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신변 정리
2018.02.08.
8월의 태양이 아플 정도로 내리쬐고 있었다.
해변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놀러온 사람들로 빽빽했다.
어젯밤 제대로 못 잔 명진과 재경은 바다에서 조금 놀다가 피곤하다며 파라솔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나루와 지후는 튜브를 빌려서 놀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니 어느 틈에 둘 사이가 꽤 멀어져 있었다.
“배 안 고파?”
지후가 큰 소리로 물었다.
“조금.”
“컵라면 먹을래?”
“그럴까?”
“가서 사놓을게. 슬슬 나와.”
“응.”
지후가 사람들을 헤치고 해변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루도 바닥에 발을 디디고 해변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 나루의 발목을 잡고.
쑤욱―
그대로 끌어당겼다.
튜브에 걸쳐져 있던 나루의 상체가 아래로 빠진 건 순식간이었다.
대비하지 못한 채로 바다 속에 끌려 들어오는 바람에, 짠물이 그대로 코와 입 안으로 들어왔다.
짠물이 기도로 벌컥벌컥 넘어왔다.
폐가 타들어 갈 듯 아팠다.
숨을 멈춰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나루는 허우적거렸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파. 아파.’
아프고 무섭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쉿.
눈앞이 까맣게 변해 가려고 할 무렵, 지후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쉿.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오롯이 나루만을 걱정했던 지후.
지후도 이만큼 무서웠을 텐데, 이보다 더 아팠을 텐데. 지후는 그런 순간마저도 나루를 생각했다.
‘나도.’
나루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도 발목은 무언가에 붙들려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돼.’
물속이지만 눈을 떴다.
짠물이 각막을 자극해서 찢어질 듯 아팠지만 깜빡이지 않고 바닷물 속을 응시했다.
모래가 뿌옇게 올라와 잘 보이지 않지만, 나루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대체 누구지?’
상대도 나루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눈치챈 듯했다.
‘누가 날?’
발목을 잡고 있는 손에서 힘이 조금 빠진 순간, 나루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상대가 잠깐 나루를 놓친 틈에, 나루는 수면으로 올라왔다.
“살려……! 푸후……!”
그러나 곧바로 다시 끌려 내려왔다.
하지만 지후의 주의를 끌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해변으로 향하던 지후는 나루를 놓고 오는 게 마음에 걸려 뒤를 돌아봤고, 방금 전까지 나루가 있던 자리에 그녀가 보이지 않아 계속 두리번거리던 참이었다.
아주 잠깐 나루가 수면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지후는 그녀를 발견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 없이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서 쉽지 않았다.
“아, 뭐야?”
“왜 이래?”
지후와 부딪친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때.
나루의 근처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나루를 발견한 듯 허리를 굽히더니, 그녀의 팔을 잡아 쑥 빼냈다.
“괜찮아요?”
남자가 물었고.
“콜록! 콜록! 우욱!”
짠물을 들이켠 나루는 대답하지 못한 채 토악질을 했다.
남자가 걱정스러운 듯 나루의 등을 두드리고 있을 때, 지후가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비틀거리는 나루를 품에 안으며, 지후가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런데 왜 이런 데서 물에 빠졌지? 물살이 빠른 것도 아닌데.”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일행에게 돌아갔다.
남자의 일행들이,
“뭐야? 왜 그래?”,
“물에 빠진 거야?”,
“저기 물이 깊나?”
남자에게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으며, 지후는 나루를 안아 들고 해변으로 향했다.
파라솔 아래에는, 재경과 명진이 세상모르고 자는 중이었다. 지후는 재경의 옆구리를 발로 툭툭 차서 밀어냈다.
“으으, 왜? 더 잘 거야.”
잠긴 목소리로 투덜거리던 재경이, 지후에게 안겨 기침을 하는 나루를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뭐야? 나루, 왜 이래?”
“물에 빠졌어.”
지후가 재경이 누워 있던 자리에 나루를 눕혔다.
나루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고, 폐는 여전히 타들어 갈 듯 아파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물에 빠져? 왜? 어디서? 여기 물에 빠질 만한 데가 있나? 깊은 데까지 들어간 거?”
재경의 목소리에 명진도 잠에서 깨어나, 걱정스러운 듯 나루를 내려다봤다.
