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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41화(完) (141/142)

여현 역시 그가 꿈에 그리던 일상을 살아가게 됐다.

매일은 영원을 위해 아침과 점심을 준비해두는 일로 시작되었고, 가끔은 그가 출근할 무렵 일찍 잠에서 깬 영원에게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기도 했다.

‘조심히 다녀와.’

‘네.’

‘알지?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고, 퇴근할 때쯤 온다고 연락해.’

‘네. 다녀올게요.’

업무 중에는 가이딩 밴드로 영원과 메시지를 두어 번쯤 주고받았다.

[게임 파이널 스테이지 깼다!!!!!!!!!!!!]

[신기록!!!!!!!!!!!]

굳이 알려줄 필요 없는 소소한 내용의 메시지를 받거나 비슷한 내용을 직접 적을 때면 심장 구석이 몽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저도 방금 100명 검거 할당량 다 채웠어요]

그러다가 오후쯤, 저녁 식사를 위해 셰프를 섭외한 날이 아니면 영원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으로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다.

―음. 오늘은…… 냉면?

‘어떤 냉면이요?’

―최근에 자극적인 거 많이 먹었으니까…… 슴슴한 평양냉면, 메밀 함량 높은 게 좋을 것 같아.

퇴근 시간 5분 전이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가요]

그때 영원에게 퇴근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고서 나설 준비를 시작하면, 정각에 차를 타고 역삼 본부의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현은 늘 어디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영원의 곁으로 돌아갔다.

‘응, 왔어?’

영원은 언제나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게 여현을 맞았다.

그다음엔 저녁으로 영원이 오후쯤에 정한 메뉴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낮에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것과 비슷하게, 주로 사소하고 소소한 주제들.

‘취향인 로코 드라마를 찾았는데, 오늘 에피소드 8개나 끝냈어. 4개만 더 보면 시즌1 끝이야.’

‘쌓여 있는 시즌이 많나요?’

‘아니. 아직 시즌2까지밖에 없어. 그래서 빨리 다 떨어질까 봐 걱정이야.’

여현은 그 시간을 정말로 소중하게 느꼈다.

영원이 하루 동안 무엇에 몰입했고, 무엇을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 그 모든 걸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되는 게 좋았다.

대화의 주제도, 그에 관하여 말하는 목소리도, 그때 짓는 표정이나 태도도, 그냥 모든 게 다 좋았다.

완벽한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가이딩을 받았다.

항상.

‘여현아.’

‘네.’

‘이리 와.’

당연한 일과처럼, 매일 저녁 이후 영원은 여현을 품에 안았다.

그도 당연한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가 안겼다.

그리고 늘 완벽하게 치유되었다.

빈틈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충족감에 휩싸였고, 쾌락이나 쾌감에 비유하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여현은 그 안락함 속에서도 가끔 갈증이 차오르며 속이 텅 빈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정말 무언가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가 더 주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기대하는 마음이 무의식 속에 차오르고 있는 것뿐.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그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싹을 틔웠고, 엄청난 속도로 자라났다.

시간이 갈수록, 미칠 것 같은 황홀함은 묘한 먹먹함을 남겼다.

여현은 그 이유를 알았다.

영원을 정말로 안고 싶어서, 더 가까이 가 만지고 싶고, 그렇게 그녀를 더욱 완벽하게 제 것이라 느끼고 싶어서 이런 갈망이 멎지 않는 것이었다.

***

여현은 다정한 표정이나 신사적인 태도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고 해도, 그의 안에 자라나 꽃까지 피운 소유욕이 저문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여현은 반쯤 미친 것 같은 제 정신상태가 시간이 지난다고 알아서 해결되지는 않으리란 것도 알았다.

김여현은 심영원에게 각인되어 있다.

게다가 어이없을 정도로 미친 매칭률이 주는 환상적인 경험에도 늘 취해 있는 기분이었다.

갈망이 잦아들 리가 없다.

자신에게 영원이 이토록 특별한데, 시간이 흐른다고 그녀를 원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같았다.

‘갈수록 더 감정이 비대해질 것 같은 게 문제지.’

여현은 자신이 제 가이드에게 완전히 미쳤다는 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감정이 영원과의 관계를 망칠까 두렵지도 않았다.

왜냐면, 그녀 역시도 평범하지는 않으니까.

