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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바꾸는 방법-55화 (55/76)

〈 55화 〉 #55. 그녀의 과거(2) ­ 텅 빈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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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그녀의 과거(2) ­ 텅 빈 인형

[09년_11월_30일_월요일]

[12:00]

자신을 떠난 이들이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허망한 욕심이 있었기에.

그런 욕심을 붙잡은 두 손에 무엇도 놓아주지 않겠다는 과도한 미련이 있었기에.

현지는 제게만 배타적이었던 세상을, 끝없이 반복되는 시린 계절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을 견디고 견뎌 다시 마주한 그날의 마지막 페이지.

그곳에서 다시 한번 모든 인연이 끊어졌다.

저도 모르는 곳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이제는 눈앞에서 놓쳐버린 것이었다.

그게 현지가 과거에 일으킨 첫 번째 변화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언제부터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소중한 사람들을 놓아주지 못한 마음부터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현지는 제 마음에 긁어 물을 뿐이었다.

­ 왜?

누군가 정답을 알려줄 때까지. 계속해서, 아주 세게 긁어 물을 뿐이었다.

­ 왜…?

다만, 주변엔 누구도 남아있질 않았기에.

발밑에 쌓여가던 부스럼은 찢어진 마음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절망에 적셔졌고,

그렇게 두 번 다시 빠져나올 수 없을 절망의 늪이 만들어졌다.

또다시 저를 떠난 희망을 붙잡고 싶을 것이었다.

절망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현지가 모든 걸 놓친 손을 뻗어봤지만, 그녀의 손을 잡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늪 위에 남겨진 김현지라는 이름의 속이 텅 빈 인형이 현지의 손을 짓밟고 서 있을 뿐이었다.

욕심과 미련마저 잃게 된 현지가 돌아갈 장소마저 빼앗긴 것이었다.

그런데도 과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처럼.

반쯤 가려진 커튼 아래로 공허한 얼굴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꽤 긴 시간이 될 것 같군요.’

09년 11월 23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적힌 일기장이 또다시 과거를 펼쳐준 것이었다.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인형의 두 눈에 창밖의 화창한 풍경이 담겼고,

“….”

굳어버린 입으론 그런 현실을 부정하는 목소리마저 흘려낼 수 없었다.

주변 가득한 외로운 분위기가, 그 익숙한 감각이 인형을 목을 옭아맬 뿐이었다.

­ 이제 그만….

그런데도 인형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 싫어….

제게만 잿빛으로 보일 창밖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

[10년_01월_01일_금요일]

[00:00]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왔던 하루가, 마주하고 싶지 않을 악몽 같은 과거가 계속해서 펼쳐졌다.

다만, 책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건 현지가 아니었다.

“….”

속이 텅 빈 인형이었다.

인형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나타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는 순간, 새해를 맞이한 오늘이 되어서야.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것마저 느끼지 못했을 인형의 몸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영원히 굳어있을 것만 같았던 고개가 굳게 닫힌 방문으로 틀어진 것이었다.

새해가 가져온 신년 선물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일기장에 적혔던 소원이 이제야 이뤄지려는 것이었을까.

인형의 귓가엔 아무도 없을 거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신년 계획을 타이르고 있었다.

“엄마…?”

거기에 풀이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도와달라는 것처럼, 현지라는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

전부 돌아온 것일까.

새해가 되면 전부 고치겠다고 약속하며 빌었던 소원이 드디어 이뤄진 것이었을까.

일어나야 했다.

당장 마주해야 했다.

생기를 잃었던 인형의 두 눈에 달빛이 차올랐다.

무엇도 담을 수 없었던 마음속에도 무엇인가가 차오르려 할 것이었다.

인형은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어 거실로 향했다.

“아….”

푸르스름한 달빛이 거실을 밝히고 있었다.

짙은 고요함만이 감도는 이곳에선 누구도 마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절망에 잠겨있던 마음이 이곳에 신기루 같은 소원을 그려낸 것이었을까.

“엄마…? 아빠…?”

인형의 두 눈에 도대체 어떤 장면이 펼쳐진 것이었을까.

“몰라, 몰라, 몰라…! 아빠가 제일 미워,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제야 돌아온 건데…!”

인형이 허공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데이트하고 온다고 했잖아…! 먹고 싶은 거 알려달라고 했잖아…!”

아니, 현지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무서웠다고… 정말 무서웠단 말이야….”

그토록 바랐던 계절을 그려내고, 전부 돌아온 것이라 믿게 된 것이었다.

“응, 응… 안 다쳤어…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인형은 아버지의 옷자락이라는 허공을 붙잡고 그곳에 눈물을 닦으며 그리움을 전했다.

“그리고 다친 건… 어…?”

