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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41화 (41/93)

41화 있는 힘껏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2017.11.20.

# 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되기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닥터 수스― #

“민지후, 너도지? 너도 시간을 돌아온 거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묻는 명진을, 지후는 물끄러미 응시했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는 생각은 했다.

어쩌면 나루가 시간을 돌아왔다는 걸, 명진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지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은 부정을 해야만 했다.

옛 시간에서 그리 친하지 않았던 명진이, 지금은 나루와 친해졌다.

아직 명진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모든 사실들을 나루에게 이실직고할지도 몰랐다.

나루는 절대로 내가 이 시간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모르는 척하지 마. 너도 시간을 돌아온 거잖아.”

“갑자기 찾아와서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알아듣게 좀 설명해 줄래?”

“아, 그래? 설명이 필요하셔?”

명진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래, 좋아. 그럼 설명하지. 네 분위기가 도통 요새 애들 같지 않다든가 하는, 지레짐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게. 사실만 설명하겠어.”

명진이 도전적인 어조로 말했다.

지후는 입을 꾹 다물고 명진의 입술을 응시했다.

“나루에게 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보통 옛 시간에서의 너에 대한 이야기였지. 나루가 그러더라. 네가 군대 다녀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줄 알았는데, 이 시간으로 돌아와서 고등학교 때부터 피웠다는 걸 알게 됐다고.”

거기에 대해서는 지후도 할 말이 없었다.

나루에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들킨 게 잘못이었다.

“그리고 너, 연나루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지. 허구한 날 나루만 보고 있으니까.”

“그건……”

“아, 변명은 하지 마. 네 변명, 말 안 해도 뻔해. 재경이가 나루를 좋아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본 거네, 어쩐 거네. 그런 소리는 됐어.”

“아니, 그런 게……”

“나, 아직 말 안 끝났다니까.”

“그래, 말해 봐.”

“나루는 이제부터 널 마음껏 사랑하겠다고 했어. 내가 그러라고 했거든. 아마 네게 표현도 했을 거야. 그런데도 넌 나루를 밀어냈지.”

“그건…….”

“재경이가 좋아해서? 친구를 위해? 아니,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심지어 너는 김윤영이랑 데이트까지 했잖아. 걔한테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서.”

“왜 내 마음에 대해 확신을 하는 거지? 난 윤영이한테…….”

“그럼 동아리방에서의 그건 뭐야?”

“뭐?”

“저번에 나랑 동아리방에서 눈 마주친 적 있지?”

지후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적이 있었다.

잠든 나루를 지켜보다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걸 명진에게 들켰다.

“네가 김윤영에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어. 너는 연나루를 사랑하니까.”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명진을 보며, 지후는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 맞아. 나는 나루를 좋아해. 하지만 재경이도 나루를 좋아하지. 나는 여자보다 친구가 먼저야. 내가 나루와 이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럼 하나 더 추가하지.”

그렇게 말하며 명진은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지후는 미간을 좁혔다.

“뭐야, 그게?”

“나 말이야. 너, 나루가 나랑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하잖아. 혹시라도 나루랑 나랑 잘될까 봐서.”

“그건 재경이가…….”

“재경이 좀 그만 끼워 넣어. 지금 이건 너와 나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 생각해 봐. 그래, 네가 진짜로 재경이와 나루를 이어주기 위해서, 네 마음 감추고 뒤로 빠진다고 쳐. 그런데 네가 나루의 인맥까지도 일일이 간섭할 자격은 없잖아. 재경이가 나루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루도 반드시 재경이를 좋아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넌 과할 정도로 나를 견제했어.”

“…….”

“내가 죽기 때문이잖아.”

“…….”

“1년 후, 봄에. 내가 죽는다는 걸 너도 알고 있기 때문이잖아.”

지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서 나루가 곧 죽을 놈이랑 엮였다가 슬퍼할까 봐, 나랑 떨어뜨려 놓으려는 거잖아.”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는 명진에게, 더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미안.”

“뭐가?”

“그냥. 너한테 그런 식으로 군 거.”

“됐어. 네가 날 죽인 것도 아닌데, 뭐.”

명진이 툭 던지듯 대꾸했다.

지후는 힘이 쭉 빠져서 쭈그리고 앉았다.

“하아. 진짜. 너한테 들킬 줄은 몰랐는데.”

명진도 지후의 옆에 앉았다.

“그래, 나도 나한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줄은 몰랐지. 설명해 봐,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넌 언제 돌아온 건데?”

그렇게 묻는 명진에게, 지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죽음, 그리고 편의점의 콜라.

