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썩 괜찮은 삶이었다
2018.03.05.
대학생 시절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항상 설렘과 압박감을 동시에 누렸다.
분홍빛 봄이 왔다는 설렘과 중간고사를 잘 봐야 한다는 압박감.
대학생들에게 봄은 그런 계절이었다.
그러나 나루는 설렘도, 압박감도 느끼지 못했다.
나루의 가슴에 가득한 것은 불안함과 슬픔뿐이었다.
명진이 죽을 날이 가까워질수록 나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대로 놓아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나루가 말했다.
주어가 없어도, 다들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나루를 응시했다.
“명진이를 구할 방법, 분명 있을 거야.”
“관둬.”
재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윤영이 일 기억하잖아. 지후가 개입하려고 하면 할수록 일이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가. 명진이를 구하려고 하다가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그런 널 구하려다가 지후가 죽을지도 몰라. 괜한 위험에 발을 들여놔선 안 돼. 명진이도 그걸 원하지 않을 거고.”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네 마음 모르는 거 아니야.”
윤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명진이 구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나 지후가 개입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윤영까지 그렇게 말하니, 나루도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지후의 태도는 안 봐도 뻔했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였으니, 명진의 죽음 또한 순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나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명진이는.’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도 나루 걱정을 해 주었다.
‘내가 여기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나루의 상황을 알고, 믿어주고,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나루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지후와의 관계를 위해 중간에서 노력해 준,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런 사람이 곧 죽으리라는 걸 알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괴로웠다.
‘명진이가 죽으면 난 아마도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평생 명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순간에 곁에 있어 주었던 친구를, 평생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날짜를 알려 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다시 눈을 뜬 나루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죽는 날짜? 너, 그걸 기억해?”
지후가 놀랍다는 듯 물었다.
“응, 방금 기억났어.”
“날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윤영이 재경을 돌아봤다.
“글쎄. 날짜를 알면 명진이가 더 불안하지 않겠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봄에 죽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차라리 어느 날짜에 죽는지 알면 명진이도 스스로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알려 주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래, 그럼. 거기까지는 말리지 않을게.”
* * *
명진이 사는 아파트에는 벚나무가 딱 한 그루 있었다.
명진은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벚꽃놀이를 좋아하거나, 꽃피는 계절을 기다린 적은 없지만, 싫어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명진의 눈에는 연분홍빛 벚꽃이 죽음의 사자로만 보였다.
떨어지는 꽃잎이, 명진의 죽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으로만 보였다.
저 잎이 다 떨어지기 전, 나는 죽을 것이다.
‘마지막 잎새 같군.’
한 잎, 한 잎, 이파리가 떨어질 때마다 자신의 죽음이 닥쳐오는 기분을 느꼈을 여류 화가의 심정을, 명진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차라리 죽는 날짜라도 정확히 알면 좋을 텐데.’
그러면 매일 밤 잠이 들 때마다 심장이 선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루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관둔 이유는, 그녀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루는 이 시간으로 돌아와 명진을 볼 때까지, 명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옛 시간에서 명진은 나루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고, 그런 관계의 대학 동기가 죽은 날짜를 나루가 정확하게 기억할 리 없었다.
괜히 질문을 해서 나루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루는 아마도 이 질문에 답해 주지 못한 걸, 평생 괴로워할 것이다.
‘나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 없어.’
나루가 이 시간으로 돌아온 덕에, 죽음을 미리 알았다.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쌓을 기회가 있었고, 죽음에 대비해 신변 정리도 해 두었다.
가족들 앞으로 편지도 써 놨다.
명진이 죽은 후, 가족들은 명진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 편지들을 발견할 것이다.
‘네 덕에 나는 많은 걸 준비할 수 있었어. 그러니까 나루야, 미안해할 것도, 죄책감을 품을 것도 없어. 너는 그냥 네 인생을 살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침대에 던져 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가 한 통 들어와 있었다.
[명진아. 네가 죽는 날은 4월 7일이야. 그날은 절대로 오토바이 타지 마.]
나루에게 온 문자였다.
* * *
나루에게 문자를 받은 건 4월 7일. 운명의 그날이 되기까지 딱 일주일 전이었다.
죽는 날짜를 정확하게 알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명진은 책상을 정리하고, 책상 서랍의 잘 보이는 곳에 편지를 놔두고, 컴퓨터의 기록들을 삭제했다.
