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12화 (12/76)

〈 12화 〉 #12. 첫 번째 과거(8) ­ 상반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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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첫 번째 과거(8) ­ 상반된 진술

[18년_11월_28일_수요일]

[11:50]

흐릿한 날씨 탓이었을까.

생기가 가득해야 할 고등학교엔 묘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상혁은 그런 학교를 멍하니 바라보며 섣불리 안으로 들어서지 않으려 했고,

윤서는 그런 상혁의 팔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 안으로 이끌어 들어갔다.

그렇게 무작정 들어서게 된 여자 고등학교 내부 복도엔 당연하게도 여학생들이 가득했다.

그건 지금이 점심시간이라는 탓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성인 여성에게 끌려다니는 멀끔한 남성의 모습은 이목을 끌기 적당했기에,

그렇기에 상혁과 윤서에겐 진한 시선만이 아닌, 이따금 묘한 환호성까지 전해졌다.

물론, 윤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그저 상혁만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땅에 고정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닐 뿐이었다.

이윽고 교무실 앞에서 걸음을 멈춘 두 사람.

윤서가 꼭 붙잡고 있었던 상혁의 팔을 내려놓곤, 비교적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들어가죠…!”

“다짜고짜 들어가서 뭘 어쩌려고….”

“아니, 저 앞에서 몇 분을 고민해놓고… 됐어, 여긴 나한테 맡겨요.”

“에? 아니, 야, 야!”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활짝 열리는 교무실 문.

교무실 안쪽에 있던 교사들의 시선이 문밖의 낯선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상혁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입만 떡하니 벌렸고,

윤서는 교무실 안으로 들어서, 입구 자리에 앉아있던 여교사에게 싱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학교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신 선생님 좀 뵐 수 있을까요?”

햇살처럼 밝은 미소에 경계는 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무슨 일이세요?”

교사가 윤서의 미소에 화답하듯, 밝게 웃어 보이며 되물었다.

“아… 저희 언니가 이 학교 졸업생인데, 지금은 아파서 입원해있거든요. 요즘 신세를 많이 졌던 담임선생님께 연락하고 싶다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끝으로 고개를 숙이며 작게 훌쩍이는 윤서.

꽤 극적인 계획을 준비한 그녀였다.

“어머, 어떡해… 담임선생님 성함은 어떻게 되죠? 제가 얼른 찾아봐 드릴게요.”

“네?”

예상보다 빠른 전개에 당황한 윤서의 눈이 길을 잃은 아이처럼 주변을 방황하기 시작했고,

상혁은 그런 뒷모습에서 구조 신호를 알아차리곤, 그제야 교무실 안으로 들어서 대답을 대신 이었다.

“적어놨어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09년도 재학생 졸업앨범 있나요? 거기서 확인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 그렇네! 그거 보면 되겠다…!”

상혁의 적절한 대답과 그것에 어수룩하게 동조하는 윤서.

그리고 두 사람의 연기를 잠자코 지켜보던 교사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옆자리 교사에게 물었다.

“이 선생님, 괜찮겠죠…?”

“졸업앨범 정도야 뭐….”

마지못하다는 분위기가 잠시 흘렀지만, 대화를 나눴던 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작전이 성공한 것이었다.

윤서는 곧장 교사 뒤에 따라붙어 뿌듯해진 어깨를 잔뜩 세워 보였고,

상혁은 그런 뒷모습에 코웃음을 치다, 그래도 기특하다는 식으로 윤서의 앞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졸업앨범은 교무실 구석 책장에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09년도 재학생 졸업앨범… 아, 여기에 있네요.”

꽤 빠르게 앨범을 찾아낸 교사는 상혁에게 그것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 확인하시고 저한테 말씀해주시면 곧바로 찾아 드릴게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언, 언니가 고등학교 때 몇 반이었더라…!”

상혁은 괜한 연기는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을 테지만,

아직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교사를 의식한 듯, 그녀를 흘끗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다.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지루해진 교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교무실 입구로 들어온 사람을 발견하곤, 마침 잘 됐다는 듯 입 앞에 손을 모아 그녀를 불러세웠다.

“교감 선생님!”

그녀는 이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었다.

“음?”

교감 선생님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틀어, 세 사람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교감 선생님 이 학교에서 몇 년 정도 근무하셨어요? 꽤 길다고 기억하는데.”

“음… 내년이면 15년이네요.”

“네?”

15년이라는 대답과 동시였다.

교사의 목소리가 아닌, 윤서의 반문이 조금 크게 울려 퍼졌고,

“죄송합니다… 얼른 현지부터 찾자.”

