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25화 (25/76)

〈 25화 〉 #25. 두 번째 과거(8) ­ 실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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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두 번째 과거(8) ­ 실타래

[18년_02월_17일_토요일]

[10:00]

운명에 맡겨 내던져진 동전을 지나, 절실한 바람을 머금은 실타래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과거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미래로.

그런 마음이 미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어도,

지금이라는 과거를 살아갈 윤서에게만큼은 분명하고 선명하게 전해진 것이었다.

“…그거 믿어달라고 하는 말 맞죠? 그것도 지금 표정처럼 아주 진지하게?”

“믿어달라는 게 아니야.”

“에? 그럼요…?”

“11월만큼은 나랑 현지를 피해달라고 부탁할 뿐이야. 네가 들어줄 때까지, 되살아날 때까지.”

닿는다고 해서, 닿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상혁은 바라는 미래를 되찾을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든.

점점 망가져 가는 마음을 점점 더 깊어지는 과거에서 내일로 던져볼 뿐이었다.

소중한 관계를 되찾을 때까지. 사랑하는 여자를 되살릴 때까지 말이다.

“선배도 참 선배답네요….”

그리고 그건 설득력 없는 이야기이자, 그런 말을 하는 이를 되려 걱정하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런 이야기를 이토록 진지하게 전하면 설득당하기 마련인 것일까.

“미래에서 왔다든지, 지금이 두 번째 과거라든지. 그런 말들을 믿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한 가지 부탁만 들어달라는 건가요….”

윤서는 의구심에 좁혔던 미간을 풀고, 상혁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할 것이었다.

미래에서 왔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자신이 품었던 수많은 의문도 대부분 해소될뿐더러,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모습에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부여됐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상혁의 모습.

믿기 힘든 이야기인 만큼, 전부 사실이라면 그만큼 힘든 일일 것인데.

그런데 어째서 상혁은 믿어달라고 하소연하지도, 하다못해 기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인지.

어째서 부탁을 들어달라는 말만 이토록 애처롭게 반복할 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전부 넘어가더라도, 이것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했던 것일까.

윤서는 멍했던 얼굴에 힘을 넣어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인 뒤, 상혁을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

“…그럼 저도 딱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응.”

“제가 언니한테 살해당했고, 그래서 과거에 오자마자 저를 찾아와 울면서 사과했잖아요? 그건 제가 죽은 게 선배 탓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이해가 빠르네. 맞아.”

“거봐,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건 수정해주세요. 아직 죽어본 적도, 살해당해 본 적도 없어서 쉽게 말하듯 보일 테지만, 저는 선배 탓이 아니라 제 선택 탓에 죽은 거니까요.”

“그게 어떻게 네 탓이야… 당연히 내 잘못이지.”

상혁이 틀렸다는 식으로 대답하자, 윤서는 이미 전부 이해했다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그것도 그만. 사실은 원망 많이 했던 거잖아.”

“어…?”

“아까 약속 안 지켜준다고, 말 안 들어줬다고 그렇게 화냈으면서? 나 울리려 했잖아요. 틀려요? 지금도 울 수 있는데?”

윤서가 비장의 무기까지 꺼내 보인 건, 상혁이 제게 느낄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미안.”

“괜찮아, 전부 이해했으니까.”

“믿어주는 거야…?”

“응? 아니, 믿어준다고 한 적은 없어요. 뭐, 그래도 부탁은 들어준다고 약속할 테니까.”

“그래… 그거면 됐어.”

“그래서 지금부터 어쩌려고요?”

“…야.”

그건 과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 아니지만, 상혁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고,

그것이 답답했을 윤서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에휴… 아니, 내가 끼어들겠다고 했어요? 집에 콕 박혀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니까?”

“그런데 왜 물어.”

“그냥 물어보는 거잖아. 그것도 안 돼요?”

“…알겠어. 우선, 널 살해한 사람이 현지인지, 그리고 쌍둥이 자매가 존재하는지 알아내야겠지.”

“흠….”

“당장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무리이긴 하지만… 그래서 일단 현지를 만나 볼 생각이야.”

“음…! 이건 도움 좀 줄 수 있겠네. 마침 적당한 정보가 있거든요.”

“정보…?”

“언니 오늘 부모님 뵈러 본가에 간다고 했어요. 이게 선배한테 어떤 식으로 들릴진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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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윤서의 다정함으로 사그라트릴 수 없었던 두려움, 그것에 마음이 조여들지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실타래를 따라, 그 끝에 펼쳐질 새로운 미래를 마주해야 했다.

“하….”

현지의 본가에 도착한 상혁.

