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3. 세 번째 과거(2) – 끝과 시작
* * *
#33. 세 번째 과거(2) 끝과 시작
[17년_01월_24일_화요일]
[16:20]
현지가 일란성쌍생아와 함께 태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
베테랑 형사인 철식마저도 이곳이 단서를 붙잡을 마지막 장소라 말했었기에.
상혁은 이 산부인과가 자신이 향할 과거의 종착지만큼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쌍둥이 자매가 존재하는지, 그것 하나만을 알아내기 위해 찾아온 세 번째 과거.
그런 과거가 끝과 시작이라는 양갈레 길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고작 진료 기록 하나 때문에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예.”
“무슨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네.”
당당할 수밖에 없는 철식의 대답과 초조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상혁의 대답.
온도 차이가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한 대답에 의심이 깊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처음부터 그 신분증도 가짜 아니야?”
원장은 철식이 경찰 공무원증을 돌려 넣은 겉옷 주머니 쪽을 슬쩍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무슨 방송 촬영이지? 변두리 촌구석 의사의 두 얼굴, 이러면서 창피 주고 잡아가려고?”
“…하.”
점점 터무니없어지는 의심이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던 철식.
그런 그가 제 허리춤에 걸려있던 수갑을 원장의 책상 앞에 던져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가짜 같으시면 직접 채우고, 저랑 서까지 동행하면 알 수 있겠죠.”
그건 마치,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고 싶은 형사의 모습이라기보단,
그저, 의심 많은 노인과의 기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은 남자의 모습이었고,
“흥, 방송국 놈들은 준비가 철저하니까.”
원장 또한 마찬가지인 모습이란 게 문제였다.
“아니… 방송국 사람이라도 이렇게 경찰 행세는 못 해요. 진짜 경찰이라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그리고 그런 식으로 늘어지는 설전에 상혁은 익숙한 미래가,
‘논의하는 게 저희가 모인 이유일 테고요. 지금처럼 쓸데없는 설전이 아니라.’
저들을 매도하던 유진의 목소리가 떠오를 것이었기에.
조용히 떨궜던 고개를 들고, 차분한 얼굴로 두 사람의 설전을 가로막을 말을 이었다.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겐 시간이 없어요. 부탁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흥, 그래도 이쪽은 부탁이란 걸 할 줄 아네. 그래, 들어는 봐줄 테니까, 한 번 읊조려보든가.”
“…감사합니다. 확인하고 싶은 진료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알아, 그래서 그 날짜가 언젠데.”
“91년 12월”
“잠, 잠시만, 91년이라고?”
“…네, 91년 12월 23일입니다. 혹시 모르니 그 금방의 기록은 전부 확인해야 하고요.”
터무니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도 진지한 반응만 돌아오면 흥미가 생기기 마련인 것일까.
조금은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게 된 원장이 말끔히 정리된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재밌네. 그래, 그 정도로 오래된 기록이 있다고 쳐보자. 그걸 확인하려는 이유가 뭔데?”
“풉, 이 영감님이 이유를 들으면 당신한테 진료 기록이 아니라 정신병원을 추천해줄 것 같은데?”
이미 상혁의 상황을 전부 알고 있는 철식이 피식거리며 말하자,
“….”
상혁이 창가 위편에 걸린 시계를 올려보고 제게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3시간 남았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한 여자의 출생 기록만 확인하면 됩니다. 태어났을 때 혼자였는지,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지를요.”
“3시간? 아니, 그리고 쌍생아를 말하는 건가?”
“네, 일란성쌍생아라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란성? 아니, 우선 이렇게 작은 산부인과에선 쌍생아 출산이 적어.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긴 하다만….”
“드물다는 건 있긴 했었다는 건가요?”
“참나, 30년이라며. 이 나이에 받아온 애들을 전부 기억하겠어?”
“…그것도 그렇네요.”
“나 원, 오래 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는군. 나도 참 오래 살았어.”
원장이 그런 식으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향해 말을 이었다.
“거기에 앉아만 있을 거야? 따라와. 급하다며.”
▶▶▶ ▶▶▶
[16:30]
천장 구석에 달린 거미줄과 먼지들이 어두운 조명에 비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한 이곳.
건물의 지하 1층에 자리한, 원장이 진료 기록을 보관해둔 기록실의 입구였다.
상혁과 철식을 이곳으로 데려온 원장이 뒤편을 돌아보고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사 양반, 보관 기한이 지난 의료 기록을 보관하는 건 위법인가?”
“알면서 물어보는 걸 참 좋아하시는군요.”
“…흥, 재미없긴.”
원장은 싱거운 대답에 콧방귀를 뀌며 대답하다, 기록실 문을 열고 그 옆으로 물러서서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자수에 가깝잖아. 감형 좀 부탁한다고, 큭큭.”
