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28화 (28/76)

〈 28화 〉 #28. 변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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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변화(2)

[18년_11월_29일_목요일]

[19:00]

상혁이 두 번째 과거에서 사라지고 시간은 흘러,

“어, 어? 숨으라고? 아, 알겠어요!”

현지의 자취방 침대 밑으로 숨어드는 윤서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상혁의 몸이 흩어져 사라지는 지금은 첫 번째 과거의 끝자락.

아직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과거와 과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상혁이 끊어내지 못한 인연처럼 말이다.

“어떡해…!”

윤서는 눈앞에서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진 상혁 탓에 튀어나온 조바심을 손을 모아 가렸고,

그러자 일순간, 세상엔 금이라도 간 것처럼.

타인이라면 느낄 수 없을 날카로운 굉음이 윤서의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끄윽!”

갑작스러운 통증에 입을 가리던 윤서의 손이 양 귀로 올라갔다.

물론, 귀를 가린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소리도 아니거니와, 그런다고 해서 견딜 수 있을 고통도 아니었다.

타인이라면 평범하게 고요하다고 느꼈을 이 방.

현관 안으로 들어선 여자 또한 타인이 아니라는 것처럼 윤서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윽….”

그녀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짧은 신음을 흘리다, 이마를 짚고 현관 신발장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윤서는 이런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현관에서 시작된 인기척을 분명하게 느끼곤,

침대 밑으로 숨긴 몸을 안쪽 구석으로 밀어낸 뒤, 두통에 질끈 감긴 눈을 악을 다해 떠냈다.

그렇게 마주한 건 신발장에 기대 서 있는 현지였다.

“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도 윤서는 당장 침대 밑에서 뛰쳐나가, 현지를 데리고 도망쳐야 할지 생각했고,

‘타살일지도 모른다고.’

‘확실하진 않아.’

‘쌍둥이 자매? 있었지! 그 애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거든.’

‘아마 걔가 동생일걸? 현지는 조용한 편인데 걔는 애교도 있고, 무척 밝았거든.’

‘아니야, 틀렸잖아…!’

그런 생각과 동시에 귓가를 스치는 두 사람의 목소리 탓에 섣불리 나서긴 망설여질 뿐이었다.

현관에 서 있는 익숙한 외관만으로 그녀를 현지라 믿을 수 없게 된 것이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있는 노릇이 아니었다.

차라리 타살이라면, 범인이 쌍둥이 자매이고, 지금 신발장에 기대 서 있는 여자가 제가 아는 현지 언니라면.

지금 말고는 이 상황을 타개해 도망칠 기회가 없다는 것이 분명했기에.

“생각해… 생각해…!”

윤서는 상혁이라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대처했을지 떠올리기 위해, 그가 했던 말들과 서로가 찾아낸 단서들을 되짚어보려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했는데, 분명 그랬을 터인데.

‘다행이다, 다행이야… 되돌릴 수 있어… 되돌릴 수 있다고….’

어째서 울고 있는 상혁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고,

‘네가 쓸 글이야. 네가 쓴 글이기도 하고.’

‘11월만큼은­’

‘다시 한번 말하는데, 11월만큼은 절대로 찾아오지 마. 나도 현지도.’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장소에서 그런 이상한 부탁을 하는 것인지.

‘믿어달라는 게 아니야.’

‘부탁할 뿐이야. 네가 들어줄 때까지, 되살아날 때까지.’

도대체 어째서 저를 되살리려는 것처럼 말하는 것인지.

윤서는 무엇하나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기억을 떠올리게 됐다.

아니, 점점 익숙하게 느껴질 과거를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잠시만… 설마 이거….”

상황 판단이 빠른 윤서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일까.

“언니를 되살리려 하니까, 그러니까 여기로 이어지는 거야… 언니가 죽은 오늘로….”

과거가 바뀌는 방식을.

상혁이 일으킨 변화가 전부 지금 이 순간으로 모여든다는 것을.

▶▶▶ ▶▶▶

[19:05]

철식이 제게는 아직 낯설 빌라 앞에 쓰러져 있다.

담뱃불이 손바닥 밑에서 꺼져가는 고통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지만, 어째선지 제 몸을 가눌 수 없어졌기에.

“….”

그저 길바닥에 쓰러져, 자신을 이곳에 불러들인 남자, 이상혁을 떠올리며 눈앞의 빌라를 주시할 뿐이었다.

철식은 몇 달 전, 상혁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부탁을 받았다.

그 부탁은 정상적인 형태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부탁을 들어주기보다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홀로 찾아온 것이었지만,

몇 분 전에 귓가로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 퍼진 직후부터 몸을 가눌 수 없게 돼, 이렇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멀쩡한 정신과 유일하게 고통을 호소하는 손바닥.

“도대체….”

약에 취한 것도, 기습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한 모금 피운 담배가 손바닥 아래서 꺼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약 5분이란 걸 알 수 있게 된 찰나였다.

