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35화 (35/76)

〈 35화 〉 #35. 변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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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변화(3)

[18년_11월_29일_목요일]

[19:01]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었던 절실함이 어쩌면 가장 최악이라는 형태로,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을 두통이라는 거부감과 함께 이어진 탓이었을까.

“….”

현지는 과거가 뒤바뀌며 찾아온 반동을, 찢어질 것처럼 아리는 두통에 한쪽 눈가를 세게 찌푸렸지만,

그런 감각을 현관 출입문에 기대서는 것만으로 견뎌냈고,

‘너 누구야?’

두서없이 날아드는 새로운 기억 중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을 되새긴 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직감을 떨쳐내려 했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어, 현지의 모습을 지켜보던 윤서.

그녀 또한 새롭게 날아든 기억을 정리해낸 것과 동시에 무엇인가를 결심한 것처럼.

굳은 얼굴로 입술을 세게 오므린 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다만, 그런 갑작스러운 등장을 예상할 수 없었던 현지였기에.

현지는 윤서가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흐트러진 옷가지를 정리하며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

멍한 표정이 되어, 아무 말도 뱉지 못할 뿐이었다.

그러자 윤서가 어수룩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한쪽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놀랐지?”

의도적으로 어물쩍대는 모습을 보이는 건, 막막한 상황을 풀어갈 시간을 구하려는 것.

‘네가 살해당한다고….’

새로운 기억 속의 상혁이 자신의 죽음을 외치며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도,

‘타살일지도 모른다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온 윤서는 조금 전 눈앞에서 사라진 상혁과 함께 찾아 헤맨 단서를 우선시하려는 것이었다.

“전부 설명할 테니까, 우선 밖으로 나가자.”

하지만 눈앞의 현지를 믿어보겠다는 윤서의 신뢰는 전해질 수 없었던 것인지.

현지가 현관에 기대었던 몸을 돌려, 윤서를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대답했다.

“아니, 굳이 나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제는 전부 상관없다는 식의 반응, 이토록 냉소한 모습을 처음 마주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말을 끝으로 굳게 닫힌 현관문 탓이었을까.

간담이 서늘하게 느껴질 분위기, 옅게 퍼져있던 공포감이 윤서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런 분위기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을 윤서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뒷걸음질쳤고,

“풉….”

그 모습에 현지는 피식 웃다, 현관 옆의 싱크대로 향해 말을 이었다.

“있잖아, 윤서 너는 나라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도, 분명한 저의가 담긴 질문이라는 건 온몸으로 느껴질 것이었기에.

윤서는 자신이 판단이 최악이 되리라는 직감이 들었을 테지만,

자신을 구하려는 상혁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용기 내어 말했다.

“…당신, 쌍둥이 자매구나.”

“뭐?”

“도대체 누군데, 어째서 언니 행세를 하는 거야?”

“….”

다만,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인 것이었을까.

현지가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날카로운 굉음이 이곳에 다시 한번 울리기 시작했다.

“윽…!” / “꺅!”

세 번째 과거에서 상혁이 일으킨 변화가 전해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지와 윤서에게 크게 연관된 변화까지는 아니었기에.

새롭지만 비교적 짧은 기억. 그것을 빠르게 받아들인 두 사람은 흐트러졌던 자세를 빠르게 고쳐잡고 서로를 주시했다.

‘…꼭 구해낼 테니까, 그러니까­’

“아까는 올해 초… 이번엔 오빠가 등단했을 때… 그래, 더 깊은 과거로 간 거구나….”

윤서는 점점 더 깊은 과거로 향하고 마는 상혁의 모습이 걱정된다는 듯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웃겨, 정말 웃긴다고.”

상혁의 목소리를 되새길 수 없었던 현지는 눈앞에서 사라지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통에 일그러졌던 얼굴에 허탈한 반응만 그려 볼 뿐이었다.

그리고 윤서가 자신을 구해내려는 상혁의 모습에 희망을 품었던 것도 잠시,

“쌍둥이 자매라 그랬지…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언니 쪽이라 해야겠네.”

“뭐…?”

“그리고 상혁이랑 사귄 건 동생 쪽이라 해야 할 테고….”

어딘가 묘한 대답을 전하던 현지가 싱크대에서 몸을 돌렸고,

그와 동시에 윤서의 손과 발은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굳어졌다.

