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미묘한 변화
2017.08.14.
하지만 막을 수도 없었다.
“나루야, 나는.”
재경이 다시 한 번 반복했다.
입 안에 맴도는 말을 끄집어내기 힘들다는 듯이.
나루는 재경의 입을 막고 싶었다.
안 돼, 재경아. 안 돼. 너랑 나는 친구야. 난 널 잃고 싶지 않아. 난 널 그렇게 생각할 수 없어. 나는 너와 12년간 가장 친한 친구로 살아왔고, 나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연인이었어. 그러니까 안 돼. 안 돼, 절대로.
“나는.”
그러나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움직이는 입술을 막을 만큼, 나루는 냉혹하지 못했다.
“코코아 안 마실 거야.”
재경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은, 나루의 예상에서 벗어났다.
“그냥 네가 기분 안 좋을까 봐 잠깐 들른 거였어. 그만 가 봐야 돼.”
재경이 씹듯이 말했다.
“아, 그래.”
오만 가지 생각에 술렁이고 있던 나루는, 멍하니 재경을 올려다봤다.
“그만 가 볼게.”
“어.”
“아까 지후는…… 정말로 귀찮아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 거야.”
“아.”
지후와의 일에 대해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재경이 그 일을 되새겨 주었는데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나루의 온 신경은 재경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냥 나 때문에. 아무튼 가 볼게. 내일 봐.”
재경이 휙 돌아섰다.
나가는 재경의 뒷모습을, 나루는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고백을 할 뻔했다.
여자관계가 복잡할 것 같다는 말에 해명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입안에 맴도는 말은 고백이었다.
널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너야.
많은 여자들이 날 좋아해 줬지만, 내 눈이 향하는 곳은 너야.
입술에 묻은 말을 끝내지 못한 이유는, 나루의 눈빛 때문이었다.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어째서인지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혼란스러운 눈동자가, ‘그만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을 눈치챘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눈치채서 그런 표정을 지은 건가? 그럼, 난 거절당한 건가?’
가슴이 시큰거렸다.
고백을 해 보지도 못하고 거절을 당하다니.
‘아니야. 나루가 직접 말한 건 아니잖아. 나 혼자 오해하는 걸지도 몰라. 지금 난 자신감이 바닥인 상태니까.’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되고, 사랑을 하면 약해지고, 사랑을 하면 초라해진다.
그래서다.
나루는 그저 손목이 잡혀 놀란 것뿐인데, 내 쪽에서 제멋대로 그녀의 감정을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원래 인간은 부정적으로 해석해서, 실제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지후가 보였다.
지후는 거실 한복판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문제도 있었지.’
아까 나루와 나란히 걸어오는 지후를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손에 든 봉지를 봤을 때, 둘이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것이 명백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같은 과 친구와 함께 장을 본다는 게, 딱히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 연결되는 걸 귀찮아하는 지후의 성격을, 재경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후야.”
지후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
지후가 천장에 시선을 둔 채로 대답했다.
재경은 지후의 잘생긴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반듯한 이마와 짙은 눈썹, 그 아래를 가로지르는 길고 예쁜 눈매.
“너, 나루를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도 생각 안 해.”
지후가 재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너, 원래 잘 모르는 사람이랑 얘기하고 시간 보내는 거 싫어하잖아.”
아, 초라하다.
재경은 이런 걸 묻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했다.
“어, 싫어해.”
지후가 다시 천장을 응시했다.
“그런데 왜 나루랑은…….”
“네가 좋아하는 여자잖아.”
지후가 귀찮은 기색 없이 담백하게 말했다.
“마트 앞에서 강아지랑 놀아주는데, 내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가 걸어오더라. 장 보러 왔다기에 같이 장을 봤고, 장 보는 김에 이것저것 만들어서 너랑 같이 먹으면 좋겠다 싶었어.”
‘아, 그런 거였나?’
그렇다면 있을 법한 일이다.
지후는 재경을 위해서라면 귀찮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 줄 친구니까.
“뭐, 네가 거기서 그렇게 질투를 할 줄은 몰랐지.”
지후가 재경을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재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질투라니.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내가 널 모르냐?”
“몰라, 넌.”
“너 자신보다 내가 널 더 잘 알 거다.”
“하아. 나 진짜 왜 이러지.”
재경이 두 손으로 머리를 거머쥐었다.
“나 요새 진짜 유치하고 멍청해지는 것 같아.”
“요새라고 생각한다는 게 충격인걸.”
“야, 장난치는 거 아냐.”
“나도 장난치는 거 아냐.”
“지후야.”
“응.”
“나, 애호박볶음 먹고 싶어.”
“…….”
“해 줘.”
지후는 재경을 빤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나루네 집에 가서 같이 밥 먹고 싶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해. 그렇게 돌려 말해도 다 티 나니까.”
* * *
재경이 닫고 나간 현관문을 노려봤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나루는 눈을 감았다.
‘재경이가 날 좋아하고 있어. 왜지?’
재경이 이쪽을 좋아할 만한 사건은 전혀 없었다.
재경에게 딱히 상냥하게 대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고, 과할 정도로 밀어내기도 했었다.
