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3. 이유진(1)
* * *
#43. 이유진(1)
[○○년_○○월_○○일_○요일]
[20:05]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17년을 살아오며 습득한 지식으로는 눈앞의 노인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뿐더러,
그런 지식을 떠올려보려는 사고방식마저 흐릿해진 탓에 표정은 점점 더 무감각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점점 잊혀져 사라질 존재가 되어가던 유진.
그런 그녀가 식탁에 놓인 세 쌍의 식기 도구들을 바라봤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고개만 살짝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할아버지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건가요….”
“네, 당신의 부모님이 앉아있었어요. 당신은 조금 전까지 그들과 식사 중이었고요.”
“부모님…?”
“뭐, 지금이라는 시간 선에 존재할 수 없는 이들이 되어버렸지만요.”
“존재할 수 없다… 모르겠어….”
이유진이라는 사람을 존재하게 만들어 준 부모님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이들이 되었을 때.
유진 또한, 과거로부터 지워진 지금이라는 세상과 함께 잊혀져 사라지려는 것이었다.
“당신은 인과를 거스르는 존재가 되었기에,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이 세상과 함께 잊혀질 겁니다.”
“….”
“지금이라는 미래가 존재할 수 없는 과거가 만들어졌으니, 애초부터 없었던 세상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런 복잡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인지.
유진은 문득, 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걸 깨달았다는 듯, 또다시 고개만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 이름…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흠….”
자신이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도, 그것이 교복이라는 것도, 하다못해 그곳에 달린 명찰 속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한 모습.
평범한 사고마저 잃어가기 시작한 그녀에게 이 세상에 벌어지려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것을 설명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지.
그런 막막한 문제가 노인을 생각하게 했고,
“어렵군요.”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이 고민에 잠기게 했다.
“죄 없는 소녀와 얼마 못 가 사라질 세상….”
유진은 죄 없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결론. 그것은 허튼 동정심 따위가 아닌,
“당신이 살아갈 세상을 지우려는 두 번의 사건이 과거에서 벌어졌으니… 그런 세상의 막을 내릴 마지막 사건이 당신의 손에 달리는 것쯤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도리가 되겠죠.”
이 모든 일이 과거의 자신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직감에서 비롯된 도리.
노인은 유진의 손에 마지막 기회를 쥐여주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갈 세상을 직접 마무리 짓는 기회일지라도 말이다.
“우선은… 그래, 자리를 옮기죠.”
그런 말과 동시였다.
노인이 제 무릎을 살짝 내려치자, 주방과 이어지던 거실의 풍경이 시계가 가득한 10평 남짓한 방으로 뒤바뀌었다.
“….”
물론,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한 유진의 얼굴은 이전과 변함없이 무미건조할 뿐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제는 짧게 중얼거리는 것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을까.
유진이 무기력하게 고개만 살짝 끄덕이자, 그런 모습에 조바심을 느낀 노인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인간은 시간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지만, 그건 편의를 위해서일 뿐입니다. 시간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어요.”
“하나의 선…?”
“이걸 조금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당신의 부모님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해야겠죠.”
“부모님…? 아, 엄마랑 아빠… 엄마랑 아빠…?”
“당신의 아버지가 과거를 바꾸고 있어요. 그리고 문제는 그게 아니라, 당신의 어머니가”
잊혀져 사라질 세상이 맞닥뜨린 문제를 설명하던 노인이 문득, 주변 가득한 시계들의 눈치를 살피다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상은 안 된다는 걸, 이 이상 개입하면 유진에게 한 번의 기회조차 쥐여줄 수 없게 된다는 직감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기에 노인은 괜한 설명 대신 텅 빈 모래시계를 꺼내 들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낳은 사랑의 결과, 그런 과거를 통해 만들어진 지금이라는 세상 그 자체입니다. 즉, 지금이라는 세상, 당신을 대가로 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닿아있던 과거로 향할 수 있겠죠.”
그가 할 수 있는 일, 그건 유진의 세상이 막을 내릴 장소를 안내하는 게 전부였다.
▶▶▶ ▶▶▶
[18년_02월_13일_화요일]
[16:45]
‘인간은 과거에서 변화를 두 번 일으키고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소멸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유진에게 주어진 기회는 자신의 소멸을 대가로 하는 마지막 한 번뿐이었다.
