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7화 (7/76)

〈 7화 〉 #7. 첫 번째 과거(3) ­ 단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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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번째 과거(3) ­ 단서 찾기

[18년_11월_24일_토요일]

[10:30]

“도착했어. 주차하고 올라갈게.”

[내려갈게. 근데 그게 갑자기 왜 필요한 거야?]

“그게… 아니다, 만나서 얘기하자.”

[음… 알겠어!]

상혁은 대학교 후배 이윤태와의 통화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이곳은 상혁과 현지가 졸업한 대학교의 지하 주차장.

상혁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약 한 시간 전, 상혁은 현지의 자취방에서 돌아선 뒤, 그녀가 떠난 이유를 알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번 과거에선 갑작스레 사라진 현지였기에, 섣불리 짐작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안… 가야 할 곳이 있어.’

그나마 주어진 단서는 현지가 원래의 과거에서 했던 말뿐이었다.

“도대체 어딜 간 건데, 하….”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이번 과거에서도 이전과 같은 이유로 떠난 것이라 확신할 수마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추론뿐이었다.

매사에 신중한 상혁에겐 맞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별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 자취방. 자취방이 아니라면… 본가?”

익숙한 장소를 지나쳐 떠올린 건 현지의 본가였다.

그리고 그런 낯선 장소는 현지의 부모님에 관한 의문까지 되새기게 했다.

국가기관에서 확인했던 두 분은 09년도에 사망 처리되어있었다.

하지만 현지는 그런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면서도, 분명 살아계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었다.

“도대체 왜….”

분명한 기록과 거짓말. 그리고 어딘가 흐릿한 기억. 해야 할 일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상혁은 현지의 본가 주소와 그녀의 부모님에 관한 기록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동사무소로 향했다.

물론, 둘은 국가상의 문서에선 완벽한 타인이었기에 상혁이 현지의 정보를 열람할 권리는 없었다.

거기에 막상 도착한 동사무소 또한 주말이기에 닫혀있었고,

“어쩐다….”

그런 것들을 뒤늦게 알아차린 상혁이 동사무소 앞에서 서성이던 순간이었다.

‘화장 잘 받았다. 되게 어려 보여.’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 과사무실! 거기라면 분명…!”

귓가를 스치는 대화. 그것이 현지의 신입생 시절, 서로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상혁은 대학교 입학 초기, 부모님과 형제자매, 집 주소와 연락처 같은 개인정보를 학과에서 걷어갔던 기억이 떠올랐고,

기억은 그런 자료를 보관하는 과사무실 캐비닛까지 이어져 있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구애받지 않는 최적의 장소였다.

상혁은 곧장 대학교로 향했고, 올해부터 조교로 근무하는 후배 이윤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조교는 주말에도 오전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사연까지가 지금까지의 이야기이다.

다시 지금, 지상으로 올라온 상혁은 자신의 학과가 위치한 인문학과 건물로 향했고, 익숙한 장소에서 윤태의 모습을 발견했다.

야외 흡연실이었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윤태도 멀리서 다가오는 상혁을 발견한 듯,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털어내며 흡연실을 나섰다.

“형!”

“오랜만, 아침은?”

“말도 마. 어제 백 교수님하고 소주 한잔한다는 게 몇 병이 된 건지….”

“여전하신가 보네.”

“그렇다니까… 해장할 기운도 없다. 집 돌아가면 출근 못 할 것 같아서, 과방 소파에서 잤다니까? 이게 조교인지, 술자리 노예인지 싶다….”

“근데 조교가 주말에도 출근했었구나, 몰랐네.”

“나도 이번에 알았어. 말 그대로 취업 사기지 뭐… 그나저나 무슨 동네 병원 같지 않아? 음음, 주말에는 오전 진료만 받습니다.”

둘은 그런 시시콜콜한 근황을 나누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나저나 다행이다, 마침 네가 조교라서.”

그리고 상혁이 5층 버튼을 누르며 말하자,

“근데 갑자기 동문 연락처는 왜?”

잊고 있던 호기심이 떠오른 윤태가 말을 이었다.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 설마 현지 선배가 아닌 다른 첫사랑?”

“아니야, 그니까 그게….”

적당히 둘러댄 핑계가 아니었다.

상혁은 과사무실 캐비닛에 있을 약력 말고도, 컴퓨터에 수기로 저장되어있을 동문 자료까지 챙겨갈 심산이었다.

현지에 관한 단서 하나하나가 절박한 탓이었다.