지후는 나루의 옆에 앉아, 그녀의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겨주었다.
“몰라. 옆에 있던 아저씨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튜브도 갖고 들어갔잖아. 왜 물에 빠진 거야? 발에 쥐났었어? 괜찮아?”
재경이 물었다.
나루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지후와 재경, 명진을 돌아봤다.
바닷물을 몇 번이나 삼킨 목이 아렸지만, 할 말은 해야만 했다.
“누군가…… 내 발목을 잡고 끌어당겼어.”
“그게 무슨……?”
“누가 날 죽이려고 했어.”
진정을 되찾은 나루가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세 남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는 못 봤고?”
나루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지후가 물었다.
“응, 사람이라는 것만 확인했어. 물속이라서…… 아, 푸른 계통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아.”
모두의 시선이 명진에게로 향했다.
명진은 파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명진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난 아니다. 난 자고 있었어.”
“아무도 너라고는 생각 안 해.”
“성재경, 네가 지금 날 제일 의심스럽게 보고 있거든? 나, 네 옆 바짝 붙어서 자고 있었다? 내 체온이랑 숨결, 너도 느끼고 있었잖아.”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마.”
재경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대꾸하고는 나루를 돌아봤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지금 명진이나 지후가 문제가 아냐. 나루가 먼저 죽게 생겼어.”
* * *
명진과 지후에게 다가오는 죽음이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루의 앞에 닥친 죽음에는 분명한 실체가 있었다.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대체 누구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씩씩한 척했다.
하지만 사실은 무섭다.
내게 살의를 품은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해. 지켜보고 있어.’
갑작스레 가게 된 여행이었는데, 거기를 따라왔다.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 같은 게 아냐. 나를 죽이려고 따라온 거야.’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집에 혼자 있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나는 언젠가 살해당한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 두 번째는 익사.’
‘다음엔 어떤 방법일까?’
옛날에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죽음의 비행기. 어떻게든 다가오는 죽음. 피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점점 끔찍해지는 죽음의 방법.
토할 것만 같았다.
‘그만 생각하자.’
두려워해 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자꾸만 그곳으로 향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안 돼. 여기서 내가 흔들리면 안 돼. 옛 시간에서도 날 죽이려는 무리는 있었고, 내가 그걸 모르는 척하고 피하기만 해서 지후가 죽은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도 그 짓을 반복하면 안 돼.’
나루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말 무섭겠구나, 명진이랑 지후는.’
죽음이 눈앞에 닥치고 보니, 막연히 짐작만 했던 그들의 두려움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명진이는…… 정말로 무섭겠다. 난 한 번 죽을 뻔한 걸로 이렇게까지 무서운데…… 명진이는 내년 봄에 죽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더 무서울 거야.’
하지만 명진은 나루의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역시 대단하다.
‘그래, 그러니까 나도 정신을 차려야 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자.’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는지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지금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울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 속이 좀 안 좋아서 한숨 자고 일어나서 먹을게.”
방문을 반만 열고 말했다.
“속이 안 좋아? 엄마가 손 좀 따줄까?”
“아, 아냐. 나 좀 그냥 자면 괜찮아질 것 같아. 먼저들 드세요.”
엄마가 오기 전에 황급히 문을 닫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 앞에서 눈물을 쏟을 수는 없었다.
‘엄마, 나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겠어. 만약 죽는다면 12년 후쯤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르겠어.’
나루는 문고리를 꽉 잡은 채로 주저앉았다.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오열을 하게 될 것만 같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흐느낌이 새어 나왔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밖에까지 들리진 않을 것이다.
‘대체 뭘 위해 난 여기로 돌아오게 된 거야? 나랑 지후가 이 시간으로 돌아온 이유는 대체 뭐야? 날 무섭게 만들려고? 죽음이 언제 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게 만들려고? 한 번 더 무서워 보라고, 죽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 보라고, 날 이 시간으로 보낸 거야? 응?’
누군지 모를 사람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
‘왜 보낸 건데? 이유라도 알려 주고 보냈어야지. 그래야 내가 뭐든 하지. 이게 뭐야? 벌벌 떨기나 하고, 울기나 하고……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죽었던 지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좋은 일이라고는 그거 하나였다.
나머지는 전부 엉망진창이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면 이거 전부 현실이 아닌 거 아냐? 내가 미쳐서 하고 있는 망상일지도 몰라.’
