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70. 에필로그 이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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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에필로그 이상혁
[19년_05월_11일_토요일]
[06:00]
동이 트는 바닷가를 바라보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아주 작고 사소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놓인다.
이건 무기력해진다거나, 울적해진다거나. 라는 식의 감상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쓸데없는 부담감 같은 걸 떨쳐낼 수 있어서 좋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 세상의 주인공처럼 살아왔으니까.
“도대체 아빠는 이걸 어떻게 끊은 거야?”
멀찍이서 담배에 불을 붙이던 처남이 아니다, 그래도 역시 이건 어색하네.
멀찍이서 담배에 불을 붙이던 윤태가 고개를 빼쭉 내밀며 물었고,
“뭐, 담배 피우다 죽거나, 네 엄마랑 누나한테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내 옆에 앉아 있던 아버님이 밤을 새워 까칠해진 턱 주변을 매만지다,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정말이지, 어울려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그림이다.
방파제 위에 모여 낚시를 즐기는 세 사람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겠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문제는 나도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뭐, 오늘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이상, 지난날을 돌아보려 할 필요는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구태여 설명을 해야 한다면, 어디선가 내 인생을 지켜봐 온 누군가가 있다면.
가장 먼저 전해야 할 사람은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조금 정도는 괜찮겠지.
내 인생은 현지를 놓아준 뒤, 어느 대학 병원 중환자실에서 이어졌다.
여차여차 목숨을 건졌지만, 약 5개월 정도를 더 입원해있어야 할 정도로 중상인 상태였다.
당시의 내가 입원 중에 고민한 건, 단 두 가지뿐이었다.
현지를 놓아준 순간부터 과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은 새롭게 펼쳐진 미래인 것인지.
당시의 나도,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도. 정답은 후자이길 바랄 뿐이다.
딸에게 사과하러 가야 하는데, 또다시 세상이 펼쳐진 거니까.
또다시 세상을 마주한 내가 해야 할 일은 딸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때는 현지를 사랑했던 내가 윤서를 사랑해도 괜찮은 걸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에 잠겨있으면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현지에게 미안할뿐더러,
가족을 되찾으려 했던 딸에게 사과할 일만 늘어나는 거니까.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윤서를 만나야 했다.
그렇게 재활치료까지 마치고 나니, 1년이란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1년 늦어진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 신입생으로 입학한 윤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 윤서랑 애부터 낳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과거라고 해야 할지, 원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윤서랑 결혼했던 모양이니까.
거기에 정말 가깝게 지냈으니까.
그래서 쉽게 결혼까지 해낼 수 있으리라, 속된 말로, 금방 꼬실 수 있으리란 생각도 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첫 만남부터가 문제였다.
친해지기는커녕, 1학년 땐 스토커 취급을 받았던 기억뿐이다.
조금 서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던 날들이 지나가다 보니까, 오기 같은 게 들기도 했고,
저도 모르게 윤서를 좋아하기 시작한 내 모습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만큼 요약했는데, 여기서 윤서 아버님에 대한 것까지 이어가면 대서사시가 될 테니까.
이건 나중에, 지금은 그저 오늘을 만끽하고 싶다.
“형도 독해. 결혼하자마자 애 갖고 싶다고 담배 끊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어느새 담배를 다 피우고 돌아온 윤태가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너도 결혼하면 알 거다.”
그토록 좋아했던 녀석이지만, 휴대폰 바탕화면에 담긴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 견딜 수 있었고,
“그리고 너무 늦어지기도 했으니까.”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지막하게 중얼대던 순간,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벌써 일어났어?”
[……. 응. 지금 낚시 중이야?]
“응, 응. 셋이 같이 있어.”
[저기……. 그, 굉장히 엄청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응? 무슨 일이야?”
[아니, 그게……. 조금 이상하다 싶어서 확인해 봤거든? 근데 두 개야…….]
“두 개? 뭐가?”
“왜? 누나가 뭐래?”
“잠, 잠시만, 두 개라고?”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의 아버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오빠, 이제부터 아빠]
“지금 당장 갈게! 기다려!”
▶▶▶ ▶▶▶
[10:30]
무슨 생각을 하면서 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운전할 자신은 없고 윤태한테 시키긴 불안해서, 그래서 아버님께 운전을 부탁했다.
아니다, 역시 4시간 거리를 운전시켰다는 점은 확실히 신경 쓰이네. 나중에 사과드려야겠지.
아니, 아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
신혼집 현관문을 마주한 지 몇 초도 지나질 않았는데, 이곳에 수 시간은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비밀번호를 누를 자신도,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도 없었다.
“얼른 들어가. 윤태랑 점심 먹고 놀러 올 테니까.”
“네…!”
아버님이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곤 윤태를 데리고 돌아서 주셨다.
어깨가 무겁다는 건, 이런 뜻이었을까.
“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저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뜨며 집으로 들어섰다.
“에? 뭐, 뭐야! 어떻게 벌써 왔어…?”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작정 아내에게 뛰쳐 갔다.
그리고 곧장 바닥에 주저앉아, 아내의 배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너무 늦었다…….”
“그렇게 좋아? 잠, 잠시만…! 오빠 울어…?”
“8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고…….”
“저기요…? 8년 전이면 신입생 시절인데……. 그럼 그때부터 날 임신시키고 싶었다, 이런 뜻?”
지극히 당연한 걸 물어보는 아내를 올려다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딸이 있을 장소를 끌어안았다.
“어떡해……. 우리 아들도 이런 변태는 아니어야 할 텐데…….”
“딸이야. 그리고 당신을 무척 닮았어.”
“……. 아들이거든!”
“아니야, 딸이야. 이름도 정해져 있어.”
“……. 벌써 이름을요? 태명도 안 정했는데…?”
“응. 유진이야. 이유진.”
“와…! 우리 딸은 4주 만에 이름도 생겼네!”
“당신도 유진이라 불러, 유진이도 그렇게 불러주길 바랄 거라고.”
그렇게 확신하며 대답하는 순간, 아내의 배에서 묘한 울림 같은 게 느껴졌다.
“잠, 잠시만! 방금 발로 찬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없잖아! 방금 아침 먹어서 그래……. 하, 유진아 너 어떡하니? 아빠는 울보에 바보인 모양이야…….”
“……. 우리 산부인과부터 가자. 가서 초음파사진 찍자.”
“저기요, 진짜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바보 아빠 씨! 자꾸 그러면 엄마가 질투할 것 같은데?”
“몰라, 몰라. 사랑해 윤서야. 정말, 정말 사랑해.”
“풉, 오늘 진짜 귀엽네. 뭐, 난 오빠보단 조금이지만……. 나도 이상혁 사랑해!”
너무 오래 걸렸네.
네 엄마 마음을 얻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그래도 네가 돌아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그동안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들려줄 게.
아니다, 아빠한테 반할지도 모르니까, 몇몇 로맨틱한 장면은 빼는 게 좋으려나.
아, 그리고 이건 비밀로 하려 했는데……. 단번에 안 오면 오빠랑 언니가 열 명씩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조심해서 와. 네 엄마랑 손잡고 기다리고 있을게.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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