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8화 (8/76)

〈 8화 〉 #8. 첫 번째 과거(4) ­ 전부 그대로였다

* * *

#8. 첫 번째 과거(4) ­ 전부 그대로였다

[18년_11월_24일_토요일]

[18:30]

다가갈수록 복잡해지는 현지의 과거.

지금까지 알아낸 단서와 비현실적인 상황은 머리만으로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했다.

상혁은 지끈거려오는 머리와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잠시 쉴 수도 있었지만, 곧장 서재로 향해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를 펼치고 오래된 만년필을 쥐는 건,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써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

과거로 오게 된 부분부터는 의문이 꼬리잡기하듯 늘어날 뿐이었다.

그래도 노트에 적힌 빼곡한 글자들을 바라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결 정리된 기분이 들었기에.

상혁은 조금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장은 한시름 놓은 것 같지도, 상식 밖의 상황에 지친다는 건 변함없는 일이었다.

어딘가 낯선 두통,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묘한 기분.

그런 감각에 지쳤을 상혁이 그대로 의자에 몸을 기대며 이마를 매만졌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상혁은 그만큼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영감… 뭘 좀 알려주고 보내야지….”

노신사의 얼굴이 떠오른 모양이다.

▶▶▶ ▶▶▶

[18년_11월_25일_일요일]

[06:00]

칠흑같이 어두운 침실로 도대체 언제 들어온 것이고, 또 언제 잠든 것인지.

침대에 누워있는 상혁은 몇 시간 전부터 제가 자는 것인지, 혹은 깨어있는 것인지를 의식하고 있었다.

[삐비빅­]

그런 탓에 알람 소리가 한 차례 울리기도 전에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리며 일어날 수 있었다.

상혁이 일어나자마자 향한 곳은 서재였다.

어제 적어둔 계획을 살피고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글자들도 잠에서 덜 깬 듯, 서재로 향하던 상혁의 걸음처럼 노트 위를 비틀거리고 있었다.

최소한 상혁에게만큼은 그런 식으로 보였다.

상혁은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어제 벗어 걸쳐놓은 겉옷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꺼낸 것은 담배였다.

상혁이 그것을 자연스레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려던 손은 주춤거렸다.

창문을 열고 피울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하….”

사소한 고민마저 지친다는 듯 늘어지는 한숨. 이내 라이터 부싯돌이 반짝거린다.

밀폐된 실내 천장에서 일렁이는 담배 연기.

그것에 상혁의 시야도 차츰 흐려졌고, 그런 고요함에 잠기려는 순간.

‘그게 그렇게 좋아요?’

누군가 상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좋은 것까지는 아니고, 진정 효과가 필요할 뿐이야.’

‘그럴 때는 바깥바람을 쐐요! 나중에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다 계획이 있지. 거기에 의학기술이야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거야! 애초에 걸리지를 말아야지!’

‘그러고 보면 요즘은 둘이 협업 관계 같지 않아?’

‘네? 갑자기 웬 협업?’

‘정부는 담배에 세금을 붙이고, 담배회사는 신상품들을 내놓잖아.’

‘저기요… 저는 그쪽 사정은 전혀 모르거든요?’

‘잘 들어봐. 담배에 붙는 세금은 담배소비세만 있어도 충분해. 그거로 환경 미화든 뭐든 할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국민건강기금, 개별소비세, 지방교육세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세금이 붙어있어.’

‘지방교육세…? 아무튼 그래서요?’

‘세금은 이전보다 많이 걷는데, 생긴 변화라곤 담배는 몸에 해롭다는 문구와 사진뿐이야.’

‘음….’

‘흡연자들이 그걸 모르겠어? 그럼 그게 의미 없는 워터마크랑 다를 게 뭐야. 거기에 오히려 흡연 구역은 줄어들고 있고.’

‘그니까! 그런 불편을 감수하려 들지 말고, 끊으라는 거겠죠.’

