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13. 첫 번째 과거(9) 최악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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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첫 번째 과거(9) 최악의 시나리오
[18년_11월_28일_수요일]
[21:00]
두 사람이 의식을 잃고 수 시간이 흘렀고, 그런 현상에서 먼저 깨어난 쪽은 상혁이었다.
“윽….”
핸들에 박혀있던 이마를 떼어내며 미약한 신음을 흘리는 상혁.
정신을 잃게 할 정도로 극심했던 두통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까진 아닌 모양이다.
지나치게 어두운 주변, 바깥은 어느새 밤이 되어있었다.
상혁은 차량 내부 조명을 켠 뒤,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고,
“윤서야 일어나….”
그렇게 말하며 윤서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윤서의 고개가 맨 처음 흔든 방향으로 맥없이 넘어갔다.
“에…? 윤서야?”
그것에 당황한 상혁이 다급히 윤서의 왼쪽 손목을 붙잡았다.
맥박을 느끼려는 것이었으나, 작은 미동조차 느낄 수 없었다.
윤서의 손목은 썰렁한 차량 내부만큼 차가웠다.
“야, 야! 이윤서!”
이제는 다급해진 손이 윤서의 오른쪽 가슴으로 향했다.
심장 박동을 느끼려는 것이었다.
물론, 오른쪽 가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오른쪽 가슴은 아주 조금 말랑할 뿐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혁이 제가 올린 가슴 쪽에 심장이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이었다.
“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말똥말똥해진 윤서의 눈을 마주친 것이었다.
윤서는 눈만 깜빡이는 상혁과 자신의 가슴에 놓인 그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뭐 해요…?”
“어… 아? 어, 그게, 그니까… 히터 좀 틀까? 춥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상혁이 손을 황급히 거두곤, 당황한 입으로 아무 말이나 뱉어댔다.
“….”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차분하게 해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황한 만큼 말문도 막혀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그니까, 그게….”
해명할 수 없다면 순결한 가슴을 만진 죗값을 치러야 했고,
이미 윤서의 손이 상혁의 뺨으로 날아드는 중이었다.
“꺄아아악!”
많이 늦은 비명이 상혁의 뺨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고요했던 차량 내부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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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
조금 늦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혁과 윤서는 서로가 의식을 잃었던 것에 관한 이야기를 끝으로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상혁이 틀어놓은 히터에서 따뜻하고 어색한 분위기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미안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혁과 괜히 심하게 반응한 것 같아 말을 하지 못하는 윤서.
그리고 이런 간지러운 상황을 버티지 못하는 쪽은 늘 윤서였다.
“아니…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코나 입에 손을 올려보면 되잖아. 그리고 이 날씨에 히터도 안 틀고 몇 시간을 쓰러져 있었는데, 손이 차갑지 따뜻하겠어? 거! 기! 다! 가! 도대체 어떻게 심장이 오른쪽에 있냐고! 진짜 바보예요? 할 말 다하니까 입 꾹 닫고 있는 것 봐… 진짜 얄미워 죽겠어!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천 번 만 번 하던가!”
불만이 속사포처럼 전해졌다.
차분하게 말하고 싶었을 테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훨씬 더 앞섰던 모양이다.
“미안….”
“그게 끝이야…?”
“그, 그니까… 그게 만진 건 아니고, 잠시 손을 올렸다고 해야겠지…?”
세상 억울한 상혁의 입가가 턱 끝까지 처지려 했다.
“이거나 저거나!”
“그게 또 의미나 어감이 살짝 다르니까….”
나름 억울함을 풀어보려는 것이었지만, 따가운 시선만 심해질 뿐이었다.
“미안, 놀라서 그랬어….”
“하… 이제 어떡할 거예요.”
윤서는 언짢다는 표정은 지우진 못했어도, 내일 있을 일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상혁은 윤서가 아직도 가슴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고,
가슴을 만진 책임론에 대답을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잊, 잊을게! 아니, 벌써 까먹었어. 그, 아무 느낌도 없었고…?”
“뭐… 뭐라고요…?”
미간이 좁혀지는 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지금, 그것도 아주 크게 울렸을 것이다.
