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그냥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자신의 말이 앞뒤가 맞는지 안 맞는지는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집요한 신후의 눈빛에 초연은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가지고 놀았다고?”
신후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엄청 잘했거든요. 본인 입으로도 여러 명…… 사귀었던 것처럼 말하고. 그러니까 그냥 한때 놀다가 가버린 거라고…….”
껄끄러운 듯 더듬거리며 말하는 초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명확하진 않지만 의미하는 바가 분명한 문장이었다.
그가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닌 바람둥이였다는 투였다.
“말도 안 돼.”
신후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기억을 잃기 전에도 기억을 찾은 후에도 그에게 여자는 없었다.
혈기왕성한 십 대, 이십 대 초반 시절 그라고 성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부인이 죽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새 여자를 집에 들인 부친과 지은 때문에 여자에 대한 혐오가 생겼다.
게다가 여자와 가깝게 지내다가 혹시 자신의 병을 알게 될까 어떤 여자도 일정 거리 이상 자신의 안에 들이지 않았다.
기억을 찾고 난 후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하나 강하게 끌린 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바람둥이라는 표현은 억울하기 그지없는 표현이었다.
“정말 그걸 믿은 거 아니지?”
“그걸 어떻게 안 믿어요?”
“하! 나 정말 당신 만나기 전에 여자 없었다고.”
설마 기억을 잃은 기간, 초연 말고도 발정 난 놈처럼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녔다는 말인가? 말이 안 된다.
“여자 없었던 사람이 그렇게 잘…….”
신후가 강하게 부정하자 초연 역시 억울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해놓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니 답답할 뿐이었다.
높아지는 신후의 반박에 저도 모르게 같이 목소리를 높이던 초연이 아차 했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잘?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느른하게 그녀를 훑는 눈빛은 금세 끈적해졌다.
순식간에 공기가 더워졌고 신후의 몸 역시 뜨거워졌다.
지은 죄가 있으니 한 며칠 얌전히 지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도발하면 그도 어쩔 수 없다.
“도저히 처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능숙했나 보지?”
가만히 있어도 사람 미치게 하는 여자가 자신의 섹스를 이토록 칭찬하는데 어떤 남자가 가만히 있겠는가.
신후가 몸을 더 초연 쪽으로 돌렸다.
덕분에 단단한 몸이 초연의 오른쪽 반을 완벽히 누른 형세가 됐다.
“신후 씨 이러지 말아요.”
깊게 파인 슬립 사이로 뽀얀 가슴골이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저기서 한마디쯤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 유륜 사이에 꼭꼭 숨어있는 유두가 있을 것이다.
흔적도 없는 유두를 긁어 뽑아내고, 단단하게 만들고픈 충동에 손끝이 근질거렸다.
“왜. 내가 그렇게 섹스를 잘했다며. 또 하고 싶지 않아?”
초연이 그를 밀어내며 솔이의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행여 솔이 듣지나 않을지 걱정이 됐다.
그런 초연의 고개를 신후가 다시 자신 쪽으로 돌렸다.
“아니면 당신한테 그 정도 잘하는 놈은 쌔고 쌨나? 의사 새끼도 잘했어, 나만큼?”
그가 줄 수 있는 돈도 싫다, 몸도 싫다. 도무지 무엇으로 초연의 마음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과거에는 자신의 몸뚱어리가 주는 쾌락 때문에라도 받아줬는데 이젠 이것도 안 통하는 건가 싶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자신과 초연이 느꼈던 쾌락과 감정들이 그녀에게는 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에 신후는 미칠 것 같았다.
신후가 강제로 입을 맞추려 하자 초연이 아연실색을 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재윤 씨랑 그런 사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울 것 같은 눈망울은 제발 믿어달라는 투였다.
자신 역시 그녀의 말을 믿고 싶지만 눈으로 본 게 있고, 들은 게 있다.
“그럼 왜 그 새끼 어깨에 기댄 건데. 왜 사무실에서 마치 청도 내려가서 살림 합칠 것처럼 말했냐고. 믿어달라고만 하지 말고 믿을 수 있게 해달란 말이야.”
증거들이 있는데 그저 초연의 하소연으로 그 말을 믿을 만큼, 그는 순진하지도 착하지도 않았다.
그 누구보다 초연의 말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원하는 건 그 자신이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터트릴 듯, 어깨를 부여잡고 다그치는 신후의 힘에 초연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당, 당신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뭐?”
“내가 당신을 속였으니까……. 당신이 알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서워서…….”
신후에게 모두 말했다가 지은의 말대로 솔이의 치료를 받지 못할까 두려웠고, 거짓말을 한 자신을 신후가 용서하지 않을까 무서웠다.
