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 첫 번째 과거(6) 고양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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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첫 번째 과거(6) 고양이 손
[18년_11월_27일_화요일]
[19:20]
고기가 지글거리는 소리와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가득한 이곳은 상혁의 집 앞 고깃집.
길고 긴 고집 전쟁의 승자는 윤서였다.
상혁은 겨우 저녁 한 끼 먹는다고 해서, 윤서의 과거가 크게 변하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아끼는 후배를 죽음과 관련된 일에 연관시키고 싶지 않았고,
현지의 죽음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잊지 않으며, 사소한 행동도 조심하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윤서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은 순간부터가 실수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상혁이 이렇게 진중히 고뇌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윤서는 불판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세상 즐거운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고,
상혁은 그런 윤서가 못마땅하다는 듯, 세상 언짢은 얼굴로 고기만 구웠다.
“…이제 내가 구울까요?”
“됐어.”
“아냐, 이제 내가 할래.”
물론, 윤서의 고집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상혁의 처지를 전부 듣게 된 마당에, 남의 일이란 식으로 돌아서는 건 성격상 무리인 일이었고,
무엇보다 집에 도착했을 때, 상혁이 보였던 어두운 모습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밥이라도 한 끼 먹여야 걱정이 놓일 것 같아, 상혁을 억지로라도 이곳에 끌고 온 것이었다.
“집게 이리 줘요, 내가 굽게.”
그렇기에 윤서도 젓가락 한 번 쥐지 않는 상혁이 못마땅하다는 얼굴이 되어, 집게를 가로채려 했다.
“됐다니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피차일반인 모양이다.
“그럼 오빠도 좀 먹던가요! 아, 진짜!”
결국, 답답한 마음이 폭발해버린 윤서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일어나 소리쳤다.
“오빠가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도 아니고! 그냥 고기 먹고 기운 좀 내라고 아… 풋.”
갑자기 터지는 웃음에 말이 끊겼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지금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가 돼지라는 점이 윤서의 웃음 포인트였다.
“…기운 좀 내라고요.”
윤서는 마냥 웃을 수도 없는 탓에 고개를 돌리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세게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상혁이 한층 더 어둡고 진지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위험하다고 했잖아. 지금 상황에 밥이 넘어갈 것 같아?”
“…그건 그거고 밥은 밥이잖아요.”
“하….”
“있잖아요? 만약에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기면, 저는 오빠 찾아가서 도와줘요! 살려줘요! 힘들어요! 하고서 밥 사줘요! 할 건데?”
“아니, 너는 그래도 되지만”
“참나… 오빠는 왜 안 된다는 건데요?”
“….”
조금은 가부장적인 성격의 상혁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직감한 것일까.
윤서는 천장을 골똘히 바라보더니, 좋은 대사가 떠오른 듯 득의양양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인간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인간은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리고….”
“…가장 불행하고 우울한 동물이.”
“아! 가장 쾌활한 동물이다!”
“니체.”
“역시 어렵다니까… 아니, 근데 반응은 그게 전부에요? 안 비슷했어…?”
“응?”
윤서는 소싯적 상혁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라 목소리까지 흉내 낸 것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그것이 성대모사라는 점조차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이 조금은 아쉬웠을 윤서의 아랫입술이 빼쭉 튀어나오자,
상혁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뭐… 칭찬 도장이라도 찍어줘…?”
“뭐라는 거예요! 됐거든요?”
“어, 응….”
“아무튼! 그렇게 세상 무너질 것처럼 있어도 뭐가 달라지진 않잖아! 그러니까 고기 먹고 기운 좀 내라고요!”
“…네가 집에 돌아가면 덜 이러지 않을까 싶은데.”
“참나?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요?”
상혁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하자, 윤서가 어이없다는 식으로 반박했다.
“최소한 네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
“….”
상혁의 마음을 이해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살짝 오해한 것일까.
그래도 예상 못 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기에, 오히려 흥분됐던 마음이 가라앉은 듯.
입술을 꾸물거리던 윤서가 비교적 차분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퍽이나 고맙네요. 그럼 무슨 일 안 생길 정도로 아주 조금, 상담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요?”
“….”