4월 6일 저녁.
가족들이 모두 모였을 때, 명진은 말했다.
“나는 우리 가족이 정말 좋아. 엄마랑 아빠한테서 태어나서 진짜 행운이었어.”
명진의 말에 누나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여동생은 진저리를 쳤다.
“오빠, 진짜 왜 이래, 요새? 징그러 죽겠네.”
“그냥. 좋아서. 감사하기도 하고. 다들 내 마음 알지?”
“명진이 너, 죽을병이라도 걸린 거 아냐?”
큰 누나가 수상쩍다는 듯 물었다.
“아냐, 그런 거.”
내일 죽긴 하지만, 병 때문에 죽는 건 아냐.
나는 내일 죽어.
일단은 집에 있을 거지만, 죽음이란 녀석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윤영이라는 애 동생도 죽었거든.
그러니까 아마도 나는 내일 죽을 거야.
무서워. 정말로 무서워.
준비를 충분히 해 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서워.
조금 더 오래 살면 좋았을 텐데.
하고 싶은 게 많았거든.
오래 살 줄 알고 미뤄 둔 것들이 정말로 많았거든.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이라도 한 후에 죽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해. 그러면 부모님께 선물이라도 하나 사 드렸을 텐데.
누나들이랑 동생한테 뭐라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채로, 좋은 것만 받다가 가 버려서 미안하고 아쉽고, 그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명진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아 방 안을 둘러봤다.
이곳에 앉아 숨 쉴 수 있는 날이 이제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천장과 벽이 덮쳐오는 기분에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내일 죽는다.
* * *
“안 죽을 거야.”
4월 6일 밤.
나루의 집에 재경과 지후, 윤영이 함께 있었다.
죽음을 맞이한 명진만큼이나 나루도 절박한 표정이었다.
“명진이는 안 죽을 거야.”
나루가 곱씹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루 또한 자신의 말을 믿는 표정은 아니었다.
* * *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날이 밝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명진은 이불 속에서 숨을 죽였다.
‘이러고 있으면 죽지 않을 거야. 오늘은 꼼짝도 하지 말고 집에만 있자.’
윤영의 동생이 죽은 건, 나루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곡에 갔기 때문이다.
만약 계곡에 안 갔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원인이 되는 걸 하지 않으면 안 죽을 수 있어. 집에 있는데 무슨 방법으로 죽겠어?’
천장이 무너지거나 불이 나지 않는 한, 집에 있다가 죽을 일은 없다.
“명진아. 아직도 자니? 벌써 점심이야.”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나 보다.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왈칵 눈물이 흘러나왔다.
“명진아.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응, 괜찮아.”
오열을 참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어제도 계속 안 좋아 보이던데. 엄마가 뭐 맛있는 거라도 해 줄까?”
“……괜찮아, 엄마.”
“괜찮다는 녀석이 방문을 열어 보지도 않아? 엄마가 시장에 가서 갈비 사다가 갈비찜 해 줄게.”
“응.”
엄마, 나는 그 갈비찜을 먹지 못할지도 몰라.
명진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이제 엄마를 못 볼지도 몰라.
‘죽어 버린 나는 괜찮겠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엄마는…….’
가족들이 마음에 걸렸다.
‘아빠는…….’
내 가족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아야 할 텐데.
* * *
나루와 지후, 재경과 윤영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루의 집에 둘러앉아 있었다.
오늘은 네 명 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젯밤부터 네 사람은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두의 얼굴에 초조함과 불안이 깃들었다. 죽음을 받아들인 지후조차도 괴로운 표정이었다.
나루는 울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명진은 아직 죽지 않았다.
벌써부터 울어서는 안 된다.
‘안 죽을 거야.’
집 밖에만 안 나가면 된다.
‘명진이는 무사할 거야.’
명진의 죽음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아!”
그때, 윤영이 벌떡 일어났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라 윤영을 올려다봤다.
“야, 깜짝 놀랐다. 왜 그래?”
재경이 물었다.
윤영은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생각났어. 그 꿈, 그래. 생각났어.”
“그 꿈이라니? 뭐가 생각난 건데?”
“명진이가 죽은 이유!”
“뭐? 뭔데? 왜 죽은 건데? 오토바이 사고 아냐?”
