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4. 변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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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변화(1)
[18년_12월_06일_목요일]
[17:20]
구김이 많은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양복바지. 거기에 얇은 베이지색 프렌치 코트를 걸친 남자.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에 튀어, 남자의 코트 끝자락을 적셨고,
“구멍이라도 뚫렸나….”
초겨울이라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옷차림의 형사 박철식이 작게 중얼거렸다.
“오! 켜졌다!”
그리고 휴대전화기와 보조 충전기를 만지작거리던 제복 차림의 여자가 철식에게 다가왔다.
“잠금은?”
“우선… 이건 안 걸려있네요. 여기요.”
우산 사이로 휴대전화기 한 대가 지나갔다.
철식은 건네받은 휴대전화기의 통화 기록부터 살폈다.
“…정말 지독하게도 내리네요. 주변 조사는 어떡하죠?”
맞은편 건물 주변을 바라보는 여자의 이름은 박지은.
강력 2반에 배속된 보기 드문 여자 형사이다.
“어떡하긴, 저것뿐이지.”
통화 기록을 살피던 철식이 무심하게 대답하며 옆 건물 가로등에 달린 CCTV를 가리키려다, 손이 부족한 탓에 턱 끝을 흔들었다.
그러다 이리저리 튀는 빗방울에 짜증이 차오른 듯, 미간을 좁히며 맞은편 건물 아래로 향했다.
“아, 저거라면 사람 좀 추릴 수 있겠네 응? 아, 좀 같이 가요!”
철식은 건물 벽면에 붙어 비를 피할 수 있는지 확인한 뒤, 우산을 접고 담배를 물었다.
그러자 철식을 뒤따라온 지은이 옆에 붙어 서서,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 남은 쪽은 조금 걸릴 것 같아요.”
“하… 남은 쪽이라니?”
빗방울은 피했지만, 거센 바람 탓에 라이터가 작동되지 않았고,
그것에 한층 더 짜증이 차오른 철식이 얼굴을 잔뜩 구겨가며 되물었다.
“그쪽 회사는 보안이니, 뭐니 하면서 엄청나게 복잡하잖아요.”
“뭐라는 거야.”
“음? 아, 자상 쪽이요.”
“자상?”
그런 대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던 것일까.
철식은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뒤편의 건물을 돌아봤고,
묘하게 스산한 기운이 맴도는 건물에서 일어난 사건 현장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마치, 기억의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철식은 사건 현장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곳에 관한 기억이 떠올릴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딘가 흐릿하기만 했을 것이다.
“뭐야 이거….”
“응? 왜요?”
이번에는 지은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물었고,
그녀의 말을 끝끝내 이해할 수 없었던 철식이 같은 말을 되물었다.
“자상이라고?”
“몇 번을 말해요! 네, 네, 네! 자상이요, 자상!”
그렇게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오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철식.
그런 그가 켜지지 않는 라이터와 물고 있던 담배를 주머니에 대충 집어넣으며 건물 안으로 향했다.
사건 현장을 두 눈으로 다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응? 선배! 방금 감식반 들어갔잖아 아이참, 좀 같이 가요!”
2층으로 올라와 오른쪽 길로 돌아서, 네 번째로 나오는 집.
건물 입구에서 성인 남성 기준으로 약 40걸음.
CCTV에서 고작 1분 남짓한 거리인 이곳이 사건 현장이다.
현관문이 활짝 열린 204호.
그런 집 안쪽엔 천장과 맞닿은 곳에서 철식을 내려다보는 작은 체구의 여자가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요.”
철식은 현관 형광등에 매달린 여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 비도 오는데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요. 죄송해요, 잠시 확인할 게 생겨서요.”
그러자 지은이 안쪽 감식반 인원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의 미간이 철식의 코트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좁혀진 탓이었다.
“이게 무슨….”
“아니, 도대체 왜 그러냐고요!”
직접 확인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은 사건 현장.
철식은 제가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며 입을 벌렸고,
“후….”
이내 그런 입으로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기억을 정리하려는 것이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제가 이상하다 여긴 건 눈앞의 여자가 목을 매는 데 사용한 줄이 아닌, 손목에 묶인 낚싯줄이었다.
그건 목을 매달았을 때, 손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그녀의 배꼽까지만 올라올 길이로 바닥에 못 박혀 고정되어있었다.
