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34화 (34/76)

〈 34화 〉 #34. 세 번째 과거(3) – 진실

* * *

#34. 세 번째 과거(3) ­ 진실

[17년_01월_24일_화요일]

[18:50]

쌍둥이 자매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라면.

윤서를 살해한 사람이 정말 현지였던 거라면.

상혁은 사랑하는 연인인 현지가 아닌, 소중한 지인인 윤서를 되살리기 위해.

아니, 제 욕심 탓에 망가진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현지를 되살리려 했던 미련만이 아닌, 그녀와의 인연 그 자체를 내려놔야 했다.

점점 깊어지는 과거가 상혁에게 현지와의 이별을 또다시 강요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되어있던 일을 끝마치고 마주한 과거의 끝자락에서,

막다른 길이라, 이제는 끝이라 생각했던 그 길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세워냈기에.

상혁은 그 가능성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이것이 정말 마지막 미련이라 생각하며.

점점 흐릿해지는 감각으로 사랑이 담긴 마음을 붙잡고, 높은 건물이 밀집되어있는 골목길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렇게 마주한 건물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

대개의 감각이 무너졌을 상혁의 얼굴에 당혹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건 허름하다든지,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다든지.

그랬어야 할 건물의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건물은 층마다 조명을 밝히며 사람이 오가는 복합 상가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었다.

분위기는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뒤바뀌어 있었지만, 그런 온도 차이에 연연할 시간은 없었기에.

상혁은 서둘러 건물 안으로 두 발을 내디딜 뿐이었다.

상혁이 과거까지 와서 이곳을 찾아온 건, 노신사를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이걸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직은 상혁을 모르는, 세 번째 과거를 살아갈 노신사를 말이다.

다만, 문제는 상혁이 건물 1층에 들어선 순간부터 시작됐다.

“에…?”

상가를 돌아다니던 사람이나, 상가 내부에 있던 주인장까지도.

상혁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런 모두가 움직임을 멈춰 선 것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은 극적인 분위기, 생동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위적인 상황.

그리고 순식간에 고요해진 주변 속에서 자신의 심장 박동만이 느껴졌을 상혁에게로.

제자리에 멈춰 서 있던 모두의 시선이, 마치 한 마리의 능구렁이처럼 모여들었다.

“….”

그런 기괴한 상황에 곤혹스럽다는 반응마저 보일 수 없었던 건, 그들의 시선이 공포감이 되어 온몸을 조여버린 탓이었을까.

상혁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며 멍하니 서 있었고, 그런 순간이었다.

“손님이 오셨군요.”

상혁의 뒤편, 건물 입구 방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혁에게 펼쳐졌던 극적인 상황이 더욱더 작위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모여들었던 시선부터 멈춰 섰던 움직임까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상혁을 바라보던 모두가 제각기 해야 할 일을 이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혼잡했던 원래의 분위기가 돌아왔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었던 상혁.

그런 그가 멍하니 벌어진 입도 가리지 못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목소리만이 아닌, 익숙한 얼굴의 노인이,

“안녕하세요.”

제게 과거를 바꿀 기회를 쥐여준 노신사가 싱긋 웃으며 인사해왔다.

▶▶▶ ▶▶▶

[19:10]

태엽 소리가 난무하지만, 레코드판까진 돌아가지 않았기에.

이전만큼은 조악하게 느껴지지 않을 방으로 노신사와 상혁이 들어섰다.

노신사는 자신을 뒤따라온 상혁에게 책상 맞은편 자리를 권한 뒤,

“흠… 이상하네요. 이런 일정은 없었는데 말이죠.”

자신도 책상 앞에 앉아, 지금의 상황이 묘하지만, 어딘가 집히는 구석이 있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혹시 이상혁 씨인가요?”

“….”

“정답인가 보군요.”

“…과거에선 당신이라도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애초에 당신은 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군요.”

“…예리하시네요.”

“제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시죠.”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과거에 있어야 할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예상보다 진부한 질문이군요. 도플갱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흠… 이건 시간 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테니… 그래요, 괜찮을 것 같네요.”

“…시간 선?”

“그것부터 설명해 드릴까요?”

노신사는 상혁을 바라보던 눈을 뒤편에 걸려있는 작은 시계로 흘려보내며 물었고,

“…아닙니다.”

그런 눈치의 의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란 걸 알아차린 상혁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그럼 각설하고 이것부터 시작하죠. 우선, 타임 리프가 합성어라는 건 알고 계시겠죠?”

“네, 타임과 리플레이의­”

“네, 네. 그거면 됐어요.”

의미를 알고 있으면 됐다는 듯, 상혁의 대답을 가로챈 노신사가 말을 이었다.

