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69화 (69/76)

〈 69화 〉 #69. 에필로그 ­ 김현지

* * *

#69. 에필로그 ­ 김현지

[19년_05월_06일_월요일]

[13:00]

어린이날이 지나자, 여름을 알리는 밝은 햇빛이 온 거리를 내리쬈다.

푸른 하늘을 손으로 반쯤 가리고 올려다보면, 하얀 뭉게구름이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선선하게 불어온 그것이 한층 얇아진 옷가지에 기분 좋게 스며들었고,

“기분 좋은 날씨네…….”

그렇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말을 걸어왔다.

“벌써 여름이네. 조금 더운 것 같기도 하고.”

아빠는 이미 웃옷을 한쪽 팔에 걸어뒀으면서, 셔츠 앞섶을 펄럭대며 열을 식혔고,

“오……. 저기 잠시 들렸다, 가자.”

엄마는 내리쬐는 햇볕이 신경 쓰였는데 마침 잘 됐다는 듯, 마침 앞에 차려진 양산 가게로 향했다.

50대가 훌쩍 넘었어도 여자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방심은 금물인 걸까나.

“이건 어때?”

“응? 아, 괜찮네.”

“아빠, 사랑하는 여자가 분홍색 벚꽃 아래로 숨었는데, 반응이 너무 짧잖아.”

“네 아빠가 그렇지 뭐…….”

“……. 예…쁘네. 방금 고른 그게 예쁘다는 거야.”

“그렇구나? 그럼 이건?”

“그건 별로. 근데 갑자기 웬 우산? 오늘 비 온다고 했어?”

“…….” / “…….”

나와 엄마는 멍하니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동시에 진심이냐는 표정을 짓고 아빠를 바라봤다.

“왜? 비 온대?”

아빠는 무엇이 잘못되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심으로 물어본 모양이다.

“우산이 아니라 양산이잖아!”

“아……. 그거나, 그거나­”

“달라!”

“큭큭.”

양산 하나 고르는데도 이렇게 티격태격인 가족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낯부끄럽게 느껴져도, 셋의 입가엔 미소만 그려져 있었다.

“저기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아, 아!”

아빠는 엄마에게 등 짝을 한 대 맞고 나선, 뒤로 살짝 물러서 씩 하고 웃어 보였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한테 늘 이런 표정을 짓는 걸까. 바보 같아.

“……. 그래서 아빠, 우리 오늘 어디 가는 거야?”

“아, 며칠 전에 신문에서 재밌는 칼럼을 읽었단 말이지? 거기서 적혀있던 곳을 가볼까 싶어서.”

“음?”

“뻔하지.”

엄마는 양산을 고르면서도, 아빠를 놀릴 순간만큼은 놓치지 않았는지, 잠시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24시간 해장국집, 혹은 기사 식당.”

“……. 아니거든. 그래서 도대체 언제까지 고르려는 건데.”

“이것도 못 기다려…? 어휴, 내 팔자가 그렇지 뭐. 가자, 가.”

마음에 드는 무늬를 찾지 못한 거면서, 엄마는 괜히 아빠 탓을 하며 가게에서 돌아섰다.

“큭큭, 아빠 잔뜩 이용당했네.”

“응?”

“딸, 남자는 요즘 애들도 이렇게 둔해?”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 대리님이 둔해도, 너무 둔해요. 답답한 것까진 아닌데, 그래도! 남자는 왜 다 이 모양이죠?’

맞아. 회사 선배한테 반해서, 속앓이 중인 유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큭큭, 며칠 전에 유나도 엄마랑 비슷한 말 했는데. 그래도, 그런 둔하면서도 상냥한 모습이 좋은 거 아니야?”

“흠……. 뭐, 나쁘진 않지. 써먹기 편하니까.”

“……. 가장의 어깨는 언제나 무겁네.”

“뭐래.” / “알았어, 아빠 최고!”

▶▶▶ ▶▶▶

[13:30]

“……. 아빠가 말한 곳이 여기였구나.”

9년 넘게 지났으면 잊을 만도 했는데, 이런 장소를 다시 오게 되면 어쩔 수 없잖아.

“도자기 전시회? 당신 이런 취미는 없었잖아.”

“일단 들어가 보자고. 그 소설가가 어떤 기분을 느낀 건지 알아보고 싶어.”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는데?”

“뭐랄까……. 전시회를 보고 나서 말해야 좋을 것 같아. 내용이 엄청나게 철학적이었거든.”

“뭐, 나쁘지 않네. 그나저나 현지는 왜 그렇게 멍해?”

“……. 아, 아니야. 들어가자.”

이것도 우연일까. 이곳은 상혁과 함께 우연히 오게 되었던 전시회장이다.

거기에 신문에 철학적인 분위기의 칼럼을 쓰는 소설가라면, 지구 상엔 그 남자뿐이지 않을까.

그의 얼굴이 떠오르려 했다.

아니, 이미 떠올라있었다. 전부 잊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 될 테니까.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저어, 그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이따금, 그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게 되었다.

‘전시회는 데이트코스가 아닌 걸까?’

……

‘보이는 것은 원하고 바라는 만큼 정해지니까.’

‘사람마다 다르다는 거구나.’

‘자기가 바라는 대로 결정하면 그만이라 생각해.’

그때 내가 눈으로 바라봤던 것도, 마음으로 바랐던 것까지 전부 알고 있었구나.

“바보……. 너무 섬세하잖아.”

나란히 걷는 엄마와 아빠 사이로 달려드는 내 모습까지.

너는 내게 세상에서 제일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펼쳐줬으니까.

미안해. 언제까지나 소중히 만끽할게.

“엄마, 아빠! 같이 가!”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