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1. 네 번째 과거(2) 전해야 할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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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네 번째 과거(2) 전해야 할 상처
[15년_01월_17일_토요일]
[10:02]
주말치곤 어수선한 생활관 분위기가 병 공용 휴대전화기 진동음과 함께 이어지는 지금.
상혁의 동료 병사들은 어째선지 현지와 윤서에 관한 기억을 두 가지 부류로 나뉘어 떠올리고 있었다.
마치, 상혁에게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어온 것처럼.
어느 한순간을 기점으로 윤서를 말하던 상혁과 현지를 말하는 상혁이라는 다른 사람을 알고 지내온 것처럼 말이다.
“…여보세요.”
[어? 상혁이 목소리네! 어떻게 바로 받았어?]
“근무 끝나서 왔는데, 마침 걸려왔네.”
[아침 근무였구나! 어쩐지 SNS 접속 안 하길래 전화해봤어. 뭐, 주말이라 사지방 자리도 없었을 테지만?]
“맞아, 근데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되게 밝은 느낌이네….”
[오… 별로 티 내지 않은 것 같은데, 이건 또 어떻게 알았지?]
“…그러게.”
[오늘 화장이 되게 잘 먹혀서 기분이 좋기는 합니다! 여기서 홈즈 씨에게 문제! 제가 오늘 화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맞추면 소정의 상품이]
“면회 오려고.”
[에? 아니, 아니! 아니, 어떻게 알았어? 뭐야! 아직 상품 안 걸었어, 취소야, 취소!]
“….”
[음… 홈즈 씨가 생각에 잠기셨군요… 추리가 아니라 얻어걸린 건가?]
“처음부터 아니… 응, 알고 있었어.”
[뭐야… 뭔가 굉장히 손해 보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정답. 조금 이따 출발하려고 합니다!]
“…알겠어, 조심해서 와. 위병소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응! 얼른 갈게, 이따 보자!]
그렇게 통화를 마친 상혁이 휴대전화기를 아래로 내리자, 잠시나마 조용해졌던 생활관이 다시 한번 어수선해졌다.
“이상혁 상병이 며칠 전 근무 때도 김현지 씨랑 있었던 이야기 말씀해주셨습니다… 대학 동기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윤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거기에 현지 씨 저번에 면회 왔다가 위병소 근무자들 핫팩 챙겨주고 그래서 경비소대 쪽에도 소문 좋게 퍼진 거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도대체 김현지가 누군데? 쟤들 장난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아니, 윤서 씨를 모르는 게 말이 돼? 진짜 어디 아파? 아프지, 아픈 거 맞네… 의무대 갈까?”
“야, 야! 됐고, 그럼 너희 세면 바구니에 천연 비누 하나씩 있지? 그건 뭔데! 윤서 씨가 우리 유격 때 쓰라고 챙겨준 거잖아.”
그런 병사들의 기억에 관한 구분을 해본다면, 정확히 현지만을 기억하는 후임 병사들과 윤서만을 기억하는 선임 병사들로 나눌 수 있었다.
“근데 혹시… 거의 다섯 달 전에 받은 비누가 어째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지 여쭤봐도”
“까분다.” / “풉….”
“죄송합니다.”
“아니, 상혁아 뭐라고 대답 좀 해봐… 답답해 미칠 것 같다고….”
선임 병사 한 명이 답답한 마음에 상혁을 애타게 불러봤지만, 이런 이질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상혁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상혁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어 정면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곳에 있는 총기 함이나 TV 같은 것들을 바라보는 게 아닌, 제겐 없는 기억들을 맞닥뜨린 탓에 사고방식이 굳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의구심을 품어야 할 대상을 선임들의 기억이 아닌, 자신의 기억 쪽이라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상혁이 제게 질문하던 선임 병사를 바라보고 멍하니 물었다.
“…제가 윤서랑 그런 사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그리고 아니, 그걸 왜 네가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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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
현지가 오랫동안 품은 마음을 전하러 오고 있다.
오후 3시가 되면 위병소에 도착할 것이고,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상혁에게 제 마음을 전할 것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것을 거절해야 했다.
이것이 상혁이 세운 마지막 계획이었다.
확실하지 않지만, 현지가 자신의 청혼 탓에 과거를 바꾸려고 한 것이었다면.
확실하지 않은데도, 현지의 마음을 거절하고 그녀와 함께하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낸다면.
그렇다면 현지가 과거로 향할 일도 사라질뿐더러, 그녀의 자살도 없던 일이 되어줄 거라는 가능성을 품었기에.
그리고 그 가능성이 최소한 윤서만큼은 되살려낼 수 있으리란 확신을 품었기에.