한동안 하지 않았던 생각을 했다.
‘지후는 죽었고, 나는 미쳐서 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정말이지 지독한 망상이다.
‘아니, 망상일 리 없어. 도피하기 위한 망상이라면 좀 더 행복했을 거야. 비현실적으로 행복한 망상을 했을 테니까, 이 지독한 게 망상일 리 없어.’
나루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이게 현실이라면 제대로 생각을 해야 돼. 울고 있을 때가 아냐.’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지도 모른다.
‘물론 있는 힘껏 살려고 노력해야겠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돼.’
나루는 방을 둘러봤다.
‘내일 죽는다고 가정하고, 내 신변을 정리해야 돼. 유서를 쓰고, 물건들도 정리하고, 내가 갑자기 죽더라도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당황하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지후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나루는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죽음이 두려워 동요하는 모습을, 지후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보세요.”
발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야.]
“응. 어쩐 일이야?”
[걱정이 돼서.]
“뭐가?”
[네가 혼자 펑펑 울면서 신변 정리를 하고 있을까 봐.]
정곡을 찔렸다.
지후는 나루 자신보다 나루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아하하하. 그게 뭔 소리야?”
[유서라도 쓰고 있었던 거 아냐?]
“에이,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그러고 있었으면서.]
“아니라니까.”
[나루야.]
“응?”
[나한테까지 감추려고 하지 마.]
다정한 음성에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 앞에서 울고 싶으면 울고, 무서워하고 싶으면 무서워해. 나한테 걱정할 기회를 줘.]
“나, 울보 아냐.”
[응, 알아. 하지만 가끔은 울고 싶을 때가 있는 거잖아.]
나루는 다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랫입술 깨물지 마. 피난다.]
“……어떻게 알았어?”
[다 알아, 나는.]
“CCTV라도 설치해 둔 거야?”
[그럴지도. 잘 찾아봐 봐.]
정말인가 싶어서 방 안을 둘러보다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너는 울고 싶을 때 없어?”
[난 울보가 아니거든.]
“나도 아니라니까.”
[그래, 그래.]
“너는 무섭지 않아?”
[무서워.]
“너도 나한테 티 내지 않잖아.”
[너랑 있을 땐 안 무서우니까.]
“…….”
[너랑 있을 땐 그저 널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거든. 그래서 안 무서워.]
“나는 무서워.”
[응, 그래도 돼.]
“나도 널 많이 사랑해. 널 위해 내 목숨도 버릴 수 있어. 하지만…… 그래도 무서워. 무서워, 지후야.”
[응, 알아. 무서울 거야.]
나루는 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원래는 내가 죽으면 끝나는 일이었어. 옛 시간에서는 네가 날 대신해서 죽었지만, 이 시간에서는 아무래도 내가 죽으려나 봐. 그렇다면 나는 죽을 거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바보 같은 소리가 아니야. 내가 죽으면 넌 안 죽겠지. 그러니까 그걸로 됐어. 그래, 그걸로 되는 거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죽으면, 지후는 산다.
12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지후는 살아갈 것이다.
그저 단 하나만을 원했다.
지후가 살아가는 것.
이 시간으로 돌아와 가장 원한 것은 지후가 12년 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괜찮다.
살인범이 누구든, 지후가 아닌 나를 죽이려고 한다.
옛 시간에서 지후를 죽이는 실수를 했으니, 이 시간에서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럼 되는 거야.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우리를 노리지 않을 거야. 지후는 살겠지.’
두려움이 가셨다.
[나루야.]
“응?”
[잠깐 볼까?]
“아니,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그래? 알겠어, 그럼.]
“응, 전화해 줘서 고마워.”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루는 새로운 기분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
‘엄마, 아빠. 미안해. 먼저 죽는 자식처럼 불효자가 없다는데, 아무래도 나는 불효자가 되려나 봐. 대신에 살아 있는 동안, 엄마랑 아빠한테 정말로 잘할게.’
살려고 발버둥은 칠 것이다. 그러나 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세상을 떠나는 그때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가족들에게, 지후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온 힘을 다해 잘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창문을 노려봤다.
“나루야. 나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루는 황급히 창가로 달려가 창문을 열었다.
지후가 창문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납치하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