상혁이 그런 윤서의 고개를 앨범 쪽으로 돌리며 작게 사과했다.

“아, 괜찮습니다. 근데, 박 선생님 이분들은…?”

“그게….”

교사가 두 사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자,

상혁이 교감 선생님 앞으로 재빠르게 다가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직접 설명하는 편이 좋으리라 판단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사정이 있어서 선생님 한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넌 찾고 있어. 그래서 옆쪽의 선생님께 09년도 재학생 졸업앨범 열람을 부탁했고요. 혹시 문제가 되는 걸까요?”

“그런 일이라면 괜찮죠. 그나저나 09년도라면….”

손을 저어대며 대답하던 교감 선생님은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려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치켜세웠고,

그런 순간, 교무실에 윤서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크게 울렸다.

“찾았다! 선배, 언니 찾았어요! 담임선생님은 김윤희 선생님이에요!”

“…김윤희 선생님이라고 하네요.”

“엥?” / “어머….” / “대박이네….”

모두의 시선이 윤서에게 향할 것 같았지만, 교무실에 있던 교사들은 전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교감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교감 선생님은 이런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찾고 계신 분이 김윤희 선생님인가요?”

“아,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신가요?”

“네, 뭐… 저예요.”

“에?”

담담하게 돌아온 대답에 상혁의 얼굴이 멍해졌다.

상혁은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뒤편을 바라봤지만, 그런 얼굴은 윤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마주 보는 상혁과 윤서의 눈이 평소보다 과하게 깜빡거렸고,

둘은 동시에 교감 선생님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네?” / “정말요?”

▶▶▶ ▶▶▶

[12:25]

대화를 나눌 장소를 찾아, 급식실로 향한 세 사람.

교감 선생님은 주변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다, 상혁과 윤서를 급식실 구석 자리로 안내했고,

윤서는 상혁을 안쪽 자리에 밀어 넣은 뒤, 그 옆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와… 급식이라니,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리고 현지의 담임선생님에서 교감 선생이 되어버린 김윤희.

그녀는 무심히 지난 세월을 되새긴 탓에, 살짝 초연해진 얼굴로 작게 대답했다.

“입에 맞으시려나 모르겠네요.”

“에이, 이렇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맛이 없을 수가 있겠어요?”

윤서는 밝게 대답하며 국을 한 입 맛보더니, 한층 더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맛있네요. 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맛이랄까? 물론, 급식실이라는 장소가 가미된 탓이 크겠지만요.”

“어머… 표현을 참 예쁘게 하시네요.”

“선생님도 얼른 드세요! 그, 바쁘신 건 아니죠?”

“괜찮아요, 여유 있어요.”

그리고 그런 대화를 나누는 두 여자의 나이 차를 가늠하던 상혁은 그저, 윤서의 친화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미적 기준을 떠나서, 참 예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나저나… 현지 동생이라고 말씀하셨죠?”

“아… 네, 동생이에요.”

거짓말을 하는 게 마음이 걸렸던 것인지, 윤서가 살짝 망설이며 대답하자,

교감 선생님은 전부 눈치챘다는 것처럼 말했다.

“거짓말이 서투시네요. 현지는 외동딸일 텐데요.”

“네?”

그리고 상혁이 급식실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마저도 못 믿겠다는 정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목소리가 급식실에 아주 크게 울렸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분이 나타나셨네요.”

“아, 그, 그게… 조금 복잡한 사정이….”

“아니야, 윤서야 이제 그만하자… 현지가 외동딸이라는 게 정말 확실한가요?”

더 이상의 연기는 필요 없다고 판단한 상혁이 본래의 목적을 조금은 따지듯이 물었다.

“제 제자일 땐 분명 외동딸이었어요. 지금은 아닌 건가요?”

“…등본 같은 곳에서 확인한 게 아니라요?”

“뭐, 등본도 있겠지만… 역시 현지 부모님하고 나눴던 대화가 조금 더 선명하죠.”

“아… 그러면 혹시­”

“아뇨, 아뇨. 우선은 두 분이 누구신지부터 말씀해주셔야겠죠?”

상혁의 말을 끊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 속엔 연륜이라는 무게감이 담겨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현지와 교제 중인 이상혁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대학교 후배고요.”

“음… 그런 두 분이 찾아오신 이유는요? 현지가 아프다는 것도 거짓말인가요?”

“….”

“…언니가 사라졌어요. 연락도 안 되고요.”

이번엔 망설이는 상혁을 대신해, 윤서가 간략하게 대답했다.

