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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30화 (130/142)

영원의 SSS급 게이트 나들이 방송이 종료되었다. 화려한 색이 가득하던 화면이 검게 변했다.

“……막아.”

그레이는 꺼진 화면을 노려보며 말했다. 표정에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포에버를 막아.”

그는 자신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는 조지나, 이반, 하늘에게 목적어까지 분명하게 덧붙여 말해주었다.

“…….”

세 사람은 한동안 입을 닫고만 있었다. 그 상태로 굳은 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명령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 명령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

그레이가 간단하게 몇 음절로 내린 명령은 누구라도 따를 수가 없을 내용이었다.

‘막으라고? 대체, 어떻게?’

조지나는 동공을 떨며 생각했다.

‘저 미친 조합을 누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든 묻고 싶었다. 그런데 떠오르는 의문을 그대로 내뱉었다가는 그레이의 기분을 더 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럴 수도 없었다.

이반과 하늘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펴도, 그들 역시 답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만 했다.

조지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입 근처로 올려 엄지손톱을 씹었다.

파직.

“XX.”

그때 그레이가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힘을 썼다.

카강!

와지직.

그들이 있던 탑 상부의 천장이 통째로 날아갔다.

휘잉.

서늘한 바람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레이는 사라진 벽 부분까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바로 아래는 낭떠러지였다.

그는 그곳에서 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도 똑같은 내용의 명령을 내렸다.

―저 둘을 막아.

그레이의 음성이 돔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짧은 명령을 들은 돔 안 각성자들 대부분의 반응은 조지나의 반응과 거의 흡사했다.

그들도 그레이의 간단한 명령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러나 무어라 답하거나 당연하게 떠오르는 의문점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지는 못했다.

동공만 떨며 주변인들의 표정을 살필 뿐이었다.

‘저 둘을 막아?’

‘??’

‘???’

‘????’

동상처럼 굳은 각성자들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며, 그들을 대신해 누군가가 입을 열어 그러겠노라고 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

영원의 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곳은 낙원이었다.

이들에게 이곳은 먼 미래까지도 계속하여 낙원 같은 곳이어야만 했다. 방금까지도 이들은 그런 모습의 미래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미래가 단번에 부수어졌다.

영원의 10분짜리 SSS급 게이트 나들이 라이브 방송 하나로.

―자, 부술게요.

영원의 웃음 섞인 말이 그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

희망 회로를 찾아내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한 소수는 속으로 절망에 차 그레이를 향해 외쳤다.

‘딘하우스, 저 미친 심영원과 김여현 조합을 그나마 막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잖아!’

‘네가 안 튀어나가고 우리한테 그렇게 명령한다고 뭐가 변하겠어?’

그러나 속으로 반항적인 외침이 차올라도, 불만을 밖으로 터뜨리진 못했다. 그들마저 다른 이들과 똑같이 입을 닫고만 있었다.

그레이의 짜증이 그들에게 향하면, 심영원이 오기도 전에 자신의 목숨이 먼저 끝나 있을 테니.

그러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굳은 표정으로 그레이만 바라보며 기다리는 게 돔 내부 각성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까, 방금 영상 진짜인가요? 진짜 맞나요?”

합리화 회로가 너무 잘 돌아갔는지 현실부정을 매우 착실하게 해낸 듯한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레이는 예민한 감각으로 멀리서 던져진 질문을 들었다. 그러나 바로 답하지 않았다. 질문자는 또 덧붙였다.

“CG 아닐까요? 어디에 설치한 세트? 게이트 내에 바람이 원래 저런 식으로 불었나요? 지구 어디 세트 내부일 확률이 더 높지 않아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모론과 유사한 내용의 문제 제기였다.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일 수가 없지 않아요? SSS급 게이트 안에서 생중계를 하다니!”

그는 말을 이어가며 스스로의 논리에 더욱 심취했는지, 목소리를 더욱 키웠다.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소수도 동조해 그 논리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딥페이크 같은 걸 수도 있어!”

“그래요!”

헛된 희망은 더욱 멀리 퍼졌다. 급기야 영원이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거라는 추측까지 나아갔다.

“그레이, 포에버가 살아난 것도 아닌 거죠?”

“아직 자고 있는데, 분명히 CG로 그 움직임을 구현해 낸 거예요!”

“맞아요!”

이반 하이제렌의 탈을 쓴 환성은 발아래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애잔하다.’

이 정도로 지능이 낮은 녀석들이 이렇게나 많이 섞여 있었다니, 그들에게 닥칠 불행이 훤히 보여도, 조금도 동정심이 일지 않았다.

“다들 채팅방에 적힌 SSS급, 시스템으로 둘의 랭킹을 보았잖아요.”

하늘이 그레이의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

하늘은 적어도 현실 인식을 올바르게 한 모양이었다.

“세계수의 채팅을 해킹하거나 조작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하늘의 속삭임이, 그레이가 주변에 설정해 둔 음성 증폭 효과를 타고 돔 전체로 퍼졌다.

“…….”

희망 회로가 끊긴 모양이었다. 멀리서 들리던 희망에 찬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멎었다.

[SSS급 가이드]

[SSS급 에스퍼]

영상은 영상대로, SSS급 랭킹은 또 그것대로 그레이 측 각성자들을 정신없이 뒤흔들었다.

