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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33화 (133/142)

하늘은 최근 자주 오한을 느꼈다. 이유 없이 긴장이 등을 타고 흐르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기도 했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장면들을 꿈에서 마주하고는, 가위에 눌린 듯 헉헉대며 꿈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으으. 으…….’

악몽에서 깨어나 입을 막고 두려움에 오열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아, 그만. 그만……! 제발…….’

그러나 우울함을 자주 느끼고, 어쩐지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해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한 명도 없었다. 짐을 덜어주려는 어른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친구도 없었다.

그레이나 조지나, 이반에게 요즘 이상하게 불안하고 자꾸 악몽을 꾼다는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약하고 쓸모없이 보이기만 할 터였다.

하늘은 자신의 불안과 그 원인에 대한 고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계속 살기로 정했다.

불안의 원인은 그냥 알 수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 화연, 요련과 마주한 순간에 그 이유를 약간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전부 화연이 던지고 떠나간 말 때문이었다.

‘세상이 너에게 좀 더 친절하고 아늑한 곳이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제게 했던 말들이 무언가를 가슴 위에 남기고 간 것이었다.

상처를 극복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

다시 화연을 보자, 그리고 서로를 다정하게 챙기는 듯한 그녀의 친구 요련까지 마주하자, 하늘의 가슴속으로 복받치는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한참 전부터 무언가가 잘못되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왜.”

하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와서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야 해?”

물음을 완성하고는 화연에게서 시선을 떼고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던 요련과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원래 어릴 때부터 이기적이고 재수 없는 애였어.”

하늘은 맥락 없이 자조적인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자신도 제가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째서 이들에게는 과거를 잊고 나아가는 것과 친구를 만드는 일이 이토록 쉬운 일이고, 제게는 여전히 불가능한 일인가.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다. 동시에, 자꾸만 떠오르는 물음을 머릿속에서 지워낼 수도 없었다.

‘어떻게 이들은 과거를 극복해낸 거지?’

‘어떻게 기억을 지우지 않고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어떻게 친구를 찾아낼 수 있었던 거지?’

‘어떻게 서로를 질투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해가는 거지?’

하늘은 혼란 속에서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쉽게 말해? 불행을 쉽게 극복한 너희가 대체 뭘 안다고!”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왜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야 해? 그런다고 날 용서할 거야? 아니잖아. 그리고 그런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주인공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하늘은 멍청하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서 이들을 돕기로 마음먹고 센터의 편으로 돌아선다고 해서 역삼 본부 멤버들의 일원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았고, 그 이후에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은 영원한 참회뿐이란 것도 알았다.

평생 죄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특별함을 인정해 준 그레이를 등지고 싶지도 않았다.

차라리 S급 던전석을 털려고 시도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게 나았다.

어차피 한참 전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상황이었다. 멈추고 싶다고 해도, 멈출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늘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했다.

“으.”

감정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억울함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으며, 결국에는 그 복받치는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흐윽.”

하늘 자신도 제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딸꾹질이 나서, 손으로 입을 막고 오열했다.

“우으.”

어떤 완성된 문장도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는, 계속 그렇게 울기만 했다.

“끅.”

요련과 화연은 아무 말이 없었다. 표정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하늘의 앞뒤에 서서 그녀를 보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왜, 왜…….”

하늘은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서 다시 물었다. 아까보다는 한참 작아진 목소리였다.

“어떻게 너희들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쉽게 가지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특별해질 수 있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관대해져? 어떻게 용서해? 어떻게 사람들을 좋아하게 돼? 어떻게 무엇이 옳은 거라고 확신을 가지고서 말할 수 있어?”

계속 같은 지점에서 생각이 맴돌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얼마 전까지 보았던, 죽어가던 나약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라 더욱 불안해졌다.

[SSS급, 저게 오류일 순 없는 거죠?]

영원이 나간 채팅방에서 세계수의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 건 아니냐고 물었던 것은 하늘이었다.

하늘은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S급이 끝인 줄 알았는데, 그 이상이 있었다니. 게다가 그 경지에 이른 게 포에버라니.

질투가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왜? 왜 편안한 거야?’

‘포에버와 K 때문에 그레이의 모든 계획이 순식간에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도 정의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눈물만 뚝뚝 흐를 뿐이었다.

그를 지켜보던 요련이 입을 열었다.

“류하늘 가이드님.”

“…….”

“그 질문들에 답해줄 수 있는 말은 많아요. 용서할 거냐고요? 용서야 당연히 못 하죠. 제가 피해자가 아닌데 애초에 대신 용서할 수 있는 자격도 없고요.”

“…….”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기에 늦은 때는 없다는 거예요. 용서를 받는 건 그다음 문제고.”

요련은 하늘이 던진 수많은 질문에 전부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 꼰대 같은 설교를 할 생각은 없었다.

요련의 답은 요련만의 답일 뿐이고, 하늘이 스스로의 답을 찾는 건 하늘의 몫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요련은 다른 주제를 꺼냈다.

서론이 길게 필요할 줄 알았는데, 하늘의 불안정한 상태를 보니, 부연 설명이 크게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카이.”

“ㅇ…….”

류하늘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자, 하늘이 흠칫 떨었다.