“아니…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건데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갈림길을 마주한 두 사람.
상혁은 노신사와 나눈 대화 중에 놓친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떠올리느라 조금 멍한 얼굴이 되었고,
“생각해봐요. 이 정도 일 갖고 내 미래가 바뀐다고? 바뀐다고 해도 얼마나 바뀌겠어요….”
윤서는 계속해서 그럴싸한 유혹만을 보내왔다.
“내가 그렇게 걱정돼서 엄청 불안하고 그래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
“…그럼 약속할게요. 뭐가 위험한지 모르겠지만,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기면 후다닥 도망친다고.”
“하….”
윤서가 상혁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언니 되살리고 싶잖아, 정말 소중한 기회잖아요. 고양이 손이라도 보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누군가를 웃기기엔 지극히 개인적인 개그 코드,
따라 했다고 보기엔 너무 미숙했던 성대모사,
반쪽짜리 명언과 적당한 격려.
결국, 윤서에게 설득당한 상혁이 절레절레 흔들던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너도 진짜 고집쟁이다….”
“드디어 긍정적 반응! 그래요, 도와준다고 할 때 넙죽 받아야지. 그리고 제가 한 고집 하죠! 훗!”
“자랑이다, 자랑이야….”
“이제 그 표정만 풀면 좋을 텐데. 그래도 뭐….”
상혁이 웃게 하고 싶었지만, 급할 필요까지는 없었기에.
윤서가 이제야 제 머리를 올려 묶으며 젓가락을 들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 고기나 먹죠! 이러다 과자 되겠어!”
그리고 그런 명랑한 모습에 불안함도 사그라진 것일까.
“너도 참….”
상혁도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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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상혁은 잠시 집으로 돌아와,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노트를 챙겨 고깃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깃집에 약 10분 정도를 홀로 남겨진 윤서의 얼굴엔 심술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도망친 줄 알았잖아요.”
“미안, 이것 좀 가져오느라고.”
상혁이 윤서의 옆자리에 앉아, 노트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아까 말해준 것들,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여기에 정리해뒀거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고 다녀오든가… 됐어, 이번만 봐줄게요.”
윤서가 뾰로통해진 표정을 풀고 상혁이 정리한 해야 할 일을 읽기 시작했지만,
그 첫 부분을 읽는 순간부터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상하지?”
“언니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요?”
“응.”
“거짓말. 그럴 리가 없어요… 몇 달 전이기는 해도, 저한테 부모님 뵈러 간다고 말했었는데?”
“…현지 부모님 직접 뵌 적 있어?”
“그건 당연히… 없죠.”
“나도야. 그리고 그거 확실한 정보야. 경찰 조사받을 때랑 장례식 준비 때 확인한 거니까.”
“…그럼 이건? 쌍둥이는요? 언니 외동딸이라 알고 있었는데?”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있는 것 같아. 그건 이웃집 아주머니께 들은 내용인데, 확실하진 않아. 등본에는 어머님 아버님 현지. 이렇게 셋뿐이었거든.”
“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이번 과거에서도 등본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더라. 그나마 대학교에서 주소 같은 것들 알아낸 거고.”
“머리 아플 법했네요….”
윤서는 상혁의 마음에 십분 공감한다는 듯, 아직도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노트에 집중하며 질문을 이었다.
“연락은 안 되는 모양이고, 언니 자취방이나 본가엔 없었던 거겠죠?”
“그건 모르겠어.”
“음? 모른다니?”
“본가는 열쇠가 없어서 들어갈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자취방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모르니까.”
“에…? 아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뭐가.”
“아니, 아니! 본가는 그렇다 쳐도 자취방 비밀번호를 모른다고?”
“가본 적 없었거든. 딱히 물어본 적도 없었고.”
그저 그랬을 뿐이라는 식의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었을 윤서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작게 중얼거렸다.
“여자 친구 자취방 비밀번호가 뭐긴 뭐겠어… 당연히 오빠 생일이지….”
“아…?”
그러자 상혁은 예상보다 단순했던 비밀번호에 당황해 입만 크게 벌렸고,
그런 얼굴을 바보 같다는 식으로 바라보던 윤서가 조금 따지듯 말을 이었다.