물론, 윤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노신사가 처지를 털어놔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렇기에 상혁의 머릿속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법한 부정적 클리셰만 가득할 뿐이었다.

“설마… 결혼?”

“아….”

상혁이 조금 놀란 반응을 보였고, 윤태는 적당히 지레짐작하며 말했다.

“드디어 하는구나… 하긴, 할 때 되긴 했지?”

“어… 어, 그렇지. 역시 너흰 눈치가 빠르다니까.”

상혁이 횡설수설 대답하는 탓에 숨 쉬는 것마저 어색해지려던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리자. 와, 여긴 정말 그대로네.”

“음? 여기야 뭐… 근데 둘이 얼마나 사귀었지? 알고 지낸 건 8년인 건가?”

“…알고 지낸 건 9년, 사귄 건 4년. 신입생 때 처음 만났고, 나 상병 때 사귀었으니까.”

상혁이 덤덤하게 대답하며 복도 끝 과사무실로 향하자,

“음? 15년이면 3년 아니야?”

과사무실 열쇠를 찾느라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윤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아….”

상혁의 계산이 틀린 건 아니지만, 지금은 1년 전이었기에. 윤태의 계산이 맞았다.

“3년이 맞네.”

“큭큭, 그 정도면 헷갈릴 수도 있지.”

윤태가 과사무실 문을 열고, 자료가 담긴 컴퓨터 앞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몇 학번부터 몇 학번까지?”

“우선은 10학번만 부탁할게.”

“응? 동기만 부르게?”

“그게… 아, 청첩장. 종이 청첩장은 동기들한테만 돌리려고. 선후배들은 문자로 하고.”

“음… 괜찮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알맞은 핑계에 공감한 듯 자료를 찾기 시작한 윤태.

상혁도 옛 물건을 감상하는 척, 출입구 옆에 놓인 캐비닛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두 번째 캐비닛에서 2010년도 서류철을 찾아냈다.

상혁이 그것을 꺼내 들자, 컴퓨터 화면에 열중이던 윤태가 곁눈질로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뭐야? 그쪽 캐비닛도 정리 한 번 해야 하는데.”

“10년도 파일이 있길래. 사진 같은 거 있으면 볼까 해서.”

“와! 그때면 폴라로이드 사진 썼겠네?”

“…그 정도는 아니야, 인마.”

상혁은 적당히 반응해가며 동기들이 적어낸 약력을 살폈고, 익숙한 이름을 지나 현지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윤태의 시선이 컴퓨터 화면에 집중된 것을 확인한 뒤,

재빨리 현지의 약력을 뜯어 겉옷 안주머니에 욱여넣었고, 그런 순간.

“형!”

갑작스러운 부름에 상혁이 살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어? 왜?”

다행히도 윤태의 시선은 컴퓨터 화면에 고정된 상태였다.

“찾았어. 연락처랑 주소만 편집해서 줄까? 쓸데없는 게 너무 많이 적혀 있네.”

“아니, 아니! 번거롭게 그럴 필요까지야! 그냥 그대로 인쇄해서 줘. 진짜 괜찮아!”

괜찮은 게 아니라, 그래선 안 된다는 것처럼 다급한 반응이었다.

“알겠어. 메일로도 보내줄까?”

“인쇄만 부탁할게. 고마워, 나중에 술 한턱낼게.”

“그래. 아… 근데 누나는 둘 결혼하는 거 알아?”

“윤서? 아직은 모르겠지.”

“음… 알겠어, 아무튼 여기 받아.”

살짝 걱정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던 윤태가 인쇄된 약력을 건넸다.

“고맙다.”

“뭘 이 정도 갖고.”

▶▶▶ ▶▶▶

[11:00]

윤태에겐 미안하지만, 용무만 마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온 상혁.

“후….”

그런 그가 지금부터 마주할 것들에 긴장한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상혁은 윤태가 인쇄해준 자료를 살펴봤다.

이곳에선 현지의 이름과 생일, 전화번호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필요한 단서는 전부 공란이었다.

“…하.”

상혁은 안주머니의 약력만큼은 허탕이 아니길 바라며 욱여넣은 종이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이번엔 다행히도, 상혁의 눈이 약력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이곳엔 그리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조금 먼 지역의 주소는 현지의 본가로 추정할 수 있었고, 거기에 졸업한 모교까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곳에도 부모님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움직이자….”

하지만 상혁은 이 정도 단서가 어디냐는 듯, 내비게이션에 현지의 본가 주소를 입력했고,

“어…?”