언젠가, 지금은 그녀에게 숨기려고 하는 내면의 질척한 구석이 드러난다고 해도 그것을 이유로 영원이 자신을 밀어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지금은 조금 속도 조절을 하며 천천히 갈 때라고 생각했다.

조급하게 가려다가 지금의 완벽한 안정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더 원하는 게 있다고 하여 지금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의 영원도 지금 당장은 변화를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오랜 고통 끝에 이제야 편히 쉬고 있는 그녀를 굳이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기다리기로 했다.

동시에, 여현은 알았다.

참을 수 없는 한계는 분명히 온다고.

그 생각에 깊이 사로잡힐 때면, 여현은 침대에 누운 채 멍한 시선으로 오랫동안 천장을 보았다.

지금 나의 영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

영원과 여현의 하루는 약간씩 변화해갔다.

펜트하우스 밖의 날씨, 식사 메뉴, 입은 옷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둘 사이의 기류가 분명히 묘하게 바뀌었다.

영원도 그런 변화를 모르지 않았다.

어쩐지 갈수록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가 자주 찾아오는 것만 같은 기분.

특히 가이딩을 하려고 할 때 기묘한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더 깊은 스킨십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에게 손을 댈 때 느끼는 긴장감이 갈수록 이상하게 커졌다.

겉으로는 변화를 찾기가 정말 어려운데도 그랬다.

“…….”

가이딩을 할 때, 여현은 주로 영원을 가만히 보고 있기만 했다.

조용하게.

이제는 얼굴이 마스크로 조금도 가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표정이 전부 드러나는데도 그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하지만 짐작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무언가 입 밖으로 내긴 어려운 게 사고 저편에서 아른거렸다.

영원은 그의 바람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처음엔 그것에서 도망치거나 피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망설여지기는 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을 지나자 그를 모른 척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여현아.”

직접적으로 묻기로 했다. 심영원은 원래 이럴 때 참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네.”

두 사람은 후식까지 먹고 간단히 씻고 나온 채였다. 여현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영원은 그와 약간 떨어져 있었다.

영원은 평소처럼 가이딩을 하자고 말하지 않고 그를 보고만 있었다.

여현은 영원이 이어서 할 말을 기다렸다.

“여현아.”

영원은 다시 여현을 불렀다.

“네.”

여현이 다시 대답했다.

“우리, 이대로 괜찮아?”

여현은 영원의 질문의 속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계속, 이렇게 가이딩 마치고 각자 방에 가서 따로 자는 거야? 왜 계속 그래?”

“…….”

“계속 같이 있어도 되지 않아?”

여현은 가만히 영원을 보았다.

“그러니까 정해줘.”

“…….”

“여현아. 너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게 네가 원하는 거라고 말했잖아.”

여현은 영원에게 오후마다 전화를 걸어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묻고 그대로 준비하고는 했다.

“나도 그래.”

“…….”

“네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야.”

“…….”

여현은 오래 입을 열지 않았다. 영원은 가만히 답을 기다렸다.

“가이드님.”

여현이 조금 잠긴 목소리로 영원을 불렀다.

“……응.”

“혹시 제가, 계속 더 많은 걸 바라게 되면……. 조금 더 나쁜 마음을 품게 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음…….”

“…….”

“어떻게 나빠져서, 그 상태로 뭘 어떻게 하려고 하게 될 것 같은데?”

여현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제가 가이드님이 우리 집에서 절대 못 나가게 가두어두려고 하면요?”

여현이 말을 마치자마자 영원이 웃었다.

“그러면, 지금이랑 뭐가 달라지나?”

가두어두지 않아도 이미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여기가 천국인데, 굳이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여현아. 나는 강해. 내 몸도, 정신도 네가 뭘 어떻게 한다고 쉽게 망가지지 않아.”

영원은 여현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 것도 같지만, 그런 건 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타박.

영원이 여현에게 더 다가갔다.

타박.

그의 앞에 서서, 상체를 낮추었다.

“…….”

영원의 입술이 여현의 입술 위로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네가 좋아.”

“…….”

“여현아.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해.”

여현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영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회갈색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 보석 같았다.

그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이후에 영원의 방 문이 열렸다. 영원이 그 안에 먼저 발을 들였고, 뒤이어 금방 여현이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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