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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34화 (134/142)

쿵.

영원의 힘으로 돔이 흔들리면서, 그 안의 땅까지 함께 진동했다.

쿠구궁.

지진의 크기를 판단하는 척도로 따지자면 진도 10에 가까울 거센 진동이 멎지 않고 이어졌다.

쩌적.

“뭐야, 뭐야!”

“나가, 나가! 이 건물 천장…… 천장이 무너질 것 같아!”

쩌저적.

돔이 무너지기 전에 그 안의 땅에 지어진 건물들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악!”

쿵!

각성자들은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건물 밖으로 나와 그레이가 머무는 탑 아래로 달려갔다.

그곳이라고 영원과 여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달리 피신할 장소를 찾아낼 수도 없었다.

“그레이, 그레이!”

각성자들은 탑 아래서 그레이의 이름을 간절히 외쳤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레이, 제발 뭐라도 어떻게 해 줘요!”

“그레이, 우리 살 수 있는 거겠죠? 구해줄 거죠?”

“그레이, 살려줘요!”

그레이를 향한 애원이 이어졌다.

‘살려줘요, 제발!’

그들은 그들의 간절한 외침이 과거에 그들 자신이 무시했던 외침과 닮았다는 것에 섬뜩함을 느꼈다.

동시에 백율을 비롯한 센터 측 각성자들이 예고했던 응징도 떠올랐다.

―부탁입니다. 그레이에게 협조하지 말아 주세요.

―다만, 꼭 가야만 한다면, 절대로…… 너희가 무엇을 외면하고 가는 건지, 무엇을 버리고 가는 건지 잊지 마.

―너희가 한 선택을 언젠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고.

영원이 방송에서 중얼거린 말도 다시 귓가에서 선명하게 울리는 듯했다.

―알지? 선처는 없어.

두려웠다.

애원에 더욱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

“그레이……!”

그러나 탑 상부에서는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쿠궁.

진동만 계속되었다.

“아악! 이거 언제 멈추는 거야?”

“몰라! 어떻게 알아! 그리고 멈추면…… 솔직히 여기서 이게 멈추면 그게 더 안 좋은 걸 수도 있어!”

쿠궁.

돔을 이루는 투명한 벽의 곳곳이 급격하게 얇아지는 게 보였다.

“돔이…… 우리의 완벽한 돔이……!”

울상을 지으며 옆에 선 이의 몸을 부여잡고 흔들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

푹.

그러다 가장 큰 목소리를 내던 한 사람이 죽었다.

위에서 쏘아진 힘에 공격당하며 쓰러진 것이다.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해.

차가운 목소리가 돔 내부에 울려 퍼졌다.

살인자는 탑 위편에 서 있던 그레이였다.

탑 아래가 조용해졌다.

“…….”

그로써 그레이의 이름을 부르던 이들은 알게 되었다. 그들의 선택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그리고 이제 와서 아무리 절규해도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것도.

“…….”

탑 상부의 상황이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그레이는 빌, 이반과 함께 굳은 표정을 하고 얇아지는 돔을 바라볼 뿐이었다.

도무지 영원의 공격을 저지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가만히 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스스로가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다.

쿠궁.

탑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아직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금방 전체 구조가 와르르 무너진다 해도 놀랍지는 않을 듯했다.

꽉.

그레이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공격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무력화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공격을 외부로 쏘아대봤자, K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다 막아낼 거야.’

퇴로가 없는 기분이었다.

영원이 다시 살아 돌아올 거라, 이런 짓거리를 해낼 수 있을 거라 예상 못 했다.

돔이 무너지고 시작될 싸움에서도 우위는 저쪽에 있을 것 같았다.

“…….”

물론, 그레이는 쉽게 항복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대응책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련해 둔 대비책들이 다 깔끔하지 않아 문제긴 하지만 써먹을 수는 있었다.

‘다 같이 붙잡고 불구덩이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그러기보다는 타협안을 찾자고 협박하는 거지.’

‘내가 세계 전부를 지배하게 될 수는 없겠지만, 그게 그냥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아.’

‘돔 내부의 안전이라도 보장받기로 하고, 돔을 새로 만들면 돼.’

그레이와 빌을 양쪽에 둔 채 중앙에 서 있던 이반은 생각에 잠긴 그레이의 표정을 힐끗 보았다. 그레이의 오른편 멀리 있는 빌도 역시 패닉에 빠진 표정이었다.

이반은 소리 없이 그레이보다 빌에게 가까운 곳으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말도 안 돼.”

이반이 가까이 오자 빌 슈허겔랑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 완벽한 돔을 대체 어떻게……?”

이반은 빌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며 묻는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빌이나 그레이가 예상 못 했던, 그러나 자신만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결말을 속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거의 다 왔어.’

정말 끝이 오고 있었다.

“일단 K와 포에버를 협박해서 시간을 끌 거야.”

저편의 그레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반과 빌을 향한 알림이었다.

“스카이부터 시작해서 세뇌된 인간들을 순식간에 죽일 거고…… 그 폭발에 휩쓸린 인간들 모두, 그래, 적어도 70억 중 절반은 다 불구로 살아가게 될 거라고 할 거야.”

그레이는 흥분 때문인지 말을 매끄럽게 하지 못했다.

“쟤네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부르짖는 인간들의 삶을 구원하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냐?”

그레이는 말을 멈추고 잠시 웃었다.

“그럼 그 녀석들이 다 포에버를 원망하겠지?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거나 그레이의 지배 속에 사는 게 나았겠다고?”