“그런 이유라면 경찰에 신고하셔야죠… 솔직히 현지와 아는 사이라는 것도 믿기가 어렵네요.”

“…보여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입니다.”

상혁이 휴대전화기에 담긴 현지의 사진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현지를 찾으려는 게 아닙니다. 당장은 현지의 일란성 쌍둥이를 찾고 있어요.”

“이건 현지가 맞는데… 근데 말씀드릴 게 차이가 없네요. 일란성 쌍둥이라니, 금시초문이에요….”

“하….”

“제가 현지라는 제자를 기억하고 있는 건, 신경 쓰였던 점이 있어서예요.”

“신경 쓰였던 점이요…?”

“학기 말에 있었던 일도 일이지만, 현지는 대학 원서를 단 한 곳에만 넣었거든요. 마치, 꼭 그곳으로만 가려는 것처럼….”

그런 의문을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던 상혁과 윤서가 침묵을 흘리자,

교감 선생님이 창밖을 바라보며 오래된 기억을 전하기 시작했다.

“현지는 원래, 교육대학 진학을 원했어요. 부모님과 함께 대입 상담을 했을 때도, 수능 직후에도 변하지 않았던 진로고요.”

“언니가 교육대학을요?”

“네, 성적도 좋았고 수능 최저 맞추면, 상위권 교육대학 두세 곳에 원서 넣기로 했었는데 말이죠.”

“전혀 몰랐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현지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온 그날, 진로를 바꾼 이유가 그냥이라고 답하며 지어 보였던 밝은 미소가요. 참 예쁜 미소였는데, 또 그만큼 낯설었거든요….”

상혁과 윤서의 입은 조금씩 벌어져 있었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뒤로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어요. 소식이 궁금해져서 진학한 대학교에 찾아갈까 싶었는데, 그랬는데…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러버렸네요.”

오래된 이야기만이 얼마 전 일처럼 생생하게 전해질 뿐이었다.

▶▶▶ ▶▶▶

[13:10]

상혁과 윤서가 학교 밖 골목길에 주차 시켜둔 차로 돌아왔다.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진술을 얻은 상혁이었지만, 표정은 어두워져 있었다.

“더 이상해졌네요….”

“진술이 달라… 어째서지…?”

“음… 언니 본가 가깝다고 했잖아. 아주머님께 다시 여쭤보는 게 어떨까요?”

“그러는 편이 좋겠­ 윽…!”

상혁이 날카로운 두통 탓에 앉은 자리에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였다.

그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두통은 어제부터 점점 심해졌고, 상혁이 크게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잠시만 쉬자….”

“잠깐 눈이라도 붙일래요? 안색 엄청 나쁜데….”

윤서가 상혁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하듯 물었고,

“…잠깐이면 괜찮아질­”

상혁이 윤서를 안심시키려는 순간이었다.

“윽!”

이번만큼은 정말 갑작스러웠다.

머리에서 시작된 고통에 놀랄 틈도 없이, 시트에 기대었던 몸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상혁은 머리를 움켜쥔 손으로 간신히 핸들을 붙잡고, 그곳에 머리를 여러 차례 처박아댔다.

고통을 더한 고통으로 견뎌보려는 것이었지만,

“꺅! 왜, 왜 그래요!”

“하아, 하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선배, 선배!”

윤서가 상혁의 어깨를 붙잡아, 난폭한 행동을 막아서려 했다.

그러자, 핸들을 붙잡고 있던 상혁의 손이 아래로 축 처졌다.

의식이 끊어진 것이었다.

“선배? 어…?”

하지만 윤서는 그런 모습에 당황할 틈이 없었다.

그건 상혁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탓이었다.

상혁의 몸이 언제라도 사라질 것처럼 투명해진 것이었다.

“이게 뭐야…?”

윤서가 그곳에 손을 뻗어봤지만, 상혁의 몸은 만져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그의 몸을 관통해, 그 속을 헤집고 다닐 뿐이었다.

“잠시만… 이대로 사라지는 거야…? 아직 하루 남은 거 아니었어…?”

상혁이 사라질 것 같다는 직감.

그것을 느낀 윤서가 상혁이 떠나지 못하게 몸을 붙잡으려 했지만, 투명해진 탓에 불가능했고,

“에…?”

이어서 조금 더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하고 말았다.

윤서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차량 내부의 시계가 1분씩, 2분씩 흘렀다.

마치, 1분이 1초인 것처럼 말이다.

“말도 안 돼….”

거짓말 같은 현실에 어지럼증을 느꼈을 윤서.

그런 그녀의 의식도 점점 흐려지는 것인지, 고개가 점점 아래로 숙여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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