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11화 (11/76)

〈 11화 〉 #11. 첫 번째 과거(7) ­ 그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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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첫 번째 과거(7) ­ 그날의 기억

[18년_11월_28일_수요일]

[09:00]

[삐비비빅­삐비비빅]

꽤 깊게 잠들었던 것일까.

상혁이 알람 소리가 두 차례 울리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윽….”

물론, 눈을 뜨자마자 찾아오는 두통만큼은 그대로인 모양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상혁은 이마를 짚는 것보단, 휴대전화기부터 집어 들었다.

서둘러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려는 것이었고,

바르게 흐른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는지, 그대로 이마를 짚으며 거실로 나섰다.

그런 순간, 휴대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서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어, 여보세요? 일어났어요?]

“…일찍 일어났네.”

[땡! 틀렸어요. 어제 오빠 이야기 듣고 괜히 생각 많아져서 잠을 못 잤거든요.]

“아….”

[여기서 문제! 지금 제가 어디에 있게요?]

“설마… 아니지?”

[아니, 맞춰보라니까, 물어보고 있어… 지금 언니 회사 앞이에요. 출근 시간 맞춰서 도착했거든요.]

“….”

물이라도 마시려 주방으로 향했던 상혁의 몸이 곧장 현관 쪽으로 틀어졌다.

[회사 앞에서 언니 기다리면 마주칠 수 있겠다 싶어서요. 어때, 이번에도 칭찬 도장 있나? 큭큭.]

“기다려, 금방 갈게.”

[네? 아니, 잠깐, 잠깐! 여길 왜 와! 오빠는 학교로 가야죠!]

음량은 최저로 설정되어 있었지만, 윤서의 목소리가 고요한 거실에 카랑카랑 울려 퍼졌다.

[하나도 안 위험하니까, 문자로 언니 주소나 보내놔요. 근처 지하철역도 적어주고.]

“하… 됐으니까, 조심하고 있어.”

[네, 네! 뭐든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저기 굴러다니는 나뭇잎도 조심해야겠네! 그러니까­ 어, 잠시만요!]

“응? 윤서야? 여보세요? 이윤서!”

▶▶▶ ▶▶▶

[09:35]

전화가 갑자기 끊어진 이유는 윤서의 앞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지갑을 떨어트린 탓이었다.

간단하게 말해, 별다른 일이 아니었다.

다만, 설명이 부족하고 느렸을 뿐.

그런 이야기를 늦게 전해 들은 상혁은 윤서가 잘못한 것으로 생각하며 운전대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과속으로 벌금을 낼 수준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현지의 회사 앞에 도착해 문자를 보냈고, 답장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전화로 걸려왔다.

[아니죠? 제발 아니라고 말해요.]

“맞아. 어디야?”

[하… 선배 진짜 바보야…?]

상혁을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그건 당황했거나, 진심으로 화가 났거나. 아무튼, 감정이 격양됐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래도 상혁은 머릿속으로 나름대로 모의훈련까지 진행했기에 순순히 항복할 마음은 없었다.

“전화가 그렇게 끊겼는데, 걱정할 수밖에 없잖아.”

[지금 나가는 중이에­ 와… 진짜 왔어? 저거 선배 차 맞아요?]

윤서가 그렇게 묻자, 상혁이 창밖을 바라봤다.

도로 끝 저만치에서 걸음걸이마저 잔뜩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음….”

이미 패색이 짙어 보이는 건 경험이 소리치는 귀납적 정론.

상혁은 조수석 문을 열어주기 위해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들어가요!”

이미 차 앞까지 도착한 윤서의 날카로운 꾸짖음에 반쯤 나온 몸을 도로 넣었다.

그렇게 윤서가 상혁을 잔뜩 노려보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하….”

“날씨가 좀 춥지…?”

따가운 시선에 안절부절못하는 상혁이 애먼 히터만 만져댔다.

“춥지?”

그 누가 말끝을 따라 하면 상냥해 보인다 했는가.

“네 잘못이잖아… 나는 걱정돼서­”

“말도 안 되는 핑계 좀 그만 대요! 아니, 전화로 알려줬잖아, 그럼 차를 돌렸어야지! 도대체 여길 왜 오냐고!”

“….”

모의훈련은 성과가 전혀 없었다.