그레이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핵발전소 또한 모두 폭발에 휩싸일 거라고도 경고할 거야. 그러면 이제 유전자 변형으로, 끔찍한 장애를 안은 아이들만 태어날 거라고도 하는 거지. K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K는 어린애들의 고통에 약하잖아?”

그레이는 광기에 찬 표정이었다.

“하하.”

그는 소리 내어 크게 웃기까지 했다. 그를 지켜보는 이반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그레이. 그렇게 할게. 나도 최선을 다해서 세뇌된 이들을 폭탄처럼 사용하겠어.”

빌은 그레이처럼 광기에 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어서 고개를 위아래로 거세게 끄덕였다.

“…….”

빌 슈허겔랑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반이 보기엔 그도 그레이의 세뇌에 빠지게 된 듯했다.

‘그렇다면 그레이의 이 계획은 더 위험해.’

이반은 영원과 여현이 다가오면 그가 먼저 해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영원과 여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도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빌 슈허겔랑은 자신이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나을 듯했다.

“게다가, 내 연금술에 K와 포에버를 다 끌어들일 수도 있어. 그냥 다 함께 고통에 빠지는 거지. 혼자 죽는 것보다야 그게 좋아.”

그레이는 연이어 다른 계획도 늘어놓았다.

“포에버는 방금 벗어난 고통으로 다시 들어가기는 싫을 거야. 결국, 어느 정도는 내 제안을 받아들여 타협하지 않겠어?”

그레이는 그의 계획이 현실이 되리라 믿게 된 듯했다. 그는 방금까지 자신이 말한 것이 정말 현실성 있는 계획인 양 기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좋아.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레이는 미친 것처럼만 보였다.

타박.

이반은 조금 더 그레이에게서 멀어져 빌의 가까이 갔다.

***

쿠구궁.

영원은 돔 밖 공중에서 돔을 없애는 것 자체보다 그 이후에 올 게 분명한 그레이의 반격을 주의했다.

스카이에 대한 세뇌가 풀렸다고 해도, 그레이가 다른 방식으로 아직 신종교에 세뇌된 자들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환상 속에서 보았던 메모 속 연성진이 그려질 수 있다는 것에도 주의했다.

그레이가 그 연성진을 그리려고 하면 잘 막아내야만 했다.

‘그래도 결국에는 다 잘 막을 수 있다는 걸 알아.’

그레이는 몰랐지만, 영원은 그레이에게 남아 있는 최후의 일격 몇 가지를 다 알았다.

‘무엇도 그 뜻대로 이루어지게 둘 생각 없어.’

영원은 돔에서 시선을 떼고 여현을 잠깐 바라보았다.

돔은 금방 무너질 터였다.

그 후에 혹시 그레이가 예상치 못한 공격을 하더라도, 여현이 함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안심이 됐다.

“여현아.”

“네.”

“딱히 그럴 일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이 오면, 구해 줘.”

영원은 그녀답지 않은 부탁을 했다.

“네.”

확신에 찬 답이 돌아왔다. 그에 영원은 더욱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다음엔 다시 한번 세계수가 그녀에게 약속한 보상을 확인했다.

[필드의 관리자, 세계수가 SSS급 스테이지5의 보상을 안내합니다]

[실패 시▷ 세계멸망, 무한회귀 루트]

[제한시간 내 미시도 시▷ 실패]

[성공 시▷ 이곳 차원에 영구히 머무름]

영원히 이곳에 있을 수 있다.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순간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

묘한 느낌이었다.

결국에는 평화와 안정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이렇게 강했던 순간이 있었나.

‘금방 끝이야.’

영원은 주먹을 꽉 쥔 채로, 상념을 다 날리고 돔을 무너뜨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쩌저적.

결국, 돔이 갈라졌다.

쿵.

콰과과광!

주요 구조가 순식간에 모두 무너져내렸다.

영원과 여현은 그레이의 탑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

절대 균열이 없어야 할 완벽한 것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하.”

그레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웃음이 났다.

‘왜, 왜 포에버는 무가치한 사람들을 구하려는 거지?’

그레이로서는 영원이 하는 공격의 목적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특별한 그녀가 특별하지 않은 인간들을 지키려는 동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영원의 동기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그레이는 대신, 스카이가 살아 있다면 그녀부터 무기로 사용하여 죽이려고 했다.

“…… 어?”

그러나 무언가가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동시에 그레이는 두 사람의 접근을 느꼈다.

쾅!

그레이의 힘과 여현의 힘이 크게 충돌했다.

쿠구궁!

그 순간에 탑도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레이는 붕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뒤편의 공중으로 물러났다. 빌과 이반도 마찬가지였다.

콰과과광!

“아악!”

탑의 붕괴를 지표면에서 겪게 된 이들의 고통에는 누구도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레이. 심장은 괜찮아?”

그레이의 고막엔 수많은 이들의 비명보다, 하나의 질문이 더 선명하게 꽂혔다.

포에버였다.

“…….”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음성이 그의 기분을 뒤흔들었다.

쾅!

그레이는 다시 가해진 여현의 공격에 크게 물러났다. 그리고는 여현의 곁에 있는 영원을 보았다.

영원과 그레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먼 거리였지만 서로 주시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챘다.

“너.”

“…….”

“아직, 심장을 치료할 방법은 못 찾은 것 같네.”

영원이 가볍게 던진 말이 그레이의 기분을 더욱 진창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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