그런데도 신후가 자신과 재윤을 오해하는 것만은 풀어주고 싶은 마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몰린 상황에 눈물이 날 것 같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새끼한테 위로받았다고?”
초연은 울 것 같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말하면 믿어준다면서요, 믿어줘요. 제발.”
사실을 밝히지도 못하면서 그가 오해하는 건 싫어,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해대는 자신이 스스로도 싫었다.
초연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잔뜩 겁에 질린 초연의 모습에 신후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졌다.
다시는 성질을 내지 않고 잘 지내보자고 다짐을 해봤지만 결국 결말은 이런 식이었다.
기억도 잃어 초연과 솔이도 알아보지 못한 주제에 다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내놓으라고 징징대는 자신의 모습이 같잖다.
옆으로 다시 누워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도대체 뭘 그렇게 무서워한 거지? 왜 우리가 이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무 다르잖아요.”
“뭐가?”
“지금 당신과 저는 너무 달라요.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거예요.”
신후는 다시 반쯤 몸을 일으켜 초연을 바라보았다.
“이초연 정신 차려. 네가 낳은 아이는 다른 새끼 애가 아니라 내 애라고.”
“그래도……. 당신 젊어서 한때 저지른 일이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 어떡해요? 사고가 나고 기억을 잃은 걸 모두 설명할 수도 없잖아요.”
두려움에 떠는 초연을 신후는 말없이 노려보았다.
“내가 당신과 솔이보다 회사를 더 중요하게 여길 거라고 믿는 거군.”
“…….”
자신이 초연에게 이토록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인가. 힘이 쑥 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건 말로 주겠다고 해봤자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그가 증명해 보여야 하는 문제였다.
대신 신후는 다른 걸 물었다.
“한 번도 그 의사 새끼에게 이성적 감정 느낀 적 없다는 말. 정말이야?”
초연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솔이를 걸고 말할 수 있어? 한 번만 딴짓하는 거 걸렸다가는 당신이 절대 솔이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낼 거야.”
“정말이에요. 믿어줘요.”
살짝 겁을 주는 것만으로 초연은 그의 옷자락을 꼭 잡고 맹세했다.
눈꼬리에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애원하는 초연이 너무 예뻤다.
손바닥으로 풍만한 엉덩이를 주무르자 초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오늘은 안 한다면서요…….”
신후는 자신이 신사는 되기 글러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초연과 함께 있으면 그는 정말 발정 난 양아치 새끼와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초연을 당장 제 아래 눕히고 이미 발기한 좆으로 쑤시고 싶었다.
자신에게 바짝 매달려 끙끙대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증명해봐. 당신 마음속에 그 새끼가 없다는 걸.”
“신후 씨…….”
살짝 팔자 모양으로 눈썹을 휜 채 저를 부르는 목소리는 하지 말라는 건지, 부추기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마 7년 전에도 이랬을 것이다.
“그런 얼굴로 내 이름 부르지 마. 얼른 넣어달라고 보채는 걸로 들리니까.”
신후의 손이 슬립을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한쪽 가슴이 슬립 위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뽀얀 가슴 위로 아직 흔적도 없는 유두.
이놈의 유두는 실컷 빨아올리기 전엔 흥분했는지, 안 했는지 도통 본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슴을 움켜쥐고 유륜 근처 젖살을 눌러 납작하게 만들어 엄지와 검지로 비벼댔다.
마치 무언가 빠진 걸 눌러 뺄 때의 동작이었지만 유두가 그런다고 나오지는 않을 터.
“임신하면 가슴이 커진다던데. 유두도 나와?”
“다행히 모유 수유할 때는 나왔어요.”
“근데 지금은?”
“자극이 없으니까……. 읏!”
초연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도 대답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신후가 덥석 드러난 유두를 강하게 빨았기 때문이다.
“아파요.”
“살살 해서는 나오지도 않잖아, 너.”
그저 불편한 심기를 제 가슴에 푸는 거라 참으려는데 그의 말대로 몇 번 쭉쭉 빨자 아픔은 곧 쾌감이 되었다.
그가 한 번씩 볼이 패일 정도로 빨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실로 연결되어 유두를 통해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듯 찌릿찌릿 당겨졌다.
“흐응.”
초연이 느끼는 듯 눈을 감고 신음을 터트렸다.
신후는 바삐 다른 쪽 가슴을 슬립 위로 나오게 한 뒤 입을 옮겼다. 그 바람에 먼저 빨았던 유두가 다시 슬립에 덮였다.
“잡고 있어.”
신후가 초연의 손을 끌어다가 다른 쪽 유두를 기어이 슬립 위로 끌어 올렸다.
“신후 씨 이건……. 옷도 다 늘어날 거예요.”
“짝을 맞춰야 할 것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