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2018.02.22.
헬멧 안이 더운 김으로 가득 찼지만, 명진은 헬멧을 벗을 수 없었다.
눈물범벅이 된 자신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누가 보면 어떻단 말인가. 이제 반년 후면 나는 이곳에 없을 텐데.
“제기랄.”
윤영이 나루의 말을 믿고 동생을 구하려고 했으나, 구하지 못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윤영 동생의 일로 증명되었다.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미리 알고 있으니 피할 수 있으리란,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작은 불씨조차 사라졌다.
희망은 없다.
나는 반년 후에 죽는다.
‘내년 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사람들이 의연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난 못 그러겠어.’
그런 건 무리다.
반년 후에 죽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벌벌 떨렸다.
반년 후, 나는 사라진다.
지금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미래를 꿈꿀 수도 없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다.
나는 죽는다.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다.
‘왜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반년 후야?’
지후가 부러웠다.
적어도 지후는 10년 이상의 삶이 남았으니까.
원하는 것을 하고 꿈꾸는 것을 이룰 만한 시간이, 지후에게는 있으니까.
‘반년 동안 대체 뭘 하라는 거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가 21살이 되자마자 죽는다는 사실 따위, 알지 못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순간 나루가 원망스러웠다.
알려 주지 말지. 내가 죽는다는 미래 따위, 말해 주지 말지.
그러나 곧 그 생각을 지웠다.
나루는 명진을 살리고 싶어 했다.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도 믿었지. 멍청하게.’
“으으…….”
악문 이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참 밖을 서성이다가 새벽 동이 틀 때쯤에야 집에 들어갔다.
물을 마시러 나오던 엄마와 거실에서 마주쳤다.
“명진아, 너 이 시간에 또…….”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
“명진아?”
“엄마, 엄마, 엄마.”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들은 어떡하지?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는, 우리 누나들은, 내 동생은.
대체 어떡하지?
아마도 나루가, 지후가, 재경이, 잘 챙겨 줄 것이다.
그러나.
‘죽기 싫어.’
“엄마.”
“명진아.”
“엄마, 엄마.”
엄마의 품에 안기는 게 몇 년 만일까.
철이 들 무렵부터 쑥스러워서 안을 수 없었던 엄마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명진이 우는 내내, 엄마는 이유도 묻지 않고 명진의 등을 쓸어주었다.
명진은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았다.
* * *
새벽에 찾아온 날을 마지막으로, 나루는 명진을 만나지 못했다.
명진은 학교에도 오지 않았고, 나루나 다른 친구들의 연락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명진의 집도 모른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집이라도 알면 찾아가 봤을 텐데.
나루는 간간이 명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명진아, 잘 지내고 있어? 학교에는 안 나올 거야?]
[걱정돼. 가끔 근황이라도 알려 줘.]
[난 잘 지내고 있어.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느 날부터는 교수가 출석을 부를 때 명진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명진이 휴학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과 학생들 사이에선 명진의 갑작스러운 휴학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조차 금방 잠잠해졌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옛 시간에서처럼 명진의 이름이 학생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고 걱정하는 것은 나루와 그녀의 친구들뿐이었다.
명진이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나루가 명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11월 말,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이었다.
딩동―
지후와 데이트를 하느라 미뤄 둔 리포트를 새벽까지 쓰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지후가 야식이라도 만들어서 왔나 싶어,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명진의 모습에, 나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루는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려 명진을 끌어안았다.
“명진아!”
명진은 나루를 밀어내지 않았다.
“아, 명진아. 진짜 보고 싶었어.”
“그래, 나도.”
명진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들어와, 명진아. 다른 애들도 부를까?”
“아니, 그냥 널 보러 왔어.”
명진이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지만 신발을 벗고 집 안까지 들어오진 않았다.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
“난 잘 지내고 있어. 문자도 보냈잖아.”
“그래, 문자도 보냈지.”
명진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수척해진 명진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나루는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지냈어? 윤영이랑은 이제 많이 친해졌어?”
명진이 물었다.
이런 와중에도 나루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명진의 행동에, 나루는 울고 싶어졌다.
입가의 근육이 울음을 담고 실룩거렸지만, 간신히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친해졌어. 같이 쇼핑도 하러 가고 편하게 대화도 하고 그래.”
“지후랑은 여전히 달달하고?”
“응, 그렇지, 뭐.”
