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15. 돌아오는 길(1)
* * *
#15. 돌아오는 길(1)
[19년_11월_29일_금요일]
[20:40]
모래시계 속에 담겨있던 금빛 알갱이들이 떨어지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관찰자로서 존재하기에 만들 수 있었던 공간.
무수한 시계가 노신사를 감시하는 이곳, 현재였다.
“이제 돌아오시려나요….”
노신사가 비어있는 맞은편 자리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고, 이내 마지막 알갱이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였다.
흩어졌던 열쇠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비어있던 맞은편 자리에 상혁의 모습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상혁은 모호하게 퍼져있던 감각들이 제게 돌아오는 것을 느꼈고, 그런 몽롱한 감각이 가시고 나서야 눈앞의 노신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과거는 어떠셨나요?”
어렴풋이 전해지는 질문을 들었을 테지만, 아직은 대답할 경황이 없었던 것인지.
“윽….”
상혁은 지긋지긋한 두통이 이어지는 머리를 붙잡고, 과거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현관 밖의 인물을 끝끝내 보지 못했기에, 기억은 열리기 시작하는 현관문에서 끊겨있었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허탈감, 아직도 이어지는 두통에 치밀어오르는 분노.
눈을 뜬 상혁이 노신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분명 일주일이라고 하셨을 텐데요.”
“그랬죠?”
“하, 이 빌어먹을 두통에 의식을 잃고, 정신 차리길 반복하면 몇 시간씩… 아니, 시간이 며칠씩 사라졌다고요….”
원망의 화살이 향할 곳이 필요했던 상혁이 따지듯 묻자,
“시간이 사라졌다라….”
노신사는 고민에 잠긴 얼굴로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리고 텅 빈 시계를 흘끔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오차범위는 없었을 테지만, 상혁 씨는 약 이틀, 48시간가량을 잃었군요.”
“원래대로라면…? 그게 무슨 소리죠?”
“우선은 저도 상황 파악이 필요하겠죠. 조금 전에 이마를 짚으시던데, 두통이 심하신가요?”
“…과거에 있을 때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심하게 아려오네요.”
“그럼 과거엔 어떤 변화를 주고 오셨죠?”
질문을 되새겨봐도 마땅히 해낸 것이 없었고, 그것이 허탈했을 상혁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아는 후배한테 도움을 받아, 현지에 관한 단서를 찾았습니다. 본가 주소나 일란성 쌍둥이를요.”
“음…? 일란성 쌍둥이요?”
“네, 근데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이상 찾아낸 것도 없고요.”
“흠….”
“마지막엔 자취방에서 현지를 기다려봤지만, 거기서 끝이었어요. 19시 정각에 시간이 끝나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요….”
“뭐, 마냥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네요.”
노신사가 고개를 저어대며 대답하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을 상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혼자 남겨졌던 윤서를 떠올린 것이었다.
“이윤서…!”
상혁은 다급히 휴대전화기를 꺼내, 윤서에게 전화를 걸었고,
“빨리, 빨리… 어…?”
그런 다급한 목소리가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짧은 안내 음성과 함께 끊어졌다.
“바라던 결과는 아닐 테지만, 그래도 확실한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군요.”
노신가가 텅 빈 모래시계 주변에 재처럼 쌓인 먼지를 훑어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슬슬 떠오르실 테니까, 그래… 음악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그런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의 책장을 뒤적거리며 물었다.
“상혁 씨는 클래식 좋아하시나요?”
“도대체 무슨 말을….”
집어든 건 엘피판이었다.
노신사는 그것을 들고 바로 옆 턴테이블 쪽으로 향해 말했다.
“자, 바로크의 겨울입니다. 상혁 씨는 남아계실 건가요? 아니면 고전파로 넘어가실 건가요. 천천히 떠올려보세요. 전부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를 겁니다.”
관련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질문 뒤로 장작 타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이어서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이 재생됐다.
“맞다, 그거 심해지실 겁니다.”
그렇게 노신사가 제 머리를 가리키는 순간,
“…윽!”
두통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찾아왔다.
상혁은 과거에서 겪은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통증에 두 귀와 머리를 크게 감싸 안으며 바닥에 널브러지듯 쓰러졌다.
“하윽… 이건 도대체 윽…!”
점점 강해지는 두통. 그것은 상혁이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의 기억을 마주하게 했다.
데이트부터 청혼, 당일이 아닌 다음 날 현지가 사라졌던 과거.
상혁이 일으킨 변화. 그것들이 원래의 과거를 지워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어서, 마주할 수 없었던 29일 오후 7시라는 과거. 그 뒤의 일들이 언젠가 감상했던 영화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12월 06일 목요일, 비가 지독하게 내리던 그날.
상혁은 전화를 받고 집에서 뛰쳐나가는 자신을 마주했다.
어수선한 현지의 집 앞, 계단을 오르며 마주했던 형사, 그리고 그런 과거를 지나치는 자신.
기억 속 상혁은 그렇게 현지의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어…?”
바닥에 널브러져 고통을 호소하던 상혁의 몸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건 자신의 두 눈에 담겼던 장면, 마주한 기억이 지금 느끼는 두통만치 생생한 탓이었다.
현관문 건너편에 있는 건, 자신을 내려보던 현지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 누군가 더 있었다.
기억 속 상혁은 그 사람에게로 향했고,
“안 돼… 안 돼….”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지금의 상혁이 작게 중얼거렸고,
이어서 고통에 감았던 눈을 부릅뜬 뒤, 맨바닥에 머리를 박아대기 시작했다.
기억을 멈추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자학적 행동.
하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자비롭지 못했다.
