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16화 (16/76)

〈 16화 〉 #16. 돌아오는 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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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돌아오는 길(2)

[19년_11월_29일_금요일]

[21:50]

차가운 밤 공기에 흘러나온 새하얀 입김이 짙은 담배 연기와 뒤섞여 하늘에 흩어졌다.

착잡한 마음을 태우듯,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던 윤태는 두 번째 꽁초를 떨어트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하필이면 오늘… 도대체 인제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악상. 부모는 자신보다 먼저 죽은 자식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오늘은 현지의 기일이자, 동시에 윤서의 기일이 되어버린 날.

윤서의 집에선 그녀의 어머니가 슬피 우는 소리만 울려 퍼진 슬픈 하루였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온종일 지켜봤을 윤태가 상혁을 짧게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그날 보낸 문자 기억해? 누나 붙잡고 있어 달라고, 위험하다고… 만약 내가 그날 누나를 붙잡았다면 누나가 죽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누나를 잡지 못한 내가 누나를 죽인 걸까…?”

마치 상혁이 현지를 잃고 보낸 1년이란 시간처럼.

윤태 또한 누나를 잃고 보낸 1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을 수없이 자책하고 수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도대체 왜? 형은 전부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그런 문자를 보낸 거잖아… 형은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이렇게 될 걸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 그런데 어째서 누나를 죽게 내버려 둔 거냐고….”

“….”

상혁이 입술을 뗄 수 없는 건, 제가 어떤 말을 해도 핑계로 전해질 뿐이라는 걸 이해한 탓이었고,

“그래, 형은 아무런 대답도 못 하는 지금처럼… 모든 죄를 내게 미루고 도망쳤어. 근데 이제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해할 마음도 없었던 윤태는 격양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짧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있잖아? 우리 가족. 아니, 엄마랑 나는 누나 못 잊었어. 나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평생 못 있겠지. 나는 형이랑 누나가 치정이었든 아니었든­”

“아니야, 아니야! 그건 정말 아니었­”

“치정이었든 아니었든!”

윤태가 얼굴이 붉어질 만큼 소리를 크게 질렀다.

“현지 누나가, 아니. 김현지 그 여자가 살인범이 맞건, 아니건! 이제 어떤 해명도, 사과도 듣고 싶지 않다고… 그냥 사라져달라고… 제발 좀….”

“윤태야….”

“듣고 싶지 않다고!”

사나운 목소리가 고요한 공원에 메아리쳤다.

“나는 엄마가 누나 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형이 말하고 싶은 거? 이제 그딴 건 형 밖에 신경 안 쓴다고! 하… 시발… 그만하자.”

윤태가 더는 못 버티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런 윤태를 붙잡을 수 없었다.

물론, 상혁이 어떤 말을 뱉어도 지금의 윤태를 돌아서게 할 수 없었지만,

‘오빠한테 가야 한다고! 이거 놔라? 진짜 죽는다?’

“하….”

상혁이란 존재가 떠오르게 한 윤서와의 기억이 윤태의 발목을 붙잡아 주었다.

“○○사에 있어. 여기서 끝내자. 다시는, 다시는 보지 말자….”

▶▶▶ ▶▶▶

[23:35]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절이 열려 있는지, 지금 향하는 이 길 끝에 절이 있기는 한 것인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행동하는 사고방식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간간이 놓인 가로등은 망가져 있었고, 유일하게 빛나는 은은한 달빛만이 상혁의 앞길을 밝혀줬다.

상혁은 어두운 산길 속에서 걸음을 재촉했다.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그곳이 현실과 가장 가까운 것이란 것을 모른 채.

그런 걸음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만치서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는 연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절에 다다른 것이었지만, 넋이 반쯤 나간 상혁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려는 찰나였다.

“어서 오세요.”

낯선 목소리가 상혁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상혁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여자 스님이 서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자,

“아….”

상혁도 그것을 엉겁결에 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째선지 걸음이 이쪽으로 향하더군요.”

마치, 상혁이 찾아올 걸 알고 있었다는 반응.

상혁은 그것이 신경 쓰였지만, 당장은 그런 일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물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습니다… 들어갈 수 있을까요…?”