처음부터 시작된 긴 이야기임에도, 명진은 묵묵히 지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산책을 끝내고 돌아와서 나는 고민했지. 나 혼자 이 시간에 돌아왔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루를 재경이와 잘되도록 이어주면 그만이었어. 그러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런데.”

나루도 돌아왔다.

지후는 혼란에 빠졌다.

어째서 나루도 돌아온 걸까? 이건 무엇을 위한 회귀인 걸까?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처음의 계획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지. 그 편이 나루에게도, 재경이에게도 좋으니까. 그런데.”

지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쉽지가 않더라. 나는 분명 제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나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학교에도 잘 안 나가고, 나루가 가까이 오면 냉정하게 대하기도 했지.”

하지만 마음이 너무 컸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불현듯 행동으로 드러나곤 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매일 밤 되뇌지만, 그녀를 챙겨 주는 데에 익숙해진 몸은 멋대로 움직였다.

“나루가 고독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나는 나루를 너무 잘 알거든. 내 자신보다 나루를 더 잘 알거든. 그래서 그 애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표정만 봐도 알 수가 있어. 나루가…… 너무 슬퍼 보여서. 너무 고독해 보여서. 너무 외로워 보여서.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하면서도 자꾸 나루를 챙겨 주게 되더라.”

사랑하는 연인이, 친한 친구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 나루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지후는 그나마 나았다.

내 연인이 나와 같이 시간을 돌아왔다는 것도 알고 있고, 재경도 옆에 있으니까.

하지만 나루는 오롯이 혼자였다.

“나루가 가장 외로운 순간에, 가장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루의 곁에 있어 줄 수가 없다는 게 정말 괴롭더라. 게다가 나루의 기이한 행동 때문에, 원래 나루와 친했던 애들까지도 나루와 거리가 생겼어.”

옛 시간에서 윤영은 나루의 좋은 친구였다.

친자매처럼 지내던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그 원인이 바로 민지후 때문이라는 것이, 지후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는 윤영이를 좋아해. 물론 나루의 절친인 김윤영일 때의 이야기지만.”

옛 시간에서 윤영은 지후에게 관심이 있는 듯한 행동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꾸며 낸 게 아니라고 생각해. 재경이는 그런 쪽으로 눈치가 빠른 녀석인데, 옛 시간에서는 윤영이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게다가 윤영이는 자기 속마음을 잘 감추지도 못하는 성격이고. 윤영이는.”

지후의 좋은 상담자였다.

나루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을 때마다 윤영과 상담했다.

그러면 윤영은 귀찮은 기색 없이 지후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즐거워하며 이벤트를 준비했다.

―나는 나루가 보증을 서 달라고 하면 서 줄 수도 있어.

옛 시간에서 윤영은 나루에 대해 그렇게 말했었다.

왜 그리 나루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윤영은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게 있어.

아마도 윤영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일이겠지만, 윤영은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루 또한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나루를 사랑했어. 나루는 깨닫지 못하지만, 걔는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 마음의 위로가 되어 주지. 그리고 그걸 잊어. 나는 너에게 이만큼 해 줬으니 너도 나한테 이만큼 해 줘야 돼. 그런 게 없어, 나루는.”

나루의 이야기를 하는 지후의 얼굴에는 애정 어린 미소가 묻어 있었다.

지후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미소였다.

“나는 내 마음을 잘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나 봐. 다들 눈치를 채더라. 재경이도, 윤영이도.”

지후의 말에 명진이 중얼거렸다.

“나루는 전혀 눈치를 못 채던데.”

지후가 웃었다.

“그래, 나루는 둔하니까. 옛 시간에서 내가 나루를 좋아한다는 걸, 우리 과 애들이 전부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나루는 내가 고백했을 때, 정말 깜짝 놀라더라. 전혀 몰랐다고. 그게 얼마나 귀엽던지.”

즐거운 듯 말하는 지후를, 명진은 물끄러미 응시했다.

나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지후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나루가 옛 시간의 지후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저렇게나 좋을까.

“나는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2년. 그 기간 동안 나루가 재경이를 사랑하게 만들고, 내가 12년 후 죽을 때에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하며 슬픔을 달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지.”

그런데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겼다.

“나 혼자만 돌아온 거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나루까지 돌아오는 바람에…… 난처하게 됐다, 정말.”

지후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지후가 무언가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엉망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재경이가 크게 화를 내더군. 이러다가 절교 선언을 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김윤영이랑 데이트한 것 때문에?”

“그래. 재경이는 내가 나루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자기 마음을 접으려고 하고 있지. 옛 시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너는 김윤영한테 관심 있는 척을 해서 성재경이 안심하게 해 줄 생각이었고?”

“그런 이유도 있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는 이 시간에서 연애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 대상이 김윤영인 건, 더더욱 견딜 수 없지. 윤영이는 나루의 가장 좋은 친구니까.”

