니아의 이름을 불렀으니까…….
“맞잖아. 맞았잖아. 네가 맞잖아…….”
니아가 자신을 향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는 레오를 보고 지금껏 흘리던 눈물은 눈물이 아니라는 듯,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장대비같이 굵고, 아픈 눈물이었다.
아이처럼, 또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니아는 그렇게 울었다. 늘 숨죽여, 고통 속에서 홀로 눈물을 흘려 왔다. 하지만 다시 만난 레오 앞에서 니아는 드디어 목놓아 울어 보였다.
십 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난 레오 아리데오는 우는 그녀를 있는 힘껏 안아, 그 옛날 그 언제처럼 니아를 다독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