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49화 (49/76)

〈 49화 〉 #49. 일기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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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일기장(2)

[09년_11월_23일_월요일]

[12:15]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하굣길.

조금 이른 시간에 펼쳐진 이 길에 언뜻 보기에도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 두 여학생이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다정한 모습에서도 제각기인 성격을 살펴볼 수 있기 마련.

“아니, 소개받은 일주일 동안 문자만 나눴다는 게 말이냐니까!”

명찰에 한유나라는 이름이 적힌 소녀는 제 친구의 행동이 답답하다는 듯,

“괜한 말 했다가 소극적이게 될까 싶어서 괜한 참견 안 하려 했더니… 아니, 평일은 그렇다 쳐, 어떻게 주말도 그냥 넘어가냐고!”

친구의 옆모습을 노려보며 귀엽게 투덜거렸고,

“조금씩 전화도 했다니까….”

명찰에 김현지라는 이름이 적힌 소녀는 그런 반응에 머쓱하지만, 그래도 즐겁다는 듯,

“그리고 주말엔 연락 엄청 많이 했어. 꽤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고.”

친구의 따가운 시선에 되려,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뭐…? 가까워진 것 같아…?”

“응, 독서 좋아한다더라. 아직 얼굴도 모르긴 하지만, 성격 좋은 사람인­”

“뭐, 뭐? 얼굴을 몰라? 잠시만, 아… 걔 프로필 사진 설정 안 해놨던­ 아니, 아니! 이 바보야! 그럼 그게 뭐가 가까워진 거야! 얼굴도 모르는데!”

“그게 왜…?”

“하… 거기서 왜가 왜 나와….”

“….”

“…그래, 내가 우리 현지한테 너무 어려운 숙제를 내준 거였어.”

이대로 가다간 저대로 끝날 관계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일까.

유나는 무엇인가를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현지를 바라봤지만,

“아… 그래도 문자에 열을 올리고 있기는 했나 봐. 일주일 째 일기 쓰는 것도 깜빡하고 있었지 뭐람.”

현지에게선 심적으로는 누구보다 바빴을 일주일에 대한 일기가 소감이라는 형태로 돌아올 뿐이었다.

“와, 일기를 안 썼구나! 그럼 이제 내가 오구오구 잘했어요, 이렇게 칭찬해줄 차례야?”

“…응.”

“악! 이건 또 왜 이러게 귀여운데!”

“하나도 아니거든….”

“아무튼, 그럭저럭 청신호는 켜진 것 같네?”

“청신호? 아니, 아직 그런 느낌까지는­”

저조차도 확신하지 못했을 감정이 오래된 친구의 눈에선 이미 한쪽으로 기울여진 것처럼 보였기에.

유나는 굳게 움켜쥔 두 손을 흔들어 보이다,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렇게 귀여운데, 신호는 쌍방으로 들어와야지…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야….”

“네…?”

“현지 너 오늘 저녁에 뭐 해? 약속 있어?”

“저녁? 음….”

언제까지나 평범하게 흘러갈 친구의 인생에 한 획을 그어보려는 특별한 계획.

그것을 진행하기 위해선 필수적이지만, 그렇기에 조금은 갑작스러웠을 질문.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현지는 점점 기울어지던 고개로 새하얀 뭉게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마주하고 나서야,

‘저녁 대충 먹어. 오늘 엄마랑 아빠 늦을 예정!’

‘…카드 두고 갈 테니까 뭐든 시켜 먹고, 아니면 아빠한테 전화해. 맛있는 거 사올 테니까.’

“응? 약속 있어? 뭐야, 누구야! 언년이야!”

“아…!”

아침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유나와 팔짱 낀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치며 말을 이었다.

“오늘 엄마랑 아빠 데이트하러 간다고 했거든. 그래서 저녁 혼자 먹어야 할 것 같아서.”

“…호오, 마침 잘됐네. 그럼 나 오늘 너희 집 가도 돼?”

“응, 같이 저녁 먹자. 아빠가 카드도 줬거든.”

“후후후… 그래, 우리 현지… 오늘 언니랑 아주 맛있는 저녁을 먹어 보자고….”

“피자랑 떡볶이 시킬까? 음… 뭐가 좋으려나.”

조금은 까맣게 보일 미소도, 그 속에 담긴 분홍빛 저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수한 모습.

그런 친구를 골려주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기에.

“됐고, 내가 요즘 너 문자 답장이 빨라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응?”

“요즘 온종일 휴대전화기를 붙들고 있다는 건데… 그건 아마도 누구누구 씨랑 연락하는 게 기대되고 즐거워서겠지?”

유나는 현지를 골리듯, 그녀가 부끄러워할 법한 운을 띄우며 앞으로 뛰쳐 가기 시작했고,

“아, 아니라니까…!”

짧게 반박하며 입술만 오므려볼 뿐이었던 현지도 점점 멀어지는 친구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풋. 아, 아니라니까! 우리 현지 수줍다, 수줍어!”

“야! 한유나!”