요련은 더욱 강하게 확신하게 됐다. 하늘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으리란 걸.

그래서 요약된 내용만 말했다.

“그레이가 붙이는 이름에는 힘이 있어요. 그게 본인을 세뇌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

하늘은 조금도 부정하지 않았다.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고 세계의 진실을 알듯, 어느 순간 하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에 관하여 몰랐던 것을 불현듯 알게 되었다.

빌 슈허겔랑.

익숙한 기운에 둘러싸인 그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그레이는 하늘이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스카이.’

하늘은 빌이 스치듯 꺼낸 자신을 부르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그냥 싹 다 죽여. 괜히 벌레가 기어나가면 곤란해지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기도 한다.

하늘은 그가 영상 속에서 시설의 관리자들에게 명령하던 모습을 기억해냈다. 어렸던 하늘이 어둠 속에서 훔쳐보았던 장면이었다.

‘…….’

혼란스러웠다.

반복되는 악몽이 시작되게 한 건 화연이었고, 빌 슈허겔랑은 그 빈도와 강도를 키웠다.

과거의 기억과 무의식이 하늘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

신종교와 그레이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하늘은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깊은 충격 속에서 그레이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벌여온 장난질도 알게 되었다.

‘난 특별함을 갈망해.’

‘하지만 그 갈망이 이렇게까지 증폭된 건…….’

그러나 하늘은 진실을 알지 못했던 때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그냥 모른 척하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다.

이 직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레이가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조작했다는 것도.

그 때문에 그의 명령에 순종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정신세계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치 자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양.

‘내가 원래 질투가 좀 많은 편이기도 했잖아.’

하늘은 체념했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미 왔잖아.’

‘이제 와서 뭘 어쩔 건데?’

‘그레이를 만나기 전의 내가 뭐 그리 착했던 것도 아니었고. 나는 원래 질투심 많고 열등감에 찌든 새싹이었어.’

‘세뇌 없이도 이렇게 되었을지도 몰라.’

돔에서 벗어날 때도, 자폭의 끝을 직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그냥 왔다.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하늘은 요련과 화연의 가까이서 울음을 완전히 그치고 공허한 표정을 했다.

“류하늘 가이드님.”

점점 힘을 잃어가는 하늘의 눈빛을 보며 요련이 덧붙였다.

“아직 완전히 늦지는 않았어요.”

“…….”

“딘하우스와 슈허겔랑이 하려는 짓, 그 세뇌를 역으로 해독할 수 있게 협조해요. 그럼 그들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 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요련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늘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고, 눈에는 다시 눈물이 찼다.

“류하늘.”

화연도 뒤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늘은 주먹을 꽉 쥐었다.

“너는 그레이를 위한 폭탄이 되어 쉽게 죽어주어서는 안 돼.”

“…….”

“너 말고도 이유 없이 고통받았고, 어쩌면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을 이들에게 연민을 가져.”

“…….”

“네가 구할 수 있어. 네가 우리를 도와주면 그들이 전부 죽게 두지 않을 수 있어.”

“…….”

하늘은 결국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자신이 받은 세뇌를 관찰해 역으로 해독한 다음 딘하우스와 슈허겔랑이 하려는 짓을 막는 데에 협조하겠다고.

신종교의 세뇌에 관해 오랜 시간 연구해 온 화연과 요련이 빠르게 세뇌를 풀어버릴 방법을 찾아냈다.

그레이는 자신이 원할 때 하늘이 역삼 본부에서 자폭하여 적어도 그곳에 있는 건물들은 전부 날려버리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금방 막혔다.

요련은 괴로운 얼굴을 한 하늘을 보며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하늘이 겪은 불행으로 그녀가 벌인 악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순간 하늘이 죽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화연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목적을 전부 달성한 이후 요련은 인이어를 통해 역삼의 상황을 영원에게 전해주었다.

신종교의 세뇌는 그 힘이 모두 얽혀 있고, 그 끝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는데, 하늘부터 그 세뇌의 끈을 풀어버렸으니 돔 외부에서 자폭 테러가 바로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하늘이 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당장 죽게 두고 싶지는 않다는 그들의 생각까지도.

―그런 상황이야. 이제 정말 시작해도 돼.

영원은 멀리서 들리는 요련의 말에서 약간의 슬픔을 읽었다.

“그래.”

영원도 그들이 하늘에게 느끼는 연민이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만약 저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겪어낸 여현이 더 악한 길로 걸어갔다면, 자신은 그에게 잔혹해질 수 있었을까.

‘…….’

‘모르지.’

‘무의미한 가정이야.’

영원은 바다와 돔을 동시에 눈에 담고는 크게 호흡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여현아, 지금.”

“네.”

“시작할게.”

그 말을 끝으로 영원은 정말로 돔을 해체하는 일을 개시했다.

그레이는 돔 밖에서 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을 터였다.

쿠궁.

이제 그걸 알게 될 시간이었다.

영원은 가이드의 물리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지점을 돔 위로 하나하나 짚어갔다.

돔의 약점 모두에 한 번에 힘을 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쿠쿵.

돔이 크게 흔들렸다.

원한다면 당장 전부 부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쿠구궁.

영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돔 전부를 붕괴시킬 모든 지점을 물리력을 사용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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