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21화 (21/76)

〈 21화 〉 #21. 두 번째 과거(4) ­ 낯선 아이

* * *

#21. 두 번째 과거(4) ­ 낯선 아이

[18년_02월_12일_월요일]

[16:45]

여차여차 도착한 옥상은 마땅한 구조물도 없이 텅 비어있는 탓에 황량한 분위기만 맴돌았다.

하지만 그런 옥상에서 찾을 게 있었다는 것처럼.

상혁은 곧장 난관 쪽으로 붙어,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건물 벽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건 현지의 본가 안쪽으로 이어지는 베란다였다.

“후….”

평소처럼 생각에 잠길 여유는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행동거지에 망설임이 사라진 상혁이 숨만 살짝 고르고, 그대로 난간 아래로 뛰어내렸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그였지만, 다행히 다치지 않고 베란다 안쪽으로 잘 착지해냈다.

“…서두르자.”

상혁은 곧장 베란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베란다 문을 깨고 들어가야 했기에, 그를 위한 물건을 찾는 것이었지만,

혹시 싶어 만져 본 베란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행운이라 느꼈을 상혁은 서둘러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설 뿐이었다.

현지의 본가는 베란다가 있는 거실을 기반으로 방이 세 곳 있었다.

‘내가 아랫집에 몇 년을 살았는데­’

상혁은 그런 증언을 떠올리며 주변 가구를 쓸어 만졌지만, 손끝엔 먼지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지낸 사람이 없다고 하기엔… 아니, 누가 지낸다 해도… 이건 너무 깨끗한데….”

이곳은 이상하리만큼. 아니, 조금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깨끗했다.

아주머니의 증언에 점점 불신만 차오를 테지만, 상혁은 당장은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 거실 왼편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마주한 첫 번째 방은 꽤 넓은 편이었다.

커튼이 없는 창문 아래엔 큰 침대가, 그 오른편은 전부 옷장으로 매워져 있었다.

그리고 입구 옆 화장대까지가 이 방의 풍경 전부였다.

이 방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부부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 것일까.

“현지 부모님 방이려나….”

상혁이 작게 중얼거리며 옷장 내부와 화장대 서랍을 살폈지만,

이제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텅 빈 내부만 마주하게 될 뿐이었다.

상혁은 별다른 수확 없이 돌아서, 주방 왼쪽의 방으로 향했다.

두 번째 방은 무척 어두웠다.

그건 베란다에서 멀어진 탓도 있겠지만, 원론적인 이유를 꼽자면 창문이 없는 탓이 컸다.

그런 방엔 성큼 들어서긴 묘하게 꺼림칙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고,

그것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을 상혁이 휴대전화기 조명을 켜, 방 안쪽을 비췄다.

입구 정면에서 오른쪽 측면 끝까지. 그런 벽면을 기다란 책장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재구나….”

그것을 겸해 창고로도 이용됐던 모양이다.

상혁이 서 있는 문 왼편으로 수납용 서랍이 줄지어 놓여있었고,

그 앞엔 정리가 덜 된 상자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상혁은 가장 가까운 상자 앞에 앉아, 그 안을 뒤적거렸다.

“이건….”

그리고 거기서 책 한 권을 집어 들곤,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대학교 전공 수업 교재.

일반 가정집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이것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책을 펴는 옆면에 김현지라는 이름과 그녀가 사용한 학번이 적혀있었다.

이 집은 10년간 비어있지 않았다는 단서. 먼지에 이어, 현지가 사용했던 대학 교재라는 두 번째 단서를 발견한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몰랐다고 한들, 쌍둥이 자매가 아니라 한들… 최소한 현지는 여길 들렸다는 건데….”

안방이나 서재를 살필 상황이 아니었다.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오른쪽에 있는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이곳은 현지의 방일 테지만, 어쩌면 그녀의 쌍둥이 자매가 함께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방이기도 했다.

그런 방이 상혁의 손에 의해 천천히 열어졌다.

이 방도 서재만큼 어두웠지만, 오른편 끝자락에서 어스름한 일렁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창문이 있다는 걸 알아챈 상혁이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커튼을 쳤다.

그렇게 밝아진 마지막 방.

그런 방을 둘러보는 상혁에겐 절망감이 도래할 뿐이었다.

침대와 책상. 그렇다 할 생필품은 보이지 않았고, 뒤편의 한쪽만 열린 옷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든 가구가 단 한 명만을 위한 것처럼 이 방을 꾸미고 있었다.

이곳은 현지만을 위한, 현지의 방이었다.

