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오롯이 널 위해
2018.02.05.
휴가철이라 예약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바다에 왔다.
도착한 첫 날, 짐을 풀고 바다로 향했다.
예상대로 사람이 많았다.
첫 날은 멀리서 바다 구경만 하기로 했는데, 더워서 조금씩 바다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어느 틈에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손으로 찰방찰방, 바닷물을 튀기며 놀다가 해물찜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재경과 명진은 PC방에서 게임을 할 거라며 사라졌다. 지후와 나루를 위해 자리를 피해 준 것이 분명했다.
“우리도 나가서 좀 걸을까?”
지후의 제안에, 둘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숙소는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도 바다 냄새가 났다.
손을 꼭 잡고 해변을 향해 걸었다.
해가 졌는데도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사람들, 연인과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
“옛날 생각난다.”
나루의 말에 지후가 웃었다.
“그러게.”
2학년 여름 방학 때, 지후와 재경, 나루, 윤영은 함께 바다로 놀러갔다.
기억나지 않는 인원이 몇 명 더 있었다.
“거의 8명 정도 같이 왔었지?”
“응. 누군지 기억은 나?”
“당연하지.”
“거짓말쟁이. 기억 안 나면서.”
지후의 말에 나루가 입술을 비쭉거렸다.
“넌 기억나?”
“당연하지. 너랑 함께한 순간은 사진처럼 똑똑히 기억해.”
“뭐야, 꼭 나보다 네가 날 더 사랑하는 것 같잖아.”
“실제로 그럴걸.”
“아니거든. 내가 더 사랑하거든.”
“아니, 누가 봐도 내가 널 더 사랑해.”
“아니야.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해.”
남들이 보면 어이없어할,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심각한 문제로 말다툼을 했다.
투닥투닥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 윤영이가 같이 여행 온 애랑 썸을 탔던 것 같은데.”
“아, 그랬었나? 아, 맞다. 누군지 알 것 같아. 최연우, 맞지?”
대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연우와 꽤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났다.
“썸만 타다가 끝났었던 것 같은데. 연우가 윤영이 좋아했잖아. 윤영이도 연우한테 꽤 관심 있었고.”
한 번 기억이 나니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했다.
―나루야, 나 잠깐 나갔다가 올게.
바다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돌아와 지쳐서 누워 있을 때, 윤영이 홍조 띤 얼굴로 말했었다.
―어디 가?
―그게…… 연우가 잠깐 뭣 좀 사러 가자고 해서.
―응? 필요한 게 있나? 아까 다 장 봐서 왔잖아.
―그러게, 뭔가 더 필요한 게 있나 봐. 잠깐 나갔다가 올게.
둔한 나루는, 둘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뭣 좀 사러 간다는 윤영은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걱정된 나루가 찾으러 가야겠다고 일어나자 재경이 말했다.
―이 둔탱아. 걔네 지금 한창 좋을 때야. 방해하지 마.
한창 좋을 때였다. 그때는.
동생을 잃고 힘들어하던 윤영은, 그 여행 때 많이 즐거워 보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도 윤영과 연우는 간간이 만났고, 사귄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결국 사귀지 않고 끝이 났다.
연우가 친구들 등살에 떠밀려 미팅을 나갔고, 그걸 윤영에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연우는 정말로 윤영이를 좋아했던 것 같아. 걔 군대 가고 친구들이랑 한 번 면회 갔었는데, 윤영이 안부만 묻더라고.”
나루의 말에 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연우가 나한테 상담을 많이 했지. 술 마시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
“아, 그랬었어?”
“응. 복학하고 나서도 종종 윤영이 얘기 꺼내고 그랬어.”
“그렇구나.”
연우가 군대에 가고 면회 한 번 다녀온 후, 연우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는 썸 탄다는 말이 아직은 없지?”
“그럴걸.”
“그럼 뭐라고 했지? 썸 타는 그런 걸?”
“그러게. 그냥 좋은 느낌으로 만나고 있다고 했던가?”
“서로 호감이 있다,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해.”
지후와 나루의 대화는 끊임이 없었다.
옛 시간에서도 그랬다.
매일 만나는데도 매일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참 신기해, 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다가, 늦게야 숙소로 돌아왔다.
명진과 재경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냈더니 게임하면서 밤을 샐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후가 난처하단 표정으로 나루를 돌아봤다.
“이 둘, 왜 이러지?”
“왜 이러긴.”
나루가 씩 웃었다.
“너한테 날 덮칠 기회를 주려는 거지.”
* * *
재경과 명진은 PC방 앞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 둘, 오늘 할까?”
재경이 중얼거렸다.
“못 하면 안 되지. 바다, 여행, 그리고 둘만의 공간.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데 못 하면 지후가 문제 있는 거지.”
“그건 그래.”
“넌 괜찮냐?”
“뭐가?”
“너, 나루 좋아하잖아.”
“아아, 그거.”
재경이 피식 웃었다.
“됐어, 이젠. 조금씩 정리가 되어 가거든.”
“그래?”
“응. 걔들의 성재경은 고백을 못 했으니 평생 그 마음을 품고 가나 본데, 난 고백했고 제대로 차였잖아. 그래서인지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네.”
