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십년 전, 겨울
십 년 전 겨울, 눈이 내리는 캄캄한 밤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니아는 춥고 배가 고팠다. 옷은 모두 낡아서 찢어졌으며 그녀가 서 있는 골목은 생쥐가 우글우글한 곳이었다.
‘배가 고파. 너무 고파. 죽고 싶어.’
니아는 앙상하게 뼈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온몸에 상처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니아는 며칠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지만 죽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몸이 아파 고통스러웠지만…… 죽지는 않았다.
‘제발 죽게 해 주세요.’
니아라고 자살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몇 번이나 배를 찔렀으며 몇 번이나 손목을 그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할 고통만이 니아를 찾아왔을 뿐, 원하는 대로 죽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찌른 자국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니아는 그렇게 몇 개월을 거리의 뒷골목에서 지냈다. 죽음을 시도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삶이 니아를 놓아주지 않았다. 열 살에 불과한 니아의 눈빛은 마치 죽은 자의 것 같았다.
때로는 살기 위해 기어야만 했다. 죽음에 가까워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니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파 땅바닥을 기어야 했고, 때때로는 너무 슬퍼 홍수 같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세상을 원망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얼마가 지났는지도 몰랐다. 새카만 생각들은 둥지를 틀고 니아의 목을 조여 왔다.
최악의 최악이 이어지는 날들이었다. 결코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그녀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어느 날은, 심지어 니아의 몸집보다 두 배나 큰 개에게 물렸다. 개는 목줄이 풀린 채 사납게 니아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더니 니아를 골목 구석으로 밀어 넣고 단숨에 집어삼켰다.
‘이번엔 죽을 수 있을까.’
날카로운 이빨에 몸통이 뚫리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맨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기적이 찾아왔다.
그 암흑 같던, 지옥 같던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발견했을 때. 니아가 느꼈던 감정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네가 그 아이였어! 맙소사, 이 모르트 독테가 발견하다니! 세상에, 세상에…….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거야…….”
한 남자의 목소리에 니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안경을 쓰고,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는 니아의 몸에서 풍기는 피 냄새를 들이 맡았다.
남자의 개였던 것일까. 남자는 니아를 한 손으로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개를 쓰다듬었다.
“톰브, 너 같은 것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군. 당분간은 잡아먹지 않으마. 기특한 것…….”
니아는 저도 모르게 기대와 절박함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겐 그 순간 그가 자신을 이 생지옥에서 구해 줄 사람인지 아닌지,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배가…… 고파요.”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 봐……. 공작가에서 만찬을 즐기게 해 주마. 나도 이제 공작 머리 위에서 즐겨 봐야지…….”
그는 니아를 질질 끌고 갔다. 니아는 ‘만찬’이라는 두 글자에 홀려 발바닥이 까지는 것도 몰랐다.
그녀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던 개 또한 바로 옆에서 주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니아는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짐승이 두려웠지만, 배고픔보다 무섭지는 않았기에 애써 그 네발짐승을 무시할 수 있었다.
남자는 니아를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 니아는 궁전이 아니라 커다란 저택, 즉 공작가라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크고 웅장한, 집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곳.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녀를 공작가까지 데려온 모르트 독테도 니아의 눈에는 커다랗게 보였지만,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키가 크고 커다란 사내였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정말 네가 그 괴물인가?”
모르트 독테와 한참 대화를 하더니 사내가 니아에게 다가와 물었다. 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오래도록 니아에게 머물렀다.
‘나는 괴물…….’
죽지 않는 괴물. 아무리 찔러도 살아나는 괴물. 그 괴물은 바로 니아 프레슬리.
“다만…… 확인이 좀 필요하겠어.”
사내의 말에 니아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팔을 쇠꼬챙이로 그었다. 더러워진 몸에서 흐르는 새빨간 피는 달빛에 더욱 빛났다.
상처는 금세 사라졌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니아에게 손을 뻗었다.
니아는 자신에게로 오는 그 온기에 취해 다른 무엇도 보지 못했다. 가령, 남자가 자신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같은 것을.
“집으로 들어가자.”
그러나 단언컨대, 그 시간은 니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닐지라도, 가장 설레었던 순간이었음에는 분명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집’이라는 공간이 니아에게는 너무나 간절했으니까.
‘그동안 힘들었으니 신이 보상을 주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사내의 손에 이끌려 저택 안으로 들어간 니아는 또 금세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자신과 사내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눈동자에 둘러싸인 니아는 사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작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설마 사생아는 아니겠죠, 아버지?”