“네,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렇게 유골함이 빗살처럼 늘어진 절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

법사님이 조금 안쪽 방에 들어서, 유골함 하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찾아오신 분이 저분 맞나요?”

그곳엔 갈아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생기 있는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런 꽃보다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여자.

“아.”

그녀를 마주한 상혁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었다.

상혁은 이를 세게 물고, 떨리는 턱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손과 팔꿈치, 상반신 전체가 떨리는 것까진 버틸 수 없었다.

상혁이 사진 속의 여자, 윤서 앞으로 다가가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그분을 찾아오셨군요.”

“…어떻게 아셨죠.”

법사님은 상혁의 뒤에 서, 윤서의 사진을 바라보며 오늘의 기억을 전했다.

“오늘이 낯설었다 해야 할까요, 진묘했다 해야 할까요, 아니면 오묘했다고 해야 할지… 그곳은 분명 비어있는 자리였을 것인데… 그건 물론,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일 테지만요.”

“네…? 방, 방금 뭐라고…?”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상혁이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법사님은 분명, 바뀐 과거를 인지하고 있었다.

“어렵게 기억하는 것과 쉽게 떠오르는 것 중에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그건….”

“자승자박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자신의 행동들이 자신을 얽매어 난처하게 만들 것이다….”

“네, 저는 기억과 현실이 다르기에 난처했습니다. 이분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과 다른 기억 탓이겠지만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목적 없는 가르침이 전해졌을 때, 무너졌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면 불안함은 잠시 미뤄둬야 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돌아가시는 거군요… 네, 조심해서 가세요.”

그것을 깨달은 상혁은 몸을 일으켜 허리를 반쯤 숙여 인사한 뒤 절을 나섰고,

법사님은 그렇게 멀어지는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이건 과한 참견이겠지만, 그때 그분보다 훨씬 위태로운 모습이네요….”

▶▶▶ ▶▶▶

[19년_11월_30일_토요일]

[01:00]

다시 한번 갈 수 있을까.

어떤 확답도 듣지 못했지만, 상혁은 집으로 돌아와 집안 곳곳을 뒤졌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찾아, 노신사에게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과거가 좋겠죠.’

전부 맞는 말이었다.

가장 가까운 과거만이 변수가 적을 것이었다.

물론, 이미 가장 일어나선 안 됐을 변수가 이미 일어났지만 말이다.

“가까운 과거… 그거라면….”

무엇인가를 떠올린 상혁이 곧장 서재로 향했고,

그가 서재 책장에서 꺼내 든 건, ‘이 여자, 그 남자’의 시놉시스였다.

그건 이제는 약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청혼 반지를 대신해, 첫 번째 과거와 가장 인접한 시간이 담긴 물건이었다.

현지의 죽음을 막는 것보다 우선시해야 할 일.

그건 자신 탓에 죽은 윤서를 되살리는 일.

윤서의 죽음은 이치에 어긋나는, 그릇된 일이었다.

‘소중한 물건엔 그만큼의 시간과 추억이 담겨있기 마련이죠.’

현지는 반지를 받고 7일 뒤에 죽었다.

그리고 그런 반지를 바쳐 향한 첫 번째 과거에 주어진 시간도 7일이었다.

과거로 갈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지는 기준을 어느 정도 알아차린 상혁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 원고에 윤서와의 추억이… 해봐야 한두 시간일 텐데….”

상혁은 이 원고로도 윤서를 되살리지 못했을 때를,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도 대비해야 했다.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꺼내든 건, 서재 책상 서랍 구석에 있던 낡은 편지 봉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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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_11월_30일_토요일]

[02:00]

고요한 분위기가 어울릴 것 같은 이곳에 태엽 소리가 사납게 메아리친다.

그리고 영겁의 세월이 쌓아 올린 익숙함, 그것이 선사해준 고요함에 잠긴 노신사.

그런 그가 쥐고 있던 찻잔에 갑작스러운 파장이 울렸다.

파장이 시작된 곳은 입구, 그곳엔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상혁이 서 있었다.

“하아, 하아….”

이번에도 계단으로 올라온 것인지.

상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안쪽 방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생각보다 빠르군요. 인과에 관해 깨우치고 오셨나요?”