“하, 출발이나 해요.”

윤서는 그래도 상혁이 자신을 걱정해준 것이었기에, 잔소리는 관두기로 하며 말을 이었다.

“운전하면서 들어요.”

“응.”

“일일이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에요. 이젠 이해했죠? 안전운전 부탁할게요.”

목소리는 다정하지만, 표정은 싸늘했다.

상혁도 그런 온도 차이를 느끼고 고개만 끄덕였다.

“일단, 언니 못 만났어요. 회사는 월요일부터 안 나왔대요. 아니, 관뒀대요.”

“어?”

상혁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다, 그것에 아차 싶어 입을 닫고 윤서를 흘끗 바라봤다.

“에휴… 선배는 트라우마도 없어요? 어쨌든, 부서 사람한테 들었는데 월요일에 관두겠다는 전화 한 통이 마지막이었다네요.”

“그래도 관둔다고 연락은 했나 보네….”

“다들 이유를 모르겠다는 눈치였어요. 그만큼 갑작스러웠다는 거겠죠.”

“흠….”

“회사 사람들한테는 갑작스럽게 보이겠지만….”

윤서가 말끝을 흐리자, 그 끝을 짐작할 수 있었을 상혁이 말을 대신 이었다.

“전부 알고 있는 우리 눈엔 계획적으로 보이고.”

▶▶▶ ▶▶▶

[10:20]

현지는 상혁을 피하고 있으며, 그 행동엔 의도가 분명했고,

그녀의 죽음은 점점 계획적인 자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그런 결론을 내린 상혁과 윤서가 지금, 현지의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언니! 나 윤서야! 안에 없어?”

윤서가 현지에게 전화를 걸며 현관문을 두드려봤지만, 며칠 전 상혁이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나는 몰라도 너까지 피할 이유는 없겠지… 역시 여기엔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들어가 보죠. 오빠 생일이….”

윤서는 꽤 자연스럽게 상혁의 생일을 떠올려내며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는 긍정적인 신호음이 울렸다.

“정말이네….”

비밀번호는 상혁의 생일인 3월 10일, 0310이었다.

“이걸 생각 못 한 오빠가 이상한 거예요. 그리고 이제 앞장서요….”

윤서가 상혁의 어깨 뒤편에 숨어, 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지금껏 시원시원하게 결정하며 행동했지만, 타살이란 가능성을 떠올리면 겁이 나는 모양이다.

“그래….”

그리고 문고리에 손을 올리려는 상혁도 그런 순간까지는 비교적 덤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고리가 손에 닿는 순간, 머릿속엔 그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저도 모르게 떠올린 것이었다.

18년 12월 06일 목요일. 비가 지독하게 내렸던 그날을.

상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전화를 마지못해 받았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의 주인은 형사였다.

형사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해댔지만, 마지막엔 질문이 아닌 말을 전했고, 그와 동시에 상혁의 넋이 나갔다.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을 믿을 수도 없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그칠 줄 모르는 빗방울 사이를 뛰게 했다.

현지의 자취방 앞엔 경찰차 여러 대와 우산을 쓴 동네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상혁은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순간, 휴대전화기로 진동이 울려왔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이제는 기억하는 번호였다.

하지만 상혁은 전화받는 것을 관두고, 계단을 오르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휴대전화기를 귓가에 대고 있는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상혁과 형사. 둘이 서로가 서로임을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형사와 그의 동료가 말을 걸어왔지만, 그것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상혁은 그들을 지나쳐 현지의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닫혀있어야 할 현관문이 어째선지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상혁은 현지의 얼굴을 마주할 순 없었다.

“현지야…?”

시선을 조금 내려야 마주할 수 있었던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선, 고개를 위로 들어야 하는 탓이었다.

현지는 현관 형광등에 매달려, 상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끊어지는 기억이 손잡이를 쥐고 있는 상혁에게로 이어졌다.

“안 열고, 뭐해요?”

상혁이 문을 열지 않는 탓에, 윤서가 고개를 내밀어 물었다.

“선배?”

윤서에겐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에 상혁의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해져 있었고,

몸도 시선도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선배…? 선배!”

그것에 당황한 윤서가 어깨를 흔들자, 상혁의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하아… 하아….”

