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32화 (132/142)

돔에서 나온 하늘은 곧장 역삼 본부 앞으로 갔다. 역삼 본부 멤버들의 시선이 모두 제주도 근처를 향해 있을 때, 몰래 뒤를 치기 위해서.

그러나 계획에는 처음부터 차질이 생겼다. 본부의 입구에서 화연과 요련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늦었네.”

오랜만에 마주친 화연이 그렇게 말했다. 곁에 선 요련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두 사람을 무력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늘은 암담한 기분에 빠져 뒷걸음질 쳤다.

“류하늘 가이드님.”

그때 요련이 입을 열었다. 어느새 요련은 하늘의 뒤편에 서 있었다.

앞에는 강화연, 뒤에는 고요련. 퇴로는 없었다.

“있잖아요. 사람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하던 일을 멈출 기회는 늘 있어요.”

“…….”

하늘은 뒤돌아보지 않고 요련의 말을 들었다.

“세뇌에 빠져 스카이로 사라지길 바라나요. 아니면, 그래도 인간답게 류하늘로 기억되고 싶나요?”

요련은 다정한 어조로 협박 같은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기에 늦은 때는 없다는 걸 생각하며 답해주세요.”

***

“여현아, 저 둘은 먼저 보내도 될 것 같아. 그냥 깔끔하게.”

영원의 말에 따라, 여현은 돔에서 나온 세 명 중 S급 에스퍼 두 명에게 먼저 힘을 썼다. 깔끔한 처리는 영원이 저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거라 생각하면서.

“제발 목숨만……!”

두 에스퍼가 빌었지만 동정해줄 여지는 없었다.

두 사람 역시 조지나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민간인을 이유 없이 학살한 전범이었으니까.

“아니, 걔들을 싹 다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 그, 그레이가 시켜서!”

발악 같은 애원이 이어졌다.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행했다는 걸 깔끔하게 인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구질구질했다.

‘안 들어야지.’

영원은 속으로 그렇게 결정하고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악!”

여현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에스퍼들보다는 영원의 반응을 더 주의 깊게 살폈다.

영원이 더는 보기도 싫다는 듯이 시선을 돌려버리자, 그는 전범들이 변명하는 문장을 끝까지 다 들어주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하려고 하, 아…… ㅇ냐!”

영원이 저렇게 불쾌함을 드러내는데, 그들이 이보다 오래 산소를 흡입하도록 둘 이유는 없었다.

쿵.

풍덩.

금방 두 사람은 바다 깊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돔 주변은 바로 조용해지지 않았다. 영원이 잠시 필요에 따라 살려둔 조지나가 아직 남아 있었다.

“포에버…….”

그녀는 공포에 잠겨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일 것처럼 쏘아보는 여현이 두려웠지만,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어도 저들과 똑같이 죽는 거라면 뭐라도 더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기 때문이었다.

죽기 싫었다. 자신은 이리 쉽게 죽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다.

“어차피 네가 아끼는 건 다 못 지켜.”

“…….”

“차라리 나를 살려두고 뭐라도 더 알아내는 게 너희가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거라니까? 그레이의 계획을 정말 다 아는 건 아니잖아?”

구질구질하게 들리는 건 앞의 둘과 마찬가지였다.

영원은 아까처럼 조지나의 말도 듣지 않기로 했다.

‘더 들어줄 가치가 없네. 다른 거나 하자.’

영원은 서울에서 요련과 화연이 연락을 주기를 기다리며 여현의 얼굴만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얼굴이야말로 불가능하다는 증세 없는 복지.’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들은 지금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어.’

‘귀는 닫아두자.’

귀는 눈이나 입처럼 닫아둘 수 있는 기관이 아니었지만, 원래 영원은 다른 사람들이 해낼 수 없는 것을 잘 해내는 편이었다.

‘안 들린다.’

‘안 들리는 거야.’

영원은 여현만을 바라보며 조지나가 멀리서 소리치는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여현아.”

“네.”

“나는 다른 생각 하고 있을게. 혹시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그거만 막아주라.”

“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 영원은 인이어를 통해 기다렸던 연락을 받았다.

―영원아.

요련이었다.

―류하늘과 만났고, 얘기를 좀 했어.

요련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은 화연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필요한 건 금방 다 알아낼 것 같아.

“얼마나?”

―5분? 그다음엔 그레이가 살아 있는 걸 더 참아줄 필요 없을 거야.

“응. 알겠어.”

영원은 그제야 다시 조지나를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너희 기대만큼 지켜주어야 할 가치가 있지 않아.”