“후… 여기요.”

상혁은 노신사의 질문을 무시하고, 쥐고 있던 원고와 편지 봉투들을 책상에 올려놓고 말을 이었다.

“이것들로도 과거에 갈 수 있겠죠?”

“음… 후회하고 계신 것 아니었나요?”

노신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이번만큼은 질문의 의도가 진지했기에, 시종일관 올라가 있던 입가도 내려져 있었다.

상혁의 대답이 꼭 듣고 싶은 것이었다.

“네,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쳐야겠죠.”

“고친다라… 바뀐 과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그리고 과거는 더 나쁘게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더 나쁘게…? 지금보다 최악이 있을까 싶네요. 차라리 차악을 택하겠습니다. 이 원고부터 사용할게요.”

“아, 근데 그건 무리예요.”

“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찾아온 상혁의 표정이 심하게 난처해졌고,

“그니까, 이게….”

그런 얼굴은 노신사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상혁을 만나고 처음 보인 모습이었다.

“무리라니… 어째서죠?”

“그래, 차라리 간단하게 예를 들어볼게요.”

노신사가 쥐고 있던 찻잔을 상혁의 앞에 내려놓고, 각설탕이 담긴 통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찻잔은 시간 전체를, 차는 상혁 씨가 바꾸려는 시간을, 그리고 이 설탕은 시간을 바꾸는 행위라 치죠. 자, 여기에 설탕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천천히 녹아들겠죠…?”

“네. 한 개, 두 개. 이 정도는 녹아들겠지만.”

각설탕이 세 개째 들어가는 순간, 담겨있던 차가 넘쳐흘렀다.

“그래, 이만큼이 상혁 씨가 바꿀 수 있는 정도라는 뜻입니다. 시간엔 한계가 있어요.”

“이제 한 번 바꾼 거잖아요….”

“그래요, 억울할 수 있죠. 보통이라면 두 번까진 괜찮은데, 상혁 씨는 힘들 것 같아요.”

“그니까 어째서….”

“그 시간대에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난 탓이라 해야겠죠?”

“아….”

상혁은 윤서의 죽음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노신사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게 아니라, 그게 좋을 것 같네요.”

노신사가 윤서의 원고가 아닌, 편지 봉투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토끼는 두 마리를 잡는 게 정석이니까요.”

이것들은 상혁이 이별을 결심한 현지를 붙잡기 위해 적었던 편지.

18년 2월의 시간이 담긴 물건이었다.

“하….”

점점 더 깊어지려는 과거가 불안했을 상혁이 한숨을 내쉬며 마른 세수를 했고,

노신사는 그런 상혁을 다독이려는 것처럼 싱긋거리며 말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과거는 정말 쉽게 바뀌니까요. 다만, 두통은 점점 더 심해질 텐데 괜찮겠어요? 뭐, 하루 이틀 쉰다고 고쳐질 것도 아니지만요.”

“…상관없습니다. 잠시만요, 그 말은 이번 과거에서도 시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인가요?”

“네, 뭐… 정해진 과거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본인의 욕심이니 감내하셔야 할 부분이겠죠.”

상혁은 시간이 사라지는 근본적인 이유를 물어보려 했지만, 본인의 욕심이라는 말에 그것을 관뒀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가게 해주세요.”

“결정이 빨라서 좋네요. 그럼 바로 시작하죠.”

첫 번째 과거 때와 달리, 빠르게 진행되는 대화.

그것이 편안했을 노신사가 책상에 모래시계를 두고 편지들을 손 위에 올리자, 몽환적인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상혁은 다시 봐도 낯선 그 장면에 헛웃음만 지어 보였고,

“첫 번째와 같군요. 이번에도 7일입니다. 의식이… 뭐, 이제 잘 아시겠죠?”

노신사는 그렇게 말하며 모래시계를 뒤집은 뒤, 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윽!”

그와 동시에 두통이 시작됐지만, 상혁은 개의치 않고 흐려지는 시야를 제 것처럼 받아들였다.

“두 번째 시간, 잘 사용하­”

조금 급하게 시작되는 두 번째 과거.

상혁은 윤서를 되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채찍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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