“그래, 다행이다.”
“넌? 너는 어떤데?”
“나는 그냥. 휴학을 했어.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중이야. 가끔 시간이 맞으면 여행을 가기도 하고, 누나들이랑 집 밖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그래. 가족들은 사람이 변했다면서 징그러워하고 있어.”
“그렇구나.”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어. 가족들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해. 어떻게 보면 내 가족의 사정과 생각은 타인의 것보다 알기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어.”
“응.”
“내 여동생이 연애를 하다가 실연을 당했고, 내 누나가 조심스럽게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거든. 그렇게 가족들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
“응.”
“알아갈 시간이 조금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응.”
나루는 이를 악물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나루의 얼굴을 보며, 명진이 싱긋 웃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난 이제 조금씩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니까. 오늘 찾아온 건, 네가 걱정할 것 같기도 했고, 그동안 알아낸 걸 알려 주기 위해서이기도 해.”
“알아낸 거?”
“이거.”
명진이 옆으로 매고 있던 가방에서 A4용지 뭉치 하나를 꺼냈다.
“생명 연장, 동물 실험, 유전자 조작 등에 반대하는 단체들이랑 그 단체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이야.”
나루는 그걸 받아 들지 못하고 명진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명진의 죽음까지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명진은 나루의 일을 걱정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저 ‘감동받았다.’라는 말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정이 나루의 가슴을 채웠다.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온힘을 다해 견디고 있었는데, 눈물이 나루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네가 하고 있던 그 비밀스러운 연구. 널 납치하고 싶어 하고, 널 죽이고 싶어 할 만한 그 연구. 영생에 대한 연구일 거라고 짐작했어. 맞지?”
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맞춰서 다행이네. 이걸 보면 알겠지만 극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단체들도 따로 정리를 해 뒀거든. 물론 12년 후에는 사라질 단체도 있을 거고, 새롭게 생길 단체도 있겠지만, 참고하라고 정리해 봤어.”
휴학까지 하고 죽음을 대비하는 상황에서도, 나루의 일을 꼼꼼히 조사해 준 명진에게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름대로 생각해 봤는데,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누가 네 연구를 외부에 발설했는지야. 보통 그런 굉장한 연구라면 훔쳐서 팔아먹지, 완성도 되지 않은 단계에서 외부에 발설하지는 않잖아. 발설한 이유는, 아마도 네 연구를 막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봐. 생명 연장에 반대하는 인물이겠지. 그럴 만한 사람을 한 번 찾아봐. 이 시간에서는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비는 할 수 있잖아.”
명진이 나루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엄지로 나루의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몇 번의 손놀림으로 닦아낼 수 없을 만큼, 나루의 눈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히끅, 히끅.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삼키느라, 나루는 어깨를 떨고 있었다.
“콧물 나온다, 연나루.”
명진이 놀리듯 웃었다.
“으으…… 흑…… 욱…….”
결국 참고 있던 오열이 터져 나왔다.
나루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루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서글픈 신음에, 명진의 눈가도 빨개졌다.
“울지 마.”
“아…… 아아, 명진아…… 욱…… 으…… 욱…… 미안, 미안해……. 아, 어떻게 해, 미안해…….”
울고 싶은 건 너일 텐데.
오열하고 싶은 건 너일 텐데.
바보처럼 울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적어도 웃는 얼굴로 명진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넌 살 거야. 너는 살아남을 거야.
그렇게 믿는 표정으로 명진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 자신이 미웠다.
명진은 나루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힘겹게 눈물을 그친 나루가 명진을 올려다봤다.
“나루야.”
명진이 담담한 표정으로 나루를 불렀다.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안 남기고 갈 거야. 오토바이 헬멧이라도 물려줄까 했는데, 안 그러려고. 나는 원래 네 인생에 없던 사람이었어. 옛 시간에서 넌 나를 기억하지도 못했지.”
“그건…….”
“아니, 널 원망하는 게 아냐. 난 그냥 네게 그런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날 잊어. 날 잊고 네 삶을 살아가. 지후가 12년 후를 살아가게 될지, 살지 못하게 될지, 나도 몰라. 하지만 지후와 함께할 12년을 소중하게 보내. 내 생각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알겠지?”
다정한 음성이었다.