상혁은 거친 숨을 내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괴로운 기억에 주저앉고 싶었을 테지만, 손잡이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있는 힘껏 붙잡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되새기면 나약해지는 것조차 허락할 수 없었기에.

괴로운 기억을 어떻게든 견뎌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서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그가 했던 말과 계획이 떠올랐다.

‘타살일지도 모른다고.’

[현지의 사망 추정 시간 전에 자취방에서 기다리자.]

그리고 그런 자취방을 마주하는 걸 괴로워하는 지금 모습까지.

이것들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설마… 직접 본 거예요…?”

상혁이 이 문 건너편에서 죽은 현지를 마주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윤서는 상혁을 앞세웠던 것이 미안해져,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미안, 미안해요… 내가 너무 무심했어요….”

그리고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말을 이었다.

“우리 같이, 같이 들어가요.”

현지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상혁을 집어삼키려 했지만,

이번에는 윤서라는 존재가 그런 어둠을 용납하지 않았다.

상혁은 제 손 위에 덧대어진 윤서의 손에 따스함을 느끼며 두려움을 거둬냈고,

“고맙다… 들어가자.”

그렇게 둘이 함께 문을 열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 어두컴컴했던 현지의 방에 흐릿한 빛이 들기 시작했다.

상혁은 곧장 현관 형광등부터 바라봤고, 그곳이 기억과 다르다는 것에 안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언니…! 안에 없어…?”

윤서는 목소리를 작게 흘려보내다, 신발도 벗지 않고 안쪽으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형광등 스위치를 재빠르게 켠 뒤, 현관에 서 있는 상혁의 옆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밝아진 방.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없네… 잠깐 나간 건 아닐까요?”

“일단은 살펴보자.”

상혁은 곧바로 자취방 내부를 살폈다.

우선은 냉장고와 쓰레기통을 뒤져, 최근에 구매했거나 버렸을 법한 것들을 찾으려 했지만, 전부 텅 비어있었다.

이어서 확인한 싱크대와 화장실 바닥도 완전히 말라 있었고,

그제야 이 집이 장기간 비어있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중얼거렸다.

“물기도 없는 거 보면 여기엔 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자, 상혁과 달리 생필품 같은 사소한 물건들을 살피던 윤서가 대답했다.

“근데 오빠 이 집에서 지낸 적 없는 건 맞아요?”

“응. 시기상으론 처음 왔다고 해야 맞고.”

“근데 저기 보면 수저나 젓가락이라든지… 그래, 여기 칫솔도 두 개씩 있잖아. 저번엔 당연히 오빠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그럼 혹시….”

“…쌍둥이 물건일 수도 있지만, 여유롭게 놓고 쓰는 걸지도 모르지.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돼.”

상혁은 윤서의 추리에 담담하게 대답하며 책상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윤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찾는 거라도 있어요?”

“현지 일기 썼었잖아. 그거 있나 해서.”

“아…! 그래, 그거라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둘은 그런 기대감을 안고 책상 주변을 한참 뒤져봤지만,

일기장은커녕 사소한 일정이 적힌 메모 한 장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어쩌죠….”

막막한 상황에 조금 지쳤다는 듯, 윤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전부 확인한 것 같으니… 일단 나가자.”

그러자 상혁이 윤서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고,

“현지가 나를 피하는 게 확실하다면, 당장은 만나려 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내일 이곳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

윤서는 조금 머뭇거리다, 상혁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 작게 대답했다.

“…나가서 어떡하려고요?”

“당장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아내야 해. 일단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쌍둥이 자매를 찾아야겠지.”

“그렇겠네요… 좋은 수라도 있어요?”

“응, 학교.”

“학교?”

“자매라면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겠어? 그렇다면 담임선생님하고 상담이라도 했을 테니, 그분을 찾아봐야겠지.”

“오… 괜찮네요. 아, 그리고 지금 선배, 되게 홈즈 같아요, 홈즈!”

그렇게 현지의 집을 나서는 상혁과 그의 뒤를 졸졸 따라 걷는 윤서.

그건 ‘따라오게 왓슨.’이라는 말이 나오기 알맞은 상황이었지만,

“됐으니까, 이제 집에 가.”

“아 진짜! 또 시작이네!”

그런 장단까지 맞춰줄 여유가 없었던 상혁은 그저 걸음만 재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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