“응. 기대 안 해.”

“…….”

영원이 갑자기 반응하자 조지나가 멈칫했다.

“나도 알아.”

영원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대나 애정 때문에 그들을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보통은 인류애보다는 세계의 전체적인 안정을 바라서 평화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네가 추구하는 저, 저…… 정의는…….”

“그런 거 없어.”

영원은 어디 무슨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주인공처럼 정의나 선을 좇고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려고 해왔을 뿐이었다.

부들부들.

조지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해 손끝과 속눈썹만을 떨었다.

그러다가 다시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말했다.

“나, 나는…….”

“살고 싶다고?”

영원이 조지나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런데 정말 더 오래 살아 있는 게 너한테 좋은 걸까?”

“…….”

조지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답하지 못했다.

“아닐 거야. 스피넬, 너는 살아 있는 내내 네가 전범이고 학살자라는 사실을 잊지 못할 테니까. 왜냐면…….”

“…….”

“내가 널 고통 속에 가둘 거거든. 네가 절대 그 사실을 잊을 수 없도록.”

영원이 사람들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자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쿵.

영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지나는 자신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걸 느꼈다.

“ㅇ…… 욱.”

엄청난 고통이 심장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너 때문에 미래를 잃었는지 셀 수는 있나?”

당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우읍.”

조지나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막았다.

영원은 그 반응을 싸늘하게 지켜보았다.

‘정의구현을 목표로 살지는 않는 편이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지.’

조지나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쉽게 정당화하고, 그레이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에만 심취해왔다.

그녀는 자신만이 애틋하고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결국에는 알게 될 필요가 있었다. 영원은 그에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조지나에게 긴 고통을 주기로 했다.

“조지나 스피넬. 너도 네가 지옥에 가게 될 거라는 각오쯤은 충분히 하지 않았어?”

“우으…….”

조지나는 더 이상 아무런 문장도 완성하지 못했다. 두려움과 고통에 갇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죽음 뒤에 오는 지옥 따위는 믿지 않아.”

“…….”

“그래서 네 바람대로, 너를 당장 죽이지는 않을 거야.”

영원은 선심 쓰듯 말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러면 고통이 너무 쉽게 끝나잖아.”

조지나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삶의 지속이 사실은 그녀가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었음을 차차 알아갈 터였다.

“조지나 스피넬. 아주 오랫동안 숙고의 시간을 가져.”

크르릉.

깊은 심해에 그녀를 위한 감옥이 만들어졌다.

“벗어나길 원한다고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을 거야. 그런 짓은 못 하게 되어 있어.”

“아……. 으으.”

“아, 내가 말이 좀 길었네.”

“아, 아, 아니……!”

조지나는 끝을 직감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열심히 양옆으로 저었다.

“딱히 그럴 가치가 있는 대상도 아니었는데.”

영원은 감정 없는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오래 살아. 네가 원했던 만큼.”

사락.

쿵.

조지나는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크르릉.

아무리 발악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견고한 벽이 주변을 에워쌌다.

“아악!”

조지나는 온 힘을 다해 절규했으나, 그 목소리는 감옥 밖으로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더 큰 고통이 밀려왔다.

파도처럼 과거의 기억들이 그녀를 덮쳐 왔다.

“으으으…….”

그녀가 지워버린 이들이 다시 살아나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춰오는 듯했다.

모든 기억이 끔찍한 모습으로 하나하나 재구성되었다.

“아냐, 아냐!”

악행의 대가로 누려온 호화로운 삶이 모두 사라졌다.

“아냐…….”

이제 찾아올 고통뿐인 비참한 미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제발…….”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곳을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악!”

그리고 같은 시간, 바다 위에서 영원은 말했다.

“여현아, 나는 이거, 잊어버릴 거야.”

“네. 저도 그럴게요.”

더는 기억할 가치가 없었다.

조지나의 말을 더는 듣지 않기로 정하자 귀에 들리지 않았듯, 생각하지 않기로 정한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건 영원에게 그리 어려울 것 없었다.

‘이제 다른 생각 해야지.’

‘예를 들어, 그레이 없애기.’

무가치한 존재를 눈앞에서 치우면서 기억에서까지 깔끔히 지워버리는 건 처음 해보는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집중해야 할 다음 과제도 있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인이어에서 화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원 가이드님. 돔 없애는 거, 잠시 후에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의총의 목소리도 연이어 들렸다.

“네.”

영원은 간단히 답하고는, 공중에서 돔을 내려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