“아니! 내일 어쩔 거냐고! 그리고 뭐? 아무 느낌이 없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진짜 변태야?”
“아? 아, 내일! 내일은 아주머님 뵙고 현지 집에 가야겠지…? 아, 도, 도착했네! 얼른 내리자.”
“하.”
윤서는 상혁의 주절거림에 대답하지 않고, 짧은 한숨만 내쉬며 차에서 내렸고,
상혁이 그런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걸었다.
“…본가는 저한테 맡기고, 오빠는 내일 곧바로 언니 자취방으로 가요.”
“괜찮아.”
“도대체 뭐가 괜찮아. 잘 때도 아니고, 대낮에도 시간이 사라졌잖아. 내일도 그러면 어쩌려고요?”
“….”
상혁이 대답을 못 하자, 윤서가 드디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 보고 말을 이었다.
“이럴 때는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고맙다.”
“그럼 까먹지 말고 밥이나 사요.”
“두 번 살게.”
“두 번…? 장난해요? 백 번은 사야죠!”
“에? 어… 응, 백 번 살 게….”
“풉. 됐어, 장난이에요. 열 번으로 봐줄게.”
윤서의 장난을 끝으로, 어색했던 분위기가 막을 내렸다.
“이제 들어갈게요. 집 도착하면 문자 보내요.”
“응, 조심해서 들어가.”
“그건 엘리베이터를 조심해서 타라는 뜻? 아니, 현관문을 조심해서 열라는 뜻인가…?”
“…아무튼.”
“으이구… 알겠어. 조심해서 들어갈 테니까, 오빠도 조심해서 가요.”
그렇게 윤서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상혁은 그런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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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_11월_29일_목요일]
[12:15]
상혁을 잠에서 깨운 건 지긋지긋해졌을 두통. 이번에도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그건 침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 지금 이 순간인 탓이지만,
아직 그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 상혁은 짧은 한숨만 내뱉으며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하.”
이전과 달리 덤덤했던 얼굴이 침대에서 내린 두 발 탓에 구겨졌다.
두 발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의미하듯, 바닥이라는 감각을 전해주질 못했다.
상혁은 그런 감각과 터무니없이 흘렀을 시간에 개의치 않고,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서였다.
“응.”
[여보세요? 일어났어요? 두통은 괜찮고요? 오빠부터 일으키고 갔어야 했나, 엄청 걱정했잖아.]
“…괜찮아. 어디야?”
[곧 언니 본가 도착해요. 오늘은 괜한 짓 하지 말고, 곧장 언니 집으로 가요. 알겠죠?]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오빠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응, 조심해.”
짧지만 다정한 대화만 오갔던 통화가 끊어졌다.
상혁은 현관 문고리를 잡고, 일주일간 벌어진 일들을 떠올렸다.
그토록 바라던 현지를 만나고, 다시 잃었다.
이것저것 해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해내질 못했다.
힘겹게 알아낸 것들은 마냥 의미 없는 것들이 아닐지라도, 당장은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윤서가 없었다면.
“더는 위험하니까….”
더 이상의 도움은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상혁은 두 통의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현관을 나설 수 있었다.
▶▶▶ ▶▶▶
[18:50]
상혁이 현지의 자취방에 도착한 건 오후 1시쯤이었다.
상혁은 곧바로 형광등 불을 켠 뒤, 침대 옆 바닥에 앉아 그곳에 몸을 기대었고,
그런 순간부터 흐려졌다가 번뜩이기를 반복하는 시야에 의식을 맡겼다.
그것은 시간이 사라지는 현상이었지만,
상혁은 아침부터 모호해진 감각 덕에 그것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저,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았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지켜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런 긴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된 것이었고, 그런 순간.
[삑삑삑삑]
비밀번호가 입력되며 현관문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울렸다.
상혁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눈을 부릅뜨자, 조금 거친 느낌으로 현관문이 열렸다.
“이상혁!”
윤서였다.
그녀는 어제 현지의 회사 앞에서 보였던 걸음걸이보다 훨씬 더 난폭해진 분위기를 흘리며 상혁에게 다가왔다.