“지금 상혁 씨는 지난 시간을, 지난 과거를 다시 재생시키고 있을 뿐이에요.”

“그 말은 즉, 지금 제 모습은 미래의 제가 아닌 과거의 저라는 뜻이고, 도플갱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죠?”

“궁금한 건 이쪽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네, 다음입니다. 이 세상에 도플갱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나요?”

“…확고한 대답을 얻고 싶다는 거군요. 음, 당신이 살아갈 세상엔 존재할 수 없겠죠.”

상혁은 마지막 가능성을 진실로 증명하기 위해, 비현실적인 걸림돌을 하나 제거해야 했다.

그게 바로 현지의 쌍둥이 자매, 일란성쌍생아.

태어나지 않은 일란성쌍생아가 세상에 존재할 비현실적인 방법은 상혁이 아는 한, 도플갱어뿐인 탓이었다.

그리고 도플갱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은 지금.

“….”

상혁은 마지막이 될 질문을 잠시 멈추고 눈을 감았다.

‘응? 현지 쌍둥이잖아, 그 얼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현지는 외동딸일 텐데요.’

이웃집 아주머니와 교감 선생님의 진술이 달랐던 이유도,

‘뭐야… 일란성은 무슨, 쌍둥이도 아니었네.’

‘언니가 아니었어, 애초부터. 그게 죽어가던 이윤서가 네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지.’

쌍둥이 자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죽어가던 윤서가 남긴 말도,

‘음… 아니라고 해야겠죠.’

처음부터 현지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노신사의 애매한 대답도,

‘혹시 이상혁으로 변한 다른 사람 아니야?’

1년 뒤라는 미래에서 찾아온 저를 보고 낯설어했던 현지의 반응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스쳐 지나갈 뿐이었던 대화를 되새기던 상혁은 마지막 가능성에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지가 당신을 찾아온 적이 있었나요?”

“….”

“아니, 정정하죠… 현지도 과거를 바꾸려고 했었나요.”

상혁의 마지막 미련. 그것은 현지도 저처럼 과거를 바꾸려 했다는 것.

그건 그저 직감이 아닌, 과거를 바꾸며 마주했던 현지의 모습을 토대로 정리한 귀납적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런 확신에 찬 결론을 검증시켜줄 수 없었던 노신사.

그런 그가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식의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거기서부턴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와 동시에 상혁에게서 적당한 물건을 발견해, 살짝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마침 좋은 소식이 찾아올 듯하네요.”

“…네?”

노신사가 바라보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일까.

상혁이 제 겉옷 쪽으로 시선을 살짝 내리자,

“….”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받으시죠. 거기서 충분한 답을 얻으리라 봅니다.”

상혁은 그런 조언에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었고,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네. 말한 거 조회됐어.]

“…고생하셨습니다. 어떤 이유로 돌아가신 거죠?”

철식이 상혁에게 부탁받았던 일은 현지의 부모님이 사망한 원인에 관해서였다.

현지도 과거를 바꾸려 했다는 가설이 진실일 때, 그녀가 과거를 바꾸려 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

상혁은 현지가 제게 숨기고 피해왔던 부모님이 그 이유가 되리라 추리하고 있던 것이었다.

[교통사고였어. 근데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어.]

“…말씀하시죠.”

[우선, 김현지가 제 부모님이 운전하던 도로 위로 뛰쳐 들었어. 그리고 운전자가 그걸 피하려다 사고가 벌어진 거고.]

“….”

[그리고 내가 이상하다는 점은 그게 아니야. 같은 시간에 50m 정도 앞 사거리에서 대형 추돌사고가 있었어. 사망자도 다수고.]

“그렇다면….”

[그래. 이거 보는 순간, 김현지라는 여자가 마치, 너처럼 과거를 바꾸려 했던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점차 설명되기 시작할 때,

“만약, 현지 씨가 그곳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랬던 과거가 있다면… 그녀의 부모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싶군요.”

“….”

“뭐, 결말은 같았던 모양이지만요.”

어떤 진실도 전할 수 없었던 노신사는 어디서 누구도 찾아낼 수 없었던 가능성을,

상혁이 드디어 찾아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저도 한 번 읊조려 볼 뿐이었다.

▶▶▶ ▶▶▶

[19:50]

고작 50m 앞 사거리에서 벌어질 추돌사고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그런 사고 현장으로 향할 부모님의 차량을 막아섰지만, 그런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것만으로 현지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상혁처럼 과거를 바꾸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지가 부모님과 관련된 대화를 피할 까닭이 되진 않을뿐더러,

윤서를 살해할 이유만큼은 되어주지 않았기에.