이렇게 지독한 자살 방법은 듣거나 보지도 못했다고, 그렇기에 이건 살인사건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형사경력이 소리쳤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이 조금 거북했던 탓에, 옅은 두통을 느끼며 잠시 밖으로 나왔을 뿐이었다.
여기까진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도대체 저건….”
철식은 잠시 고개를 돌려 지은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눈앞의 현장에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요….”
“….”
철식이 흐릿하다고 생각했던 기억, 이질감이 느껴졌던 기억.
그건 목을 맨 여자의 뒤편에서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곳에 한 구의 시신이 더 있었다.
▶▶▶ ▶▶▶
[18:10]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시신이 익숙해졌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마주한 뒤부터는 점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수첩에 끄적거리던 철식이 제 머리를 세게 긁어대다,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약 30분 정도 전, 철식은 잠금이 해제되는 휴대전화기의 주인이 목을 맨 여자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이 여자의 전화번호부가 조금 이상했다.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만, 딱히 그걸 대체할 표현이 없었다.
저장된 연락처가 10개도 넘질 않았다.
마땅히 연락할 가족은 없었고, 곧이어 도착한 신원 조회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철식은 어쩔 수 없이, 그나마 가까운 관계일 남자 친구라 저장된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김현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전하지는 않았고,
현장 부재 증명, 간단한 알리바이 조사를 마치고 나서야 그런 비보를 전했다.
그리고 지금, 지은이 그런 통화 내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분명 피해자 유가족이 보일 법한 반응이었죠? 금방 이리로 올 것 같은데….”
“…분명 올 거야. 기다리자.”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세 사람의 이름뿐이었다.
목을 맨 여자는 김현지,
그 뒤편에 쓰러져 있는 여자는 이윤서,
그리고 이곳에 찾아올 남자는 이상혁.
철식은 윤서의 몸 곳곳에 있는 자상 자국을 살펴보며 그녀가 가해자로부터 저항하려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사인은 감식 결과를 확인해야겠지만, 심장 근처의 자상을 사인이라 판단했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 바라본 현지의 옷차림. 새하얗던 원피스엔 핏자국이 가득 묻어있었다.
“저건 또… 하하….”
미칠 노릇이었다.
철식은 이 사건보다, 자신의 상태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현지의 집에서 돌아섰다.
“어디 가요?”
“담배… 전화도 좀 하고 오게.”
“그럼 같이 아, 좀!”
그리고 중앙 계단 쪽으로 향하며 전화를 걸었고, 그와 동시에 아래쪽에서 묘한 인기척을 느꼈다.
그것이 신경 쓰였을 철식이 계단 중간지점까지 뛰어 내려가자, 비에 흠뻑 젖은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상혁 씨?”
직감으로 알아차린 그의 정체. 물론, 대답이 돌아온 건 아니었다.
“어? 이상혁 씨 왔어요? 아… 이상혁 씨 맞으세요?”
뒤따라온 지은도 그렇게 물었지만,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철식과 지은을 지나쳐 계단을 오르려 했다.
“저기, 여기 지나가시면”
지은이 그것을 막아서려 했고, 철식이 그런 지은을 붙잡으며 말했다.
“기다려봐. 확인할 게 있어.”
철식은 이 남자가 상혁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해결하려 했다.
그건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 갑자기 늘어난 시신을 상혁에게도 보여준 뒤, 그가 보일 모든 반응을 관찰하려는 것이었다.
이윽고 상혁이 현지의 집, 204호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
상혁의 고개가 위로 살짝 들렸다.
현지의 얼굴을 바라본 것이었지만,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이 현지의 뒤편으로 넘어갔고, 그런 순간.
“아….”
상혁이 힘없는 목소리를 흘리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 거기 들어가면 안 되는데…!”
지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멈추게 한 건 감식반 인원들뿐이었고,
“윤서야…?”
갑작스러운 행동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윽…!”
상혁이 자신의 머리를 붙잡더니, 이내 정신을 잃은 것처럼 옆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에? 헉, 이상혁 씨!”
그런 모습에 화들짝 놀란 지은과 감식만 인원들이 상혁에게 달려갔다.
“….”
오로지 철식만이 현관 밖에 서서, 그런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확실한 것 같은데….”
철식은 상혁의 감정이 현지가 아닌, 윤서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변했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것이 현지의 죽음은 알고 있었지만, 윤서의 죽음은 몰랐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상혁이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까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하… 도대체 뭐가 뭔지….”
거기부터는 현실적인 추리로 알아내기 불가능한 영역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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