“아니야, 아직 모르는 거니까….”

상혁은 이런 풍경을 마주하고도 쌍둥이 자매라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옷장이나 책상 주변을 샅샅이 살폈고,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결과는 침대 아래쪽 깊숙한 곳에서 액자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것을 조금 힘겹게 꺼내 든 상혁이 안에 담긴 사진을 바라봤다.

“….”

교복을 입은 학창시절의 현지와 그녀의 두 부모님.

셋이 함께 찍은 단란한 가족사진이었다.

현지가 윤서를 살해한 게 아니길 바랐던 마지막 희망.

“없었어… 정말 없는 거야….”

그것이 쌍둥이 자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과 동시에 무너져내렸고,

“윽…!”

이어서 조금 갑작스러운 두통이, 하지만 분명히 정해져 있었던 두통이 시작됐다.

▶▶▶ ▶▶▶

[18년_02월_13일_화요일]

[14:30]

“하아…!”

현지의 방에서 그녀의 가족사진을 마주하고, 갑작스러운 두통에 정신을 잃었던 상혁.

그런 그의 눈앞에 펼쳐진 장소는 익숙한 창가 앞, 자신의 집 서재였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일까.

상혁은 주머니에 있을 휴대전화기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고,

“13일 오후 2시….”

다행히도 시간은 안심해도 괜찮을 정도로 지나있었다.

첫 번째 과거에선 시간이 사라지는 일에 마음이 무너지던 상혁이었지만,

“어떡하지… 이제 뭘 해야….”

이제는 그런 현상에 개의치 않고, 다음 할 일을 생각할 뿐이었다.

윤서를 되살려야 한다는 압박감. 그로 인해 다소 급히 찾은 두 번째 과거.

그래도 상혁은 단 하루 만에 꽤 많은 일을 해냈다.

윤서의 생사를 확인하고, 원고 줄거리를 전하고.

아주머니의 일관성 있는 진술을 얻고, 현지의 본가를 조사하고.

그리고 아주머니의 증언을 깨부수는 단서들을 발견하고, 쌍둥이 자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족사진까지 마주했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였다.

할 수 있는 일이 단 하루 만에 밑천을 드러낸 것이었다.

“도대체 뭘 해야….”

차라리 벼랑 끝에 서 있는 게 자신이었다면 이토록 괴롭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혁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윤서와 그녀에게 다가가는 현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둘이 함께 떨어질 바닥이, 자신도 마주해야 할 그 바닥이 미칠 듯 두려울 것이었다.

“생각해… 생각해야 해….”

목을 조여오는 시작한 공황장애란 이름의 그림자.

상혁은 그것을 견디기 위해, 눈앞의 만년필을 쥐고, 비어있는 편지지에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더는 무리였다.

아무리 길게 늘여 적는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건 아니었다.

“하… 도대체 뭘 어떡하라는 거냐고…!”

상혁이 과거를 파헤칠수록 점점 더 분명해지는 건,

쌍둥이 자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거와 윤서를 살해할 사람은 현지뿐이게 된다는 미래뿐이었다.

▶▶▶ ▶▶▶

[16:45]

상혁은 공무원들의 퇴근 시간이 오후 6시 전후라는 것을 떠올리며 현지의 모교에 찾아왔다.

그리고 학교로 들어서기 전, 교문 옆 골목길로 들어서 담배를 꺼냈다.

평소의 상혁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테지만, 이곳이 학교 근처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불을 붙였다.

이곳이 자신의 종착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탓에 주변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상혁이 생각에 잠기려는 순간, 뒤편으로 누군가 살며시 다가왔다.

“저기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을 목소리.

그것은 상혁을 고민의 늪에서 단번에 꺼내줄 수 없었지만,

“저기요!”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다시 한번 힘있게 뱉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상혁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서 있었다.

“어… 왜?”

“여기 학교 앞이에요.”

“아.”

유추가 가능했던 짧은 꾸중에 불붙은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상혁은 등 뒤로 숨기려다 엉겁결에 떨어트린 담배를 서둘러 밟았고,

여학생은 그런 행동에 미간을 크게 좁히며 말을 이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요.”

낮게 깔린 목소리가 죄의식을 갖기 적당하게 울려오자,

“미안.”

상혁은 짧게 사과하며 밟았던 꽁초를 집어, 뒤편의 쓰레기 더미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런 제 모습이 어수룩하게 느껴져 머쓱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앞으론 조심할게.”

