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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42화(完) (142/142)

에필로그

다시 돌아온 월요일.

째깍. 째깍.

펜트하우스 1층 거실에 있는 시계가 매우 작은 초침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전 7시 50분. 출근 준비를 시작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간.

깜빡. 깜빡.

그 시간에 눈을 뜬 영원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뭐지……? 아침 열두 시가 아니라 새벽 여덟 시도 되기 전이야?’

‘뭐야, 이 당황스러운 기상 타이밍은?’

쏴아아.

여현이 영원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1층 멀리 있는 욕실까지 내려가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를 작게 들을 수 있기는 했지만, 잠이 깰 정도의 소음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깨어나 버린 건 그냥 몸이 월요일 출근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가끔 월요일마다 이런 괴상한 일이 발생하고는 했다.

영원이 겪는 신종 월요병이었다.

깜빡. 깜빡.

그럴 때마다 영원은 적응하지 못하고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눈을 여러 차례 깜빡였다.

‘왜…….’

‘출근 안 한 지 몇 주가 지나고서도 내 몸이 아직도 출근 준비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거야……?’

혹시 저도 모르는 새에 오늘 알람이 울렸던가, 열심히 기억을 돌이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오늘 알람시계는 짹짹거리는 새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직장인의 삶이란…….’

‘무서운 흔적을 남기는 것…….’

그런 생각에 오한이 일고 나니, 다시 잠이 몰려오지도 않았다.

사실 정작 출근을 해야 하는 날에는 이렇게 가뿐하게 눈이 뜨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스르륵.

영원은 어이없는 기분으로 이불을 더 걷어내고는 고개를 들어 침대 옆 탁자 위 무음 시계를 보았다.

‘7시 54분.’

확실히 8시 이전이 맞았다.

타박. 타박.

그러다가 샤워를 마친 여현이 1층 욕실에서 나와, 잠시 드레스룸에 들렀다가 주방으로 가 이것저것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타박. 타박.

여현은 좀 더 부엌에 머무르다가 계단을 거쳐 2층 침실 가까이 오는 듯했다.

영원은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칵.

노크 없이 여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도 영원이 깨어난 것을 밖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으응. 월요일이라 오늘도 생체시계가 문제인가 봐. 더 자야 하는데.”

여현이 작게 웃더니 더 가까이 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가까이서 내려다보는 다정한 시선이 영원을 조금은 긴장시켰다.

“저 출근하면 그다음에 더 주무세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여현의 예쁜 손이 영원이 베고 있는 베개 근처로 와 흩어진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 손이 영원의 볼과 목, 쇄골에도 닿았다.

“아침으로 달달한 걸 좀 해뒀어요. 애플파이랑, 오믈렛이요.”

영원이 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끌린다고 중얼거린 메뉴들이었다.

‘여현아…… 나 내일…… 오믈렛 먹고 싶어.’

‘오믈렛이요?’

‘으응……. 달달한 파이 같은 것도 같이.’

여현은 잠에 빠져가는 영원의 웅얼거림을 기억해 두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만든 모양이었다.

“괜찮으시면, 출근 전에 같이 아침 드실래요?”

여현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을 것을 제안했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주 오랫동안 검은 마스크에 가려져 있던 잘생긴 얼굴로,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응. 좋아.”

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여현이 영원의 허리 밑으로 손을 넣어 그런 움직임을 도와주었다. 그다음엔 곧장 상체를 일으킨 영원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는 잠시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영원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준비에 약간 더 시간이 걸리니까 그동안 씻고 천천히 내려오라고 작게 속삭였다.

둘은 아무런 이유 없이도 마주 보고 작게 웃었다.

***

영원은 에스퍼 정복을 갖추어 입고 그녀를 위해 라떼를 만드는 여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과거엔 상상도 못 한 상황이라고.

이 관계가 이토록 편안하고, 함께 있을 때 아늑해질 줄 알았을까.

영원은 사건이 이렇게 흘러온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봤다.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궁금하기는 했으니까.

느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누군가를 안고 싶은 충동이 계속해서 차오르는 이유도.

처음엔 그게 너무나 낯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매우 잦게 찾아오는 그 충동이나 감정을 낯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여현아.”