그런데 어디선가 삐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하인들 사이로 작은 소년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니아는 두려운 와중에도 남자아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인형 같다…….’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보고 있는 저 아이는 조각사가 정교하게 만든 인형 같았다. 날렵하게 뻗은 턱 선이나 깎아 놓은 듯 보이는 높은 코, 가로로 긴 눈, 모두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니아가 이곳에서, 다시는 그 골목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지가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니아는 이곳에서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제발……!’
속으로 간절히 원하고 있을 때, 공작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이 집에서 지낼 아이다. 늦었으니 넌 들어가 보거라.”
공작의 말을 들은 니아는 자신이 웃고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웃고 있었는지, 얼마나 새하얗게 웃고 있었는지, 누구를 바라보며 웃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그 순간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는 것. 그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니아는 몰랐다. 모르트 독테가 왜 자신을 왜 공작가로 데려온 것인지를. 그리고 공작이 왜 그녀를 받아 주었는지를.
공작은 모르트 독테에게 니아를 맡겼다. 그는 니아를 씻기고, 보드라운 느낌의 새 옷을 주었다. 따듯한 수프도 건넸다. 니아는 입천장이 다 데는 것도 모른 채 허겁지겁 수프를 입에 집어넣었다.
어느새 다 비운 그릇을 아쉽게 쳐다보는데, 남자는 그런 니아의 눈빛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듯 치워 버렸다. 그러고는 바로 니아를 침대에 눕혔다.
‘보들보들해.’
니아가 부드러운 이불의 촉감을 느끼고 있을 때, 남자가 속삭였다. 꽤나 소름 돋는 말투였다.
“좋은 모양이지? 그럼, 좋겠지. 이런 옷도, 이런 이불도 처음일 거야. 그렇지?”
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이런 좋은 옷이나 이불은 태어나서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모르트 독테다. 이 모르트 독테가, 앞으로 공작가 의원이 되어 널 관리할 거야. 널 이곳에 데려온 게 나라는 걸, 널 구해 준 사람이 나라는 걸 잊지 마. 죽는 그 순간까지.”
니아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트 독테. 의원. 나를 구해 준 사람. 고마운 사람.
니아가 슬며시 웃음 짓자 모르트 독테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그녀의 입에 약을 밀어 넣었다. 입안으로 쏟아지는 약을 꿀꺽 삼키자 곧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잠들었습니다요.”
“필릭스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놈이 만약 실수를 한다면…….”
“여부가 있겠습니까. 완벽하게 해내겠습니다. 성공하면, 잊지 마시고 제게도…….”
“입조심이나 해. 이 일을 다른 곳에 떠벌렸다간…….”
따스하고 안락한 곳이 오랜만인 니아는 공작과 의원의 대화를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말이다.
깨어났을 때, 니아는 다리가 찢어지는 듯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이불은 걷혀 있고, 다리에는 무언가로 할퀸 자국이 나 있었다. 살갗이 찢어져 있었고, 피가 흘렀다.
“실험 중이란다, 얘야……. 고통스러운 모양인데, 참거라. 어차피 네 상처가 다 낫는다는 건 너도 나도 아는 사실이니까.”
의원은 니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니아는 아팠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 두꺼운 이불과, 따듯한 공간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에. 니아를 구해 준 그가 참으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후로도 의원은 계속 실험이라는 명목 아래 니아를 관찰했다. 개중에는 약을 먹는 것처럼 아프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살갗이 찢어지고 뜯기는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모르트 독테 의원은 니아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이름부터 나이, 가족들까지. 그는 끈질기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니아는 벙어리가 되는 쪽을 택했다.
‘내 소중한 레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행복했던 순간들. 잊을 수 없는 기억들.
하지만 니아는 곧 고개를 저어 대답했다. 이름은 니아 프레슬리, 나이는 열 살, 가족은…… 없음.
“움직이지 마……!”
의원은 종종 니아를 다그쳤다. 니아는 날카롭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렸고,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아팠다. 정말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아는 그 차가운 뒷골목보다 지금 이곳이 훨씬 좋았다.
의원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니아는 무엇이든 다 괜찮았다.
‘참을 만해.’
이 정도는, 이 정도쯤이야. 너무 참을 만했다. 더한 고통도 알고 있는 니아였으니까.