현실을 부정할 수는 있어도 현실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XX.”

그레이는 당장 광기에 차 미친 것처럼 굴지는 않았다.

그는 냉정함을 유지한 채 몸을 천천히 돌려 하늘을 보았고, 방금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변한 명령을 내렸다.

“스카이. 넌 서울로 가. S급 던전석을 털어 와.”

하늘은 거역하지 않았다. 목적지를 묻기만 했다.

“……어디로 가나요?”

“일단 역삼 본부. 그곳에 없다면, K의 펜트하우스.”

“……네.”

하늘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환성은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의미가 있는 도둑질 시도인가?’

환성으로서는 회의적이었다.

타박타박 사라지는 하늘을 보면서 어쩌면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밖으로 나가면, 심영원과 김여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설령 그들이 하늘을 그냥 보내주더라도, 역삼 본부에는 이창결과 백율, 서시용이 있을 터였다. 하늘이 혼자서 그들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환성은 그레이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스륵.

어쨌든 하늘은 금방 환성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그레이는 이어서 조지나에게도 구체적인 명령을 내렸다.

“조지나, 너는 밖으로 나가서 포에버를 직접 만나.”

“……응?”

“시간을 끌고, 그곳에서 내 눈이 돼.”

“…….”

“포에버가 얼굴을 보자마자 너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

한 타이밍 늦게 그레이의 명령을 다 이해한 조지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금방 동공뿐 아니라 온몸까지도 그녀의 의지에 반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그…… 그게.”

조지나는 바로 알겠다고 답하지 못했다. 입을 우물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그러나 조지나도 알기는 했다. 이곳에 머무른다고 하여 다른 방법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걸. 누군가는 직접 가서 포에버를 보고 적의 상황을 가까이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조지나는 자신이 그 최초의 자살 정찰단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 말고 다른 녀석ㄷ…….”

파직.

그레이의 손 근처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그 불이 그의 손 전체를 덮었다가 사라졌다.

화륵.

내가 포에버보다 너를 더 잔인하게 죽일 수 있어.

그레이는 조지나에게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

조지나는 그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

오랜 관계는 그레이의 가차 없는 살인으로 곧장 영구히 끝날 수도 있었다.

그레이라면 언제라도 가능했다.

“나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조지나는 심장이 찢기는 듯한 절망에 휩싸였다.

자신은 그의 전담가이드였다. 이 관계가 이렇게 얄팍한 것이어서는 안 됐다.

그러나 또한 조지나는 알았다. 자신이 아무리 이 관계가 이보다는 깊은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해도, 여전히 그렇게 착각하기 위해 애쓴다고 해도. 그 믿음이나 착각이 이 상황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는 것을.

“어서 가.”

그레이가 차분히 다그쳤다. 그는 가라고만 말할 뿐 ‘다녀오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레이도 그들이 다시 만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레이.”

그레이는 어쩌면 작별인사일 수도 있는 명령조차 다정하게 뱉지 않았다. 갈수록 서늘한 안광으로 몇 년을 함께한 전담가이드를 볼 뿐이었다.

조지나는 더욱 깊이 깨달았다. 이 존재, 이 목숨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다고.

나는 그의 소모품이다. 그것도 나무젓가락이나 종이 접시 같은 일회용품.

타박.

그레이가 굳은 조지나의 앞에 가까이 다가와 섰다.

“조지나.”

그의 손이 조지나의 머리카락을 느리게 쓸었다.

항상 그리던 손길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소름이 돋았다.

“내게도 마련해 둔 다른 수단이 있어.”

그레이는 방금보다는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포에버가 이대로 승리하게 둘 것 같아?”

조지나는 돔을 떠나기 전의 하늘처럼 무언가에 홀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나를 믿어.”

그를 보던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 방법밖에는 없잖아.”

“…….”

“네 운명의 주인은 나야.”

곁에서 지켜보던 환성도, 그레이의 말에 조지나가 반박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조지나 스피넬이 그레이의 유혹에 이끌려 선을 넘은 순간 모든 게 돌이킬 수 없어졌고, 조지나는 그레이에게 그녀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빼앗겼다.

전범이 되고, 학살자가 된 대가가 가벼울 수는 없었다.

조지나는 그 사실을 영원히 모른 척하고 싶었겠지만, 이제 그 무게를 체감할 순간이 왔다.

조지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조지나는 울고 싶었다. 죽기 싫었다. 그러나 돔을 나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레이는 이반에게 말했다.

“우리는 밑에 내려가 있는 빌이랑 대화를 좀 하지.”

“빌 슈허겔랑?”

“그래. 그가 위대한 신종교의 지도자가 된 데에는 나름대로 대단한 이유가 있으니까.”

이반은 그레이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그와 함께 빌 슈허겔랑이 있는 아래층으로 향했다.

***

그리고 같은 시간, 돔 밖.

“여현아.”

“네.”

“이거 끝내고, 분짜 먹고 싶어. 잘 튀긴 꽉 찬 넴이 끌리네. 그리고 카레 우동도. 커다란 새우튀김 얹어서.”

“네. 제가 다 해드릴게요.”

“꼭 해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어디서든 같이 먹자.”

“……네.”

영원은 무사히 일을 마치고 즐길 맛있는 식사 메뉴를 정했다.

그리고는 돔 밖으로 나온 조지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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