재경이 고백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동자에서 본 것이 착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재경은 연나루를 좋아한다.
‘재경이, 취향 한 번 독특하네. 이런 취향이었나? 아, 그런 건가? 나를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이런 거?’
이래서야 곤란하다.
재경은 지후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니, 이제 지후랑은 상관없지. 여기의 지후는 나랑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나는 여기의 연나루가 아냐.’
나는 여전히 옛 시간의 연나루다.
옛 시간의 연나루는, 결코 민지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보내는 애정을 받아 줄 수 없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재경의 마음을 멈추게 해야만 했다.
재경은 소중한 친구고(물론 옛 시간에서일 뿐이지만), 내 소중한 친구가 실연으로 상처를 받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아, 미치겠네. 지후 하나로도 벅찬데, 이젠 재경이까지 신경을 써야 하잖아.’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언제부터 날 좋아한 걸까? 설마…… 옛날에도 날 좋아했던 건 아니겠지?’
식탁에 팔을 베고 엎드려, 과거를 되짚었다.
재경과 처음 만났을 때, 친해졌을 때, 지후가 군대에 가고 나서 둘이 다니게 되었을 때,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종종 만났을 때, 지후와 셋이 어울려 다닐 때.
지후만을 신경 썼던 그 추억들 속에서 재경의 모습을 더듬었다.
재경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떤 말을 건넸는지.
‘아냐, 그럴 리 없어. 옛 시간에서도 재경이가 날 좋아했을 리는 없어. 그래, 그랬을 리 없어.’
애써 부정하고 있을 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수선스러운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루는,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문 앞에 그가 서 있었다.
그의 앞에 재경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루의 눈에는 지후가 먼저 들어왔다.
무심한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민지후.
재경 때문에 고민을 하는 순간에도, 가장 먼저 시야에 각인되는 것은 지후였다.
“문을 열기 전에는 누군지 확인 좀 해.”
재경이 장난스럽게 꾸짖듯 말했을 때에야, 나루는 둘 사이에 재경이 서 있음을 자각했다.
“어? 아, 어. 그러게.”
“뭐 하고 있었어?”
“뭐 하고 있긴. 그냥 앉아 있었지. 그런데 왜?”
“그냥 앉아 있을 것 같아서 요리해 주려고 왔지. 물론 요리는 이 녀석이.”
재경이 지후의 팔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 그래. 들어와.”
옆으로 비켜서자 재경과 지후가 안으로 들어왔다.
지후는 마트 앞에서 나루를 만나기 전에 사 뒀던 식료품까지 들고 왔다.
“고기, 냉장고에 넣어 두지도 않았네. 고기는 밖에 오래 두면 상한다.”
재경이 잔소리를 했다.
아까의 묘한 분위기가 거짓인 것만 같았다.
“난 원래 숙성시켜서 먹는 걸 좋아해.”
나루가 고집스럽게 말했더니, 지후가 후, 하고 바람이 불듯 웃었다.
“숙성도 숙성 나름이지.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런 얘기?”
“어떤 사람이 치즈가 우유 썩힌 거라는 얘기를 듣고, 우유를 썩혀서 먹었다가 식중독으로 죽을 뻔했다는 얘기.”
단조로운 어조로 말하는 지후를 빤히 올려다봤다.
“왜?”
“난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거든?”
“아, 그래? 숙성 타령을 하기에.”
“타령이라니. 딱 한 번 말했다.”
지후가 또 후, 하고 웃었다.
다행이다.
셋이 같이 있는데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고,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늘 지금만 같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후가 그렇게 요리를 잘해?”
사실은 알고 있다. 요리를 무척 잘 한다는걸.
처음 지후의 요리를 먹어 본 건, 여름 방학 때 셋이서 바다에 놀러갔을 때였다.
을왕리의 허름하고 좁은 민박집에서, 지후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냈다. 마법 같은 그 과정을, 연신 놀라며 지켜봤던 기억이 났다.
“응, 엄청 잘해. 어릴 때 얘네 집 놀러 가면 얘가 꼭 밥을 차려 줬거든. 그거 먹다가 얘랑 친해진 거야.”
재경이 우쭐해하며 말했다.
요리는 지후가 잘하는데 왜 재경이 더 우쭐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먹을 걸로 조련했지. 맛있는 걸 주면 말을 잘 들으니까.”
지후가 말했다.
“야, 조련이라니. 내가 개냐?”
“비슷하지. 닮았잖아.”
지후가 재경의 턱을 잡아 나루 쪽을 보게 만들며 말했다.
“그 개 있지? 그거. 털 길고 우아한 개.”
“아, 그…… 아프칸 하운드!”
나루의 말에 지후가 씩 웃었다. 근사한 미소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을 만큼.
“그래, 그거.”
“야, 야. 난 개가 아니라고.”
졸지에 개 취급을 당한, 한 달 후부터 ‘Y대 어린 왕자’라고 불리게 될 재경이 투덜거리며 지후의 손을 벗어났다.
“개 맞아. 맛있는 걸 주면 꼬리를 흔들잖아.”
“그런 적 없다고.”