나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명진과 눈을 맞췄다.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을 어떻게 잊어? 못 잊어. 기억할 거야. 네가 내게 해 준 것들, 너와 나눴던 대화들, 평생 기억할 거야. 옛 시간의 너는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었지만, 내가 다시 살아갈 이 시간의 너는, 내 인생에 큰 자국을 남기고 간 소중한 존재니까.”
나루의 말에 명진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잊을 거야. 원래 죽음이란 그런 거니까.”
“안 잊어. 그리고 그렇게 자포자기한 듯이 말하지 마.”
“물론 나는 살려고 발버둥 칠 거야. 하지만 그래도 죽는다면, 그땐 네가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부분은.”
나루는 더 이상 질척거리지 않기로 했다.
명진이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걱정이라도 덜어주는 게 옳았다.
“내가 생각 좀 해 보고 결정할게. 그러니까 넌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낼 생각이나 해.”
“그래.”
명진이 잠시 망설이다가 나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갈게. 잘 자.”
“응, 너도.”
명진이 나간 후, 나루는 허물어졌다.
혹시라도 명진에게 들릴까 걱정되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나루는 현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오열했다.
* * *
나루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버렸다.
추운 현관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며 오열하기도 했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온몸에 열이 펄펄 끓었다.
나루는 간신히 침대로 기어가 이불을 끌어당기고 누웠다.
지후에게는 학교에 못 갈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고 잠이 들었다.
열에 취해 깼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여러 영상이 눈앞을 흘러갔다.
옛 시간의 기억들. 이 시간의 추억들.
명진과 함께한 추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루는 울었다.
그렇게 울고 잠들고 울고 잠들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잠을 좀 자서인지 열이 많이 가라앉았다.
나루는 명진이 준 자료를 침대로 가지고 왔다.
열 때문에 두통이 심하긴 하지만, 명진을 생각해서라도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열심히 살게, 명진아.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
그런 생각이 명진의 죽음을 확신하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명진아. 너는 살아남을 거야. 살아남아야 돼.’
하지만 알고 있었다.
자신도 이제는 운명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음을.
그렇다면 명진이 죽음을 앞둔 와중에도 조사해 준 것들을 확인하고, 파악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내 생명의 반은 네 거야, 명진아. 네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이 시간에서 고독사 했을지도 몰라.’
나루는 뿌연 시야로 들어오는 글자들을 머리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명진은 꼼꼼히 준비해 주었다.
생명 유지, 연장, 유전자 조작 등에 반대하는 단체의 이름이 위험도 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 몇 개는 나루도 들어본 이름이었고, 12년 후에도 존재하는 단체들이었다.
자료를 반쯤 읽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나루야, 나 들어간다.”
지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후는 나루의 집 열쇠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찰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지후가 들어왔다.
“걱정돼서 왔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파. 감기에 걸린 것 같아.”
지후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루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밖에 있다가 들어온 그의 손은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다.
“열나네. 약은 먹었어?”
“아니.”
“밥은?”
“밥도 아직.”
“기다려 봐. 약 사오고 나서 죽이라도 끓여줄게.”
일어나려는 지후의 손목을, 나루는 붙잡았다.
“어젯밤에 명진이가 찾아왔었어.”
지후의 눈이 커졌다.
“잘 지내고 있대. 가족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그런대. 학교는 휴학했대.”
“그렇군.”
“나한테 이걸 줬어.”
나루가 자료를 내밀었지만 지후는 그걸 받아 들지 않고 내려다봤다.
나루는 다시 자료를 내려놓고 말했다.
“생명 연장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위험도 순서로 정리되어 있어. 그리고 명진이 말로는, 내 연구를 외부에 흘린 인물을 먼저 찾아내는 게 좋을 것 같대. 그래서…….”
열 때문에 충혈된 눈으로 열심히 말하는 나루를, 지후는 가만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나루야.”
“응?”
“일단 좀 쉬어. 이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아픈 거 낫는 게 우선이야.”
“하지만…….”
“이건 내가 생각할게. 그러니까 너는 좀 자.”
지후가 땀에 젖은 나루의 머리칼을 뒤로 넘겨줬다.
“식은땀 나는 거 봐라.”
걱정스럽게 말하는 지후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플 때면, 지후는 항상 이렇게 걱정해 주고 병간호를 해 주었다.
그 어떤 슬픔도 벌어지지 않았던, 그저 사랑만 했던 옛 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루는.
“하자.”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지후야, 우리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