“윤서네….”
“아니, 그냥 오지 말라고 하던지! 도대체 거짓말을 왜 하는 거예요! 온종일 이게 뭐야… 온종일 전화도 안 받고, 언니 본가랑 우리 대학교랑 여기까지 거리를 몰라서 그런 거예요?”
“미안….”
윤서가 그곳들을 헤매고 다닌 이유.
그건 상혁이 집을 나서기 직전에 보낸 문자 탓이었다.
윤서에게는 대학교 인근에서 현지를 발견한 사람이 있으니, 거기서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고,
윤태에게는 그런 윤서를 붙잡아달라는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이윤태 때문에… 하, 몸은 어때요. 좀 괜찮아요?”
“…괜찮아.”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을 테지만, 상혁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 그런 감정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윤서가 상혁의 앞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놓인 그의 손목에 제 손을 올렸다.
어제처럼 투명해진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만져지네… 언니는? 아직 안 왔어요?”
“응… 이제 돌아가….”
“알겠어, 알겠어. 혹시 모르니까, 언니 본가에서 알아 온 것만 전해주고 갈게요.”
상혁이 고개만 한 차례 끄덕이자, 윤서가 알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 만났어요. 언니에 관해 여쭤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어요. 그런데 쌍둥이만큼은 확실히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말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상혁의 손목에 올려져 있던 윤서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혁의 몸이 투명해졌다는 건, 그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이 다가온 것을 의미했다.
“진짜 이렇게 사라지는 거예요…?”
“모르겠어… 이제 됐으니까 돌아가라고….”
“아직, 아직 더 있어요… 그, 본가에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숨겨놓은 열쇠 같은 건 딱히 없었고… 옥상으로 가는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미안해요… 아무것도 못 알아냈어요….”
모습이 점점 흐릿해지는 상혁을 바라보면, 영영 이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인지.
윤서의 말끝이 자꾸만 늘어졌다.
그건 분명 잠시일 테지만, 여린 마음이 눈시울까지 붉어지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상혁이 윤서의 불안함을 알아챈 듯, 숙였던 고개를 힘겹게 들고 입을 열었다.
“도장은 나중에 찍어줄 테니까… 이제 가.”
거기에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들어, 윤서의 앞머리를 헝클어트리려 했다.
물론, 투명해진 손길로는 윤서에게 어떤 온기도 전하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알겠어, 이제 진짜 갈게요.”
18시 58분. 현지의 사망 추정 시간이 임박해가고 있었고, 윤서가 현관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삑삑삑삑]
비밀번호가 입력되고, 그것이 틀렸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어, 어떡해… 언니 왔나 봐요…!”
“아니야, 틀렸잖아…!”
무엇인가가 시작될 것만 같은 불길한 기운이 이곳에 엄습했다.
“그, 그럼 어떡해…?”
윤서가 현관에서 뒷걸음질치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상혁이 그녀에게 침대 아래를 가리키며 작게 말했다.
“여기 숨어….”
“어, 어? 숨으라고? 아, 알겠어요!”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건, 현관문 바깥의 사람이 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의미했다.
[삑삑삑삑]
아니,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저렇게까지 틀리는 건 불가능할 일이었다.
현지는 살해당한 것이라던 상혁의 예상이 맞다면, 그 예상대로 현관 밖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면.
지금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다.
침대 아래 숨어있는 윤서가 위험했다.
“제발….”
그렇기에 상혁은 들어오는 사람이 현지이기를.
이제는 차라리 현지의 죽음이 자살이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현지의 죽음을 막아내기 위해 과거로 왔지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삑삑삑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밝은 신호음이 울리고, 천천히 열리는 현관문.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먼지처럼 흩어지는 상혁의 몸.
그건 마치, 과거로 오기 위해 바쳐진 반지가 한 줌의 모래로 변했던 것처럼.
발끝부터 재가 되어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발…!’
절실한 외침은 소리내어 외칠 수 없었고, 그렇게 현관문이 전부 열리는 순간.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하고,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한 상혁의 첫 번째 과거가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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