“진짜 바보야…?”
“…그건 예상 못 했네.”
“바보 맞네… 올해 초에 언니 집 놀러 갔을 때 알게 됐어요. 아니, 비밀번호를 모르면 언니나 오빠 생일 정도는 눌러봤어야죠!”
“…그러게.”
“이거 봐, 나 없었으면… 아이고, 경찰 부르려 했구나. 진짜 속 편한 방법이네요.”
“나름… 아니다, 네 말이 맞네….”
“그럼 해야 할 일은 잠시 넘어가고, 내게 벌어진 현상? 노인부터는 무슨 뜻이에요?”
“아… 거기부터는 안 읽어도 돼. 이해하기 힘들 거야.”
“1년 뒤에 타임머신이라도 개발된 줄 알았더니, 신비한 능력? 궁금한데….”
상혁은 노신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것처럼 머리를 벅벅 긁어대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초능력이라고 해야겠지. 말하고도 어이없는데, 물건을 없어지게 했다, 다시 만들었다 했어. 그리고 시간도 가능하다면서”
“과거로 보내줬다?”
“응.”
“하하…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린지… 하지만! 그래도 질문! 그럼 미래로 어떻게 돌아가요? 돌아가긴 해요?”
“나도 잘 모르겠어.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이라는 것만 알고 있어. 그리고 내가 직접 찾아왔다고 하기보단, 갑자기 보내진 쪽이라… 그 영감 설명은 하나도 없고, 엄청 이상해.”
“흠… 갑자기 슝 하고 왔으니까, 사르르 하고 사라지려나? 아무튼, 대충 이해는 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어떡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분배가 필요하겠죠?”
“응?”
“해야 할 일이요. 모교나 직장, 언니 자취방이나 본가. 이걸 혼자서 어떻게 다 해요.”
“…야.”
“와… 표정 싹 굳히는 것 봐. 아니, 남은 시간도 이제 이틀뿐인데, 혼자서 어쩌려고요?”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끼어들 생각하지 마.”
“뭐가 충분해! 내일 회사는 나한테 맡기고”
“야!”
결국, 또다시 언성을 높이고 마는 상혁이었지만,
윤서는 아까처럼 주눅 들지 않고, 당돌한 모습을 이어나갔다.
“또 화내게요?”
“…상담만 하겠다며.”
“어차피 오빠가 내일 둘 중 한 곳 가는 순간, 내가 다른 곳 가면 그만이거든요?”
“아니, 상담만 하겠다며… 제발 말 좀 들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아니… 학교나 회사 찾아가서 언니 만나면, 내가 꽥! 하고 죽기라도 해요? 그런 쓸데없는 고집 좀 포기하고 도움 좀 받으라고요!”
“이게 포기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잖아! 너 진짜 바보냐?”
“누가 봐도 선배가 바보 아냐? 만약 내일도 시간 사라지면 어쩌려고? 대책은 있어요?”
“….”
“거봐, 반박도 못 할 거면서.”
“위험하다고. 차라리 같이 다니는 거면… 아니, 그것도 아니야….”
“와… 바보라고 하니까 정말 바보가 된 건가…? 시간 아끼려고 역할분배 한다고요! 아니, 그리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위험한 건데?”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왜 이렇게 고집부리는 거야?”
“아 답답해! 뭐가 위험하냐고! 뭐가 위험하냐고!”
“하… 그래, 타살일지도 몰라서 그래.”
“네?”
“타살일지도 모른다고.”
“에…?”
그런 생소한 이유를 듣고 나서야 주변 눈치를 보기 시작한 윤서.
그런 그녀가 인제 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상혁의 귀에 작게 속삭여 물었다.
“지금 살인 말하는 거예요…?”
“확실하진 않아.”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해요…!”
“그러니까 너는 아악!”
윤서는 다음 말이 예상된다는 듯, 상혁의 귀를 세게 잡아당겼고,
“아 진짜! 또 시작이네!”
거기에 소리까지 버럭 질렀다.
조금 전까지 주변 눈치를 살피며 작게 속삭이던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답답했던 모양이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일단, 일단 놓고 말해!”
“도대체 같은 말을 얼마나 반복하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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