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8. 마지막 과거(2) 낙화하는 사랑, 개화하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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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마지막 과거(2) 낙화하는 사랑, 개화하는 내일
[18년_11월_29일_목요일]
[19:12]
내가 없었던 과거를 바라는 것처럼, 내가 아닌 과거를 그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그가 살아갈 새로운 미래는 비가 갠 뒤의 하늘처럼 화창한 날들만 펼쳐질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먹구름처럼 어두운 존재가 되는 게 정말 싫었다.
나라는 얼룩이 사라지고 나서야 밝아질 그의 내일이 정말 미웠다.
그래서 사라져주려 했는데, 네게서 영영 도망치려 했는데.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이런 생각이 전부 틀렸다는 과거를 그려내고 있었다.
다만, 그런 사랑을 너무 뒤늦게 알아차렸다.
나는 사라지려는 기억, 마지막이 되려 하는 서로의 추억을 힘겹게 떠올려냈다.
‘현지야.’
상혁이는 항상 웃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봄을 피우는 아지랑이처럼 따스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내 마음에 화답해주듯이.
정말 밝게, 내가 바랐던 봄에 피어날 이름 모를 노란색 꽃처럼 예쁜 모습만 보여줬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망가트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는 진실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건 나를 사랑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보인 표정이,
‘그래도 역시,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지금 내 마음보다 슬픈 색을 띠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어째서였을까.
상혁이는 나 하나만을 바라봐줬는데, 그런 마음을 어째서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내가 바랐던 건 그와 살아갈 미래뿐이었는데,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어댈 뿐이었던 마음은 어떤 답도 내놓질 못했지만,
끝도 없이 늘어지던 반문의 끝자락에서 정답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깥에 쓰러져 있을 윤서의 모습, 내가 그녀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
“…….”
상혁이 살아왔던 행복한 미래를 망가트린 건 나니까.
그러니까 나는 제 목숨을 바쳐, 내가 살아갈 미래를 펼쳐주려는 바보 같은 남자를 붙잡아야 했다.
점점 흐릿해지는 기억이 시릴 자격조차 없는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래도 전부 되돌려야 했다.
“되돌려줘야 해…….”
“매듭을 짓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하지만 내겐 더 이상 추억이 담긴 물건이 없었다.
“당신에게도 마지막 기회는 있을 텐데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제가 살아갈 미래를 바쳐 과거로 향한 겁니다.’
그가 조금 전에 했던 말과 세 번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던 규칙까지도 떠올려낼 수 있었다.
내겐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 저도 상혁이처럼 제가 살아갈 미래를 바친다면, 그렇다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건가요…?”
“네, 그는 그런 선택을 바라지 않을 것 같지만요.”
가야 했다.
“후회는”
미안했다고 사과할 수 있으니까.
“갈게요, 지금 당장 가게 해주세요. 뭐든 할 테니까, 뭐든 바칠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과거로 보내주세요.”
여태까지 고마웠다며 웃어 줄 수 있으니까.
“……. 사랑은 시간을 초월할 수 있었다는 건가요. 하하, 알겠습니다. 뭐, 미래의 저도 각오를 다진 모양이었으니까.”
정말 행복했다고, 앞으로 행복해야 한다고 전할 수 있으니까.
“설명은 필요 없는 얼굴이군요. 그럼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나눴던 사랑은 내 마음속에 묻어둘 테니까.
그러니까 상혁아, 조금만 기다려 줘.
“괜찮을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까지 지켜볼 생각이니까.”
금방 갈 게. 전부 되돌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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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_11월_23일_월요일]
[19:07]
“현지야? 김현지! 야!”
“…….”
익숙한 손길이 내 어깨를 흔들어대는 탓에 어째선지 멍해졌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갑자기 멍해져서는……. 그리고 깜짝 놀랐잖아! 도대체 갑자기 어딜 갔다 온 거야? 아니, 분명 사라진 것 같았는데……. 그냥 눈이 침침했던 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봤다는 듯, 얼굴에서 멍한 표정을 지우질 못하는 친구의 목소리.
“유나야…?”
내 옆에 앉아있는 유나의 얼굴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려 했다.
“응? 아니, 그리고 갑자기 왜 그래! 상혁이가 뭐라고 했어?”
아니야, 아니야. 유나를 껴안을 시간이 아니잖아.
“상혁이는 어디야? 상혁이는?”
나는 유나를 놓아주며 의자에서 일어나, 사거리로 이어지는 시내 거리를 살펴보며 물었고,
“방금 갔잖아. 도대체 상혁이랑 무슨 말을 야, 야! 김현지!”
그런 대답을 듣자마자 두 발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유나가 사고에 휘말리지 않도록 적당한 설명을 던져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둘러야 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지금이 상혁이가 떠난 직후라면.
그렇다면 그를 막아설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희망을 머금고 달리는 나를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감싸왔다.
뒷걸음질뿐이었던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이 길이 밝게 보이는 것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도.
전부 상혁이가 내게 펼쳐주고 싶었을 미래의 일부분이겠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지만, 당장은 이 길의 끝이 절망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만 머금었다.