이어서 예상치 못한 훈계라도 들려왔다는 듯이 당황한 얼굴로,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병문안… 응, 가야지….”

유나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이 부모님의 입이라는 허상을 통해 들려온 것이었다.

인형은 눈물이 멈추질 못하는 눈가를 닦아대다,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알겠어. 다녀올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변화가 일어난 과거가 새로운 미래를 펼치려는 안타까운 순간,

“이것 하나만 약속해… 두 번 다시 사라지지 않겠다고….”

절망의 늪에 서 있던 인형의 마음속으로, 그 아래 잠겨있던 현지의 미련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 ▶▶▶

[10년_01월_01일_금요일]

[02:00]

허리까지 내려왔던 긴 생머리는 조금 삐뚤빼뚤한 단발로 잘려있었고,

“여기에 있겠지…?”

앳된 얼굴엔 익숙한 화장이 아닌, 간단한 피부화장이 덧칠해져 있었다.

현지가 이름만 들었던 병원, 관절 기관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의 입원 병동 앞에 도착한 것이었다.

다만, 이곳은 응급의료센터가 있는 병원이 아니었기에.

“어떡하지….”

현지는 굳게 잠긴 병동 입구를 서성일 뿐이었고, 그런 순간이었다.

­ 바보, 늦었잖아.

“에…?”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는 듯, 현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푸른 달빛이 걸린 나무 아래, 그곳에선 교복 차림의 유나가 손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유, 유나야…?”

­ 상혁이 병문안 온 거야?

정말 보고 싶었을 테지만, 현지는 고개를 숙이며 친구에게서 눈을 떼려 했다.

부모님과 저울질했던, 그로 인해 차선으로 미뤘던 선택이 떠오른 탓에, 바라보는 것마저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 어쩔 수 없나….

“….”

­ 정말 괜찮은데 말이지….

그리고 유나는 자신을 바라봐주질 못하는 현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 그래도 다신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라도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미안해… 내가….”

­ 바보. 그냥 가야겠다, 현지 또 울겠네. 상혁이 저 안쪽에 있으니까, 얼른 가 봐.

고개를 들어야 했다.

죄책감이 아닌,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 했다.

­ 힘내야 해.

“유나야…!”

한참을 망설이던 현지가 고개를 들어 유나를 마주하려 했지만,

“….”

그녀가 서 있던 나무 아래엔, 쌀쌀한 겨울바람만 휘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지는 이곳에 유나가 있었었다는 것처럼,

“응, 응…! 힘낼 게…!”

그녀가 지었을 밝은 미소를 따라 짓고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소중한 친구가 등을 밀어준 탓이었을까.

무너질 수조차 없게 된 현지가 모자챙을 눌러, 붉어진 눈가를 가리며 병원 뒤편으로 향했고,

그렇게 도착한 병원 뒤편에서 노란 달빛을 머금은 남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혁이었다.

“….”

다만, 곧바로 말을 걸 자신까지는 없었던 것인지.

현지는 상혁의 뒷모습과 제 발치를 바라보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리고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상혁이 고개를 돌려, 달빛에 그늘진 뒤편에 주춤거리며 입을 열었다.

“누구… 계신가요?”

“…아?”

“아, 담배 피우러 오셨­ 죄송합니다.”

“아, 그, 저, 저기…! 그, 몸은 괜찮아…?”

상혁이 열어준 대화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을 현지가 다급히 묻자,

상혁은 갑작스럽게 날아든 걱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아, 네… 곧 입학식인데, 그 전까지는 나을 것 같다네요. 근데 누구­”

“다, 다행이다… 그, 한, 한국대학교 맞지…?”

“…잠시만, 혹시 내 친구야?”

“어? 어, 그게….”

“미안, 내가 교통사고 때문에 머리를 다쳤거든.”

“에…?”

“크게 문제 있는 건 아니고,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더라.”

상혁이 기억을 잃었다는 건, 서로에게 최악이었을 첫 번째 만남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었을까.

“평범하게… 평범하게 시작할 수 있어…?”

작게 중얼거리던 현지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표정을 짓고,

“저기 근데… 그쪽 어두워서­ 아, 내가 가면 되겠구나.”

제게 다가오려는 상혁에게서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미, 미안… 이만 가볼게…!”

“응? 자, 잠시만! 너 이름은 뭔데!”

미처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친구의 뒷모습.

병원 정문 쪽으로 뛰쳐 가는 현지의 뒷모습이 언젠가 두 눈에 담겼던 장면과 똑같았지만,

상처뿐인 마음이 피워낸 안개가 그날의 기억을 흐릿하게 했기에.

“윽….”

상혁은 묘한 이질감이 느껴질 머리로 두통만 호소할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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