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일주일 뒤에도 신후는 초연의 집에서 머물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외할머니가 쓰시던 안방에서 초연의 방으로 옮겨왔다는 점이었다.
원체 안방은 외할머니의 작업실이기도 했고, 여자 둘이 작은 방을 쓰고, 그가 큰 방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외할머니는 별다른 말 없이 신후를 보살펴주었다.
뼈를 붙여야 한다고 사골국을 끓여 먹이고, 몸이 축나면 안 된다고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틀어주었다.
그가 더운 기색을 보이면 금방 온도를 조절하고 잘 때는 자리끼까지 챙겨주었다.
초연의 집에 있는 한 달간 신후의 얼굴 살이 뽀얗게 오를 정도였다.
〈MJ 인터내셔널〉의 후계자라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무언가를 뜯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건 없이 아픈 곳을 살펴봐 주고 따뜻한 밥을 먹이는 데 온 신경을 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제 다 나은 것 같은데 안 가?”
해서 초연이 눈치를 주는 것도 대충 못 본 척 넘어갔다.
“뼈가 그렇게 쉽게 붙는 줄 알아?”
“잘 걷던데?”
“간신히 걷는 거지 여행 다시 시작할 정도 아냐. 그러다가 또 사고 나면. 네가 내 인생 책임질 건가?”
있는 집 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병원 갈 돈도 없어 집에 눌러 앉은 건가 싶다.
뻔뻔히 자신이 차리는 밥상을 받는 신후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을 지경이었다.
신후와 초연이 투덕거리는 사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외할머니가 나오며 둘을 말렸다.
“아이고, 아픈 사람 붙잡고 싸우지 말고.”
상을 내어준 할머니가 분주히 거울 앞에서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할머니 어디 가게?”
“으응, 한복 수금 좀 해올라꼬.”
“칠순 한다고 토요일 옷 찾아간 집? 돈 다 안 주고 가져간 거야?”
초연이 부산에 내려올 때부터 안방을 가득 채우던 한복들은 어시장 방앗간집의 칠순 잔치 한복이었다.
남자 여자, 아이들 옷까지 합쳐 스무 벌 가까이 되는 물량이었다.
가게를 정리한 후 외할머니는 집에서 동네 사람들의 바느질거리를 받아 미싱을 돌렸다.
아무리 한평생 바느질을 했더라도 나이가 있는 탓에 한꺼번에 수십 벌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한복은 양장보다 옷도 크고 바느질도 섬세해서 팔도 아프고, 눈에도 무리가 많이 갔다.
그런데도 방앗간집에서 날짜가 급해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다며 졸라 맡긴 걸 초연도 외할머니에게 전해 들어 알았다.
그래놓고도 형제들 시간이 안 돼서 그런다고 잔칫날을 일주일 앞당겼으니 날짜를 꼭 맞춰달라고, 이틀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해 재촉했다.
초연이 그나마 재단도 하고 치마와 바지 만들기 정도는 해서 납기일을 만들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할머니 혼자 납기일도 못 맞출 주문이었다.
그래놓고 값도 다 치르지 않고 찾아갔던 모양이었다.
자신이 다 화가 났다.
“바빠 가꼬 삼촌 시켜서 옷만 가져갔다. 잔치 끝내면 오랬으니 이자 가믄 된다.”
“얼마나 안 줬는데.”
“치아라. 내가 가믄 됀다카이.”
한 번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방앗간집은 이미 전적이 있는 집이었다.
10여 년 전 그 집 막내 여동생이 시집갈 때도 한복을 맞춰놓고, 너무 구닥다리 디자인이니, 오래 묵은 한복 원단 재고를 사용한 거 아니니 따지며 한복값을 깎았던 적이 있다.
아마도 이번에도 바쁘기는커녕 돈을 깎을 요량에 난리를 부린 게 틀림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외할머니가 동네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걸 이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대로 봐줄 수가 없었다.
초연이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내가 갈게. 시장 안에 있는 방앗간집이지?”
“됐다. 니는 집에 있으라니까.”
“할머니가 집에 있어. 지난주 내내 무리하느라 눈이랑 손목도 아프다며. 찜질하고 좀 쉬어.”
“같이 가줄까?”
신후가 그녀를 따라나설 요량으로 일어났다.
초연은 고개를 저었다. 대신 할머니를 부탁한다는 눈짓을 했다.
매일 별것도 아닌 유치한 것들로 싸우지만 어느새 둘은 서로 눈빛만으로 마음을 읽을 만큼 가까워졌다.
“됐어. 할머니 저 갔다 올게요!”
운동화를 구겨 신은 초연은 그대로 주문표를 뺏어 들고 줄행랑을 쳤다.
***
가게는 어시장 안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에 있었다.
방앗간집 딸과는 초, 중, 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와 이 집 집안 사정은 빤히 안다.
이 집 딸은 항상 메이커 옷을 입고, 가장 좋은 핸드폰을 썼다.
방학마다 서울 최고 좋은 대학을 다니던 대학생에게 과외를 받는다고 자랑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도 한복값을 다 주지 않고 가다니. 괘씸했다.
초연은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며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한복 대금 받으러 왔는데요.”
“어서 오세……. 지금 바깥양반이 멀리 배달 가서 없는데 다음에 와.”
초연을 손님인 줄 알고 환하게 웃던 여자 사장의 얼굴이 초연의 인사말에 금세 싸늘해졌다.