‘아니, 여기서 협업 관계가 시작되는 거야.’

‘갑자기?’

‘흡연자들이 세금이니 흡연 구역이니,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끊으려는 순간, 담배회사에선 어디서도 피울 수 있는 액상형, 궐련형 전자담배를 개발했어. 몸에 덜 나쁘고, 냄새도 안 난다면서.’

‘아…?’

‘그래, 거기에 혹한 흡연자들이 순진하게 새로운 담배기기를 구매하는 거야. 그러면 여기서 문제, 누가 손해를 봤지?’

‘흡연자요….’

‘맞아. 흡연자는 내는 세금은 늘었는데, 담배기기도 하나 늘어난 꼴이야. 근데 또 얼마 뒤면 이딴 기사가 즐비하겠지. 새로운 담배기기에서 유해성분 검출!’

‘….’

‘그때부턴 아까랑 같아. 새로운 무언가가 개발될 것이고, 우린 그것에 속아 또 구매하게 되겠지… 흔한 무한 루프 물이야’

‘듣고 보니 묘하게 그럴 싸 하네….’

‘인정해야겠지… 흡연자는 정부와 담배회사에 놀아나는 성실 납세자. 즉, 멍청이들이라는 소리야.’

‘참나, 그걸 알면서 피워요?’

‘그리고 여기서 아까 말한 내 계획이 시작되는 거야. 내 폐가 좋은 증거가 되겠지.’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나중에 내 연령대별 폐 뢴트겐 사진 챙겨서, 둘 다 고소할 거야.’

‘엑스레이라 해요….’

‘미국처럼은 아니더라도 승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소비자, 국민 기만이잖아. 아, 물론 내가 폐암에 걸려야겠지만….’

‘진짜 평소에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사는 거야… 그래도 뭐, 이 정도면 괜찮네… 저 갈게요.’

누군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라졌고,

상혁은 자신의 검지와 중지 사이가 뜨거워지는 감각에 정신을 차렸다.

불을 붙일 때 삼킨 한 모금이 전부였는데, 담뱃불이 어느새 필터까지 집어삼킨 상태였다.

상혁은 담배꽁초를 책상 옆에 놓아둔 커피 캔 안에 쑤셔 넣고, 다시 노트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제야 선명해진 글자들을 바라보며 이겼다는 듯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정 효과 있다니까….”

그건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려 했던 누군가의 승리였지만, 상혁이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 ▶▶▶

[21:00]

지난밤, 상혁이 계획한 일 중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직장과 학교는 동사무소와 마찬가지로 평일에나 열리는 곳이었다.

그런 탓에 상혁은 현지의 자취방으로 향해, 건물 건너편에 차를 대고 잠복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를 만나려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이곳에 나타나진 않을지, 쌍둥이 자매가 나타나진 않을지.

괜히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것보다, 이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 모습이 스토커처럼 느껴져도 개의치 않았다.

글을 써온 탓이었을까.

상혁은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일을 줄곧 해왔다.

그렇기에 이런 기다림은 몇 시간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침까지의 이야기.

기다림의 끝에 나름의 결과물을 얻으리란 확신은 공곡공음 흘러가는 시간에 점점 무너져내렸고,

현지가 나타나길 바라며 투자된 하루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

상혁은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운전대에 손을 올려야 했다.

“하….”

기다리면 돌아오는 것이 없고,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절망감만 느껴질 뿐이었기에.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괜찮아… 내일은 뭐든 알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온종일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던 현지의 자취방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상혁이었다.

▶▶▶ ▶▶▶

[18년_11월_27일_화요일]

[13:00]

기절한 것처럼 누워있는 상혁의 미간이 움찔거렸고, 그와 동시에 두통이 찾아왔다.

“윽…!”

상혁은 의식이 깨어나자마자 시작된 두통에 신음을 흘렸지만, 그것을 애써 견디며 몸을 일으켰다.

