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너도 그렇구나
2017.11.13.
윤영이 도움을 청하듯 지후를 돌아봤다.
얘 좀 봐 봐. 얘가 나한테 뭐라고 해. 얘 좀 혼내 줘.
그런 눈빛이었다.
그래, 어디 도울 테면 도와봐. 나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재경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후가 또다시 끼어들면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후는 재경을 말리는 대신 윤영에게 다가갔다.
“가자, 데려다줄게.”
윤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윤영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미안해, 재경아.”
재경은 대답하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는 윤영과 지후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 * *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 재경이 많이 화난 것 같은데 들어가 봐.”
사실은 데려다줬으면 좋겠지만, 윤영은 그렇게 말했다.
사려 깊은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아냐, 할 말도 있고. 일단 좀 걷자.”
“할 말? 재경이 일 때문이라면 난 괜찮아. 재경이가 기분 나쁠 만했어.”
“아, 재경이. 그래, 내가 재경이한테 미리 말을 해 뒀어야 했는데. 너한테 미안하게 됐다.”
“에이, 왜 네가 미안해? 내가 집 구경하고 싶다고 조른 건데. 난 정말 괜찮아. 그만 가 볼게. 들어가서 재경이 좀 달래 줘.”
“아니, 할 말이 있어.”
윤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후를 올려다봤다.
자신이 이런 표정을 지으면 무척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윤영은 알고 있었다.
“이 얘기를 하려는 거 아니었어?”
“응.”
“무슨 얘긴데? 여기서는 못 하는 말이야?”
“응. 일단 좀 걷자.”
“아, 응.”
끝까지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재경과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굳이 데려다주면서 할 말이 뭘까.
‘사귀자는 말을 하려는 걸까?’
너무 앞서가고 싶지 않지만, 은근슬쩍 고개를 내미는 기대감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만약 사귀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너무 한 번에 수락하면 쉬워 보일 텐데. 그렇다고 괜히 싫은 척하면, 지후 성격에 두 번은 말 안 할 것 같고. 어쩌지?’
걷는 내내 사귀자는 말을 들었을 경우 어떻게 행동할지 시뮬레이션 했다.
대화 한 마디 없었지만 집으로 가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이윽고 윤영의 집이 있는 골목길이 보였다.
골목길로 들어서기 전에,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이용객이 별로 없어서 관리하지 않은, 지저분한 놀이터였다.
“저기서 얘기하자.”
지후가 놀이터를 가리켰다.
둘은 아무도 없는 놀이터로 향했다.
지저분한 벤치와 허름한 그네가 눈에 들어왔다.
“옛날엔 저 그네 자주 탔었는데. 지금은 많이 지저분해졌다.”
긴장을 풀기 위해, 윤영은 그네를 보며 재잘거렸다.
지후는 그런 윤영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지후의 기름한 눈매 안에, 깊은 눈동자가 갇혀 있었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신중한 눈빛은, 또래의 남자애들에게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윤영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이 돼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저기, 할 말이 뭐야?”
굳게 닫힌 지후의 입술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윤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영아.”
“응?”
윤영은 두 손을 앞에서 모아 쥐었다.
지후가 사귀자는 말을 하면, 예상도 못 했다는 표정을 지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어진 지후의 말은, 정말로 윤영이 예상도 못 했던 말이었다.
“나는 널 이용하고 있는 거야.”
순간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윤영은 멍하니 지후의 입술을 응시했다.
추측에서 너무 한참 벗어난 말이라,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목소리가 갈라졌다는 것조차, 윤영은 깨닫지 못했다.
“나는 널 이용하는 거라고.”
지후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인데? 뭘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야?”
“재경이가 나루를 좋아한다는 거,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나는 재경이와 나루가 잘됐으면 좋겠어.”
“그런데?”
“내가 중간에서 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너한테 관심 있는 척한 거야. 그래야 재경이가 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윤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괜찮은 척하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지후가 뱉어 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윤영은 앞으로 모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재경이가 널 왜 신경 쓰는데? 나루가, 널 좋아하기라도 해?”
“아니.”
“그럼 왜?”
“내가.”
“네가 뭐?”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지후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지후는 다정하고 애정이 가득한, 지난 밤 꿈에서 보았던 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나루를 좋아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실 짐작하고 있었다.
믿고 싶지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애써 모르는 척해 왔다.
“네가.”
윤영은 깊이 호흡했다.
“네가 나루를 좋아한다고?”
“응.”
“그럼, 그럼 네가 나루랑 잘되면 되잖아. 왜 굳이 재경이랑 이어 주려는 건데? 친구를 위한 거야? 우정? 그것 때문에 그래?”
화낼 일이 아니었다.
사실 지후는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윤영이고, 집 구경을 시켜 달라고 했던 것도 윤영이었다.
지후는 계속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했다.