“그래도 착잡하긴 하지?”
재경이 명진을 돌아봤다.
“왜 그렇게 보냐?”
“너야말로 내 걱정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왜?”
“나야 사랑에 실패한 것뿐이지만, 넌…….”
“괜찮지 않아.”
뒷말을 잇지 못하는 재경을 대신해, 명진이 대답했다.
“괜찮을 리가 없지.”
명진의 말에 재경의 표정이 굳었다.
“하루, 하루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알기 전에는 참 지루한 인생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니까,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
“…….”
“무서워, 매일. 한 시간, 한 시간이 흐를 때마다 죽음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기분이야. 죽을 때 아플까, 얼마나 아플까, 죽은 후에는 어떤 게 날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소멸인 걸까. 하지만 지후가 죽은 후에 여기로 돌아온 걸로 봐선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과연 뭘까. 매일 그런 생각을 해.”
명진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건 처음이었다.
재경은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아. 그러다가도 때때로 생각해. 나루와 지후의 말이 다 거짓말일 거라고. 두 사람이 짜고 날 놀리는 거라고. 시간을 돌아오고, 운명을 거스르고. 그따위 것이 있을 리 없다고. 하지만…… 결국 믿을 수밖에 없지. 그 둘이 시간을 돌아왔다는 걸.”
“그래.”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 죽기 싫어. 무서워. 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거든. 시간이 많을 줄 알고 미뤄 둔 것들이 정말 많거든. 사랑도 못 해 봤고, 회사도 못 다녀봤고, 하고 싶은 게임도, 읽고 싶은 책도 많아. 사고 싶은 것도 있고, 차도 사고 싶었고……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명진의 눈가가 붉어졌다.
재경은 절절한 그의 토로를 들으며 한숨을 삼켰다.
“죽기 싫다, 진짜. 재경아, 나 정말 죽기 싫어. 무서워.”
명진이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 좋은 말로 명진을 위로하고 싶은데, 머릿속이 텅 비었다.
할 말을 찾을 수 없어 가만히 명진의 정수리만 응시했다.
다시 고개를 든 명진이 말했다.
“이런 얘기, 나루랑 지후한테는 하지 마라. 걔네 둘은 내가 아니어도 신경 쓸 게 많을 테니까.”
“……그래.”
“윤영이 동생이 죽고, 나도 죽으면, 지후도 12년 후에 죽는다는 게 확정되는 거야. 그러면…… 나루는 힘들어하겠지. 지후도 그럴 거고. 정신 똑바로 붙잡게, 네가 잘 좀 보살펴 줘.”
“그래.”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버렸다.
손을 타고 줄줄 흐르는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던 명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더 먹자. 어차피 죽을 거라면 몸에 안 좋은 거나 실컷 먹어야지.”
* * *
옛 시간에서는 함께 샤워를 하고, 함께 잠을 자는 사이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그 당연한 일을, 이 시간에서 할 수 없다는 건 무척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막 씻고 나온 나루에게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그녀의 살 냄새와 샴푸 냄새가 지후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와 상기된 그녀의 볼이 탐스러웠다.
마음껏 만지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충동을 자제하기 힘들 것 같아서 관뒀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루는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셔츠만 입은 채로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루의 날씬하고 하얀 다리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심장이 쿵쿵 내려앉았다.
“맥주 한 캔 마실래?”
나루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었다.
“아니.”
안 그래도 힘든데 술까지 마시면 큰일 난다.
“난 한 잔 마실 건데.”
“난 됐어. 물이나 마시지, 뭐.”
“안주는 뭘 할까? 아까 육포 사온 거 있었던 것 같은데.”
나루가 쇼핑백에서 육포를 찾아 이리저리 휘저었다.
저렇게 놔두면 평생 못 찾을 것 같아서, 지후는 나루의 옆으로 다가갔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기.”
지후가 육포를 찾아냈다.
“역시 내 남친은 대단해.”
지후가 뭔가를 잘해내면 나루는 이렇게 칭찬을 하곤 했다.
칭찬을 하면서 짓는 미소는 언제나 가슴이 간질거릴 만큼 해사했다.
“나야 뭐.”
지후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거실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지후의 옆에 앉은 나루가 다리를 쭉 뻗으며 맥주 캔을 땄다.
“애들, 오늘 진짜로 안 들어오려나?”
“그럴 것 같은데.”
“내일 바다에서 놀아야 하는데, 잠 안 자고 괜찮으려나?”
“20살이잖아. 체력이 넘칠 때지.”
“그건 그래. 내가 이 시간으로 돌아와서 제일 신기했던 게, 밤을 새도 죽을 것 같지 않은 점이었어. 30살 넘어가고 나서는, 밤새면 정말 온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그러게.”
“이 시간에서는 지금부터 체력 관리 좀 해야겠어. 운동도 하고.”
“그래. 같이하자.”
“응.”
나루가 지후를 돌아보며 웃었다.
반달 모양으로 접히는 그녀의 눈매가 사랑스러웠다.
