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어느새 매끈하던 그의 가슴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의 눈 역시 욕망으로 가득 찼다.
이미 그녀가 말릴 수 있는 선은 넘어선 지 오래였다.
포기와 동시에 눈을 감았다.
아랫배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으읏! 아흐흐, 흑!”
어느 순간 발끝을 세운 초연이 고개를 뒤틀며 절정을 맞았다.
바르작거리며 괴로운 듯 덜덜 떨면서 질구가 사정없이 수축했다.
전체적으로 성기를 잡고 터트릴 것처럼 쥐어짜는 느낌에 신후가 잇새를 단단히 물었다. 여차하면 쌀 뻔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참기가 힘들었다.
신후는 아직 불규칙적으로 튀어대는 초연의 골반을 잡고 격하게 박기 시작했다.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허벅지 근육이 불거져 꿈틀거렸고, 복근이 바짝 성이 났다.
오르가슴이 끝나기도 전 다시 시작된 추삽질에 초연이 다시 오르가슴의 궤도에 올랐다.
“그, 그만, 으으으…….”
귀두의 튀어나온 부분이 질 안쪽을 긁을 때마다 초연의 허리가 제멋대로 튀었다.
그때마다 다시 잡아 쑤셔 박는 통에 귀두가 여기저기 질 안을 난잡하게 찔러댔다.
미친 듯이 조여오는 질 압력을 견뎌내고 성기가 뜨끈하게 마찰열이 오를 때까지 내달리던 신후가 어느 순간 좆에 힘을 풀어버렸다.
참았던 쾌감이 척추를 타고 그의 머리와 발끝까지 강타했다.
“읍!”
초연이 숨도 못 쉰 채 경직된 몸을 비틀었다.
신후가 입만 벌리고 꺽꺽거리며 떨고 있는 초연의 몸 위로 쓰러졌다.
하얀 섬광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뒤에 이어진 건 아스라이 뿌연 장면이었다.
‘아읏!’
지금보다 한참 앳된 초연이 제 밑에서 지금처럼 경련했다.
‘엄청 쌌네, 이초연. 이러면서 맨날 싫대.’
‘헛소리 말고 인제 그만 빼.’
‘볼일 다 봤다는 거지, 지금?’
그리고 아득하게 들리는 그녀의 핀잔과 자신의 웃음소리.
뭐지?
그녀의 과거 모습을 보고 싶어서 헛게 보이는 걸까.
맞닿은 심장이 쿵쿵 터질 것처럼 뛰었다.
신후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초연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눈앞에 있는 여자는 자신의 기억 속 여자는 아니었다.
“인제 그만 빼지 그래요?”
그런데 왜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말을 하는 건가.
“볼일 다 봤다는 건가.”
그의 말에 왜 이미 그의 말을 알고 있냐는 듯 반응하는 건가.
***
늦은 저녁 K 종합병원 원장실.
정 원장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브로커와 마주 앉았다.
“지난번 내가 알려줬던 아이 부모와 연락은 해봤나?”
“연락처를 줬으니 입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입니다.”
“음. 놓치지 말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괜히 먼저 연락했다가 의심만 살까 봐 기다리는 거지 놓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누굽니까. 형님하고 이 장사 30년째입니다.”
정 원장은 대외적으로는 혈우병 D형의 환우들과 특정 응고 혈액 보유자를 연결해주는 비영리 재단을 운영했지만 실은 불법 거래들도 진행해왔다.
본인이 나서는 대신 연락 온 사람들의 정보를 브로커에게 전달해서, 브로커가 나서는 방식으로 일 처리를 했다.
며칠 전 병원까지 찾아온 초연의 연락처를 브로커에게 전달한 것도 그였다.
돈이 있으면 살리는 거고, 없으면 죽는 거지.
정 원장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호두 두 알을 굴렸다.
그때였다.
“아빠……!”
문을 열고 들어오던 지은이 브로커를 보고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으응. 들어와.”
정 원장의 눈짓에 브로커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은은 잔뜩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가 나가길 지켜보았다가 소파에 앉았다.
“그 일 이제 손 떼라니까 아직도 하시는 거예요? 저도 이제 〈MJ 인터내셔널〉의 사모님이고, 우리 지후도 앞으로 〈MJ 인터내셔널〉 주인이 될 건데…….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돈은 이제 아빠도 충분히 버셨잖아요.”
25년 전 그녀가 〈MJ 인터내셔널〉에 들어가기 전까지 〈K 병원〉은 그저 의원급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MJ 인터내셔널〉에 입성하면서 〈K 병원〉 역시 급성장을 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종합병원급으로 컸는데도 아직도 부친이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게 지은은 탐탁지 않았다.
딱히 불법적인 일이라 싫다기보다는 행여 자신과 지후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까 봐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허허, 내가 돈 때문에 그러는 것처럼 보이냐?”
“그럼요?”
“돈도 돈이지만 네가 〈MJ 인터내셔널〉에 어떻게 들어갔냐?”
민신후.
그 역시 정 원장의 고객 중 하나였다.
민 회장이 정 원장을 찾아오기 전까지 〈MJ 인터내셔널〉의 하나뿐인 후계자가 희소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은 의학계에서 꽤 마당발로 통하는 그조차 들어보지 못한 정보였다.