며칠 뒤, 모르트 독테 의원은 한밤중에 니아의 입에 또다시 약을 한가득 털어 넣었다. 그러고선 그는 그녀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니아는 몽롱해지는 기운을 붙잡으며 그가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기분 나쁜 나른함이 몰려왔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그가 니아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공작의 외동아들 필릭스 쿠아란을 위해 그녀가 어떤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멀어져 가는 의식을 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의사가 먹인 약이 아주 독한 것임이 분명했다. 니아는 눈을 뜨고 있는 건지, 뜨고 있다면 지금 보이는 풍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귀에 울리는 소리는 환청인지 아닌지 그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때 봤던 그 도련님이다…….’
몸이 기울여지는 것을 느끼며, 달뜬 눈으로 옆을 바라봤다. 처음 공작가에 왔던 날 봤던 그 도련님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물론 그조차도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의식이 반쯤 날아가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잠든 도련님의 모습이 천사같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니아는 그대로 무의식에 몸을 맡겼다. 짙은 암흑이 찾아왔다.
“잠들었습니다……. 며칠 동안 이대로 깨어나지 않을 겁니다.”
잠든 니아를 내려다보며 모르트 독테가 공작에게 말했다. 공작은 팔짱을 낀 채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작해.”
모르트 독테는 초조해하는 공작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꼬리를 힘껏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 대단한 양반도 아들 일에는 평정심을 잃는 모습이라니. 그 꼬락서니가 우습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대단한 아들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는 거라고…….’
니아를 발견한 것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었다.
오 년 전, 황궁 의원직에서 쫓겨난 후 퇴락의 길만을 걷고 있던 그였다. 아내는 죽었고, 하나 있는 딸은 개새끼 하나만을 남기고 도망쳤다. 도망치기 전에 먼저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은혜도 모르는 년…….’
화풀이를 하며 때리던 개가 도망치자 눈이 뒤집혀 쫓아갔던 것이 도리어 복이 되었다.
도망가던 개는 아이 하나를 물었다. 개가 문 것이 귀족 자제였다면 큰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의 고아 하나쯤 개에 물려 죽는다고 관심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참으로 재미있게도, 그가 발견한 것은 그냥 거리의 고아가 아니었다.
‘저주받은 몸을 가진 아이.’
공작이 찾던 그 아이였다. 놀랍게도.
개를 죽이려던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크게 몸을 비틀었다. 이미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하는 생각에 모르트 독테는 아이의 옷을 재빨리 들춰 보았다. 그리고 새어 나오는 탄성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내가, 내가 찾았어! 공작도 찾지 못했던 그 아이를……!”
아이의 상처가 낫고 있었다. 개의 이빨에 물린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 아이는 저주받은 몸.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 하지만 저주받은 공작의 외동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
‘사람들은 공작가 아들이 단순히 몸이 약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이 모르트 독테는 알고 있지…….’
이미 바닥을 친 인생, 아들의 저주에 대해 입을 다물어 주는 조건으로 공작을 협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저주를 풀 아이를 찾았으니 거래의 크기가 달라지리라.
“아드님이 열 살이 되는 날, 심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저주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협박은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모르트 독테.”
“도련님의 저주는 십 년간 계속되겠지요. 매년, 도련님의 심장이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이 모르트 독테가 저주를 풀 아이를 찾아냈습니다.”
“…….”
“끝까지 잡아 두셔야 하겠습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공작님과 저, 둘뿐이니 더 아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되겠지요.”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 순간 공작의 표정을 혼자 봤다는 것이 아쉬워 미칠 만큼.
“자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요…….”
모르트 독테는 잠들어 있는 니아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 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누군가의 몸을 가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어떠한 희열이 모르트를 감쌌다.
‘됐어……!’
드디어 니아의 심장이 필릭스의 몸속으로 옮겨졌다. 연기처럼 사라졌던 필릭스의 가슴에 새로운 심장이 들어섰다.
니아의 심장은 서서히 필릭스에게 맞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기이하고도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니아의 텅 빈 심장 자리와, 펄떡이는 필릭스의 새로운 심장.
잠든 두 명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는 공작가 외동아들의 첫 번째 저주가 무사히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숨을 쉬는군요.”
그리고 예상대로, 심장이 사라졌지만 니아는 죽지 않았다. 그녀의 옅은 숨소리를 들은 모르트 독테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주받은 몸이니 죽지 않겠지. 내 아들에게 십 년간 심장을 바칠 아이다.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게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공작님.”
모르트 독테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들을 환히 비추는 달을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 니아 프레슬리는 십 년간, 필릭스 쿠아란의 생일이 되면 그녀의 심장을 바치게 되었다. 십 년 동안 계속되는 저주. 니아 프레슬리는 그것을 풀어 줄 세상 단 하나뿐인 도구였다.
하얀 겨울밤이었다.
