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2. 네 번째 과거(3) 잊혀진 기억, 잊혀질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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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네 번째 과거(3) 잊혀진 기억, 잊혀질 소녀
[15년_01월_17일_토요일]
[15:10]
두 사람의 인연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런 과거의 결말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테지만.
“자, 그럼 슬슬…!”
최소한 지금 당장이라는 순간만큼은 상혁의 겪었던 원래의 과거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현지는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짓고, 추위 탓에 물든 것이 아닌 두 볼을 만지작거리며 면회실을 나섰다.
물론, 바로 옆에 자리한 위병소 앞에서부턴 부끄러움이 차올라 우물쭈물하게 될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앳된 모습을 발견한 것인지, 위병소 안쪽에서 근무 중이던 간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을 열고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그… 혹시! 상혁이 잠시 면회실 밖으로… 잠시만 데려가도 될까요…? 멀리 가려는 건 아니고, 요 앞에서 할 거긴 한데….”
부탁이 두루뭉술하다는 것을 떠나, 목소리부터가 기어들어 갈 정도로 작았기에.
부탁을 제대로 듣지 못한 간부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다시 다시 한번 물었다.
“그,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나요?”
“제가…! 그, 상혁이한테 고, 고백을 하려고 하는데요…!”
“아? 아…!”
애초에 면회실이 영외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한 순수한 모습.
그리고 그와 비슷한 분위기로 시작될 고백을 멀리서라도 구경하고 싶어지는 건 누구에게나 당연할 일이었기에.
간부는 피식 웃고 싶었을 입가를 최대한 억누르며 대답했다.
“네, 근무자 시야에 잡힐 정도면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흔쾌히 허락을 받아낸 현지가 허리를 반쯤 숙여 감사를 전한 뒤,
떨리는 마음을 내색하듯, 면회실 앞까지 종종걸음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말했다.
“그, 우리 잠시만 나가자! 간부님 허락받았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런 용도로 쓰게 될 줄 몰랐을 테지만.
지금이 언젠가 연습했던 웃는 얼굴의 가면을 꺼내 들 차례였다.
그래야 만이, 새까맣게 물든 마음속에서 무너진 제 모습을 들키지 않을 것이었다.
“…응.”
그렇게 슬피 웃는 얼굴의 상혁이 무거운 발을 내디뎌, 현지를 따라 바깥으로 나섰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밝은, 이질적인 분위기의 햇빛 아래.
상혁의 군복 소매를 잡아당겨 걷던 현지가 크게 한 발짝 앞서나가, 상혁과 얼굴을 마주하게 섰다.
“음….”
어디서부터 전해야 할지.
어떻게 전해야 제 마음이 전부 전해질지.
현지는 상혁이 떠올리지 못할 저만의 과거를 되새기다, 꼼지락거리게 되는 양손을 허리 뒤에 가리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 너는 기억 못 할 테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전부터 널 알고 있었어.”
두근거리는 마음은 길바닥을 톡톡 두드리는 발끝이 대신 표현하고 있었고,
“하지만… 이제는 너를 처음 만난 순간이 중요하다 여기지 않아.”
“….”
“너와 함께 하는 오늘을 좋아하게 됐고, 너와 함께 할 내일을 기다리게 됐어.”
앞으로 전할 말에 수줍어진 마음은 상혁의 얼굴을 흘긋 대는 고개가 잘 표현하고 있었다.
“네가 없는 어제는 싫어, 떠올리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전할래… 있잖아…?”
그리고 이제는 선을 그어야 할 차례였다.
“…좋아”
“미안.”
상혁의 입에서 서로의 인연을 끊어내는 차갑고 짧은 대답이 전해졌다.
그것은 단호하게 내뱉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였던 대답.
“에…?”
그런 대답에 무너져내린 건, 현지의 마음만이 아니었다.
인과를 못 버티고 찢어지기 시작한 세상의 비명.
“윽…!”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굉음이 상혁의 귓가에서 터지듯 울려 퍼졌고, 그것은 나아가 상혁이 마주한 과거까지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그런 탓에 상혁은 바닥에 쓰러지듯 넘어져 고통을 견디느라 혼란스러웠을 테지만,
“안 돼….”
그런 와중에도 질끈 감긴 눈을 부릅뜨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이것이 서로의 마지막 순간이라면, 현지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에 담고 싶을 것이었다.
하지만 현지가 서 있던 바로 앞에선 강렬한 두통 따윈 잊게 할 정도로 괴리감만 느껴질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어…?”
묘한 현상을 마주한 상혁은 당황한 목소리를 흘리며, 그곳과 주변을 살폈다.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하늘 아래.