두 남자는 티격태격하며 봉지에서 식료품을 꺼냈다.
지후가 나루에게 물었다.
“냉장고 좀 열어 봐도 돼?”
“응.”
나루의 냉장고 안에는 먹을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
“밑반찬들 좀 해 줄까?”
텅 빈 냉장고를 확인한 지후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가슴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늘 나루의 냉장고 사정을 신경 써 주었던 옛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응, 조금만.”
“그래.”
“가끔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 먹고 그래. 어차피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니까.”
재경이 말했다.
“응, 신경 써 줘서 고마워.”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자고 결심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옛 시간보다 지금이 더 빠르게 친해지는 것 같다. 이 집에 두 남자가 들어오게 된 것도 전보다 빠르고, 지후의 요리 솜씨를 보게 되는 것도 전보다 빠르다.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날을 바짝 세우고 두 남자를 내보내 봐야, 내일이면 또 비슷한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저 둘과는 엮이게 될 것이다.
‘그럼 난 어떻게 이 운명을 벗어나야 하는 거지?’
나루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남자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고민했다.
요리는 지후가 했지만 재경도 열심히 재료 손질을 거들었다.
손이 척척 맞는 걸 보니, 이런 식으로 요리를 한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경쾌하기까지 한 둘의 움직임에, 어느덧 나루의 고민도 스르르 옅어졌다.
나루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후는 늘 그래 왔듯(물론 옛 시간에서) 순식간에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냈다.
나루의 재료를 이용한 찹스테이크와 샐러드뿐 아니라, 그들의 재료를 이용한 멸치볶음, 나물무침 등 밑반찬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냉장고에 여러 가지 반찬이 차곡차곡 들어가는 걸, 나루는 여전히 마법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감상했다.
“내가 뭐 도울 건 없어?”
너무 구경만 한 것 같아서 슬금슬금 다가가 물었더니, 재경이 웃으며 식탁을 가리켰다.
“넌 앉아서 구경하고 맛있게 먹을 준비나 해.”
재경의 말에 나루는 인상을 찌푸렸다.
―맛있게 먹을 준비나 해.
이 말은, 옛 시간의 지후가 나루에게 했던 말이다.
지후는 늘 나루를 위해 요리했고, 나루가 도울 거 없냐고 물어보면 이 말을 했다.
―앉아서 맛있게 먹을 준비나 하고 있어.
그런데 이 시간에선, 지후가 아닌 재경이 그 말을 한다.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재경은 감자를 으깨느라 정신이 없어서 나루가 인상 찌푸린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오히려 스테이크를 접시에 옮기던 지후가 나루의 표정을 보고는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맛있게 먹을 준비가 안 되냐?”
“어? 아니, 그냥.”
“부담 갖지 말고 적당히 먹어, 그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최선을 다해서 맛있게 먹을 거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더니, 지후가 피식 웃었다.
“그러든가.”
이 시간이 옛 시간과 다른 건 당연한 일이다.
조금씩 달라진다고 해서 일일이 신경을 쓰면, 이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없게 된다.
나루는 생각을 고쳤다.
‘아주 작은 일부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 좀 더 멀리, 넓게 봐야 돼.’
그러니까 우선은 맛있게 먹자.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니 위장이 요동쳤다.
“와, 맛있겠다!”
나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후가 나루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수저가 모자라네. 집에 가서 가지고 올게.”
“아, 내가.”
재경이 일어나려는 걸, 지후가 어깨를 눌러 도로 앉혔다.
“내가 다녀올게.”
지후가 나갔고, 재경과 나루는 단둘이 남았다.
셋이 있을 때와 달리, 재경은 긴장한 듯 보였다.
그래서 나루는 아까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역시 성재경은 연나루를 좋아한다. 단둘이 있을 때 긴장할 만큼.
“지후는 안 그렇게 생겼는데 의외로 남을 잘 챙겨 주는 것 같아.”
묘한 긴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루가 되는 대로 내뱉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재경이 나루를 빤히 응시하다가 물었다.
“지후, 어떻게 생각해?”
“응?”
“지후 녀석.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잖아. 뭐, 너무 커서 무서워하는 여자애들도 있긴 하지만…… 저래 봬도 인기가 꽤 많았거든. 너도…….”
“난 아냐.”
재경의 말을 끊었다.
20살의 재경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나루는 알고 있었다.
아마도 지후에게 관심이 있는지 떠보고 싶은 것이겠지.
그렇다면 재경의 의도대로 걸려들어 주기로 했다.
“난 지후 같은 타입 싫어해. 키도 너무 크고 표정도 없고. 저렇게 무뚝뚝한 타입은 진짜 별로야.”
싫지 않다.
사랑한다.
키가 너무 큰 것도, 표정이 없는 것도, 무뚝뚝한 것도. 전부 다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내뱉는 모든 말들이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되돌아왔다. 송곳 끝이 사정없이 나루의 심장을 찔렀다.
가슴이 아파서, 그를 부정하는 말에 속이 상해서, 재경의 시선이 나루의 어깨 너머로 향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재경의 시선을 따라 돌아본 곳에, 수저를 든 지후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