상혁의 등단 시상식이 진행됐던 지역의 번화가가 세 번째 과거의 마지막 장면으로 선택된 모양이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초조하기만 했을 상혁이 거리에 차를 내팽개치고,

“받아, 받아… 좀 받으라고…!”

현지에게 전화를 걸며 번화가 안쪽으로 뛰쳐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선 거리, 네온사인이 펼쳐주는 과거에서 마주한 건,

“선배…?”

자신을 선배라 부르는 여자, 윤서였다.

상혁의 시야는 윤서를 마주한 것과 동시에 색감을 잃은 것처럼 투명해졌지만,

그런 식으로 흐릿해진 세상 속에서도 윤서만큼은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인지.

“끝엔 항상 네가 있네….”

상혁은 윤서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며 허탈한 반응을 보였고, 그와 동시였다.

“윽…!”

대개의 감각을 느끼지 못할 상혁에게 극심한 두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전엔 없었던 상황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쓰러지려는 상혁.

“선배!”

그리고 그런 상혁에게로 뛰쳐 가, 서둘러 부축하는 윤서.

“현지… 현지는 어딨어….”

윤서 덕분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상혁이 흩어지기 시작한 감각을 붙잡아가며 물었지만,

시끄러운 거리에서 그런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윤서가 오늘 하루 간 쌓인 불만을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선배! 오늘 도대체 온종일 어디 있던­ 잠시만, 어라? 근데 나, 왜 선배한테 연락 한 번도 안 하고 있었던 거지…?”

물론, 제가 말하고도 어딘가 이상한 하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이다.

“….”

이번 과거에서 현지를 만나는 건 무리라 판단한 것이었을까.

상혁은 바닥을 마주했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저기면 되겠지….”

윤서에게 기대었던 몸을 떼어낸 뒤,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이끌어 바로 옆 골목길로 들어섰다.

“갑자기 여긴 왜… 아니,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요!”

윤서는 갑작스레 들어선 어두운 골목길에 무섭다는 반응을 보이려다가도 상혁을 걱정하듯 물었고,

상혁은 별다른 대답 없이 골목길 벽에 몸을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선배…?”

“…죽은 거 아니고 병원도 필요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여기 가만히 있어….”

“아니… 딱 봐도 죽기 일보 직전이고, 당장 병원에 실려 가야 할 모습이잖아! 구급대 부를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상혁이 괜찮다는 식으로 말한다 한들, 그의 숨소리가 늘어지는 것만으로도 불안함이 차올랐을 윤서.

그런 그녀가 서둘러 구급대에 전화하려 하자, 꺼내 든 휴대전화기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언니다…! 여보세요? 언니, 언니!”

현지였다.

[뭐야, 갑자기 어디 갔어?]

“그, 그게… 그니까, 갑자기 선배가 나타났어, 근데, 아니… 선배가 쓰러졌어!”

[응? 상혁이가? 아니, 쓰러졌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후… 진정, 진정…! 그, 우리 방금 밥 먹던 고깃집 바로 옆에 골목길 있거든? 그리로 들어와, 나 구급대에 전화할 테니까, 일단 끊을 게!”

[잠, 잠시만! 윤서야­]

윤서는 평소답지 않게 조급한 모습만 보이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급한 상황 탓에 손에 쥐고 있던 지갑과 등단 기념 선물이 불편하게 느껴진 것인지.

그것들을 전부 바닥에 내던지듯 내려놓은 뒤, 서둘러 구급대에 전화를 걸며 상혁의 안색을 살폈다.

“에…?”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혁의 어깨를 관통하는 제 팔을 멍하니 바라보다,

“…바보야, 괜찮다 했잖아….”

자신을 나무라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지만,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팔을 거두었다.

“방, 방금 뭐야…? 선배, 선배 왜 투명해…?”

그리고 현지에겐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아도, 윤서에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었기에.

“…꼭 구해낼 테니까, 그러니까­”

상혁이 힘겹게 입을 열어 절실한 다짐을 전했지만, 지금이라는 과거가 그것을 막아서려는 것처럼.

상혁의 몸이 발끝부터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에…?”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세 번째 과거의 막을 그리던 두 사람에게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하아, 하아… 윤서야?”

골목길 입구에 도착한 현지가 두 사람을 비추던 네온사인을 가려 선 탓이었다.

“언, 언니… 선, 선배가… 선배가 이상해….”

윤서는 상혁이 사라지는 모습에 울먹거리며 고개를 앞뒤로 갈팡질팡했지만,

“어째서, 네, 네가 왜? 윽…!”

현지는 상혁이 흩어져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묘한 반응을 보이며 휘청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는 과거가 윤서를 막아섰다면,

만년필이 펼쳐준 과거는 현지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

상혁이 현지의 이름을 불러볼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은 채 막을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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