그런 그가 녹슨 철문 앞에 서서 전화 한 통, 하다못해 문자 한 통마저 못 보내며 망설이는 건,

현지를 마주했을 때 느끼게 될 감정. 그것의 형태가 예상된 탓이었다.

그리움이나 반가움이 아닌, 두려움을 머금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런 탓에 상혁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뒤엉킨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흘러가려는 것처럼 계속해서 쓰여질 뿐이었다.

“상혁이야…?”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혁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려, 뒤편에 서 있는 현지를 마주했고,

“네가 왜 여기에…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그런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도, 당장은 줄곧 하고 싶었을 말이 있었기에.

아무리 두려워도, 사랑이란 마음은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게 뭐가 중요한데.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

“며칠째 연락 한 번 안 해놓고…? 인제 와서 뭐 하자는 거야, 너 혼자 다 정리한 거 아니었어?”

“…아니야. 그럴 리 없다는 거, 네가 가장 잘 알잖아.”

“몰라… 모른다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상혁의 반박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현지가 고개를 떨구며 작게 소리쳤다.

그런 눈빛에 날카롭지 못한 원망이 서린 건, 서로가 헤어진 이유를 정말로 모르는 탓이었다.

“마침 고백받아서 사귈 뿐인 거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놓아주는 거잖아, 내가 아니어도 괜찮았던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 단 한 번이라도 절실했던 적 있어…?”

“…절실해. 이번 일주일만이 아니라,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고, 앞으로도 그랬어. 정말 소중해, 두 번 다신 놓치고 싶지 않아, 진심이야.”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둘은 서로에게 닿지 못할 중의적인 말들만 내뱉게 될 뿐이었다.

“현지야….”

상혁은 현지의 손을 붙잡고 마음을 전하려 했지만,

그런 마음이 낯설게 느껴졌을 현지는 상혁의 손을 비틀어 뿌리쳤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잖아….”

“…글 쓰는 것도 관둘게.”

“봐, 모르잖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

이상할 것이었다.

상혁은 서로가 헤어진 이유가 뒤바뀐 듯한 기분에 이질감을 느꼈을 테지만,

당장은 현지와 화해하기 위해, 편지에 적었던 말들을, 마음에 새겼던 반성을 전하려 할 뿐이었다.

“소중히 여기겠다고, 김현지라는 여자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할 게.”

“나를 사랑하긴 해…?”

“응. 정말, 정말 사랑해. 김현지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네가 없는 미래는 상상하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응?”

편지에 적었던 말과 마음에 새겼던 반성이 아닌,

자신과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는 진심 어린 목소리가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미워, 진짜 미워.”

그토록 단호한 모습만 보이던 현지.

그런 그녀가 드디어 청신호를 밝히듯, 상혁을 살짝 올려다보고 투정을 부렸다.

상혁은 그제야 멀게만 느껴졌을 현지를 잡아당겨, 제 품에 끌어안고 말했다.

“고마워, 사랑해… 이렇게 꼭 붙잡을 테니까, 두 번 다신 헤어지지 말자… 헤어지지 말자….”

다만, 상혁의 얼굴이 좀처럼 밝아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굳어져만 가는 건,

서로가 이토록 쉽게 화해하는 과거를 받아들이기 힘든 탓이었고,

“나빠, 나빠… 진짜 바보야….”

현지는 그런 얼굴도 모른 채, 상혁의 어깨를 눈물로 적실 뿐이었다.

▶▶▶ ▶▶▶

[여섯 번째 편지]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가 밉다는 말뿐인 짧은 문자였지만, 나를 밀어내는 말은 도저히 못 찾겠더라.

이런 문자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겠지만, 정말 행복했어.

아직 자기반성이 부족한 모양이야.

그래도 지금은 그저, 전해지지 않는 혼잣말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에 안심할 뿐이야.

난 원래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걸까.

또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방황했던 걸까.

지금은 널 이렇게 바라는데, 그때는 내 옆에 있던 널 소홀히 여겼어.

역시 ‘글을 쓰는 게 문제였던 걸까’라면서 핑계만 늘어놓게 된다.

또 ‘우리가 어떻게 헤어지겠어’라는 생각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게 참 나쁜 생각이었던 것 같아.

네가 내 삶에 너무 당연한 존재가 되었어.

돌아와 달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데, 그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많아서 못 하는 것 같아.

용서를 바라는 건 아직 이르다 생각하지만, 당장은 만나서 말하고 싶어.

잘못했어, 미안해, 보고 싶어.

하고 싶은 말이 줄어들지 않고, 점점 쌓여만 가네.

오늘은 이만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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