그리고는 기다리겠다는 초연을 뒤로하고 제 볼일을 봤다.
초연도 오기로 버텼지만 한 시간 반이 넘자 조금씩 초조해졌다.
“저, 사장님 언제쯤 오실까요?”
“바빠 죽겠는데……. 그냥 다음에 와요.”
“저, 그래도……. 옷 다 받으셨고, 잔치도 끝났는데 수금 부탁드립니다.”
“참 내. 누가 그깟 몇 푼 떼먹는다고.”
“네, 사장님. 돈 안 떼먹으실 거 아니까 기다리고 있는 거죠.”
기분이 상했지만 좋게 좋게 풀어가려고 초연도 최대한 노력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치수도 엉망으로 재고 바느질도 엉망이고. 그날 옷도 작아서 다들 제대로 입지도 못했어.”
하지만 외할머니가 한 달 넘게 고생해 만든 옷을 욕하는 말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러면 옷 찾아가셨을 때 바로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처음으로 맞받아치는 초연의 말에 여사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노인네 손녀 하나 키우느라 아등바등 바느질하는 거 불쌍해서 일부러 다른 한복집 안 가고 맡겼더니. 쯧쯧.”
“노인네라고 한복값도 다른 곳보다 싸게 맞추셨잖아요. 시내에 가시면 이거 두 배 주셔도 못 맞추는 거 아시잖아요.”
“어머머. 젊은 아가씨가 말하는 것 좀 봐. 그러게 애미 애비 없이 커서 그런가 아주 못 배워먹었네!”
초연과 여사장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때였다.
커다란 덩치의 남 사장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한여름 땀에 잔뜩 절은 회색 면티와 카키색 군용 바지를 입은 남자 사장은 보기에도 위협적이었다.
“여보! 아니 내가 한복값 안 준다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 다 있는데 자리 지키고 장사하는 집 장사도 못 하게 하지 뭐예요.”
“그게 아니라……!”
“에이 씨펄. 썅.”
남 사장이 목에 걸린 수건으로 쌀 빻는 기계를 때렸다.
쇠 기계가 내는 굉음에 초연이 질끈 눈을 감았다.
“얼마야?”
초연은 주문서와 지난번 받은 금액을 뺀 차액이 적힌 종이를 남 사장에게 건넸다.
“옷 갖고 와.”
남 사장의 말에 여사장이 안채에서 수북하게 쌓인 한복 박스를 꺼내 나왔다.
잔치가 끝나고 대충 박스에 쑤셔 넣은 것인지 미처 박스에 정리되지 않은 옷들이 박스 밖으로 삐져 나왔다.
“씨발 옷값 모른다고 바가지를 씌워도 유분수지. 무슨 한 번 입는 옷이 그렇게 비싸? 누구는 땅 파서 장사 하는 줄 아나.”
“그러면 다음번에는 대여점에서 빌리세요. 그러면 많이 저렴합니다.”
“염병하네. 됐고, 이거랑 이거 갖고 가.”
남 사장이 박스를 초연 쪽으로 던졌다. 그 위에 오만 원짜리도 몇 장이 흩뿌려졌다.
그녀가 받을 돈의 1/4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는 제 할 일은 했다는 듯, 연장통에서 멍키 스패너를 꺼내 쌀 빻는 기계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주실 금액은…….”
“이 옷 우리 입을 일 없으니까 가져가요.”
“네?”
“갖다 팔던가, 다른 사람 빌려주던가 하면 될 거 아니요.”
“사장님 댁 식구들 몸 싸이즈에 맞춘 옷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대여해요. 저희가 대여점도 아니고.”
“아 씨발 몰라. 한 번만 더 오면 이 옷 가지고 할망구 앞에서 불 질러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누구를 개 호구로 보나. 한 번 입는 옷에 몇백씩 내라고 하고.”
멍키 스패너를 바닥에 던진 남자가 일어나 치마를 북북 찢기 시작했다.
얇은 한복 원단이 커다란 손안에서 갈기갈기 찢겼다.
치마 두 개를 찢고 남자 저고리를 찢으려던 남 사장은 옷이 쉽게 찢어지지 않자 그대로 바닥에 던지고는 안채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만든 옷이 처참히 찢기는 모습은 초연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이것 보라며, 우리 신랑이 화가 나면 이렇게 무섭다는 여사장의 말에 초연은 할 수 없이 한복과 돈을 챙겨올 수밖에 없었다.
돈이야 또 다음에 받으러 가면 된다.
오늘은 가지만 다음에 또 올 거다, 오기를 부리면서도 울컥하는 마음은 참을 수 없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지내면서 자신만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껏 삯바느질하며 할머니가 자신을 키워오는 동안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당했을 거라 생각하니 북받치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흑흑. 초연의 두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방파제에 앉아 한바탕 운 초연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인제 그만 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후.”
마지막으로 숨을 고를 때였따.
“또 누구 대가리를 깨려고 사람 오는 것도 모르고 있어.”
언제 온 건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놓은 신후가 저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혹시 우는 걸 봤나 싶어 두 눈만 깜박였다.
“이거 완전 방구석 여포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한심해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그리 좋은 뜻은 아니란 느낌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밖에서는 쪽도 못 쓰고 집 안 가족들한테만 기세등등한 사람.”
울컥하는 마음에 초연이 팔을 들어올렸지만 신후가 빨랐다. 단숨에 초연의 가는 손목을 잡아 제압했다.
“이렇게 덤비지 왜 여기서 이렇게 울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