‘수많은 미래가 존재하지만, 과거를 살았던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수많은 미래가 소멸하죠.’
그건 부모님이 존재할 수 없게 됐다는 두 번의 변화 탓, 그리고 기회 또한 꽤 위태로운 상태였다.
‘당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되살릴 수 있을 때까지 미래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선 안 됩니다. 그게 당신의 세 번째 변화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유진의 아버지가 미래에 영향을 끼칠 변화를 일으킨다면, 그녀 또한 그대로 소멸하기에.
유진의 소멸을 대가로 하는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졌으면서, 그녀에게만 한 번뿐인 기회였다.
불합리하게도 말이다.
‘그러니까 당장은 사태 파악부터가 우선이에요.’
그렇게 지금, 유진은 낯설기만 할 뿐인 교실 창가 앞에 도착해있지만,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지금까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이건 잊혀져 사라질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닌, 당신의 부모님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날 당신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리고 억울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한 탓이었을까.
흐릿해지던 존재 또한 저 자신이라는 색감을 붙잡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불합리하네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옅어졌더라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미건조할지라도.
유진이 제 모습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있을 장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그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밝혀선 안 됩니다.’
“불합리해.”
‘당장은 조언과 길잡이 정도까지만, 당신이 변화를 일으켜선 안 됩니다.’
“불합리하다고.”
‘그리고 그런 조언으로 당신의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과거가 당신을 막아설 겁니다.’
“내가 왜 사라져야 해.”
‘앞으로 몇 번이나 향할 수 있을지, 과거에서 몇 분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
자신은 잊혀질지라도, 부모님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날 또 다른 자신을 위해.
제가 살던 시간 선이 아닌, 그들이 살아갈 새로운 시간 선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돕는다는 건,
아직 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진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상관없으려나.”
다만, 가혹한 현실 속에서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릴 수 없게 될 정도로 무뎌진 마음이었기에.
유진은 마음속에 차오른 알 수 없는 감정을 뒤로한 채 교실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래서 아빠가 어디에 있는데….”
그렇게 털털하면서도 착잡한 분위기의 걸음이 교문 밖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여느 때가 떠오른 건 아닐 테지만,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흘러가는 세상을 바라보던 유진.
그런 그녀가 교복 치마 주머니 속에 있던 주인 모를 휴대전화기를 꺼내,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려는 것과 동시였다.
한 남자가 유진을 지나쳐 교문 옆에 나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
머리는 이곳에 나타날 아빠를 기다리자며 자신을 말려 세웠을 테지만, 부모님께 물려받은 두 발은 행동부터 앞서게 한 것인지.
유진은 낯선 남자에게 홀린 것처럼, 그가 향한 골목길로 따라 들어섰다.
하지만 이 사람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어떤 호칭을 사용해야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인지.
유진이 그의 뒤편에 서서, 한참 동안 말을 걸지 못하며 주저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망설이기를 수십 초.
“저기요….”
흐릿한 색감으론 덧칠해진 과거를 마주할 수조차 없었기에.
유진은 이미 저 자신을 걸고 있는데도,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했다.
“저기요!”
유진의 목소리가 아주 크게 울렸고, 그것을 알아챈 남자가 고개를 돌려,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 왜?”
“….”
남자의 얼굴을 마주했다고 한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같은 건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여기 학교 앞이에요.”
“아.”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요.”
그렇기에 유진은 자신을 알아차려 달라는, 딸의 모습을 떠올려달라는 식으로 핀잔만 늘어놓았다.
“미안. 앞으론 조심할게.”
하지만 그 애절한 마음은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미약한 바람일 뿐이었기에.
“아무튼, 그럼 이만….”
남자는 유진에게 남에게나 대할 행색을 보이며 떠나갔고,
“하….”
그렇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기분마저 흐릿해졌던, 기억조차 사라졌던 유진이 처음으로 흘린 감정이었다.
“….”
흐릿한 마음에서 흐르는 감정이 분명하게 느껴진 것이었을까.
유진은 그 감정이 짜증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마음이 가리키는 남자를 믿어보겠다 결심한 것처럼.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이유진이기에 보일 수 있는, 딸이기에 전할 수 있는 익숙한 색감을 그에게 덧칠하기 시작했다.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