그렇게 상혁과 철식을 선두로 기록실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
원장이 출입문 벽면 쪽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켜자,
“이건….” / “어이, 어이….”
상혁과 철식의 입이 어처구니없는 풍경을 마주했다는 식으로 크게 벌어졌다.
산부인과 내부엔 점점 늘어나는 진료 기록을 보관하기가 여의치 않았다는 걸 의미하듯.
지하실 벽면을 가득 채운 캐비닛엔 수많은 서류철이 빽빽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풍경에 압도당한 두 남자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대던 원장은 기록실 가운데로 향해,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찾아오는 내일에 주저앉아 본 적이 있나?”
미소 띤 얼굴도,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탓이었을까.
“사람은 내일을 살아가지. 지난날을 돌아보는 사람은 주저앉아 멈춰서 있는 것일 뿐이고.”
이곳엔 나지막한 질문에서 시작된 초연한 분위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런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는 게 어불성설처럼 느껴지겠지.”
“….” / “….”
상혁과 철식이 대답을 아끼자,
원장은 왼편의 캐비닛을 열고 서류철을 하나 꺼내, 그것을 상혁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주저앉은 사람들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거야.”
“주저앉은 사람들…?”
“사람이 매일매일을 나아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주저앉은 사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고.”
상혁은 건네받은 서류철을 펼쳐보는 것과 동시에,
“이건….”
원장이 의사로서 가지고 살아온 신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저 진료 기록 따위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미부터가 남다른 것.
임신 직후부터 출생 직전까지, 원장이 부부와 월별로 진행한 출산 상담 일지였다.
부부가 임신을 확인한 순간에 보였던 반응으로 시작되는 일지엔,
앞으로 준비해야 할 부분과 조심해야 할 부분,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
남편이 잘못 대처한 부분을 지적하고 고쳐가는 아내만을 위한 시간이,
뒤에선 원장이 남편을 몰래 위로했던 말들이,
부부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원장의 외설적인 사담 같은 이야기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너희들도 언젠간 알게 되겠지만, 부모들은 내일로 나아갈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해.”
“그 말은….”
“알고 있는 말인가?”
“…주저앉아 지난날을 돌아볼 때, 부모의 사랑은 내일로 나아갈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좋은 연기자네. 그래,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 건 부모의 사랑부터가 시작이었으니까.”
▶▶▶ ▶▶▶
[18:25]
그토록 바랐던 단서를 찾아내고, 곧장 서울로 올라온 두 사람.
상혁의 차를 대신 운전하던 철식은 자신이 근무하는 지역구 관할 부근을 알아채고, 인근 도로에 차를 대며 입을 열었다.
“…운전은 가능하겠어?”
“네, 이제 좀 괜찮아졌습니다. 그리고 서둘러야 합니다.”
“그래… 알겠다.”
철식이 대신 운전하게 된 건, 두 사람이 산부인과를 나선 직후,
상혁이 갑작스레 두통을 호소하며 몽환적인 현상이 발생한 탓이었다.
그리고 철식은 그런 상황 속에서 상혁의 몸을 관통하는 자신의 손을 마주했기에.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꿰고 있다고 해도, 미심쩍어했던 마음을 놓아주고,
이제는 미래에서 왔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신용하게 된 것이었다.
“조회는 금방이긴 해. 최대한 빨리 연락할 테니까, 아까처럼 사라지려 하지 말고, 정신 붙잡고 있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서로를 교차해 지나갔고,
도보 위에 서게 된 철식과 운전석 옆에 서게 된 상혁이 서로를 마주 봤다.
“앞으로 3번, 그리고 마지막은 19년 11월이라고 했지… 그래, 가라.”
“…네, 잘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 과거가 끝을 바라보고 있지만, 둘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한 개씩 남겨두고 있었다.
그건 이번 과거가 끝나기 전까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상혁이 세운 새로운 계획.
원래부터 세워져 있던 계획이 아닌 탓에,
운전석에 올라타는 상혁과 서둘러 경찰서로 향하는 철식의 뒷모습에 분주함이 묻어난다.
산부인과에서의 일을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지는 외동딸이었다.
일란성쌍생아가 존재할 확률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라진 확률을 뒤엎는 게, 죽어가던 윤서가 남긴 말이었다.
쌍둥이 자매는 없다는 현실과 애초부터 현지가 아니었다는 말.
서로를 상쇄하려 드는 두 가지 단서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일까.
“기록엔 없지만, 윤서는 분명히 마주했어… 그리고 아주머니와 교감 선생님의 증언이 달랐던 이유….”
아직은 두루뭉술한 추론에 몇 가지 단서와 대답만 구할 수 있다면,
한 가지 진실만큼은 분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상혁.
“만나야 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런 그가 기억에 남아있는 약도를 되새긴 듯,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