윤영이 멋대로 망상하고 부풀리고 기대한 것뿐이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지후가 날 가지고 놀았어.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우정,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지후가 여상히 말했다.
“그럼 뭔데? 왜 날 이용하면서까지 연나루를 양보하려고 하는 건데?”
“그게 나으니까.”
“뭐?”
“그 편이, 나루에게 더 좋으니까.”
“뭔 소리야, 그게? 대체 왜? 네가 성재경보다 부족한 게 뭔데? 큰 빚이라도 있어?”
그 순간 지후가 지은 표정에, 윤영은 입을 다물었다.
‘뭐야, 저 표정은?’
지후는 몹시도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는 이의 가슴마저 아릿하게 만드는 표정.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 깨달았다.
간혹 나루가 윤영을 볼 때 짓는 표정이었다.
왜일까.
왜 둘은 같은 표정을 짓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또 그 꿈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개꿈일 것이 분명한 지난밤의 꿈이 자꾸만 머릿속을 휘저었다.
지후와 나루의 약지에 낀 커플링, 서로를 보는 애정 어린 눈빛, 마주 잡은 손과 입가에 띤 미소.
마치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나루는 재경이랑 사귀어야 행복할 거야. 재경이는 나루를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 그리고…… 정말로 좋은 녀석이니까.”
지후가 말했다.
윤영은 정신을 차리고 지후의 얼굴을 살펴봤다.
방금 전에 지었던 쓸쓸한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간 그를 보니,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던 원인 모를 분노도 많이 가라앉았다.
이제야 이것이 지후에게 화낼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너도 좋은 녀석이잖아.”
윤영의 말에 지후가 후, 하고 웃었다.
“널 이용하는데도?”
“이게 뭐가 이용하는 거야? 다 밝혀 놓고.”
“나를 좋아하지 마, 윤영아.”
“너무 훅 들어온다. 내가 좋아할까 봐 겁나니?”
“그래, 겁나.”
지후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왜 겁나? 나, 이래 봬도 인기 많아. 괜찮은 여자라고.”
“괜찮은 여자라는 거 알아. 인기가 많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내가 널 좋아하는 일은 없을 거야, 절대.”
지후는 ‘절대’라는 말을 강조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윤영은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아, 수학에서 빼고.”
“있어, 때로는.”
“사람 마음은 네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냐.”
“그래, 알아. 하지만 내가 널 좋아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
“야, 너무 그러니까 기분이 좀 나빠진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네가 어디가 어떤 게 아냐. 너는 정말 좋은 여자야. 네 문제가 아냐. 내 문제지.”
“왜? 그 마음이 평생 나루만 향할 것 같아?”
약간은 조롱하듯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진지했다.
“응, 그럴 거야. 나는 평생 나루만 사랑하다가 죽을 거야.”
웃기는 소리였다.
평생 사랑하고 어쩌고.
그런 말들을, 윤영은 믿지 않았다.
사랑처럼 부질없고, 사랑처럼 빨리 식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후의 말은 그리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이 남자는 정말로 평생 연나루만 사랑하다가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영은 문득 떠오른 바보 같은 생각을 황급히 지웠다.
‘그럴 리 없잖아. 사귀는 것도 아닌데 평생 사랑을 하다니. 죽고 못 살아서 결혼한 부부도 이혼을 하는 판에.’
“나는 널 계속 이용할 거야. 앞으로도 너한테 잘할 거고. 네가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지후의 말에 윤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날 계속 이용하겠다고?”
“싫다면 안 할게.”
“아니, 싫다는 건 아니고…….”
지후가 잘해 주겠다는데 싫을 리 없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아직도 지후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이용을 당해서라도, 지후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영원한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다.
지후는 평생 나루만 사랑하겠다고 말했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그건 달리 말하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계속 어울리다 보면, 지후의 마음도 윤영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나루가 널 좋아하면 어쩔 건데? 나루 마음이 중요한 거 아냐?”
“아니야.”
지후의 단호한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걔가 널 좋아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니, 그래도 안 돼. 나루는 재경이를 만나야 돼. 재경이는 분명 나루를 행복하게 해 줄 거야.”
“넌 못 해 주고?”
그 말에 지후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역시나 애달픈 미소였다.
“난 정말 네 결정이 이해가 안 돼. 그래, 우정 때문에 나루를 양보하려고 하는 건 이해하겠어. 그런데 나루가 널 좋아하게 되면, 그때는 받아들여야지. 억지로 재경이랑 사귀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렇겠지.”
“그런데 왜? 나 좀 이해시켜 봐 봐. 내가 머리가 나쁜 건지, 혼자서는 이해를 못 하겠으니까.”
“너도 언젠가 이해하게 될 거야.”
“대체 언제?”
“글쎄. 12년 후쯤?”
* * *
저녁을 먹다 말고, 명진은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명진을, 가족들이 황당하다는 듯 올려다봤다.