“멈춰, 멈춰, 제발, 제발 멈추라고…!”
그런 처절한 절규에도, 새로운 과거는 상혁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뒤편에 쓰러져있는 사람은 윤서였다.
기억 속 상혁이 그것을 확인했고, 지금의 상혁이 그것을 떠올렸다.
“아….”
상혁의 입에서 기계가 고장 난 것 같은 신음이 흘렀다.
그건 머리가 찢어질 것 같은 두통도, 맨바닥에 처박아대던 이마의 고통도 아닌,
자신이 바꾼 과거에 차오른 죄책감 탓에 흐르는 외마디 비명이었다.
기억은 무자비했다.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한 상혁에게 일말의 여유도 주지 않고, 그를 낯선 취조실로 밀어 넣었다.
기억 속 상혁은 이곳에서 형사들에게 사건 경위를 듣고 있었다.
18시 40분. 윤서는 상혁에게 몇 차례 부재중 전화를 남긴 뒤, 현지의 자취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용의자 A에게 수차례 자상을 입었다.
대부분이 치명상을 피했지만, 심장 근처의 자상 한 곳이 동맥에 과한 출혈을 일으켰다.
그런 탓에 심장이 압박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이어졌다.
그렇게 윤서는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지가 그런 장소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용의자 A로 지목된 사람은 둘이었다.
한 명은 목을 맨 현지, 다른 한 명은 이상혁 본인이었다.
상혁이 바꾼 과거는 여기까지였다.
점점 어두워지는 기억. 그것이 엎드려있던 상혁에게로 이어졌다.
“전부 떠올리셨나요?”
“전부 거짓말이잖아… 빨리 아니라고 말해요….”
자신이 바꾼 과거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혁이 주먹으로 애꿎은 바닥을 내리쳤다.
“음… 역시 두 번째 세상은 개연성이 부족하네요.”
“아니잖아… 아니잖아! 그렇죠? 아니죠? 네? 빨리 아니라고 말하라고!”
“최근에 거짓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그런 대답에 이성의 끈이 풀린 것인지.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신사의 멱살을 붙잡고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똑똑히 들어… 이 기억, 이게 전부 사실이면 당신 내 손에”
정말 누군가를 죽일 기세로 소리친 상혁이었지만,
“전부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을 노신사는 딱 잘라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태연한 모습이 두렵게 느껴진 것인지.
상혁이 노신사의 옷깃을 내려놓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건 오로지 겁이 나서 물러선 뒷걸음질이 아니었다.
마치, 경외할 수밖에 없는 사악한 신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
제 손에 닿았던 노신사란 존재가 으슥해진 것이었다.
상혁은 뒷걸음질치던 걸음을 돌려 이곳을 나서려 했고,
“직접 확인하러 가시는 건가요?”
노신사는 그렇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과 입에 얇은 초승달을 그릴 뿐이었다.
그건 이렇게 괴로워하면서도, 이곳을 다시 찾을 상혁의 모습이 예상된 탓에 그린 사악한 웃음이었다.
▶▶▶ ▶▶▶
[21:30]
제가 바꾼 과거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혁이 찾아온 이곳은 윤서의 집.
“윤서야! 이윤서!”
상혁은 한 손으로 윤서에게 전화를 걸고, 남은 손으론 그녀의 집 현관문을 세게 두드렸다.
“받아, 받으라고….”
하지만 그런 거친 소리에도 휴대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안내음만큼은 지워지질 않았다.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대로 무너질 것이었다.
이윽고 열리기 시작하는 현관문. 그 안에선 윤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서 아….”
“형…?”
윤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상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곤, 잠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
“윤태야, 윤서는? 윤서 여기 있지…? 그렇지…?”
“뭐…?”
“아니, 아니! 윤서, 이윤서 어디 있냐고!”
윤태의 양팔을 붙잡고 애원하듯 묻던 상혁이 급작스레 돌변해 소리를 질러댔다.
그건 윤서를 만나야 한다는 다급함, 그리고 윤서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 탓이었다.
“하, 1년 만에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이거야?”
윤태는 얼굴을 굳히다, 상혁의 손길을 뿌리치며 말을 이었다.
“좋게 말할 때 돌아가. 이렇게 말 섞는 것도 역겨우니까.”
그리고 곧장 현관문을 닫으려 했지만, 상혁의 손이 현관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막아섰다.
“아니잖아… 제발, 제발… 제발 아니라고 해줘….”
애원하듯, 부탁하듯. 이제는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간절한 목소리.
하지만 윤태는 그런 모습에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구역질만을 느끼다, 다시 한번 상혁의 손을 밀쳐내며 대답했다.
“진짜 미쳤어…? 누나 죽고 1년이 지났어… 근데 지금 뭐하자는 거야? 아니, 그것도 오늘…? 지금, 내가 나와서 망정이지, 우리 엄마 나왔어도 이딴 소리 했을 거잖아… 하.”
윤태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말했고, 상혁은 그런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윤서가 죽고 1년이 지났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감정이 무너진 탓이었다.
그런 상혁이 현관 앞에 주저앉자,
“다시는 오지 마.”
윤태가 현관문을 매정하리만큼 세게 닫아버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있잖아, 여기 있잖아…! 제발, 제발… 윤서 여기 있다고, 그렇다고 말하라고….”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상혁,
“하….”
그리고 그런 현관문 뒤에 기대서 있는 윤태.
윤태는 이러다 상혁의 목소리가 안방에 계신 어머님께 닿지는 않을지.
그리고 그것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 생각했기에.
결국, 닫았던 현관문을 열고 상혁을 마주해야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