한데 어느 날 민 회장이 직접 그를 찾아왔다.
입이 무거운 특정 응고 보유자를 알아봐 줄 수 있냐고 부탁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는 사람 누군가가 D형 보유자인 줄 알고, ‘인맥 하나 잡았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민 회장의 하나밖에 없는 손주인 걸 알고는 ‘이거다!’ 싶었다.
여태껏 그가 만나왔던 사람 중 가장 많은 돈과 명예를 가진 집안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딸 지은은 특정 응고 혈액 보유자였다.
만약 지은이 저 집안과 연을 만들 수만 있다면 앞으로 병원 경영은 물론 후대에도 튼튼한 뒷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꽤 탄탄한 중견기업 사모님과 연결되어 있던 지은을 당장 민씨 집안에 소개했다.
그저 거기까지만 해도 정 원장으로서는 흡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지은이 민도재를 차지하고 그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아빠는…….”
이제 와 정 원장이 자신의 공치사를 하는 줄 알고 지은이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겼다.
“사람이 다른 사람 목숨 줄 쥐고 흔들 기회가 여러 번 있는 거 아니다. 네가 지금까지 민씨 집에서 그만큼 누리고 산 것도 다 민 이사 목숨 줄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 아니냐.”
“차라리 6년 전 민 이사 사고 났을 때 그냥 죽도록 내버려 뒀어야 했나 봐요.”
“그랬다면 민 회장이 너를 가만두지 않았을 게다. 그나마 네가 바로 득달같이 달려가서 수혈도 해주고, 내가 사람들도 모아 수혈하고 그랬으니 우리를 이 정도나마 봐준 거지.”
“그러면 뭐 해요. 이제 저도 끈 떨어진 연이 될 판인데. 민 회장이 규림이랑 결혼시키려고 아주 안달 났더라고요. 아마 민 이사도 더는 버티지 않을 거예요. 본인한테 손해 되는 장사도 아니니.”
예전에는 신후가 나서 결혼이 급하지 않다고 피하니 그녀가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신후가 결혼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하지만 자신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규림과의 결혼을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민 회장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더 했다가는 지후까지 단단히 미운털이 박힐까 염려가 되었다.
더는 규림을 막을 정당한 이유가 없다.
도재도 죽어 이제 그녀의 가림막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
그나마 자신의 피 하나가 무기였는데…….
규림이 이 집에 들어와서 민 이사의 수혈을 담당한다면 자신의 위상은 확 내려가겠지.
지후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초조해지는 마음에 지은이 아랫입술을 씹었다.
“걱정 말거라. 사람이 살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또 오게 돼 있어.”
호두알을 굴리는 정 원장의 말에 지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
신후와 초연이 산에서 내려온 건 아침 식사가 막 끝났을 때였다.
“다 왔군. 그러면 이따가 다시 얘기합시다.”
대문을 들어서며 신후가 굳은 얼굴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초연이 질끈 눈을 감았다.
“어머! 저기 이 원장님이랑 민 이사님 오시네요!”
사람들의 목소리에 초연이 표정을 갈무리하고 눈을 떴다.
그들을 발견한 전통 염색 수업 참가자들과 이장님, 재윤까지 한달음에 달려오는 중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그와 산을 내려오느라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사람들을 보자 확 풀어졌다.
그와 거리를 떨어뜨리는 초연을 신후가 다시 단단히 붙잡았다.
그에게 잡힌 허리를 애써 무시하며 초연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초연은 자신의 허리에 닿은 신후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재윤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자신과 신후 사이에 있었던 일을 눈치챈 거 같아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재윤이 고개를 들어 초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었다.
“걱정은 무슨. 힘들었을 텐데 앉아서 쉬어.”
잡아주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됐다고 거절하기 전, 이번에서 신후가 재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초연을 마당 평상에 앉혔다.
어쩜 이렇게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지. 초연은 한숨을 쉬었다.
애써 신후의 존재를 무시하려 애쓰며 초연은 사람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솔이를 찾았다.
“근데 솔이는요? 저 많이 찾았죠?”
“잘 자고 아침도 잘 먹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조금 전까지 여서 성훈이랑 책보고 있었는데……. 다른 장난감이라고 가지러 방에 들어 갔나벼. 야, 솔아. 네 엄마 왔다. 나와봐라.”
이장이 안채를 향해 소리쳤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못 들었나……. 솔아! 네 엄마 왔다니까!”
초연은 이장을 저지하며 몸을 일으켰다.
“됐어요, 이장님. 제가 직접 가볼게요.”
눈으로 직접 가서 솔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하룻밤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안 들어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직접 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꼭 안아주고 싶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초연이 휘청하자 사람들이 ‘어어.’ 하는 사이 신후가 단번에 그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나 붙잡으라니까.”
거침없는 신후의 태도에 사람들이 묘한 눈빛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젊은 남녀 두 사람이 같이 밤을 새웠으니 뭔 일이 있지 않냐, 추측하는 눈빛들이었다.
“알아서 갈게요.”
당황한 초연이 그를 밀어냈다.
“이제껏 부축받아놓고, 인제 와서 혼자 가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더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이 원장님?”
이를 악문듯한 신후의 귓속말에 초연은 결국 고집을 꺾었다.
잠깐 한숨을 쉬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저, 계세요? 민 이사님 안녕하세요?”
규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