지후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나루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지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지후가 머리를 쓰다듬거나 뺨을 어루만질 때면, 나루는 항상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손길을 더욱더 잘 느끼고 싶다는 듯이.
거의 충동적으로 그녀의 이마에, 눈가에 입을 맞췄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에 겹쳐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도톰하고 부드러운 입술은 항상 달콤했다.
그 감미로운 맛이 지후의 입술을 적셨다.
지후는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들이다가,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 안으로 혀를 넣었다.
그녀의 잇몸과 입 안쪽 살을 훑으며, 손바닥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쓸었다.
“으응…….”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음에,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뚝 끊겼다.
방금보다 간절하고 거칠게 키스하며, 나루의 어깨를 눌러 바닥에 눕혔다.
그녀를 눕힌 채 한참 키스를 하다가 입술을 떼어냈다.
타액에 젖어 부풀어 오른 그녀의 붉은 입술이 선정적이었다.
그녀의 달뜬 눈동자를 응시하며, 지후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랑해.”
“응, 나도.”
지후는 다시 허리를 굽혀 그녀에게 키스를 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손바닥에 닿았다. 허기진 욕망이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날씬한 배를 만지며, 그녀의 옷을 벗기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나루와의 첫 경험은 24살 때였고, 나루는 이 시간에서도 그때까지는 참으라고 했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아무리 갈증이 나더라도.
나루가 ‘왜?’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24살까지 참아야지.”
지후의 말에 나루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뭐야, 이 성실한 남자는. 정말로 그 말을 들을 생각이었어?”
“응.”
“응이라니. 진짜로?”
“응. 네가 그러라며?”
“그래도…….”
나루가 입술을 비쭉거렸다.
“왜? 지금 하고 싶어?”
“아니, 뭐. 꼭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런 거 있잖아. 남자가 남자답게 뽝, 하면 뭔가 뻑, 하고 오는 그런 거.”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
지후가 모른 체하자 나루가 볼을 부풀렸다.
“알면서.”
“모르겠어. 자세히 좀 말해 줘 봐.”
“됐거든.”
나루가 살짝 위로 올라간 셔츠를 내리며 일어나 앉았다.
“두고 보자, 민지후. 분명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야.”
“흐응, 글쎄.”
지후는 싱긋 웃었다.
애달아하는 나루가 귀여웠다.
나루의 말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나루와 그 행위를 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 정식으로 나루와 사귀는 것도 아니고, 옛 시간과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멋진 분위기 속에서 첫 경험을 하고 싶었다.
옛 시간에서 아쉬웠던 것들을, 이 시간에서는 하나하나 고쳐 나가, 그녀에게 새로운 추억을 안겨 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죽는 그날까지.’
지후는 삐친 나루를 보듬어 안으며 생각했다.
‘나는 오롯이 너를 위해 살 거야, 나루야.’
* * *
“했냐?”
라고 묻는 재경에게,
“하긴 뭘 해?”
라고 대답했더니,
“너, 몸에 약간 문제 있는 거 아니냐?”
라는 말이 돌아왔다.
지후는 재경을 무시하고 아침을 차렸다.
재경과 명진은 정말로 밤새 게임을 했는지, 눈가가 벌겠다.
“너네 오늘 바다에서 놀 수나 있겠냐?”
“어, 우린 체력이 좋거든. 32살인 너와는 달리.”
“왜 이래. 나도 육체만큼은 20살이야.”
“32살엔 어때? 정말 체력이 떨어져?”
“뭐, 20살 때랑은 좀 다르지. 수저 좀 놔. 난 나루 깨워 올게.”
지후는 나루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아직도 자는 모양이다.
어젯밤에는 그녀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켜 주다가, 남자 방으로 돌아가서 잔 터였다.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불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자는 나루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나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루가 으응,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나루야, 아침 먹어.”
“흐응, 조금만 더.”
“더 잘래?”
“응.”
“그럼 배고픈 상태로 바다에 가야 하는데.”
“흐응.”
아침에 약한 나루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후는 나루의 옆에 누워 나루의 볼에 계속 입을 맞췄다. 성가시다는 듯 끙끙거리던 나루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으으, 진짜…… 민지후…… 으, 미워.”
“많이 잤어, 너. 재경이랑 명진이도 집에 왔어.”
“아, 그래? 지금 몇 시야?”
“8시 좀 넘었어. 아침 먹고 씻고 나가자.”
“안아 줘.”
나루가 두 팔을 벌렸다.
지후는 웃으며 그녀를 보듬어 안았다.
그녀의 마른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어이구, 우리 애기.” 얼러주었더니 나루가 키득키득 웃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응, 계속 이러고 있을까?”
“그럴까?”
“재경이랑 명진이가 욕할걸.”
“하라고 하지, 뭐.”
그리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둘은 웃었다.
항상 그랬다.
남들이 보면 ‘왜 저런 걸로 웃지?’ 싶은 이야기로도, 둘은 웃을 수 있었다.
그저 서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계속 웃음이 나오는, 그런 사이였다.
그래서 그와 결혼하면, 평생 웃으며 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이 시간에서는.’
나루는 지후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지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