그건 청순한 여학생들이라는 말로는 아쉬울, 누구에게나 사랑스럽게 보일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 ▶▶▶

[18:15]

소녀에서 여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

“자, 윤희 쌤한테 배웠던 거 기억하고 있어?”

“음… 우리는 어리니까, 과한 화장보다는 간단한 피부화장이 가장 어울릴 때라고 하셨지?”

“좋아, 그럼 간단한 피부화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유분과 수분을 잡는다…?”

“정답입니다!”

현지와 유나가 옷장 옆에 놓인 전신 거울 앞에서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을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가르침이라는 부분은 스승이 모르는, 제자들이 멋대로 정한 부분일 테지만 말이다.

“세수하고 왔으니까, 스킨이랑 수분크림 바르면 되나…?”

“평소처럼 벅벅 바르지 말고, 오늘은 곱게 펴 바른다는 느낌으로 해봐.”

“응.”

이런 것이 필요 없을 젊음이란 미를 가졌다고 해도, 이건 순전히 자기만족의 영역.

민낯이 예쁘다는 말은 기분 좋게 들릴지라도, 그것이 삶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나이인 둘이었다.

“어때?”

“뭐야… 왜 벌써부터 예쁘고 난리야!”

잡티 하나 없이 투명한 얼굴에 윤기가 흐르자, 괜히 심술이라도 난다는 것처럼.

유나가 현지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대며 그녀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자신의 화장용 파우치를 열었다.

“나도 이것저것 사긴 해야겠지…? 저기 근데, 갑자기 화장은 왜 하는­”

“됐어, 됐어! 뭘 고맙기까지야!”

“응? 아, 고마워. 잘 쓸게…?”

계획이 이렇게까지 진행됐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것처럼 순진한 모습을 마주하면,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드리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기에.

유나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참아대며 대답했다.

“풉… 일단 선크림 바르자… 그리고 넌 잡티가 하나도 없으니까, 비비로 톤만 잡으면 될 테고….”

“아… 응. 음영이랑 색조는?”

“가만히 있어 봐. 음, 음영은 패스, 볼에 색조만 살짝 넣자. 되도록 수줍고, 청순하게.”

교실에서 스승이 해준 화장은 30분도 채 못 되어 지워졌기에.

현지에게는 이것이 사실상 인생 첫 화장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현지는 별다른 걱정 없이, 거울을 바라보지 않고 유나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신용 받고 있다 해야 할지.

서로의 관계가 일방적인 친근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을 유나.

“후.”

그런 그녀가 길게 마신 숨을 짧게 내쉬며 화장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현지의 얼굴에 얇지만, 명확한 선이 있는 어른의 색이 덧칠해지기 시작했고,

“좋아… 하나도 안 뜨네, 오렌지랑 핑크… 음, 현지 너는 분홍색이 어울릴 것 같네.”

볼에는 마냥 어른의 색이라 하기엔, 수줍은 소녀의 모습도 엿볼 수 있는 발랄한 색까지 더해졌다.

“…자, 한 번 확인해 봐!”

“오! 이래서 화장을 하는 거구나.”

제 얼굴에 일어난 변화에 만족하지만, 그보다 유나의 실력에 감탄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일까.

현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얼굴을 확인하다, 유나의 손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언제 이렇게 배웠어? 진짜 금손이네.”

“…이제 절반 했거든?”

“네?”

“얼른 눈화장하자. 여기부터는 어려우니까, 섀도랑 아이라이너, 마스카라까지만. 간단하게 할 거야.”

“뭐랑 뭐…? 전혀 간단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눈 감아 봐, 서둘러야 하니까.”

이번에는 꾹 감긴 눈에 새로운 화장이 칠해졌고, 그런 순간이었다.

유나의 휴대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거 아니야? 받고 해도 되는데.”

“어, 어? 잠시만…!”

현지가 눈을 작게 뜨고 말하자, 발신인부터 확인한 유나가 다급히 전화를 받았고,

“일단 지금 바쁘니까, 도착하면 전화해.”

[아니, 이미 도착했­]

상대방의 대답을 분명히 들었지만, 애써 듣지 못한 척, 제 할 말만 빠르게 전하고 통화를 끊었다.

“…유나야?”

그리고 눈을 감고 있었어야 할 현지가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얼굴로 유나를 부르자,

그 커다란 이유를 깨닫지 못한 유나는 서투른 거짓말만 이어갈 뿐이었다.

“아니야, 이따 친구 만나기로 했거든.”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아이라인? 이게 조금 길어진 것 같은데….”

“어? 에?”

현지는 제 눈가에서 관자놀이로 이어지는 기다란 꼬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화장 제품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은 화장 기술이 부족한 유나가 이것을 지우기 위해선, 지금까지 해낸 모든 화장을 지우는 편이 가장 빠를 것이었다.

즉, 세수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꺅! 어떡해!”

현지에게는 발신인 불명인 남자.

그가 기다려야 할 시간이 갑작스럽게 늘어진 꼬리처럼 적잖이 길어지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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