그러다 갑자기 외마디 의문을 내뱉었다.

“여기 우리 집 쪽이잖아….”

그건 자신과 현지의 본가가 가까운 탓이었다.

그 정도가 걸어서 10분 내지일 정도였다.

“…아니, 이걸 몰랐다고?”

그런 게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최소한 한 번쯤은 나눴어야 할 대화가 아니었을까.

8년을 알고 지냈지만, 상혁이 모르는 건 현지의 본가 주소와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다.

김현지라는 사람의 20살 이전, 그 시절 모든 모습을 모르는 것이었다.

▶▶▶ ▶▶▶

[13:00]

2시간가량 운전해서 도착한 이곳은 현지의 본가로 추정되는 주택의 입구.

건물의 연식을 의미하듯, 적잖이 녹슨 철문 옆엔 누르는 것만으로도 망가질 것 같은 초인종들이 달려있었다.

상혁이 그중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가운데 초인종을 눌렀고,

[네, 누구세요.]

수화기 너머로 제법 나이가 있을 것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이상혁이라고 합니다. 그, 현지 남자친구입니다.”

현지를 의심했던 마음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막상 중년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된 상혁은 저도 모르게 정중해졌고,

그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현지의 어머님일지도 모른다는 기대 탓이었다.

[네? 어… 잠시만요.]

여자는 아리송한 반응을 보였고, 곧이어 주택 2층 현관문이 열렸다.

그곳에선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혁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고치다, 어느새 철문 앞까지 내려온 여성에게 고개부터 숙였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다고요?”

여성은 한 손을 저어대며 철문을 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현지 어머님 되시나요?”

그리고 상혁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묻자,

“네? 현지? 아닌데….”

“아….”

전혀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상혁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김현지라고 모르시나요? 여기 살았던 것 같은데.”

“음… 잘 모르겠는데.”

“1층이나 3층 주민께도 여쭤볼 수 있을까요?”

“1층 할머니는 모르실 테고, 3층은… 어, 어? 아! 잠, 잠시만!”

상혁에게 절망이 될 말들만 덤덤하게 전하던 아주머니는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한 손을 휘둘러대며 말을 이었다.

“그래! 옛날에 여기 3층에 지냈던 딸들! 하나가 현지였지. 맞아, 맞아. 이제야 기억났네.”

“네?”

그리고 그런 기억이 떠올라 신이 난 아주머니와 달리, 상혁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딸들이라고….”

“잠시만 기다려 봐요. 너무 옛날이라 가물가물하네. 그래 맞아… 걔 학교 갈 때 가끔 인사하곤 했었어. 근데 그것도 10년 전인데… 근데 걔가 왜요? 남자친구라고?”

“아, 네… 현지 지금 본가에 있나 싶어서요.”

“응? 그럼 헛걸음했네. 3층에 아무도 없어.”

“네? 그걸 어떻게….”

“내가 아랫집에 몇 년을 살았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알지. 위층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거든. 수도랑 전기도 끊겼어, 한 10년은 비어있는 것 같아.”

“10년이나요…?”

“그렇다니까? 다른 세입자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쭉 비어있어. 으스스하게.”

“…혹시 기억하는 사람이 이 사람 맞나요?”

상혁은 아주머니의 증언을 확실시하기 위해, 휴대전화기에 담긴 현지의 사진을 보였다.

“맞아! 어머, 그대로네. 근데 얘가 이렇게 밝았나?”

“네, 뭐….”

10년 전이라면 현지는 고등학생이 분명했다.

즉, 이곳은 현지의 본가가 확실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딸들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응? 현지 쌍둥이이잖아. 그 얼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설마 몰랐어?”

“….”

“어머, 몰랐나 보네… 하긴, 나도 한쪽은 몇 번 못 봤어.”

“이름은요?”

“이름? 가만 보자….”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미간을 좁혀봤지만, 이것만큼은 시간을 아무리 들여도 이것만큼은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을 이었다.

“모르겠네… 늙어서 그런가 봐, 호호.”

“아닙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뭐….”

아주머니는 궁금한 점이 산더미 같았지만, 상혁의 낯빛이 심각할 정도로 어두워진 탓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지의 본가에서 돌아선 상혁은 주차된 차로 향했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무거워지던 마음이 결국 내려앉아 버린 것처럼.

바로 옆 담벼락에 몸을 기대, 바닥에 주저앉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말이 안 되잖아… 일란성 쌍둥이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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