누군가는 심장을 빼앗겼고, 누군가는 심장을 얻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안도했고, 누군가는 욕망의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밤. 그런 밤에도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니아 프레슬리는 눈을 떴다. 아직 몽롱함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었지만, 어찌 됐건 눈을 떴다. 그리고 순간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녀는 숨도 쉬지 못한 채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
‘나는 이 고통을 알고 있어.’
지나치도록 커다란 상실감.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허무함, 아픔, 공허함.
‘그날 밤. 약을 먹이고 내 몸에서 무언가를 가져갔어.’
처음이 아니라 알 수 있었다. 니아는 과거에도 몸속의 장기를 빼앗긴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 감각과 너무 비슷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건 아니야. 이건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야. 싫어. 싫어. 싫단 말이야!’
니아는 사라진 무언가를 찾기 위해 몸을 매만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완벽했다. 하지만 느껴졌다. 아직까지 몸속에서 완벽하게 자리 잡지 못한 무언가가.
거센 씁쓸함이 니아를 덮쳤다.
공작가에 와 들떴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천치 같았다. 왜 행복을 꿈꿨을까. 왜 기대했을까?
‘나는…… 어디로 간 거지?’
니아는 자신의 가슴, 영혼, 생각, 자아, 모두 사라진 것을 느꼈다. 미소 짓던 니아 프레슬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들끓는 열과 땀으로 축축해진 이불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밤이 되면 더 몸이 아팠다. 방에서 홀로 침묵을 견디며, 이를 악물고 버티는 시간. 그때는 정말 슬펐다. 너무나 아팠다.
“이곳을 떠나야겠어. 여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었어.
열 살에 불과했던 니아 프레슬리의 머릿속은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곳에 있으면 계속해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될 거라는 본능적인 예감과 함께.
‘도망가자. 도망가야 해.’
몸이 조금 괜찮아졌을 때.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바로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방문 앞에는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는 누군가가 있었다.
‘창문으로 나가자.’
작은 창문이었지만 니아의 몸이 지나갈 정도는 되었다.
니아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아.’
삼 층 정도의 높이. 사람이라면 무서워할 높이였다. 하지만 니아는 다리 하나 부러지는 것 정도는 감수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뼈가 부러지는 것 따위 금세 나으니까.
어린 나이의 니아 프레슬리는 창문에 다리를 밀어 넣고 몸을 밖으로 빼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허공에 몸을 맡겼다.
쿵.
어스름한 새벽, 겁도 없이 탈출을 감행한 니아는 딱딱한 바닥에 부딪혔다.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후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원. 한겨울의 정원은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떨어진 낙엽들과 앙상한 나뭇가지들.
니아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정원을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도망칠래.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잘못됐어. 다 끔찍해. 이제는 안 하고 싶어…….’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다는 생각만으로 절뚝이며 걸었다. 어느새 후원의 반을 지났다. 이제 걸어온 만큼 더 걷는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으면…….’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어서 빨리 도망가야지. 이 무서운 곳에서 탈출해야지.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왜, 왜…….
니아의 머리가 말하고 있었다. 어서 움직이라고.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두려움이 몸을 고정시켰다.
‘여길 나가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니아에게 돌아갈 곳이라고는 없는데.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차가운 길바닥. 골목. 생쥐가 우글거리는 곳뿐.
배고프고, 아프고,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곳. 너무나 외로운 곳…….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움직이는 것이라곤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칼뿐이었다.
두려움이 니아의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 어디에도 머물 수 없는 가련한 니아 프레슬리를 어떻게 하지. 도대체 누가 그녀를 구원할 수 있지. 살게 만들 수 있지.
이런 생각이 그녀를 잠식하던 찰나였다. 누군가 그녀를 휙 낚아챘다.
잡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발버둥 치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생각할 뿐.
‘내 선택에는 왜 죽음이 없나…….’
그녀의 선택지에 죽음이란 것이 있었더라면……. 이 공작가에 남아 이용당하는 것. 아니면 여기서 도망쳐 다시 골목을 전전하는 것. 그런 것들 말고, 모든 것을 그만둘 수 있는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그녀에게 있었더라면.
니아 프레슬리는 고개를 떨궜다. 붙잡힌 채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소리 없는 눈물이라 더 슬펐다.
순식간에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한 탈출이 어떤 이득도 없이 허망하게 끝나 버렸다.
“감히, 감히,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해……! 네깟 계집애가……!”
모르트 독테가 화를 참지 못하고 무언가를 던졌다.