재경이 다급하게 물었다.
나루도 숨을 멈추고 윤영의 입술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오토바이 사고는 사곤데…… 그 이유가…… 아, 그래. 사고 때문이었어.”
“어?”
“아, 그러니까.”
윤영은 답답한 듯 고개를 휙휙 젓더니,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에서 애들이 명진이 죽은 일로 떠들어 댈 때 들은 건데, 걔네 어머니가 먼저 사고가 났다고 했어. 그래서 명진이가 경찰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급하게 가다가 난 사고라고 그랬어. 그래, 그런 꿈을 꿨었어.”
윤영은 말을 끝내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 이런 중요한 걸 잊고 있었을까.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에 꿨기 때문이었다.
나루와 친해지기 전, 자주 꾸는 그 꿈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꿨던 꿈이었다.
그래서 개꿈이라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더 슬픈 게 뭐냐 하면. 걔네 어머니, 큰 사고가 아니었어. 차에 살짝 치인 정도? 그래서 다들 걔네 어머니가 죄책감이 크겠다고, 그런 얘기들을 했었어.”
윤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후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 * *
휴대폰이 울렸다.
이불 속에서 시간을 초 단위로 세고 있던 명진은,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정한숙 씨 아들 되십니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한숙은 명진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네, 그런데요.”
[정한숙 씨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른 보호자분들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명진은 벌떡 일어났다.
“엄마가…… 엄마가 사고를 당했다고요?”
[네, 그게…….]
“어디에요? 어딥니까, 병원.”
상대가 병원 이름을 말했고, 명진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죽음을 피하려고 해서, 죽음이 우리 엄마한테로 간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안 돼, 그건 안 돼.’
집에만 있을 작정이었다.
오늘은 정말로 집에만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사고를 당했다.
어쩌면 오늘이 엄마와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인지도 몰랐다.
‘내가 엄마한테 가다가 죽으면…… 엄마는 살지도 몰라. 설령 오늘 엄마가 죽더라도, 엄마 얼굴도 못 본 채 보낼 수는 없어.’
가야만 한다.
명진은 휴대폰을 침대 위에 놔두고 내려와 헬멧을 집어 들었다.
얼른 엄마에게 가야 한다.
명진이 피하려고 해서 화가 난 죽음이 엄마를 집어삼키기 전에, 엄마를 보러 가야만 한다.
마음이 급해서 휴대폰을 챙기는 것도 잊었다.
명진은 뛰어나와 오토바이로 향했다.
‘아니지.’
오토바이 시동까지 걸었다가 생각을 바꿨다.
‘택시를 타자.’
명진은 대로변을 향해 달려갔다.
어차피 이 시간이면 오토바이를 타든, 택시를 타든 시간은 비슷하게 걸린다.
‘피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피해 봐야지.’
택시에 올랐다.
“XX 병원으로 가 주세요.”
택시가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거리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택시는 달렸고, 사거리가 나왔고, 빨간 신호에 걸려 멈췄고, 파란 신호로 바뀌었고, 다시 달렸고, 그리고 오른쪽에서 신호를 지키지 않은 트럭이.
“아…….”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
트럭의 속도는 빨랐고, 거대한 트럭이 작은 택시를 들이받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명진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렇군.’
명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죽음, 너는 나를 어떻게든 집어삼킬 예정이었군.’
그렇다면 엄마는 무사할지도 모른다.
큰 사고가 아니었으리라.
‘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널 피할 수 없는 거였군.’
나루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상한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고, 명진을 붙잡으러 달려오던 모습.
―잊어서 미안해. 미안해, 명진아.
그녀의 첫 마디.
그녀가 시간을 돌아왔음을 고백하던 순간.
지후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던 표정.
그리고.
지후를 얻은 후 환하게 웃던 얼굴.
‘그래. 누가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
시간을 돌아왔다는 여자를 만나, 그녀의 사랑을 응원하기도 하고, 그녀를 지키려고 하기도 했다.
시간을 돌아온 나루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 짧은 삶에서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일을 경험했다.
‘끝까지 돕고 싶었는데.’
그래도 꽤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넌 살아남아라. 난 먼저 갈게.’
이 삶에서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이 그녀의 웃는 얼굴이라 다행이었다.
썩 괜찮은 삶이었다.
그리 생각하는 순간,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