“여기선 아니잖아.”

“아니지. 하지만 나에게 윤영이는 나루의 친구야. 그런 여자와 관계를 가질 수는 없어.”

“그래서?”

“이용하다가 상처를 주고 버릴 생각이었어. 나한테 정이 뚝 떨어지도록.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순수하게 들뜬 윤영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따끔거렸다.

윤영이 얼마나 좋은 여자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아는 게 문제야, 항상. 너무 잘 알아서, 상처를 줄 수가 없더라. 내가 그런 짓을 하면, 윤영이는 결코 회복하지 못할 테니까.”

지후가 명진을 돌아봤다.

“자, 난 이제 다 설명했다. 나루에게는 내가 시간을 돌아왔다는 얘기를 하지 말아 줘.”

“내 생각은 달라.”

명진의 말에 지후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르다니?”

명진은 나루에게 말했던, 자신의 가설을 설명했다.

잠자코 명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지후가 말했다.

“네 말대로 큰 틀을 벗어나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 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질 테니까. 그런데.”

거기까지 말하고 지후는 입을 다물었다.

명진의 죽음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설을 주장한다는 건, 명진에게 가혹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지후의 생각을 읽은 듯, 명진이 말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거라고?”

“난 네가 이렇게까지 눈치 빠른 녀석일 줄은 몰랐다.”

“그렇겠지. 옛 시간에서 나랑 친하지도 않았다며.”

“그래. 이런 녀석인 줄 알았더라면 친하게 지내둘 걸 싶네. 하여간. 그래,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죽음은 공평해.”

지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덧붙였다.

“너는 죽을 거야. 그리고 나도 죽을 거고.”

“안 죽어, 난.”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명진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는 안 죽어.”

“미안.”

지후는 더 말하지 않고 짧게 사과만 했다.

그래서 오히려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명진은 울고 싶어졌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래, 죽음이 공평하다고 치자. 그래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쳐. 그럼 네 말에 모순이 있는 거 알아?”

“모순이라니?”

“죽음이 공평하다는 건, 운명도 공평하다는 거겠지. 너랑 나루는 사랑할 운명이야. 그게 바뀔 거라고 생각해?”

“…….”

“너랑 나루랑 둘 다 과거로 돌아왔어. 그렇다는 건, 둘의 관계는 절대로 변하지 않으리란 뜻이겠지. 안 그래?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연나루가 성재경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없어. 네가 중간에서 무슨 짓을 하든, 연나루는 너만을 사랑할 거야.”

“아니, 달라.”

지후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음성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

지후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르지 않아. 같은 거야.”

“사랑은 변하게 되어 있어. 그래, 지금 당장은 나루가 나를 사랑하고 있겠지. 나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를 다시 보게 됐으니까. 하지만 더 시간이 지나면? 내가 옛 시간에서와는 달리 냉정하고 몹쓸 행동들을 하면, 자기가 몰랐던 내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다시 보게 되겠지. 그런 와중에 다른 여자까지 내 옆에 있으면, 마음이 서서히 식어갈 거야. 그리고.”

“재경이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그래.”

“넌 연나루가 그렇게 우스워?”

“뭐?”

“연나루를 그렇게 가볍게 보는 거냐고. 그래, 설령 사랑이 변한다고 치자. 그래서 연나루가 너한테 정 뚝뚝 떨어지고, 널 사랑하지 않게 된다고 치자. 그런다고 연나루가 네 친구인,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의 친구인 성재경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

“…….”

“차라리 다른 놈을 사랑하게 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성재경은 아냐. 연나루는 절대 네 친구인 성재경을 사랑하게 될 일은 없을 거야.”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야.”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마. 네가 그랬잖아. 네가 뭘 하려고만 하면 일이 더 엉망이 된다고. 그건 결국 너랑 나루도 운명이라는 뜻이겠지.”

“죽음도, 운명도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이 시간으로 돌아온 이유가 뭐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왜 나랑 나루는 시간을 돌아온 건데?”

“그건 나도 모르지! 하나 알겠는 건, 너랑 나루는 서로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렇다면…… 차라리 12년 후에 후회가 없도록,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게 낫지 않겠냐? 어쩌면 한 번 더 행복하라고, 한 번 더 아껴 주라고 돌아온 걸지도 모르잖아.”

“말도 안 돼.”

지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봐야 나루가 한 번 더 고통스러울 뿐이야. 12년 후,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바뀐 게 없다는 절망에 더 괴로워할 거야. 우리가 운명이든 아니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나는 이 시간에서 나루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를 원해. 그래서 난.”

지후가 명진과 눈을 맞췄다.

“앞으로 있는 힘껏 연나루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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