어째선지 울리지 않았던 알람과 밝은 커튼이 신경 쓰인 탓이었다.

그리고 곧장 휴대전화기를 쥐고, 시간을 확인했다.

“어…?”

그런데, 시간을 확인하는 상혁의 눈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깜빡거렸다.

곧이어, 휴대전화기를 쥔 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상혁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고, 방금 깨어난 참이었을 터인데.

그런데 어째서 날짜와 시간은 그보다 훨씬 뒤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27일? 화요일이라고…?”

현재 시각은 11월 27일 화요일 오후 1시 1분.

상혁이 그런 시간을 의심하는 동안에도 1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약 2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있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상혁은 어제. 아니, 이틀 전에는 온종일 차에 있던 탓에 피곤해져 이렇게 잠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그건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 놀란 감정이 진정되며 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붙잡고 붙잡았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

상혁과 긴 시간 함께했던 공황장애라는 이름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상혁의 등을 떠밀던 촉박함이 이제는 그를 지나쳐, 앞길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 ▶▶▶

[17:20]

인간은 달과 같아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한다.

상혁도 그런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 속에서 생긴 마음의 병.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분명 해냈었다.

물론, 오롯이 본인의 힘으로 극복한 것이 아닌, 주변 사람의 도움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의 손길도, 하다못해 눈길조차 없이 방치되어버렸다.

갈증이나 허기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시간만 덧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딩동]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려왔다.

그런 소리가 상혁의 귓가에도 전해진 것일까.

[딩동­딩동­딩동­쾅쾅쾅]

“현지야…?”

상혁이 순식간에 난폭해진 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현관으로 뛰쳐 갔다.

“꺅! 깜짝이야­ 어…?”

갑자기 열리는 현관문에 흠칫 놀라, 뒷걸음질치는 여자.

현관 밖엔 상혁의 대학교 후배이자 윤태의 친누나, 이윤서가 서 있었다.

“선배, 입에 피….”

윤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상혁도 상혁이지만, 그의 모습에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윤서구나.”

그리고 이제야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상혁도 윤서의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의 습관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선을 조금 내려 확인한 엄지손톱은 심하게 짧아져 있었고, 가려져 있던 속살이 튀어나와 붉은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상혁은 그제야 느껴지는 통증에 한쪽 눈가를 찡그리다, 입가는 보나 마나 하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들어가 있어.”

그러자 윤서가 그런 상혁의 손목을 붙잡고 따지듯이 물었다.

“무슨 일 있죠.”

“아니야.”

“됐어, 선배기 무슨 말을 하겠어. 우선은 병원부터 가요.”

“괜찮으니까, 들어가 있어.”

상혁이 손을 뿌리치며 대답하려 했지만, 윤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꽉 붙잡은 손목을 상혁의 얼굴 앞에 들이밀며 또박또박 대꾸했다.

“직접 손을 봐요. 이렇게 피가 나는데, 어떻게 별것 아니야. 따라와요.”

“괜찮다고.”

“고집 그만 부려요!”

“괜찮다고!”

반복되는 설전에 답답함이 차올랐을 상혁이 언성을 높이자,

그런 모습에 당황한 윤서가 또다시 반 발짝 뒷걸음질쳤다.

상혁을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제게 이렇게까지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낸 적은 처음인 탓이었다.

그런 탓에 언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윤서가 상혁의 손목을 놓고 집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구급상자는 어디 있어요.”

“…없어.”

한쪽 구두를 벗은 윤서에겐 더할 나위 없이 답답한 한마디였다.

“하.”

윤서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벗었던 구두를 다시 신고 현관 밖으로 나와 말했다.

“금방 올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게 건물을 나서서, 어디론가 향하는 윤서.

상혁은 그런 윤서의 뒷모습과 흐릿한 하늘을 마주하고 나서야, 대부분 그대로인 오늘이라는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사라진 현지와 자신을 찾아온 윤서.

변한 건 없었다. 전부 그대로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