“네.”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답하는 순간이 어째서 이렇게 좋은지도 궁금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도 좋고, 그가 바로 반응하는 것도 좋았다.

어제, 그제와 비교해 보아도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아침인데 오늘이 또 유독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애플파이는 완벽하게 달콤했고, 오믈렛도 취향에 맞게 짭짤하고 폭신하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의 이 아침 식사가 평소와 유독 다른 건 아니었다.

어제의 프렌치토스트도 완벽했고, 그제의 페스토 파스타도 완벽했다. 그 이전의 며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침뿐 아니라 점심이나 저녁도 다 그랬다.

그리고 사실 돌이켜보면 어제도, 그제도, 그 이전의 며칠도 모두 그날의 매 순간들이 유독 너무나 특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모두 특별하면 그건 특별하지 않은 것이니까.

그러나 말이 됐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아니라고 부정할 것인가.

특별함에 서서히 익숙해져 갈 법도 한데, 이상하게 갈수록 역치가 더 낮아지는 것처럼 매 순간이 더욱 벅차게 느껴지기만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

여현은 아까부터 영원의 부름에 몸을 돌린 채로 이어질 그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은 갑자기 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 되었다.

이 순간이 특별한 이유를 묻고 싶은가?

그에게서 어떤 답을 듣고 싶은가?

그렇지는 않았다.

대강의 답은 이미 알았다.

그리고 세상엔 세밀한 논리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랑을 답으로 제시하는 순간 답이 찾아지는 질문들이 그랬다.

사랑하게 되어서, 특별한 것이다.

자신이 품은 의문들 전부는 사랑으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영원은 사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랑이라 이름 붙인 감정이 정말 이런 것인지 확신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사실은 정말 이게 사랑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사랑인 걸 알겠다는 기분이었다.

이 감정에 마땅히 붙일 이름은 그것뿐이다. 그러니 사랑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면 모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여현아.”

영원은 그녀를 보고 있는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는 여현과 눈을 마주했다.

“너를 사랑해온 것 같아.”

분명히 평범한 분위기의 아침이었다. 여현이 출근을 하기 전의 그냥 평범한 아침.

그러나 너무나 특별했고 반짝였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꽤 되었겠지.”

“…….”

“그러니까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어도 영원히 여기에 있겠다고.”

여현은 가만히 영원을 바라보았다. 정적이 길었다.

타박. 타박.

그가 다가왔다.

영원의 앞에서 멈춘 그의 오른쪽 손이 영원의 왼쪽 턱과 볼을 감쌌다.

여현의 검은 눈이 영원의 회갈색 눈을 들여다봤다. 영원은 고개를 조금 든 채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천천히 그가 상체를 숙였다. 영원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 눈을 완전히 감아버렸다.

입술이 닿았다.

이것 역시 최근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접촉이었다.

그러나 특별했고, 늘 몽글거렸다. 아마도, 벗어날 수 없는 감정 때문이겠지.

꽉.

영원은 여현의 옷 끄트머리를 잡았다.

입술은 한참 후에 떨어졌다.

“저도 사랑해요.”

여현이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런데 가이드님.”

“…….”

“영원히 이곳에 있겠다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렇게 당연한 것에 관해서…….”

그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영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약간의 광기가 덧입혀진 눈빛이었다.

“마치 어떤 결심이 필요한 고백처럼 말씀하시진 마세요.”

“……응.”

영원은 빠르게 수긍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아주 당연하게도 영원히 이곳에 있을 것이고, 내내 그의 곁에서 이렇게 평범한 날을 살아갈 터였다.

“저도 당연한 거지만, 영원히 곁에서 지켜드릴게요.”

여현도 약속했다.

평범하고 소소한 것, 혹은 너무나 당연한 우주의 법칙에 관하여 말하듯,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말투로.

째깍. 째깍.

그리고 그는 출근을 해야만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여현아, 이제 가야지. 다녀와.”

영원은 여현이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를 꼭 안아주었다.

“저녁에 봐.”

여현은 품에 안겨 다시 인사말을 중얼거리는 영원을 또 출근 시간이 지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이대로 그녀를 영원히 제 품에만 두고 싶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저 자신이 그녀를 영원히 가둘 감옥이 되고 싶었다. 그를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기로 했다.

남은 삶 전부를 바쳐, 영원히.

-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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