그렇게 여학생의 미간이 조금 풀어졌지만, 어딘가 묘한 눈빛만큼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죄의식을 갖은 상태론 그런 눈빛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뿐이었기에.

“아무튼, 그럼 이만….”

상혁은 그렇게 말하고, 여학생을 지나쳐 학교로 향했다.

“하….”

그러자 여학생이 어째선지 긴 한숨을 내쉬며 끊어진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어? 그… 교감 선생님 뵐 일이 있어서. 왜?”

그 목소리가 조금 작았던 탓에, 상혁의 걸음이 살짝 느려졌고,

“안 계셔요.”

그런 짧은 대답에 완전히 멈춰버렸다.

“안 계신다고? 왜?”

“방학이잖아요.”

“아…?”

“2월이면 고등학교는 보통 방학 기간이에요.”

“아, 지금 2월이지… 겨울방학이겠구나….”

“그걸 이제 알았다는 듯이 반응하시네요.”

여학생은 상혁의 대답이 바보 같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어대며 그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봄방학이에요.”

“응? 아… 그렇구나.”

상혁은 괜스레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에 뺨을 긁어대다, 여학생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바라봤다.

그곳엔 이유진이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있었다.

“유진이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시선이 불순하네요.”

“…응?”

“요즘 학생한테 그러시면 잡혀가는데.”

“네…?”

전혀 예상 못 한 대답이 돌아오자, 크게 당황한 상혁이 유진에게서 한 발짝 뒷걸음질쳤고,

유진은 되려, 그런 상혁에게로 한 발짝 다가가 물었다.

“아저씨는요.”

“어, 그… 이상혁.”

“음… 지금이 몇 월인지, 거기에 본인 이름도 망설이다 대답하는 걸 보면… 역시 이상한 사람이 분명하네요.”

“하하… 근데 너는 방학인데 학교는 왜 왔어? 거기다 교복 차림이네.”

“….”

그토록 당돌했던 유진이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음?”

“…어제까지 학교 나오는 거였고, 오늘부터 봄방학인 모양이네요.”

물론, 아주 잠깐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구나… 근데 말투가 조금 신기하네.”

“그건 모욕죄로 잡혀가고요.”

“미안.”

상혁은 조금은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유진에게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이었다.

“그, 아저씨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이건 꽤 위협적이네요.”

그렇게 위협적인 모습이 아니었지만, 유진은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며 뒷걸음질쳤고,

“응? 어디가…?”

상혁에게서 서너 발자국이 아니라, 서른 발자국 정도 떨어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부탁이 뭔데요.”

물론, 목소리 크기는 그대로였다.

상혁은 그게 난처하다는 식으로 머리를 긁어대다, 그 손을 입 앞에 모으고 소리쳤다.

“안 들려! 하… 진짜 특이한 애네… 혹시! 김윤희 선생님! 연락처 아니!”

상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유진은 고개만 살짝 저어댔고,

“몰라? 아니… 그래, 부탁 끝! 끝이야!”

끝이라는 대답에 천천히 돌아왔다.

“진짜 특이한 애구나….”

그런 행동방식이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을 상혁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자,

유진이 휴대전화기 화면을 두드리며 말했다.

“다 들려요. 그리고 잠시만 기다려봐요.”

“…알아보게? 친구들이 알고 있어?”

“기다려봐요.”

“응….”

묘하게 익숙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찾았어요. 근데 이걸 드려도 괜찮을까 싶네요.”

“왜?”

“개인정보 유출이잖아요. 범죄자가 되고 싶진 않아요.”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이 주는 건 어때?”

“어떻게요.”

“내가 뺏어가는 거지.”

“음… 제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어쩔 수 없이 번호를 드린다…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럼 지금부터 위협할까?”

서로가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상혁은 두 팔을 얼굴 높이로 들어 유진을 위협하듯 다가섰고,

“아, 그러실 필요 없어요. 처음부터 충분히 위협적이셨으니까, 그냥 드릴게요.”

유진은 되려, 그런 상황극을 단호히 거절하며 휴대전화기를 내밀었다.

“아, 응.”

하지만 상혁이 그런 멋쩍은 상황마저도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받아치며 번호를 받아적자,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건데….”

유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응?”

“…선 노동 후 보수라고요.”

“네…?”

“정보를 드렸으니 적절한 대가를 받아야죠.”

“그, 위협당한 거 아니었나…?”

“임금 체납. 학생이라 노동청에 신고할 수 없으니,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수상한 아저씨가 학교 앞에서 여학생을 위협하고 있다고.”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