명진은 숟가락을 손에 쥔 채로 굳어 있었다.
막 퍼 올린 쌀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조차, 명진은 깨닫지 못했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뒤통수를 강타하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난 진짜 멍청이야!’
“야, 윤명진. 뭐하는 거야? 밥 먹다 말고 개그하냐?”
둘째 누나의 책망에, 명진은 정신을 차렸다.
“나, 잠깐 나갔다가 올게.”
“뭐? 이렇게 갑자기? 어디?”
“다녀올게.”
명진은 숟가락을 내려놓을 생각도 못 하고 집을 뛰어나갔다.
오랫동안 집 앞에 세워 뒀던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제야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옆으로 던져 버렸다.
명진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 *
지후가 들어오자마자 재경은 달려들 듯 지후에게 다가갔다.
“야, 민지후.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할 얘기 없어.”
“아니, 있어야 할 거야.”
“없다고.”
지후가 재경을 밀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재경이 지후의 앞을 단단히 막아섰다.
“민지후, 설명해. 너,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뭘 설명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너한테 말도 없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화가 난 거라면,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지. 이런 일 없을 거야.”
“지금 그것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잖아.”
“그럼 뭐 때문인데?”
“뭐 때문이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어, 모르겠다.”
지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후는 재경과 눈을 똑바로 맞췄다.
“내가 윤영이랑 어울리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거지? 윤영이가 네 원수라도 돼?”
“원수는 아니야. 하지만 넌…… 너는 나루를 좋아하잖아.”
“하.”
지후가 어이없다는 듯 짧게 숨을 뱉어 냈다.
“저번부터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왜 네 생각을 밀어붙이는 거야? 내가 아니라는데.”
“맞잖아. 내가 널 몰라?”
“지금 보니 모르는 것 같네.”
“아니, 넌 연나루를 좋아해. 그런데 내가 좋다고 하니까 포기하려고 하는 거잖아.”
지후가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난 정말 모르겠다. 말했다시피 네가 연나루를 좋아한다고 했고, 네가 누굴 좋아한다고 말한 게 처음이었고, 그래서 연나루에게 잘해줘야겠다 싶었어. 가끔 내가 연나루를 쳐다봤다면, 그건 너 때문이야.”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연나루를 좋아하니까…….”
“아니. 신기해서. 수많은 여자들에게 고백을 받아도 무심했던 네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여자잖아. 내 친구가 대체 연나루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게 된 건지 궁금해서. 보면 알 수 있을까 싶어서 본 거야.”
언제나처럼 감정을 싣지 않고 느릿하게 말하는 지후를, 재경은 가만히 응시했다.
지후를 조금만 덜 알았더라면, 지금 이 이야기를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지후는 상대를 안심시키고 신뢰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으니까.
그럴듯한 지후의 말을 믿고, 마음 편하게 나루를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편이 재경도 좋았다.
그러나 재경은 지후를 너무 잘 알았다.
재경의 눈썹 끝이 내려갔다.
“지후야, 너 그거 아냐?”
재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넌 거짓말을 할 때면 말이 많아져.”
“거짓말이라니. 그런 거…….”
“왜 그렇게 절박해? 그래, 민지후. 나, 나루 좋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어. 하지만 괜찮아. 누구나 하는 거잖아, 짝사랑이라는 거. 누구나 사랑을 하고 아파하고 그러다가 괜찮아지고,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되고. 그런 거잖아.”
“재경아.”
“내가 하는 사랑도, 많고 많은 짝사랑 중 하나일 뿐이야. 조금도 특별할 거 없어. 그런데 왜, 넌 그렇게 절박해? 왜 너답지 않은 행동까지 하면서, 나루를 양보하려는 거야?”
지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고집스럽게 닫힌 입술이 결코 열리지 않으리라는 걸, 재경이 납득할 만한 답을 주지 않으리라는 걸, 재경은 알 수 있었다.
모르기에는, 지후를 너무 잘 아니까.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린 것은.
딩동―
딩동―
딩동―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렸다.
지후가 마침 잘됐다는 듯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었다.
명진이었다.
명진은 인사도 건네지 않고 지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민지후, 나랑 얘기 좀 하자.”
강한 힘에, 지후가 끌려 나갔다.
탁―
문이 닫혔다.
재경은 황당한 표정으로 닫힌 문을 응시했다.
“지후랑 얘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 참 많네.”
* * *
“손 놔도 따라갈게.”
지후가 말했지만 명진은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빌라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에 도착할 때까지, 명진은 앞만 보고 걸었다.
이윽고 공터에 멈췄을 때, 명진은 휙 돌아서서 지후를 응시했다.
그리고 지후가 무어라 말하기 전, 명진이 먼저 말했다.
“민지후, 너도지? 너도 시간을 돌아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