다행히도 비껴가기는 했지만, 산산조각 난 유리잔 파편이 그녀의 머리에 떨어졌다. 하지만 니아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모르트 독테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만 나가. 모르트 독테.”
그런 그를 저지시킨 것은 쿠아란 공작이었다. 독테가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지만, 니아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윙윙대며 귀에서 울릴 뿐.
“네게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낮고 차가운 음성에 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모르트 독테는 사라졌고, 방 안에는 그녀와 공작뿐이었다.
‘선택…….’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공작을 바라봤다. 그 눈빛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공작은 덤덤히 말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선택이라는 것에 관하여.
“도망치려는 시도 없이, 십 년간 이곳에 머문다면, 네게 상상 이상의 부를 주겠다.”
“…….”
“이제 아홉 번. 네가 이런 식으로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이 아홉 번 남았다. 그 순간만 견뎌 내라. 이게 너의 첫 번째 선택지.”
그는 니아에게 견디라고 말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녀가 겪었던 고통이 견딜 만한 것인 것처럼. 참으면 참아지는 것처럼.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몸에서 무언가 사라지는 고통은 싫었다.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무조건, 무조건 다른 선택지를…….
“다른 선택이라면…….”
“너를 가둬 둔 채 십 년간 네 몸에서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꺼내 쓰겠다. 이런 식으로 도망치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겠지. 이게 두 번째 선택지다.”
“…….”
“네가 선택하는 거다.”
“…….”
“첫 번째를 선택한다면, 이 약을 먹거라. 편히 잠들게 도와줄 거다.”
“…….”
“두 번째를 선택한다면, 그 순간 지하 방에 가두고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
“…….”
니아는 공작이 내민 손에 담겨 있는 약을 봤다. 요 며칠간 약 때문에 제정신이었던 적이 없었다. 몽롱함 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 내가 나인 것 같지 않은 기분. 아마 그가 내민 약도 그런 것이리라.
그는 답을 알고 말한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번호를 붙여 말했지만 실상은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진 것에 불과했다.
아니, 그는 협박을 한 것이다. 도망치려고 한다면, 니아를 가두고 짐승처럼 대하겠다는…….
‘나는…… 아프지 않을 수가 없구나.’
니아가 답하지 않자 공작은 말을 덧붙였다.
“네가 잘 선택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 그게 무엇이든지. 모든 것이 잘 끝난다면, 네게 자유도 약속하겠…….”
“누구를 위해서요?”
갑작스러운 니아의 질문에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쿠아란 공작의 얼굴이 움찔했다.
“…….”
“누구를 위해서 제가 그렇게나 오래 아파야 하나요?”
니아의 녹색 눈이 공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쿠렐 쿠아란은 이 어린 소녀에게 모든 것을 들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색 눈동자. 괴물인데, 괴물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죄가 없어 보이는 눈동자…….
몇 번의 침묵이 되풀이되고, 쿠렐 쿠아란이 얼어붙은 것 같았던 입술을 떼었다.
“……저주받은 내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말을 끝마치고 쿠렐은 고개를 돌렸다. 잡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니아는 여전히 그에 손에 들린 약을 바라보았다.
‘난 갈 곳이 없어. 결국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잘 선택했다.”
쿠렐 쿠아란이 약을 낚아채 입으로 넣는 니아를 보고 말했다.
“말해 둘 것이 있다. 첫째, 넌 이곳에서 하녀가 되는 거다. 일은 시키지 않겠다. 하나 이곳에서 지내려면 명분이 필요하겠지.”
“…….”
“둘째. 넌 병에 걸린 거다. 하인들에게 그리 일러둘 테니 그들과 가까이 지내지 마라.”
“…….”
“셋째, 이 집에서 도망칠 마음 같은 것은 접어라. 어차피 매 순간, 매초 너를 감시하는 자가 있을 테니.”
“…….”
“마지막으로. 내 아들 눈에 띄지 마라. 네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게 숨어라.”
“…….”
“대답.”
“……알겠습니다.”
“잘했다. 이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하거라. 들어주겠다.”
공작의 말에 생각을 하려는데, 또다시 약이 니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감기는 눈과 흐릿해지는 시야.
그 순간 어떤 풍경이 니아의 머리를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니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십 년 뒤에, 다 끝나고, 작은 마을에서 기사와 결혼하게, 도와주세요…….”
말을 끝마치고 눈을 감았다.
그 후 니아가 기억하는 것은, 공작이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린 말뿐이었다.
“저 괴물이 두 번 다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해.”
어쩌면 니아는…… 그 말에 조금 아팠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