상혁이 가려는 길을 걸어본 적 있어서, 그 길이 어둡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래서 미친 듯이 달렸다.
엄마랑 아빠를 되살릴 수 없을지라도, 그를 막아서야 했다.
더는, 그가 살아갈 미래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허약한 체력에, 점점 느려지는 두 발에 채찍질할 여유도 없는 건,
점점 사거리에 가까워지는데, 그런데도 상혁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 탓이었다.
“안 돼…! 안 된다고…!”
바보야.
네가 이렇게 죽으면, 그러면 내가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냐고.
어떻게 그래, 이 바보 멍청아.
정말 마지막까지 바보 같아.
미안해. 그런 모습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
놓아주고 싶지 않아, 꼭 붙잡고 싶어. 하지만 견딜 거야.
고마웠으니까. 정말 소중한 마음을 받았으니까.
네가 내게 펼쳐주고 싶었던 내일을 받아들일 거야.
그러니까 이제 너는 네가 살아갔던 내일로 돌아갈 차례야.
아직 아무 말도 전하질 못했는데, 어째서 나타나 주질 않는 거야.
행복했다고, 정말 행복했다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눈물을 흘려댈 만큼, 가슴 벅차게 행복했다고 바보 멍청아.
남은 마음은 가슴에 묻어둘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제발 내 앞에 나타나 줘.
“하윽……. 하윽…!”
사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두려움에 감기던 눈은 어느새 질끈 감긴 상태였고,
“꺅!”
최악의 상황을 알려주는 비명에 그런 눈을 힘겹게 떠냈을 땐,
“상혁아…!”
이번에도 늦어버렸다.
상혁은 버스에 치여, 내가 마주한 도로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다 왔는데, 어째서, 어째서.
“안 돼, 안 돼!”
가장 바라지 않았던 장면을 눈에 담은 탓이었을까.
느려진 것 같은 세상에서도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던 두 발을 접질려 버렸다.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넘어지는 와중에도, 상혁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는 강한 충격 탓에 바닥에 떨어지고서도 이곳까지 한참을 밀려오고 있었지만,
“하윽…!”
그런 그를 집어삼키려는 버스만큼은 멈춰 서질 않았다.
구해야 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망가진 다리가 바닥을 헛발질해댔기에, 아스팔트 도로를 손톱으로 잡아당기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상혁에게 다가갔지만, 버스가 너무 가까워져 있었기에.
그렇기에 옮기는 걸 포기하고, 버스에게서 그를 지켜내듯 서 봤지만, 이마저도 무리였다.
실패를 직감하자마자, 곧장 몸을 숙여 상혁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네가 펼쳐준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이곳에 왔는데, 결국은 전부 놓쳐버렸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시간이 없는 것 같아.
어떡해, 어떡해. 하면 안 되는데, 정말 다짐했는데.
이번만, 정말 마지막이니까.
사랑해, 정말 사랑했어.
“……. ○○○○ ○○○.”
이상하다는 마음을 품을 차례가 아니었다.
“하하, 저도 나름 마지막 장면인데, 꽤 낯부끄러운 연출을 했군요.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할 여유도 없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이 버스에 치이는 소리라고 하기엔 조금 특이한 언어처럼 들려왔기에.
드디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을 품을 수 있었고, 그땐 그저 내 심장의 고동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걸까.
그런 것들까지 파악하고 나서야 상혁의 몸에 귀를 기울였고, 그에게서 나와 똑같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어…!”
어떻게 된 것일까 생각하며 고개를 뒤로 돌리자,
“…….”
밝은 빛이 나는 잔상에 막혀, 제자리에 멈춰선 버스가 눈에 담겼다.
노인의 능력이 분명했다.
잠시나마 주변을 살펴봤지만,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을뿐더러, 상혁의 상태부터 확인해야 했다.
“상혁아, 상혁아…!”
한눈에 봐도 상처투성이인 대다가, 입과 코를 포함한 곳곳에서도 피를 흘려대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절실한 마음을 머금은 건지, 입 밖에 소리 낸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다급했다.
하지만 주머니를 뒤져봐도, 휴대폰을 찾을 수 없었기에.
넘어졌을 때 떨어트린 것이길 바라며 고개를 돌렸고,
“현지야!” / “딸!”
그리웠던 목소리가 귓가만이 아닌, 온몸에 느껴졌다.
“…….”
그런 탓에 다시 한번 고개를 돌리자, 내게 달려오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상혁이가, 상혁이가…!”
“하, 네가 왜 여기 있는”
“여보 잠시만! 현지야 그 애는…?”
“빨리, 빨리…! 병원부터 가야 해…!”
내가 놓친 게 아니라며, 그래놓고 이런 모습 보이면 어떡해.
네가 없을 미래지만, 네가 펼쳐준 미래니까.
그러니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약속할게.
그러니까 제발, 기껏 놓아주겠다는데, 바보처럼 누워있지 말라고.
얼른 일어나서 작별 인사해줘야지,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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