현지가 형광등의 하얀 빛을 머금은 과도를 들고, 윤서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 ▶▶▶

[19:05]

상혁이 향했던 두 번째 과거, 그곳에서 그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부탁을 받았던 철식.

그런 그가 이제는 낯설지 않게 느껴질 빌라 앞에 쓰러져, 좀처럼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그저, 제 손바닥 위에서 타들어 가는 담뱃불을 죽어라 노려보며 흐릿해진 감각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의미가 분명하게 있는 행동을 해낼 수 있게 된 건, 조금 전 귓가로 울려온 날카로운 굉음, 그와 동시에 떠오른 새로운 기억들 덕이었다.

‘…박철식 형사님 맞으시죠?’

마트에서가 처음이어야 했을 상혁과의 기억이,

‘…그 감정 그대로여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만 시간 좀 내어주시죠.’

조금 더 깊어진 과거에서 시작되고 있었기에.

철식은 제가 원래부터 상혁을 알고 있었다거나, 그가 했던 터무니 없는 말들을 인정한다기보다는,

무엇인가 벌어지려 한다는 것을, 상혁이 했던 부탁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서둘러 움직이려는 것이었다.

‘감각이 흐릿해지는 현상을 겪게 되실 겁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즉, 자신은 약에 취한 것도, 뒤에서 기습을 당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기에.

이전과 달리 흩어진 감각을 빠르게 되찾아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된 것이었고, 그런 순간이었다.

빌라 2층 왼편에 있는 집의 현관문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철식은 그곳에서 누가 나왔는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하진 못했어도, 그곳을 향해 빠르게 뛰쳐 가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넘어질 정도로 몸이 과하게 앞으로 기울여진 상태였지만, 한 손으론 구급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으며, 그렇게 계단을 반쯤 뛰어오르자,

“멈…!”

다급히 소리치려 했던 목소리가 마주한 상황에 놀라 끊어졌다.

그건, 이제는 단발머리나 긴 머리의 여자라 말할 게 아닌 여자들의 모습을 마주한 탓.

정확히 말하자면, 현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윤서의 가슴에 칼을 내 꽂는 장면을 마주한 탓이었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철식은 선택해야 했다.

제가 다가가는 모습에 도망치기 시작한 현지를 붙잡을 것인지,

왼쪽 가슴에 칼이 박혔지만, 살려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윤서를 구해낼 것인지.

물론,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정신 붙잡아. 어이, 이윤서! 정신 붙잡으라고!”

“누… 누구….”

“이상혁이 보냈어.”

윤서가 하려는 말을 예상할 수 있었던 철식이 빠르게 대답한 뒤, 미리 전화 걸어두었던 휴대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여기 ○○동 ○○빌라 2층­”

[무슨 일이신­]

“닥치고 빨리 와! 왼쪽 가슴에 자상 환자라고!”

“커헉….”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구급대를 부른 철식이 휴대전화기를 대충 던져 내려놓고, 쓰러져 있던 윤서의 상체를 일으켰다.

입으로 차오르기 시작한 혈액이 호흡을 방해하는 걸 막아보려는 것이었다.

“너 살 수 있어. 살 수 있으니까, 버텨. 참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괜찮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천천히 숨 쉬는 것에만 집중해.”

“선배한테… 꼭 전해야 할 말이….”

“됐으니까, 전부 됐으니까­”

“언니가­ 커헉….”

“다 알아! 아니까 됐다고! 걔도 나도, 전부 알아냈어. 쌍둥이 자매? 애초부터 없었다고, 그거 말하려는 거잖아. 그니까 제발, 정신 붙잡고 있으라고.”

“….”

어느새 겉옷과 셔츠를 벗은 철식이 그것으로 윤서의 한쪽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혈을 막아가며 소리치자,

윤서는 조금은 안심이란 얼굴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건 제가 마주한 현지의 모습이 상혁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상혁이, 점점 망가져 가는 그의 마음이 걱정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질 짧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운 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하지만 그것을 가장 애타게 기다렸던 철식은 그런 소리를 반길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자의는 아니라도, 또다시 한발 늦어버린 탓,

“….”

겨울을 버텨낼 수 없었던 봄이라는 꽃, 또다시 피어오를 수 없는 생명이라는 꽃이 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철식의 모습까지가, 여기까지가 상혁이 일으킨 변화의 전부였다.

무엇도 바꾸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을지라도.

과거와 과거는 점점 빠르고 가깝게, 점차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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