빌라 2층에 있는 집 현관문 하나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런 소음에 멍해졌던 정신을 붙잡아낸 철식이 그곳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곳에선 웬 긴 머리의 여자가 중앙 계단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걷는 모습이 난간에 가려져 확신하긴 어렵지만, 철식은 분명하게 느꼈을 것이다.

“잠시만….”

그녀가 절뚝거리며,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 직감과 동시였다.

현관문 쪽에서 단발머리 여자가 나와, 중앙 계단 쪽으로 걸었다.

“시발… 잠시만…!”

그런 장면에 철식의 반응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뒤바뀐 건,

단발머리 여자가 달리기 시작하며 어깨 위로 치켜든 칼 탓이었다.

그녀는 중앙 계단이 아니라, 긴 머리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일어나야 했다.

아니, 나아가 뛰어가야 했다.

철식은 손과 발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탓에, 어깨와 골반, 허리를 뒤틀어가며 몸을 일으켜 세웠고,

“…일어나, 일어나라고!”

악을 바쳐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전신의 감각을 되찾아 건물 쪽으로 넘어질 듯이 뛰쳐 갔다.

그렇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계단을 반절 올라, 복도에 서 있던 단발머리 여자를 발견해냈다.

어스름한 달빛이 비춰준 그녀의 옆모습은 검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거기 당신! 손들어!”

철식이 총이라도 쥔 것처럼 그녀를 위협했지만,

“….”

그녀는 시선만 살짝 돌려 철식을 바라보다, 쥐고 있던 칼을 그에게 내던지고 왼쪽 복도를 향해 뛰었다.

철식이 그런 칼을 피하느라 잠시 몸을 숙였다 세운 뒤, 서둘러 그녀를 뒤쫓으려 했지만,

“멈추­ 아….”

마저 오른 계단, 복도 중앙에 쓰러져 누워 있는 긴 머리의 여자를 발견한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커헉.”

복도 곳곳에 사방으로 튄 붉은 핏자국. 상태가 심각했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지금 구급대 부를 테니까, 조금만 견뎌주세요. 대답하지 마시고, 정신만 붙잡는 겁니다.”

철식은 그렇게 말하며 겉옷을 벗어, 출혈이 가장 심한 그녀의 왼쪽 가슴을 압박하며 구급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가 힘겹게 팔을 올려, 철식의 소매를 붙잡고 작게 말했다.

“선배… 선배한테­ 커헉… 꼭… 전해야 해….”

심장만이 아닌 폐까지 손상된 탓에 그녀의 입안엔 붉은 선혈이 차올랐다.

“…오빠요? 혹시 이상혁 씨를 말하는 겁니까?”

“언니가 아니었어… 애초부터….”

“알겠어, 알겠으니까!”

철식이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식으로 대답을 막아섰지만, 거기까지였다.

입안에 차오른 선혈의 부글거림이 멈추고, 철식의 소매를 붙잡았던 손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세상이 멈췄다는 마지막 신호였다.

“젠장… 젠장, 젠장…!”

그것을 인정해야 했던 철식은 그녀를 난간에 기대 눕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복도로 향했다.

그리고 204호 앞에 도착하자마자, 굳게 잠긴 현관문 손잡이를 미친 듯이 걷어차며 소리쳤다.

“문 열어! 문 열라고!”

연이은 충격에 조금씩 망가지던 손잡이가 이내 너덜너덜해져 작은 틈이 생겨났다.

철식이 그런 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겨 떼어내고 문을 열려 했지만, 도어락이 문제였다.

걷어찬다고 해서 해결될 부분이 아니었다.

철식은 문을 열 수 없다고 생각한 듯, 제가 만든 문 틈새로 얼굴을 가져다 대고 그 안을 살폈다.

안쪽에선 단발머리 여자가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 당신 지금 뭘 했는지 알기나 해? 지금 도대체 뭘 하는….”

크게 소리치던 철식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졌다.

“이봐요…? 지금 뭘 하려는… 어이, 어이!”

그건 그녀가 준비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탓이었다.

“일단 진정, 진정하시죠! 네?”

그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어느덧 준비를 마친 단발머리 여자가 현관 앞에 세워놓은 의자 위로 올라섰다.

현관문 손잡이가 끼워져 있던 작은 틈새론 그런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

그녀가 소리 없이 울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기에.

“그래, 그래… 무섭잖아요. 그런 생각을 할 순 있어도, 해선 안 되는 거잖아. 문 안 열어도 되니까, 일단 대화부터 해봅시다.”

철식은 눈물이라는 망설임을 붙잡듯 다정한 말들을 이어봤지만,

“잠, 잠시만…!”

그와 동시에 놀란 몸을 뒤로 내뺄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

뒤로 나자빠진 철식이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과 가슴팍을 세게 움켜쥐는 건,

지독하게 잔인한 방식의 자살이, 지나치게 괴로운 모습의 죽음이 두 눈에 담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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