그런 세상 속에서 현지가 서 있어야 할 장소만이 흐릿해졌다 모여들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이내, 공간이 지워진 것처럼 사람 크기만 한 어두운 틈이 생겨났다.
“….”
그리고 제가 써 내린 과거의 결말을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던 것인지.
상혁은 만지면 빨려들어 갈 것처럼 어두운색의 틈을 겁도 없이 끌어안았고,
“이건… 현지야…?”
그와 동시에 누군가를 품에 안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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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_01월_18일_일요일]
[15:20]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정확히 하루라는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위치에 서서, 어두운 틈을 끌어안은 상혁인데도 말이다.
상혁은 제가 끌어안은 어두운 틈, 그곳에 남아있던 흐릿한 형체를 현지라 생각하며 마지막이 될 사과를 전했다.
“미안해… 이것 말곤 방법이 없었어….”
그리고 점점, 흐릿한 형체가 현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기에.
상혁은 마음 한쪽에서 피어오르는 의아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는 얼굴로, 흐릿한 형체를 놓아주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더는 못 숨겨.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
이상할 것이었다.
제겐 없는 기억이 떠오른다는 게 무서울 것이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흐릿한 형체는 낯설면서도 익숙할 이질적인 추억을 전하며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어두운 틈도 점점 모여들어 원래의 평범한 공간이 되었다.
“….”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을 테지만, 그런데도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저, 상혁은 어두운 틈 속에 있던 형체를 쫓아, 허공을 되뇌며 흐릿해진 하늘을, 비가 내리기 시작한 세상을 마주할 뿐이었다.
“아… 아아… 아….”
현지와의 인연을 놓아준 상혁의 마음이 무너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
교복 차림의 그녀는 제가 쥐고 있는 노트를 바라보다, 상혁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입을 열었다.
“봐, 역시 어울리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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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_○○월_○○일_○요일]
[20:00]
이제는 잊혀져 사라진 어느 날, 거실과 이어지는 주방 앞 식탁에 한 가족이 모여 앉아있다.
“딸, 고등학교는 어때? 아빠는 네가 여자 고등학교에 가길 바랐건만… 치근덕대는 남자애 있으면 말해. 아빠가”
“여보… 이제 로맨스 드라마 끊는 게 어떨까…? 조금 많이 이상해진 것 같은데… 유진아, 네가 봐도 좀 그렇지…?”
유진이라는 딸에게 서툰 애정을 표현하는 남자와 그런 남편이 바보 같다며 고개를 저어대는 여자.
“전부 엄마 탓이야….”
그리고 밥그릇에 담긴 쌀알을 하나씩 입안에 집어넣던, 교복 차림의 유진이 제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기죽을 필요 없어. 원래 모녀는 아빠를 놀리는 게 낙이거든.”
“풉, 이래 보여도 연상이고, 내 인생에 롤모델이었어. 엄마는 네 아빠 놀린 적 없거든!”
“가장은 힘든 법이네….”
“아빠 파이팅.”
화목하기 그지없을 가족의 모습.
다만, 그런 단란한 가족이라도 과거에서의 변화를 피해 갈 수는 없었기에.
“나는 아빠가 드라마 보면서 울 때는 있어도, 다른 아저씨들처럼 배는 안 나와서 좋 에…?”
유진이 제 아버지를 위로하듯 말하려 했지만, 바라본 그 자리는 어째선지 비어있었고,
“엄, 엄마…? 여기… 아빠”
그 옆자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진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
순수하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다, 이제는 멍해진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부모가 세상에서 사라졌기에 탄생부터가 모호해진 존재의 말로.
“나는….”
나지막이 의문을 가져봐도 정답을 알려줄 기억은 흐릿하기만 했고, 그런 순간이었다.
이렇게 잊혀져 사라지기 시작한 세상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
그런 사람이 유진이 눈 깜빡한 사이에 비어버린 맞은편 자리에 꿰차 앉아 그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그건 제법 화려한 등장이었는데도, 유진은 무기력한 질문을 건넬 뿐이었다.
그러자, 애초부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고 나타난 양복 차림의 노인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잊혀질 존재라… 참 오랜만이네요.”
“누구인지 모르겠어… 나 뭐 여기서 뭐 하는….”
“모르시겠죠. 본인조차도 본인을 잊기 시작했으니, 이 세상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고요.”
“그게… 무슨 말….”
“…당신이 존재할 세상이 사라질 정도로, 모두에게 잊혀질 정도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잊혀지기 시작한 소녀의 이야기,
“간단하게 말하면… 그래, 당신이 존재할 시간 선이 당신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에요.”
상혁이 마주해야 했던, 이제는 마주할 수 없게 된 미래에서 벌어진 유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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