현지와의 모든 인연을 놓아주고, 그녀가 혼자서라도 살아갈 미래를 만들겠다는 게 상혁의 마지막 계획, 마지막 과거였다.
물론, 망설임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었다.
‘10년 전 그날, 내가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아. 그 시절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그런 내게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 있을 리가 없잖아….’
상혁은 더 이상의 변화도, 이 이상의 미련도 가질 수 없었다.
10년 전 과거로 향해, 현지의 부모님을 되살려보겠다는 시도를 가로막는 고등학생 시절의 후유증 탓이었다.
상혁에겐 10년 전이라는 시절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잖아….”
충분을 논하면서 목소리에 불안함 마음이 묻어나는 건, 과거가 마지막 계획마저 용납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탓이었고,
만에 하나라도, 억에 하나라도, 이 방법으로도 윤서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이젠 어쩔 수 없다는 게, 정말 끝이라는 중압감이 목을 조여올 것이었다.
“괜찮아… 전부 괜찮을 거야….”
괜찮지 않았다.
상혁을 낭떠러지 앞으로 떠밀고,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상처뿐인 시간만을 되새기게 한 희망이.
절망의 끝자락에서 피어난 희망이 까맣게 타버린 제 마음에 물들어가고 있었기에.
이번 과거에서 두 사람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상혁은 두 번 다시는 내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었다.
“이게 맞잖아….”
상혁은 제가 품었던 사랑의 형태가 뒤틀려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윤서를 되살리는 일을 멈췄던 자신이었기에, 현지와의 미래도 포기할 수 있어야 했다.
내일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려는 그 결심부터가 뒤틀려있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
서러울 것이었다.
눈을 감으면 어제가 그려지고, 귀를 기울이면 어제가 들려왔을 테지만, 현지를 놓아주는 이 길이 상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금, 위병소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겨있던 상혁이 저만치 앞에 도착한 택시를, 그곳에서 내리는 현지를 바라봤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위병소로 다가오는 현지의 모습만이 아닌, 하늘마저도 지독하게 밝았다.
그건 마치, 상혁의 마음을 모르는 하늘이, 두 사람의 내일을 미리 알고 축하해주려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상혁은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묘한 이질감을 느꼈을 테지만,
“…됐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상관이겠어.”
인제 와서 무슨 상관이겠냐는 듯, 옅은 미소를 띠고 위병소 뒤편의 면회실로 향했다.
그렇게 상혁이 잠시 기다리자, 위병소에서 면회 승인을 받아낸 현지가 면회실 안으로 들어섰다.
“짠! 김현지 등장!”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 전혀! 읏차, 아이고 무겁네!”
현지는 괜찮다는 말과 달리, 딱 봐도 무거운 짐을 면회실 테이블 위에 올리며 곡소리를 냈다.
그건 상혁과 그의 동료 병사들을 위한 선물인지, 크기가 현지의 하반신 크기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건….”
“음… 이따 생활관 가져가서 다 같이 확인해봐! 저기 계신 간부님한테도 말씀드렸고, 전부 반입 가능한 물품이라 하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
“왜, 왜? 뭐가 들어있을지 추리 중이야? 사실, 나 여기 오는 길에 고속버스에서 홈즈 읽었거든.”
상혁은 처참하다는 말이 어울릴 표정이 되어, 차마 말을 잇지 못했지만,
현지는 그런 어두운 안색을 눈치채지 못한 채, 바로 옆 의자에 내려둔 크로스백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며 말을 이었다.
“그, 홈즈가 살아 돌아온 부분이 조금 신경 쓰여서 알아봤거든? 그거 독자님들이 홈즈를 살려낸 거라고 하더라?”
“…혹자는 위장 죽음이라는 장치라고 하지만, 정론은 독자들이 원해서, 작가가 정해놨던 결말에서 끝내지 못한 거라 보고 있지.”
“역시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있잖아? 소설 속 이야기라 해도, 정해진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인 것 같지 않아?”
“…너는 정해진 결과를 아니,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어?”
“에? 어… 되게 신선한 질문이네…! 음, 있었지… 있었는데, 이젠 없다고 해야겠다!”
“왜…?”
“나는 내일을 살아갈 거니까! 어때? 어딘가의 누군가가 사용한 명언일지도?”
“정말…? 정말 없어? 하나도 없다고…? 아니, 있기는 했다는 거야…?”
“응. 근데 그건 왜…? 상혁이 너는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어?”
상혁 하나만을 생각하며 세상을 버텼던, 이곳까지 찾아온 현지에게도.
현지 하나만을 생각하며 과거를 헤맸던, 이곳까지 돌아온 상혁에게도.
“…응, 있어.”
지금이라는 순간은 서로에게 너무나도 잔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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